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생각 나는것. 토정비결 요지음 인터넷 쇼핑물에서 이지함 선조님의 토정비결 신년운세를 무료 서비스 한다고 선전 하는곳도 있다. 요즘처럼 답답한 세상에 신년운수를 속 시원히 풀어줄 비결이 없을까 해서 여기 저기 운세를 보러 다니는 시기가 요지음이다.
우리는 토정비결을 보기 전에 토정 이지함의 삶 부터 먼저 살펴볼 피요가 있다.
토정 이지함은 토정비결의 저자로도 유명하지만 앞을 내다보는 예언가로도 유명했다, "15년 뒤면피빛이 천리를 물들일 대란이 일어난다"
는 임진왜란을 이미 예언해서 적중했고 부모의 묘지를 잡으면서 자손중 정승이 나올것을 예언했다, 예언대로 뒷날 둘째형 지번의 아들
이산해는 여의정이 되었고 작은형 지무의 아들 이산보는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지함은 "재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재앙이 따르는법" 이라며 한텽생을 청빈무욕하게 보냈으며 그는 유학뿐만이 아니라 천문 지리 의술 점복 관상 ,,,,,,등 비상한 재주와 박학다식 하면서 벼슬을 탐내지 않았다, 이지함이 벼슬길에 나선것은 늦은나이 56세에 포천현감 4년후 아산현감 으로 관직을 시작 하였다, 현감시절 걸인청[乞人廳]을 세워 고을안에 떠도는 없는자 병든자등 불우한 사람들을 모아 재활교육을 시키고 인간개조 운동을 시작했다 , 지금으로 치면 새 생활운동이나 새마을 운동처럼,,,,,,,,,,,,,,,,,,,,,,,,,,
당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하여 상인을 천대시 했으나 상업수완도 발휘하여 큰돈을 벌어 모두 곡식으로 바꾸어 빈민에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만년의 짧은 관직생활을 통해서 오로지 구세제민[救世濟民]의 정신으로 청백리 삶을 살다가 62세에 세상을 뜨셨다, 당시 이지함의 죽음에 대해서 동양의 석학 이라고하는 율곡의 글을 소개하면,,,,,,
아산현감 이지함이 죽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욕심이 없고 베푸는데 인색함이 없었다, 기질은 이상하게 타고나 추위 더위 주림 갈증을 잘 참았다, 어떤때는 알몸으로 바람을 막았고 십여일 음식을 먹지 않아도 병들지 않았다, 천성이 효성과 우애가 깊었고 재물을 탐내지 않았고 남의 사정을 잘 도왔다,명령을 내리는것은 모두 백성을 사랑 하는것을 위주로하니 백성이 모두 그를 흠모 하였으나 갑자기 이질을 앓아 세상을 뜨게 되었다,
이상은 지금으로 치면 망이인에 대한 조사와도 같은것 다시한번 선조님의 업적을 생각 해 본다, 요즘처럼 미래를 예측 할수없는 어지러운 세상에 미래를 정확하게 예칙 할수 있는 이지함 같은 기인이 나타났으면 오직 좋으랴?
허 허 정암선생,,, 미래는 모르고 사는것이 속 편해유,,,,,,,,,
첫댓글 ㅎㅎ,,, 정암형님~~ 우리도알게모르게,,선조님의 유전자를가지고 있지않을까요^^,,,아마 정암형님이,,더 많이 타고나신것 같은 느낌이듭니다^^,,, ㅎㅎ
굿~~~ㅎㅎㅎ제가 그 말씀 드리고 싶었어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