교보문고에 들렀다. 친구가 권하는 책을 샀다.
계산대에서 봉투 사시겠어요?하고 물으니 별 것은 아니지만 가슴이 뜨끔해진다. 항상 휴대하려니 마음먹다가도 나이들어 가며 가방이 커지는 것이 불편하여 자꾸 빼놓게 된다.
가지고 다녀야 할 것들이 점점 늘어만 간다. 게다가 건망증까지 합세를 하면 우산도 일단 가방에 넣어야 하고 작은 물건도 따로 드는 것보다 가방에 넣어야 안심이다.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과 글감을 따놓는 메모장, 돋보기에서 부터 전철에서 징징거리는 아이들 달래기용 사탕까지 합하면 가지 수도 많다. 글쓰는 사람의 무기같은 필기구는 어느 날 꺼내보면 12개가 들어있다. 그래서 외출할 때는 점검을 하여 되도록이면 가방의 부피를 줄이는데 그런 날만 골르듯 장 가방이 필요하다.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나는 늘 그렇다. 오늘은 가지고 나가지 않은 나를 책망하기보다 나를 편하게 하기 위해 봉투를 샀다.
교보문고에서 나와 경복궁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앞좌석에 나이 60의 앞뒤로 보이는 남자가 탔다. 그도 우리도 경로석에 앉았다. 한 손에는 007 가방 크기의 공구가방을 들었고 다른 손에는 책 5권을 들었다. 그 책들의 표지가 미끄러워 앉자마자 지그재그로 움직여 자꾸 떨어질 것같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책은 사겠으나 그까짓 봉투는 사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오늘 13번째 아침장미 동인지를 내고 우리끼리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기에 책을 든 그 나이대의 남자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옆자리의 친구와 약속이라도 하듯 마주보고 소리없이 웃었다. 우리 책이건 아니건 쓰는 사람과 읽은 사람과의 만남같은 것의 유쾌함이다. 요번 책에 컴퓨터 이갸기를 특집으로 실었기에 보여주고 싶었다. 내리기 몇 정류장 전에 책을 한 권 그 분께 얹어주며 읽어보시라고 하였다. 책을 받아든 그 분은 이내 책을 펼치고 특집을 읽기 시작했다. 읽히지 않으면 집에 가서 보려니 하며 덮을 텐데 계속 읽고 있다. 마음이 동하지 않고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낱 사람도 가진 것에 더 얹어주고 싶은데 하느님이야 속까지 꿰뚫고 계신 분이시기에 그 분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덤으로 어찌 축복을 얹어주시지 않을까 싶다. 무늬만 하느님 마음에 들게 그릴 것이 아니라 본질에 접근하도록 살아간다면 축복은 따라 붙는 것이기에 신경쓸 필요가 없을 것같다. 항상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대기하고 계시는 나의 하느님, 내가 무엇을 하며 기도로 대화할 때, 덤으로 주시는 것이 더 많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