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금 관중들 운동장으로 물병을 던지면 안돼요∼ 무척 위험하죠! 제가 현역 때 족발 뼈에 맞아 기절했잖아요.
근데 그게 살점이라도 좀 붙어 있었더라면 덜 아팠을 텐데,악랄하게 다 발라먹고 던졌더라구요….” LG 홈경기가 벌어지는 잠실야구장의 진풍경.
귀에 라디오 이어폰을 꽂은 1루측 홈팬들은 어느 한순간―경기 내용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동시다발적으로 배를 잡고 쓰러진다. 왕년에 ‘그라운드의
개그맨’으로 불렸던 사람의 말 한마디에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LG 트윈스 장내방송 해설가 이병훈(37). 야구보다 더 재미있는 야구해설을
하는 이 남자는 역시나,야구보다 더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야구해설이 공정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
“LG가
아무리 ‘박살’이 나도 역전할 수 있다,희망이 있다고 해야 하니 약간 곤혹스러울 때도 있죠,하하.” 그의 해설 제1원칙은 ‘절대편파’다. 하늘이
두 쪽 나도 LG 편들기! 지상파 방송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잠실야구장 내에서 라디오 주파수 100.㎒를 통해서만 방송되는
그의 맛깔스런 입담은 열성 LG팬들의 가슴속을 얼얼할 정도로 시원하게 만든다. “1루쪽 관중은 무릎을 치며 박장대소하고 3루쪽 관중은 저를 보고
삿대질을 하는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지죠. 저를 향해 욕하는 원정팬들에 맞서 홈팬들이 대신(?) 싸워주는 경우도 가끔 있어요.” 지난 시즌부터
시작한 LG 장내방송은 선수시절의 경험과 야구 이론,거기에 개그맨 뺨치는 유머를 섞어 넣은 그의 ‘3박자 해설’ 덕에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유명세 때문일까. 얼마 전엔 설화(舌禍)로 한바탕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타격이 약한 LG 권용관을 SK 민경삼 운영팀장과 빗대어 말한
때문이다. “대학 선배이니 누구보다 나를 잘 알 거예요. 화가 나셨다면 내게 전화를 했겠죠. 정말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거든요.”
■다시 찾은 삶,더 열심히 살아야죠
TV 중계방송 해설에다 신문 고정칼럼,또 짬짬이 TV 오락 프로그램 출연까지.
다방면에 걸친 재능 덕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돈 많이 모았겠다고 하자 “은퇴할 때 진 빚이 10억인데 그거 다 갚은 지 얼마 안됐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선수 시절 아내와 웨딩업체 등 이런저런 부업을 했는데 사업을 벌이는 족족 빚만 남기고 문을 닫았다. 그때가 그럼 가장
힘든 시기였나? 그는 아무 말 없이 오른쪽 이마의 흉터를 매만진다. 97년 일어났던 불의의 교통사고. “음주사고였어요. 술취한 채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갓길에 세워져 있는 대형트럭에 그대로 갖다 부딪친 거죠.” 3일 뒤 깨어난 그는 다행히 뇌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전방의 사물만 볼 수
있는,곁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평생 고정 시력’의 판정을 받는다. 그대로 유니폼을 벗은 그는 수개월간 소주병을 안고 살았다. “아마
그때 애들이 없었다면 술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거나 자살을 택했을지도 몰라요.”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SBS에서 야구해설 의뢰를
해왔고,그는 보름간 술독을 뺀 후(!) 다시 새삶을 찾았다. “아내가 그러는데 사고난 이후에 더 재미있어졌대요. 제가 생각해도 그 뒤로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것 같아요,하하.”
■친구 같은 감독,만나 보실래요?
은퇴 후 잠깐 몸담은 연예계에서도 그는 사람
좋기로 금세 소문이 나 친한 연예인들이 많다. 배칠수나 공형진,윤정수 등이 자진해서 중계석을 찾아 그의 옆에서 장내방송을 했고,개그맨 정준하와
가수 이성진,영화배우 주진모도 곧 ‘깜짝 출연’할 계획이란다. “연예인은 별로 미련이 없어요. 제 꿈은 프로야구 감독이거든요. 왜냐구요?
회장님,사장님은 전국에 수도 없이 많지만 프로야구 감독은 딱 8명뿐이잖아요∼” 선수들이 편하게 옆에 앉아서 함께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그런
친근한 감독이 되는 게 그의 소망이다. 성남중 야구선수인 큰아들 ‘청하’―술 좀 자제하라고 부친이 지어준 이름―경기를 보러가야 한다며 일어선
그는 휴대전화 속 아들의 모습을 보며 한마디 한다. “고놈 참,누구 닮았는지 야구 참 잘한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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