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발달하면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더 승화되고, 그 다음 단계로 오페라가 무대에 올려지게 된다. 지금 경기도내 곳곳이 오페라와 더불어 오케스트라의 열정적 화음이 용트림하며, 경기도의 예술적 세계를 꽃을 피우고 있다. 경기음악의 뒤안길을 찾아 거닐어 본다.
예술의 세계에서 인맥과 학풍은 매우 끈적하게 연계된다. 그러나 음악은 인맥이라기 보다 장르에 따라 발성기법, 연주법, 건반테크닉, 지휘법 등에 따라 그 맥을 같이 하게 된다. 현대에 와서는 기획력 있는 이벤트에 따라 연주 단체의 음향이 장중하거나 여리어 지는 것과 같이 오페라의 무대까지도 장르에 따라 그 맥을 달리하는 표현의 세계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합창세계를 예로 들면, 미국 웨스트민스터 합창 양식과 유럽 동구권의 합창 양식이 양대 산맥으로 공존하는데 한동안 경기지역 합창단들은 미국 양식의 발성법만이 정통인양 만능이 되었으나 그후에 러시아 등 동구권 음악이 시대적 조류에 따라 접목되니 이제는 합창 지도법 또는 발성 자체가 다르게 연주되어 표현되는 것이다. 미국양식은 두성에 의존하지만, 러시아와 유럽풍은 가슴과 몸통을 울리는 중후한 소리에 합창의 새로운 연주법이 우세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 합창단들의 양식을 미국양식은 수원시립합창단(이상길) 또는 윤학원 스타일이라고 하며, 러시아적 양식은 안산시립합창단(박신화)와 성남시립합창단(이기선)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고인이 된 전평화 스타일의 안양시립합창단은 오페라적 발성으로 단원40~50명이 국립경찰관악단 60인조의 반주 소리를 능가하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음악의 인맥과 장르는 서로 연계된 상태에서 기획력 있는 공연에 따라 이합집산 되기도 한다.
1단계-경기음악의 샘 경기음악은 그 원천이 난파음악제라 할 수 있다. 수원시 팔달산 중턱에 1968.10.15 난파노래비가 건립되면서, 난파음악제가 1969년 홍난파 추모일인 8월 30일 제1회 난파음악제가 수원 국제극장에서 개최되면서 음악의 샘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당시 양악의 음악은 교육계의 학교에서 음악시간을 통하여 이루어지면서 겨우 양악의 씨를 뿌려 터 밭을 일구고 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경연대회도 중·고등부와 일반부가 함께 하며, 북부지역(의정부 근교)과 서부지역(인천지역), 그리고 수원지역(경기 남부권)으로 나누어 예선을 거쳐 추모일을 기점으로 난파음악제가 개최되어 그 당시에는 음학도들의 유일한 등용문이었다. 이제는 35회째를 맞이하며 대학과 일반을 위주로 전국 규모의 대회로 성장하며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난파의 친일 시비에 휘말려 흑백 논리의 이념 논쟁을 거치면서 급기야 2003년 3월 홍난파를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이 열려 서양음악의 선구자로 자리매김 하는 역사적 사실도 있었다.
어쨌든 제1회 난파음악제부터 입상한 음악인들이 이를 발판으로 하여 지금은 불혹의 나이지만 후진양성과 연주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성악은 한규용, 김미자, 박승란, 지재선, 유영애, 이영숙, 이윤정, 오경자 그리고 재미 음악가 손효숙 등이 있다. 피아노에는 송향지, 신명원, 진미화, 남기옥, 박미영, 김혜라, 김명신 등이 있다. 지휘분야에는 합창부문 임상팀을 지휘한 이상길 오현규 이병직 임창배 최홍민 등이 합창지휘자로 활약하고 있으며, 15회 난파음악제에 처음 실시된 작곡부문 대상 수상자인 유건주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2단계-앙상블의 향연 경기음악의 중흥기는 연주단체, 특히 합창단들의 활발한 무대가 이를 뒷받침하여 주었다. 난파음악제의 샘(泉)이 불씨가 되어 음악제를 거쳐간 많은 음악도들이 각처에서 실크로드 같은 음악 활동과 보급으 로 파급효과가 배가되기 시작하였다. 수원지역을 중심으로 60년대에 최초의 현악 4중주단 (송태옥, 조용환(작고), 이석기, 이명재)은 초기 단계의 도화선이 되였으며, 1966년 난파합창단의 창단은 그 의의가 경기음악계에 역사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겠다. 따라서 슬람미여성합창단, 경기도청합창단, 선경선영회합창단, 안양쌍투스, 안성산내들, 평택단비합창단 등의 창단과 활동은 그 파급효과를 볼 때, 수원중심에서 점차 지역이 확대됨을 알 수 있었다. 기악 앙상블도 수농향음회와 수원대학생의 향예회의 활동은 기악연주의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동기가 된 것으로, 무엇보다도 1982년 수원교향악단(송태옥, 박훈)등의 활동은 경기지역에 교향악단 불모지에 그 효시가 되어 경기도에 최초로 시립 단체인 수원시립교향악단이 창단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난파합창단을 모체로 수원시립합창단(이상길)이 창단 되며, 새마을 운동의 시대적 배경에 난파어린이합창단(김정자)의 재 창단으로 현재 성정문화재단의 모체가 되었으며 수원콘서트콰이어, 선경선영회, 대한어머니 등 합창 단체들의 용트림이 시작 되었다. 각 자치단체들이 지원하는 어머니합창단이 83년 수원시어머니를 필수로 84년 광명시, 85년 부천시, 87년 안산시, 88년 성남시, 고양시, 광주군의 어머니 합창단의 창단으로 경기음악을 대변하였다. 이 때에 경기합창단들은 그 실력이 대단하여 경연대회에서 85년 수원콘서트콰이어(오현규)가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수원시어머니(이병직), 부천시어머니(최홍민)의 연속적인 수상의 쾌거가 있었다. 그 후 90년대와 2000년대에 안산시여성합창단, 이천콘서트콰이어(임창배), 수원여성합창단(최득남), 광명참빛남성합창단(김성강), 안양소년소녀(김영생)등이 합창올림픽에서의 우수한 성적의 입상도 경기음악의 수준이 타 시도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경기도에 수원시향만이 유일하게 활동하던 차에, 88년 부천 필하모니오케스트라(임헌정)의 창단은 서부지역의 음악을 자극하는 계기로 같은 해에 부천시립합창단(최병철)도 창단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83년 수원시립합창에 이어 86년 성남시립(서북진), 87년 안양시립의 합창단(전평화)의 창단은 전문성을 높이면서 음악단체들의 앙상블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 예로서 90년 11월 3일~4일의 경기합창연합회의 합창제 출연팀의 공연 내용을 알아본다.
이상의 연주 단체를 볼 때 경기음악의 중반기는 합창을 위주로 한 앙상블로 대변하고 있다.
3단계- 교향악의 축제와 오페라의 서막 수원시립교향악단(금난새) 부천 필(임헌정)에 이어 성남시립이 시립단체로 창단되는 동안에 경기도에서도 경기도립팝스오케스트라(최선용)의 창단으로 경기도내 각 지역에 순회 연주를 통하여 불모지에 있는 음악인들에게 자극을 주어 기악의 앙상블에 대한 불씨를 북돋아 주었다. 수원시향은 완숙한 연주로 그 능력을 인정받으며 금난새에 이어 박은성 지휘자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부천 필은 임헌정 지휘자의 아집으로 이벤트성 있는 완벽한 연주로 평가받고 있다. 또 경기도립팝스는 클라식일 경우 도립오케스트라로 경음악일 경우 도립팝스로 활용하는 2중적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경기음악계의 꽃인 아마추어적인 오케스트라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그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높이 기여하고 있다. 음악의 불모지에서 시흥시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는 서훈 지휘자, 지역적 어려움에 난제를 풀고 가는 구리교향악단의 강창우, 창작 음악에 도전하는 용인심포니의 조재식, 시립단체를 방불케 하는 과천필하모닉의 유세종, 경기남부의 음악을 대변하고 있는 평택시오케스트라의 이창녕 등 많은 지휘자와 단장들이 2관, 3관, 4관 편성에 도전하며 활동하고 있다. 가장 관심을 갖게 하는 단체는 군포의 프라임교향악단(김홍기)으로 가장 안정되게 성장하며 연습을 꾸준히 하는 팀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경기도에는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활동도 다른 시도보다 활발하다. 광명청소년(송영주), 성정필하모니(신동렬), 성남청소년(박용준), 용인청소년(신민용), 수원청소년(박인규), 구리청소년(조영숙, 김유강), 평택청소년(김선관)등 경기도내의 소년소녀합창단 활동이 소원한 반면, 오케스트라는 지금도 여러 단체가 창단 작업에 들어가고 있으며 그 활동 반경도 높이 평가된다. 결과적으로 청소년 오케스트라부터 아마추어, 시립단체까지 현재의 경기음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하겠다. 관악기를 위주로 한 앙상블도 그 활동이 활발한데 이병훈이 이끄는 파주윈드와 안양윈드의 강철호, 수원윈드의 김연근, 소외 지역을 대변하는 가평군의 모던팝스의 홍성용 등의 활약도 대단하다. 소규모 앙상블인 수원챔버(도부민), 안산챔버(김희송) 등의 쳄버들도 연주회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데, 경기도의 대표적 단체인 수원시립합창단은 민인기 지휘자로 새로움의 무대를 연출하고 있으며, 도립팝스는 유광 지휘자로 바뀌며 젊음의 감각이 창출되리라 믿는다. 용인시에 있는 국립경찰교향악단은 정철주적인 완벽한 연주를 고집하는 정통음악단체이며, 특이하게 피아노에서도 송피아노 앙상블은 송향지의 제자들과 후진들이 매년 연주회를 하는 인맥을 통한 피아노음악의 새로운 장르도 있다. 그러나 경기음악을 가장 고무시키는 것은 예술의 꽃이라는 오페라가 경기도내 음악인들에 의하여 무대가 올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철은 오페라에 미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그 열정이 대단하다. 현재 군포의 수리오페라를 이끌고 있는 그는 이번에도 <인어공주>를 무대에 올린다. 안양오페라 이경애는 <까발레니아 루스티까나>를, 협성대교수인 김미미는 화성오페라를 창단하여 <여자는 다그래>를 무대에 올린다. 또한 과천의 최정석은 중앙오페라단을 이끌며 그동안 많은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으며 <나인칸타떼>라는 남성중창단을 이끌고 있다. 반면 여자중창단인 “노래하는 여자들”이라는 이름의 팀이 수원 출신 성악전공자들을 중심으로 전애리가 이끌고 있다. 이색적인 음악제로 평론가 탁계석이 주창하는<경기아버지합창제>가 있는데 어깨가 처진 아버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주자는 모토아래 창단을 유도하여 현재 각 시·군에 20여 개팀이 구성되었다. 남성의 중후한 화음을 특징으로 한 경기아버지합창제가 경기문화재단과 경기도음악협회에 의해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경기도내 작곡분야의 활동에도 그 인맥이 경기창작학회로 모여 있다. 2000년도에 대학 강단의 현대 기법의 창작 교수들로 주용수(한국재활복지대), 이미혜(협성대), 이문승(서울신대), 이운석, 유경선, 김의용, 박창원 등이 중심이 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기억될 상징적 무대 난파음악제에서 시발된 경기음악의 샘(泉)에서 앙상블의 향연으로 이어져온 경기음악은 오케스트라의 축제와 오페라 개막까지 창출되게 되었다. 그러나 정통 클래식이 관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 이벤트성과 기획력 있는 무대로 지역예술계에 기억될 몇 가지를 소개하여 본다.
모스코바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초청공연
2002년 10월 21일(월) Pm.7:30 경기도 문화 예술회관에서는 회관 건립 후 처음으로 순수 러시아인의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었다. 경기도음악협회에서 주최한 이 공연은 <모스코바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써 유리시모노프의 지휘로 시작된 연주회는 피아니스트 미하일 페투로프의 협연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 C단조 op.18이 연주되었다. 통상적으로 연주회 중간의 협연자에게는 따뜻한 격려 박수로 대신 하지만 이날은 페투호프에게 앙코르가 연주되는 감격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2부의 연주에서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B단조 op.74는 지휘자 유리시모노프의 지휘봉이 내려온 순간에서 정적만이 감돌뿐 관객의 박수소리가 없었다. 아마 이는 이미 마지막 악장에 콘트라베이스의 5박자의 여음에 모든 관객이 희열을 느끼고 있던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날 몇 가지 진기록이 있었는데, 첫째 정통클래식 음악회 입장료가 가장 비쌌다는 점, 둘째 2천여 명의 관객이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완벽한 감상 태도를 보여 준 점, 셋째로 순수 러시아 인들로 구성된 현지인들의 악단이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최초로 공연나레이터가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베르디 레퀴엠 공연
지역 출신의 음악인들을 대거 등용시키는 향토음악제의 연주회에서의 <베르디레퀴엠>이 2002년 11월 16일 경기도 문화 예술회관에서 열렸다. 레퀴엠은 죽은자의 영혼을 기리는 진혼미사곡이지만 베르디는 극적 효과와 멜로디를 동양적으로 작곡하여 우리에게 매우 친근감을 주며 오페라적이다. 출연진은 수원출신인 지휘자 오현규, 소프라노 이명희, 메조소프라노 이은미, 베이스 한규용, 수원대 출강하는 테너 이광순이며 합창에는 수원시립과 천안시립이, 교향악 반주에는 용인시에 소재하고 있는 4관 편성으로 그 규모나 연주 능력이 우수한 국립 경찰교향악단이 맡았다. 경기음악의 무대에 관객을 매료시키는 79분 42초의 대곡이었다.
심포지엄
경기도 남양, 활초리 출신이며 경기음악의 샘을 이룰 수 있도록 한 난파음악제의 주인공인 홍난파의 친일시비에 휘말려 매도되는 여론 속에 음악인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경기도 음악협회(오현규, 박춘식)와 화성시에서는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공감대가 이루어져 국제회의장에서 2003년 3월 28일 “홍난파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논제를 놓고 난파측에서는 음악평론가 이상만, 탁계석, 난파재단이사장, 정희준과 친일을 주장하는 대표 노동은,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김민철, 민예총 경기회장 김영기 등과 토론이 열렸다. 이날의 페널리스트는 중부일보 홍승원과 논설실장이 하면서 갑론을박 심층부까지 시비 논란을 벌였다. 마지막 모아진 중지는 서양음악의 선구자로는 인정하나 민족음악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으며 군가작곡은 작곡한 대로 봉선화 등 한국가곡 등은 그 업적을 그대로 남겨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것으로 결론 지었다. 따라서 난파의 친일시비에 광복회에서는 친일명단에서 이미 제외하였으며 북한에서 조차 면제부를 주었다고 하는데 경기음악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쨌든 이제 난파는 어엿한 경기음악인으로 그 터전에 씨를 뿌렸으며 서양음악의 선구자로 재조명 된 것이다. 마치 흑백논리로 이 문제를 생각하려는 행정가들이나 혹자들은 무한적 판단(無限的 判斷)의 생각에서 벗어나야 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