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넥타이를 매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준비 하는 시간은 무척 바쁘다. 세면 후 양복을 입고 지갑과 열쇠를 챙기는 등 할 일이 많다. 그 중에서 넥타이를 매는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린다. 퇴직 후 얼마간 쉬다가 다시 직장에 나가면서 부쩍 넥타이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직장생활 30여 년간을 제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근무를 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제복을 입는 것도 싫증이 났지만, 하루 종일 목을 졸라매고 있는 넥타이가 나를 얽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넥타이가 내 목만 조르는 게 아니라 나의 생활과 내 마음도 꽁꽁 묶고 있다고 느껴졌다.
정년퇴직을 하고 넥타이를 벗게 되자 마치 옛날 중죄인이 목에 걸고 있던 칼을 벗어던진 것처럼 자유롭고 해방된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넥타이를 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갑자기 정장을 벗고 캐주얼로 갈아입으면서 나이에 맞게 어울리는 차림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벗겨진 이마와 희끗희끗한 머리도 모자를 쓰니까 보다 젊고 활기 있어보였다. 자식들도 다 자라고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를 벗어나기도 했지만, 넥타이를 매지 않으니 우선 몸이 편하고 마음도 자유로워졌다.
몇 년간의 캐주얼 차림도 잠깐, 지난해부터 전에 다녔던 직장에 다시 촉탁(囑託)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제복이 아닌 일반 정장 차림이다. 출퇴근은 물론 종일 사무실에서도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전에 입던 양복을 손질하고 와이셔츠도 두세 개 샀다. 그런데 체중이 좀 불어나기도 했지만 전에 입던 양복은 왠지 어울리지 않고 촌스럽게 보였다.
양복도 시대에 따라, 몇 해 지나고 나면 어깨나 허리선, 옷깃의 크기 등 디자인이 바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전에 입던 양복은 어깨에 뻥이 잔뜩 들어있는 재킷은 물론, 허리주름이 2개씩 있는 펑퍼짐한 바지가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양복도 요즘은 몸에 꼭 맞아야 맵시가 난다고 한다. 바지 길이도 다리가 짧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구두를 덮어 길게 입는 경향이 있는데, 근래는 복숭아 뼈를 살짝 덮을 정도나 구두 굽이 보이게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멀쩡한 양복들을 입지 못하는 것이 아까웠지만, 양복을 두 어 벌 장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 양복을 입고 보니 이번에는 넥타이가 왠지 눈에 설었다. 내 얼굴과 넥타이, 양복과 넥타이가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전에 매던 넥타이도 제대로 어울리는 것이 없다.
내친김에 넥타이도 몇 개 사기로 했다. 넥타이를 고르는 일도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재킷을 걸쳐봐야 제대로 느낌을 알 수 있다. 몇 번을 갈아매고 나니 진땀이 나고 목덜미가 뻣뻣해진다. 어색하지 않고 무난한 것을 고르기도 쉽지 않지만 가격도 만만찮았다. 넥타이 두세 개면 어지간한 양복 한 벌 값이다. 싸고 멋진 것을 찾아보려고 몇 군데를 둘러보았으나, 아까 매어봤던 것보다 못하고 어딘가 덜떨어진 꼴이다.
재킷을 벗으면 넥타이와 얼굴이 마치 화병에 꽂힌 꽃처럼 한 세트가 된다. 여성들은 목걸이나 귀걸이, 브로치 등 액세서리로 자신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한다지만, 남자는 넥타이 뿐이다. 재킷을 벗으면 얼굴과 넥타이가 매치되어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든다. 넥타이의 색상과 무늬, 맨 길이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상도 달라진다. 정치가나 외교관이 기자회견이나 토론을 할 때는 빨간색 넥타이로 상대에게 밀리지 않는 강한 이미지를, 선거 유세나 모임에서는 연한 바탕색에 잔잔한 무늬로 온화하고 부드럽게 보이려고 한다.
이번 여름에는 무더운 날씨에 석유가도 사상유래 없이 치솟아서 회사에서는 에어컨을 줄이면서 사무실에서는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노타이 차림이 되자 사람들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평소 깐깐한 S차장은 편안하게 보이고 말없고 단정한 N대리는 수더분하게 보였다. 와이셔츠는 흰색이거나 연한 단색으로 넥타이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되는데, 노타이차림이 되니까 저마다의 개성이나 평소의 이미지가 사라져 버렸다. 잘 생기지도 않고 얼굴에 주름이 많은 내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그래서 요즘은 넥타이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같은 양복이라도 날씨나 기분에 따라 넥타이도 선택이 달라진다. 매일 아침 넥타이 두세 개를 목에 갖다 대어보고 신중하게 고른다. 또한 직장에서는 여간 더워서는 넥타이를 풀고 싶지 않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참으로 딱한 일이다.
요즘은 넥타이가 나를 얽매고 내 마음을 묶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볼품없는 내 모습을 가꾸어주고 자신감을 주고 있다. 점잖은 중년으로 때로는 제법 활기찬 모습으로 보이게도 한다. 넥타이가 만들어주는 이미지에 의존하게 되면서 나이를 몇 살을 떨어낸 듯 마음도 가벼워진다. 어디 넥타이 뿐인가, 머리 염색도 하고 안경, 시계 등의 액세서리에도 신경이 쓰인다. 자랄 때는 어른이 되고 싶어 담배도 태워보고 아버지 넥타이도 몰래 꺼내 매기도 했는데 지금은 지나온 시절에 머무르고 싶다.
간밤에는 열대야로 잠을 설쳤다. 아침부터 어깨가 무겁고 눈꺼풀이 쳐진다. 푸른색 와이셔츠를 입었다. 자주색에 줄무늬가 있는 넥타이를 목에 대어본다. 답답하게 보인다. 감색 바탕에 노랑 점박이로 바꾸어 본다. 산뜻하고 시원해 보이는 넥타이가 선뜻 눈에 띄지 않는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은 서둘러야하는데... .
*작가의 변 : 어제(8.22) 금요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생활중에 느낀 가벼운 소재입니다.
교수님은 아래서 두 번째 문단 중간, '어디 넥타이 뿐인가, 머리 염색도 하고...'에서
'어디 넥타이 뿐인가'다음에 '인생살이도 예외가 아니지 않은가'라는 말 즉
넥타이 이야기에 인생살이에서 견줄만한 대구(對句)를 넣는 것을 추천하셨습니다.
좋은 지적을 해주셨고 그러면 글의 무게감도 더할 것 같이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가벼운 글에서 굳이 그런 말을 넣고 싶지가 않습니다.
현실생활에서 느낀 그대로의 부담없는 기분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교수님의 공식적인 패턴(?) 중에 한 가지인 어떤 식의 말미, 즉 통상적으로 교과서적인
스타일을 떠나서 작가 스스로가 생각하는 글의 성격에 따라 나름대로 마무리 짓고 싶거든요.
종종 교수님 말씀을 잘 안듣고 그래왔지만, 이번에도 삶이나 인생문제를 깊이 다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에 인생, 삶의 철학 등의 말을 직접 언급해서 무게를 더하고자 하는 스타일에 좀 벗어나고 싶어서요.
첫댓글 여자들이 화장 하듯이, 넥타이로 개성을 살리고 멋을내시는 선생님 아주 근사합니다. 마무리도 무겁지 않아서 더 좋구요.
멋이 없으니까 넥타이에 매달리면서 안간힘을 쓰보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그리고 갑작스런 방문에 대접도 못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재킷을 벗으면 넥타이와 얼굴이 마치 화병에 꽂힌 꽃처럼 한 세트" 이 부분이 새로운 비유여서 좋습니다. 그런데 그 앞의 '그도 그럴 것이'가 왜그런지 걸리는 느낌입니다. 저도 교수님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글의 경우에는 교과서적 수필이 매력이 없습니다.(교수님이 이거 보시면 죽음이닷!) 참, 저 넥타이 아직 못풀렀습니당. 말미의 말없음표가 마침표로 바뀌었네요. 먼저것에는 남겨진 말이 있는 듯 여겨져서 좋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를 지울까 말까 몇 번 클릭했습니다. 불쑥 '재킷을 벗으면..'으로 시작하기가 좀 그랬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렇습니다. 교수님의 통상적인 지적인데, 몇 년이 흘러도 아직 같은 코멘트를 하시지요. 의견일치, 기분 좋습니다. 이제는 알아서 받아들여야할 것 같아서... . 참 말미의 말없음도 한 번 바꿔봤는데 그것도 되돌려놓아야겠어요. 감사합니다. 근데 아직 넥타이를 매고 계시다니, 천리는 아니더라도 몇 백리는 더 되는데 이를 어쩌면 좋을지... .
어느해 현충일, 옅은 선그라스, 우아한 케쥬얼, 귀를 덥힐둥 말둥한 긴머리를 날리며 동작동에 나타나신 엄지의 모습. 나는 그때 내가 가질 수 없는 자네의 부러운 참 모습을 보았었네. 그런 자네가 다시 넥타이를 메고 강단에 서서 후배들에게 강의를 하는 제도의 세계롤 돌아오다니, 세상은 참 아이러니칼 하지. 글 속에서 긴 세월을 같이 했어도 자네가 여성적인 패션 감각을 가졌는지는 미쳐 몰랐었네. 여성 패션가 '김동수'가 어느 가을 패션쇼에서 '남자 정장의 포인트는 넥타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 구만.
편안한 케주얼 차림에서 다시 넥타이로 목을 꽉 졸라 매도록 만든 책임의 상당부분은 지존님이 지셔야하는데, 오늘 아침 한가한 추억담으로 지난 세월을 한 바퀴 휙 돌리시는군요. 넥타이를 다시 매면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머지않아 다시 자유로운 차림으로 돌아갔을 때는 지금 이 시절을 그리워할지도... .
넥타이는 세상과 엄지님을 이어주는 끈 이었군요. 돌어온 장고...멋진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직장을 떠나서 보다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넥타이를 다시 매었다고 해서 결코 '돌아 온 장고'는 되지 못하고, 또 다시 직장이라고 발을 담구고 보니까 마음도 몸도 여유가 없습니다.
넥타이에 신경을 쓰시는 것은 당연하지요. 저도 남성을 대할 때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이 넥타이니까요. 넥타이 하나로 그 분의 취향과 성격, 심지어는 인격까지도 판단하게 됩니다. 넥타이에 억매이는? 엄지님을 부러워하는 분들이 많을겁니다. 행복한 고민이십니다.
선생님의 미적 감각은 일찌기 알고 있습니다. 이제사 저는 뭔가 조금 느끼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 바랍니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즐거운 비명' '행복한 고민'은 말 뿐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네요.
미적 감각을 인정해 주는 분은 엄지바우님 뿐인가 봅니다. 그럼 제가 골라 볼까요? 푸른 색 와이셔츠에 자주색에 줄무니 있는 것은 좀 흔한 조화라서 인상적이지 못할 것 같고요. 감색 바탕에 노란 점박이 무늬 있는 것이 훨씬 맘에 듭니다. 모노톤( monotone), 즉 푸른 색과 감색은 동색 계열이라서 세련미가 있고, 거기에 노란 점박이 무늬로 포인트! 엄지님과 잘 어울릴 것 같은 멋진 모습이 상상됩니다.
월요일 아침, 시간에 쫓기면서도 보고 또 보고 결국 그 넥타이를 매고 나가서 편하게 3시간을 강연하고,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들미소님의 이 시대에 맞는 감각과 센스에서 가장 앞서가는 분입니다. 앞으로 어쩔 줄 모를 때는 들미소님을 찾겠습니다.
차후, '엄지' 뒤에는 항상 '들미소' 코디네이터'의 그림자가 함께 하겠군요. 지켜보겠습니다.
젊은 시절 자신을 옥죄고 있던 넥타이와 제복도 어느날 향수와 함께 활기를 몰고 오기도 합니다. 넥타이를 매고 염색을 하고.... 활기찬 엄지바우님의 모습이 그려지는군요.
인간 최고의 열망이 자유라는데 그 자유로움을 앗기고 다시 넥타이에 목을 매이니 이 어찌 괴롭고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있겠습니까?
좋은 수업을 받습니다. 변해가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하는 느낌을 봅니다
사회적 동물이라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변신해야 살아남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안그런 척, 그런 척하고 살아야하는가 봅니다.
젊은 사람들도 넥타이를 잘 매고 가도 빠나나 껍질 타기 다반사 인데 정년 퇴직하신 분이 다시 O을 만지게 되였으니 그 기분 알만 합니다.천명에 한명 있을까 말까한 발복으로 재직시 잘한 선업에 대한 가피가 내린 것 입니다. 직장을 얻었다는 이야기 인것 같은데 첫날 실지로 매고 가셨겠지요? 아니면 좋아하시는 케주얼로 갔습니까?
작가의 변도 참 좋습니다. '개성'을 중시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