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문화탐구-초도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초도(草島) 읽기
강 경 호
(문학평론가)
한국 현대시에서 공간이 갖는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휴전선’, ‘금강산’, ‘판문점’ 등은 남북분단의 이데올로기가 투사되어 있고, ‘독도’는 조국애와 민족의식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경주’와 ‘부여’는 역사성, 압해도와 제주도는 소외와 고립, 그리고 한(恨)의식이 스며있다. ‘광주’는 인권의식과 민주주의의 염원을 상징한다. 앞에서 열거한 공간들은 비교적 단순한 의미를 상징하고 있지만 ‘서울’의 경우는 공간이 함의하는 것이 단순하지 않다. 현대성의 상징으로 서울을 말하기도 하지만, 문명과 자본주의의 한복판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중세문학에서는 특정공간을 문학적 상징으로 의미한 경우가 비교적 적었지만, 현대에 와서 공간이 지닌 다양한 의미를 시로 형상화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현대에 올수록 공간이 지닌 의미가 다양해졌다는 것을 말하며,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현대시가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을 뜻한다.
전남 여수시 삼산면의 작은 섬 ‘초도(草島)’ 역시 한국 현대시를 통해 형상화하기 시작하였다. 아직까지 많은 시인들이 초도를 노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수많은 도서에 비해 매우 많은 시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현상은 주목해봐야 할 대목이다.
초도는 여수에서 서남쪽으로 7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낙도이다. 주민들은 반농반어로 생활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문명의 손길이 비교적 적게 탄 곳이다. 그래서인지 청정한 바다와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을 잘 보전하고 있으며 전통문화를 잘 간직한 채로 계승되어 왔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는 전적으로 육지와 거리가 먼 탓에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며,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바다와 관련한 비나리, 메나리 등의 노동요와 민요 「초도 뱃노래」, 「출항」, 「아리랑」 등이 전승되고 있다. 또한 생활에 밀착되었던 도제(都祭)와 각종 민속신앙 등이 전승되고 있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초도를 노래한 시인으로는 송수권·이성관·이생진·신병은·정윤천·김진수·강석주·박일환·황하택 등이 있다.
송수권·이성관은 초도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초도를 소재로 한 시를 썼다. 초도의 지리적 특성인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으로서의 초도, 즉 고립무원의 섬을 문학적 상징으로 한 시편들을 썼다. 그리고 아동문학가인 이성관은 ‘깻돌’ ‘갈매기’ ‘파도’ ‘바다’ 등 초도의 자연을 어린이의 눈을 통해 의미화시키거나 그곳에서 보낸 일상의 모습을 동시로 형상화시켰다.
그리고 정윤천 시인은 초도의 향토적인 정서를 시로 써냈고, 신병은 시인은 풋풋하고 살가운 초도의 인정과 그곳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이생진 시인은 순박하고 소박한 작은 마을 초도의 이미지로 초도를 형상화시켰다. 그리고 박일환 시인은 초도에서 여수로 향하는 뱃길에서 인간의 삶을 뱃길에 비유하며 삶을 진지하게 통찰하는 시편을 썼다. 그리고 강석주 시인은 유년의 바다를 통해 초도를 노래하였다.
김진수 시인은 초도 출신으로 가장 많은 시편을 통해 초도를 형상화시켰는데, 유년의 고향 초도와 바다를 배경으로 초도 사람들의 삶을 노래하였다.
처음으로 초도를 시로 형상시킨 시인으로는 송수권을 들 수 있다. 초도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사방이 섬으로 둘러싸인 초도의 자연에서 어리석은 인간의 탐욕을 자연을 통해 깨닫는다.
눈 몇 송이 바다에 떠돈다
발톱 오그린 흰 새들
막막히 떠서 간다
어떤 놈은 도로 얼어서 하늘로 가고
주저앉을 곳 없는 바다는
왜 얼지 않는가
물으며 물으며 간다
물 속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불 켜고 발광기를 단
뼈만 남은 물고기들
이 풍경 한가운데를
팔이 아프도록 쏘아올린
릴낚시의 추
공중에서 한번 얼었다가
다시 떨어진다
아 어리석고 어리석다
이 生의 한가운데서
生後 삼개월짜리 개도
따라와 짖는다
어두워지는 바다를 향해
산기슭에 발붙이고
짖는 것이 그의 召命이기나
한 것처럼
또는......
또는......
끙얼끙얼 사나운 물매에다
부리 박고 종일 서서 우는
갈매기들처럼
-송수권, 「겨울날 -나의 청춘 그리고 草島」 전문
젊은시절 초도에 부임한 송수권은 초도의 겨울바다를 바라본다. “눈 몇 송이 바다에 떠”도는 것과 “발톱 오그린 흰 새들/막막히 떠서” 가는 것을 본다. 이때 화자이기도 한 시인의 청춘은 ‘겨울’을 맞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의 제목 「겨울날」이 그저 계절만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의 겨울을 맞는 시인은 마음을 둘 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얼어버린 시인의 몸과 마음은 추운데, 눈을 맞으며 “주저앉을 곳 없는 바다는/왜 얼지 않는”지를 생각한다. 이 얼지 않은 바다에 낚시를 드리운 시인은 물 속에서 “뼈만 남은 물고기들”을 본다. 뼈만 남은 물고기를 잡겠다고 “팔이 아프도록” “릴낚시의 추”를 “쏘아 올린”다. 릴낚시 추가 “공중에서 한번 얼었다가/다시 떨어”질 때 시인은 문득 깨달음이 있었던 것일까. “生後 삼개월짜리 개”가 “따라와 짖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어두워지는 바다를 향해/산기슭에 발붙이고/짖는 것이 그의 召命이기나/한 것처럼” 시인은 느꼈을 것이다. 시인에게 깨달음을 준 것은 생후 삼개월 짜리 개 뿐만 아니다. “끙얼끙얼 사나운 물매에다/부리 박고 종일 서서 우는/갈매기”도 있다.
인생의 겨울 바닷가에서 가시만 남은 물고기를 잡겠다고 릴낚시를 드리운 시인을 향해 겨우 생후 삼개월 짜리 개가 짖는 것에서 시인은 어쩌면 자신이 맞는 인생의 겨울에 종지부를 찍었는지도 모른다. 자연을 통해 자신을 통찰하고 성찰하는 시인의 태도가 겨울바다처럼 매섭다.
한편 송수권의 「섬」에서는 “왜 떠 있는지 모르면서/섬은 꿈”꾸고, “무엇을 꿈꾸는지 모르면서/섬은 떠 있다”고 노래한다. 주지하다시피 시적 상징으로써의 ‘섬’은 ‘외로움’, ‘소외’, ‘고립’, ‘감옥’의 의미를 가진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섬은 육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므로 송수권은 “너무 오래되어 기다리고 있다는/사실조차 모”른다고 섬의 실존을 설파한 것이리라.
다음은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잘 알려진 이생진의 작품이다. 그도 초도를 다녀간 후 그 느낌을 시로 남겼다.
포구 안엔 늙은 배 네 척 포구 밖엔 젊은 세대 같은 싱싱한 배 다섯 척 그밖엔 묘사할 것이 없는 조용한 어촌 전도사집 안마당엔 귤이 노랗게 익어가고 그 옆에 빈집에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순박한 소나무를 보며 내가 왜 여기 있나하고 의심할 때 어디서 전화벨 소리가 나더라 우체국 전화다 아무도 내가 이곳에 있는 줄 모를 텐데 그게 내 전화였으면 한다
-이생진, 「초도 작은 포구 」 전문
“포구 안엔 늙은 배 네 척/포구 밖엔/젊은 세대 같은 싱싱한 배 다섯 척” 등 아홉 척의 배가 있다. 항구라고 할 수 없는 작은 포구로 초도는 “묘사할 것이 없는 조용한 어촌”이다. “전도사집 안마당엔 귤이 노랗게 익어가고/그 옆에 빈집에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화자의 말대로 “묘사할 것 없는 조용한 어촌”인 것이다. 바다를 시로 형상화시키기 위해 많은 바닷가나 섬을 찾은 이생진이지만 “내가 왜 여기 있나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전도사집 옆에 있는 “빈집”이 암시하듯 한적한 초도 풍경에서 누구라도 만나 말동무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이 북적거리는 육지에서 살다가 “조용한 어촌”에 왜 외롭고, 쓸쓸해 마치 소외되고 고립된 느낌이 들었는지 모른다. 이때 “어디서 전화벨 소리” 들리자 화자는 전화벨 소리가 반갑다. 그 전화벨 소리는 정황으로 보아 화자가 묵고 있는 가까운 우체국에 걸려온 전화소리였다. 전화가 귀한 시절에 우체국에 전화가 오면 호출하여 전화를 받게 했을 것이다. 전화벨 소리에 그 전화가 자신에게 온 전화소리였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진 화자는 한편으로는 “아무도 내가 이곳에 있는 줄 모를 텐데” 전화가 자신에게 걸려오겠는가 생각하기도 한다. 초도가 육지로부터 워낙 멀리 떨어진 섬이기 때문뿐만 아니라, 섬에서 지내다보니 영영 육지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며 고립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초도라는 섬이 지닌 ‘외로움’과 ‘소외’ 의식이 작품 속에 투사된 것을 알 수 있다.
초도에서 교직생활을 한 시인으로는 이성관이 있다. 그는 장흥 출신으로 1987년 3월부터 1990년 2월까지 3년 동안 초도의 작은 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아동문학가인 이성관은 아이들의 시선으로 초도를 바라보며 시를 썼다.
학교야 작지만. 학생이야 적지만
눈 들면 수평선 아득히 멀어
세상에서 제일 큰 분교마을에
어디서 오셨을까, 우리 선생님
일요일엔 심심한지 피아노 소리
라랄랄 라랄랄라 노래 부르며
한밤엔 집 생각에 잠도 잊고서
편지를 쓰시는지 창이 밝지만
외롭고 먼 바다 등대가 되어
자식처럼 사랑으로 가르치시니
사랑해요 선생님, 우리 선생님
일기 쓰다 잠들면 꿈속에서 빙그레.
-이성관, 「분교마을 선생님 」 전문
이 작품은 <서덕출 창작동요제>에서 입상한 작품으로 이성관이 초초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며 쓴 동시이다. 자신의 체험을 섬마을 아이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분교마을 선생님”인 자신을 그린 것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학교야 작지만. 학생이야 적지만/눈 들면 수평선 아득히 멀어/세상에서 제일 큰 분교마을”이라고 한다. 수평선 아득히 먼 곳까지 모두 학교로 바라본 까닭이다. 도시의 학교는 크고 학생들도 많겠지만, 실상은 학교도 작고, 학생들도 적지만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바다가 학교 앞에 펼쳐져 있으니 참으로 큰 학교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바다”라는 자연조차 학교로 끌어들이는 시인의 상상력이 아이들을 닮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처럼 넓은 세상 어디에서 선생님이 오셨는지 궁금하다.
아마 선생님은 사택에서 사셨을 것 같다. 일요일엔 학교 공부가 없어 조용한데 한적한 선생님이 “라랄랄 라랄랄라 노래 부르며” 피아노를 치고 있다. 그리고 “한밤엔 집 생각에 잠도 잊고서/편지를 쓰시는지 창이 밝”다. 미래의 희망인 초도의 아이들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외롭지만 마치 “먼 바다 등대가 되어”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분교마을 선생님을 섬 아이들은 “사랑해요 선생님, 우리 선생님” 하고 고마워한다.
이밖에도 이성관은 「갈매기」를 통해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맑고 순수한 공간으로 섬을 인식하고 있으며, 「바다와 어머니」에서는 썰물로 바닥이 드러난 바다에 엄마가 바구니에 갯것들을 주워담다가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의 섬풍경을 그리고 있다. 「바다의 시」에서는 ‘바다’라는 공간을 세사(世事)에 시달려 “마음이 울적하여 어찌하지 못할 땐”, “때절은 마음일랑 벗어버리”라고 한다. 그리고 바다에 들어 “물살에 세상만사 날려버리자”고 한다. 바다를 ‘정화의 처소’쯤으로 인식한다.
여수에서 살면서 여수 시인들의 큰형뻘로 여수시단을 이끌어 온 신병은은 「초도기행-대동리에서」에서 서간형식의 시를 통해 초도사람들의 훈훈한 인정을 마음에 품어내고 있다. 그리고 바다에 둘러싸인 초도라는 공간에서 살고 있는 초도 사람들이 파도에 갇혀 더 이상 길을 갈 수 없음을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절벽도 길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얘야
바다를 닮아 가슴 훈훈한 사람들의 마을을 다녀왔단다
우리를 제일 먼저 맞아준 것은 한낮의 여름 더위였지만
‘이곳에는 풀밖에 없어요’
오랜 세월동안 파도에 씻기운 말랑말랑한 인정을 담아내어 주던 밥집 아주머니의 한마디는
낯선 이방인의 마음을 한순간에 바다 빛깔로 물들여 주었단다
여름 더위 탄 마음에 더러 바람이 길을 내기도 했지만
그 보다 더 마을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시원한 물길이 되어 출렁였단다
얘야
길은 어디에도 있었단다
바람에도 파도에도 해국 돋은 절벽에도 대동리 사람들의 마음에도 길이 나 있었단다 .....더 나아갈 수 없을 때는 절벽도 길이 됨을 ......길게 늘어진 산 그림자도 길의 깊이임을 알 수 있었단다 ......그 길 따라 풍경으로 내려앉은 우리는 이미 대동리의 무늬가 되어 무거운 어깨짐을 풀었단다
얘야
여름햇살에 그을린 밤바다에는 그리움조차 별이 되어 뜨더구나
우리는 방파제에 길게 누워
제 무게를 비우고 건너 편 섬을 감아돌던 해무와 .......저물수록 더 아름답게 빛나는 노을에 대하여 ,,,,,, 생의 가장 뜨거운 한낮에 대하여......낚싯대 하나로 훤히 들여다보는 물속에 대하여 ..... 1박 2일의 민박에 대해서 ..... 떠남과 돌아옴, 어른과 아이에 대해서 .... 초승달 눈썹의 그리움에 대하여 .... 어머니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었단다
저물수록 밀물져 오던 모든 생각들을 한순간에 풀어버리고 물속에 들고 싶었다
생의 전부를 그대로 물살에 맡겨두고 싶었다
얘야
늘 출발이 있으면 돌아옴이 있지
그러나 대동리에서의 돌아옴은 끝이 아니었어
나무, 풀, 파도, 바람과 함께 바다를 건너는 힘찬 몸짓이었단다
늘 그 섬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오랫동안 피워올린 패랭이 꽃 그리움이었단다
-신병은, 「초도기행-대동리에서」 전문
화자는 “얘”로 호칭되는 존재에게 초도를 들려준다. 화자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말랑말랑한 인정을 담아내어 주던 밥집 아주머니”의 살갑고 따스한 마음에 “낯선 이방인의 마음”이 훈훈해졌던 것을 편지에 제1신으로 전한다. 그리고 마치 더 갈 수 없는 고립무원의 초도에서 길이 끊긴 것이 아니라 “절벽에도 대동리 사람들의 마음에도 길이 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더 나아갈 수 없을 때는 절벽도 길이” 되고, “길게 늘어진 산 그림자도 길의 깊이임을” 깨닫는다. 주지하다시피 오랫동안 초도사람들은 바다와 싸우면서 살아왔다. 파도와 폭풍에 갇히고,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바다를 물리치고 살아온 초도사람들의 강한 생의 의지를 발견한 것이다.
초도를 기행하며 여름밤바다를 바라보는 화자는 “그리움조차 별이 되어 뜨”는 것을 본다. 방파제에 누워 그 동안 화자가 다녀오며 본 것들을 “제 무게를 비우고 건너 편 섬을 감아돌던 해무”, “저물수록 더 아름답게 빛나는 노을”, “생의 가장 뜨거운 한낮”, “낚싯대 하나로 훤히 들여다보는 물속”, “1박 2일”의 기행에서 “떠남과 돌아옴, 어른과 아이”, “초승달 눈썹의 그리움”, “어머니”에 대해 깊이 사색한다. 다시 말해 화자는 1박 2일의 초도기행을 통해 인간존재의 실존에 대해 생각하는 특별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화자는 “늘 출발이 있으면 돌아옴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초도를 다녀온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나무, 풀, 파도, 바람과 함께” ‘절벽’ 같은, 또는 감옥 같은 “바다”, 또는 ‘섬’이 아니라 생의 의지에 대해 길은 어디에도 뚫려있음을 발견한 의미있는 초도기행이었다고 진술한다.
정윤천 시인도 초도를 다녀온 모양이다. 그가 본 초도는 ‘붉다’.
노을빛이 오늘 따라 고추장 빛깔이다
사나흘 물길 건너온 남정네 팔뚝도 붉어
마루 끝에 앉은 아낙의 목청이 담을 넘는다
해당화 꽃잎을 흔들어 준다
북어 패는 손 맛 어쩐지 예전 같지 않아서
찌뿌려 지던 이맛살 힘줄도 붉어 지는데
맨가슴으로 오려내 보는 속엣말 같던 장타령 한 소절도
메기고 감치던 입술 사이에서 엥간히 붉고 말았다
오늘 같은 저녁상 머리에선 술국 사발도 붉겠다, 한바탕 붉겠다.
-정윤천, 「섬 그늘이 붉다-초도에서」 전문
색채이미지 ‘붉다’라는 형용사로 초도를 인식한 정윤천의 이 작품은 초도사람들의 삶과 최근 초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붉다’의 의미는 ‘뜨겁다’, ‘정열적이다’를 말한다. 그러나 정윤천은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고 시인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개인적 이미지로 시를 형상화하여 참신하다.
“노을빛이 오늘 따라 고추장 빛깔이다”고 말한다. “노을빛”과 “고추장 빛깔”의 대비는 색채의 유사성 때문에 시인이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관념을 넘는다. 고추장은 매운 것이므로 초도에 처음 발을 딛은 시인의 눈에 저녁 무렵의 초도가 맵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이 매움의 의미는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우리 서민들이 즐겨먹는, 토속적이고 친근하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시인이 만난 “사나흘 물길 건너온 남정네 팔뚝도 붉”다. 짐작하건데 사나흘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뱃사람이 아닐까.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한 “남정네 팔뚝”에서 고되게 살아온 뱃사람의 삶이 시인의 눈에는 붉게 보인 것은 당연할 것이다. 여기에서 ‘붉다’는 ‘강인함’, ‘고된 노동’쯤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루 끝에 앉은 아낙의 목청이 담을 넘는다” 섬에서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우리나라 전통적인 여성상을 닮은 모습으로 살 수 없었던 까닭이다. 이 아낙은 밥집 아낙일 것이다. 담장을 넘는 여성의 큰 목청이 “해당화 꽃잎을 흔들어 준다” 척박한 바닷가에서 자생하는 “해당화”와 “아낙”은 이런 점에서 닮아있다. 아낙은 북어를 팬다. 그런데 “북어 패는 손 맛 어쩐지 예전 같지 않아서/찌뿌려 지던 이맛살 힘줄도 붉어”진다. 나이 탓일 수도 있지만, 삶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낙의 편치 않은 감정이 붉은 힘줄로 나타난 것이다.
“맨가슴으로 오려내 보는 속엣말 같은 장타령 한 소절도/메기고 감치던 입술 사이에서 엥간히 붉고” 만 것은 아낙의 심정일지 모른다. 이 장타령은 아낙의 신세타령일 수도 있지만, 화자인 시인의 마음일 수도 있다. 고단한 삶을 버겁게만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오늘 같은 저녁상 머리에선 술국 사발도 붉겠다, 한바탕 붉겠다.” 틀림없이 밥상에 회를 떠 놓고 술잔엔 술이 넘칠 것이므로 고주망태가 되도록, 그래서 얼굴이, 아니 마음과 온몸이 취하고 싶은 것일 게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초도의 그늘은 붉다. 그 붉음은 고단하기도 하지만 한바탕 진탕나게 삶을 위로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작품들은 모두가 육지에서 온 시인들이 체험하거나 그들 눈에 비친 초도의 풍경이다. 이에 반해 다음의 강석주·김진수 시인은 초도에서 낳고 자란 초도 출신 시인들의 작품이다. 초도라는 자신들의 고향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일기 궂으나 좋으나
씨동무 씨당무
놀다 뻐친
뒷동산에 올라
오랜만에
포근하기 그지없는
봄바다 바라보니
어머니
그 때가 몇 살 먹었던가요.
어머니 등에 포근히 업혀
가는 비 내려 바다로 가던 봄날에
앞동산 나빠삔재
진한 안개에 휩싸인 날 같구료.
-강석주, 「뒷동산에 올라」 전문
강석주는 전통적인 정서로 초도와 어머니를 바라본다. 고향과 어머니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선이 따스하고 그리움에 젖어있다.
날이 좋은 날이나 궂은 날 할 것 없이 “씨동무 씨당무”들과 놀다가 올라가던 뒷동산에 오랜만에 와서 “포근하기 그지없는/봄바다 바라”본다. 옛동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화자는 옛생각이 떠오른다. “그 때가 몇 살 먹었던가요.” 어머니를 생각한다. “가는 비 내려 바다로 가던 봄날”, “어머니 등에 포근히 업”힌 때였으니 아주 어렸을 때였을 것이다. 화자는 까마득한 그날 “앞동산 나빠삔재/진한 안개에 휩싸인 날”이었을 것이라고 희미한 기억을 반추해 낸다. 개인적인 체험이 깃든 공간은 서사를 간직한다. 화자도 뒷동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어린 시절 어머니 등에 업혀 바다로 가던 봄날이 떠오른다. 세월이 많이 흘러 희미한 기억이지만 앞동산에 안개가 휩싸여 있었던 것 같은 옛날을 반추한다. 누구에게나 고향과 어머니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초도에서 낳고 자란 시인에게는 더욱 그리운 공간으로 나타난다.
강석주의 또 다른 작품, 「초가」도 옛고향과 시집간 누나를 떠오르게 한다. “초가지붕/하얀 박꽃이 좁게 지고/은달만한/박덩이에 다 익어/그릇 되면은” 시집갔지만 고단한 시집살이 때문인지 “울며 찾아와/종자 담아”갔던 것을 노래한다.
초도를 고향으로 둔 김진수 시인에게도 고향은 각별하다. 여타의 시인들보다 보다 구체적으로 초도를 형상화시켰다.
지북산 몰랑에 뻐꾸기 울면
산비둘기 구구대는 장사슴목골
달랑 한마지기 옹사리밭에
아부지는 들컹들컹 쟁기질하고
어무니는 쪼락쪼락 풋콩을 딴다
가다 한 모금
또 가다가 한 모금
촐랑촐랑 줄어가는 막걸리심부름
한 쪽박 샘물로 덧채우던 아이가
아지랑 묏등 앞에 발갛게 엎드렸네
한 사발 거뜬 비우신 아부지
“오늘 막걸리는 왜 이리 싱겁다냐?”
그 소웃음소리 지금도 들리네
-김진수, 「풀섬아이」 전문
소년시절의 고향 초도에서의 삶을 기억해냈다. “지북산 몰랑에 뻐꾸기” 우는 시절이니 가는 봄날쯤일 것이다. “달랑 한마지기 옹사리밭에/아부지는 들컹들컹 쟁기질하고/어무니는 쪼락쪼락 풋콩을” 따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부모님들이 들에서 일할 때 화자는 막걸리 심부름을 하면서 “가다 한 모금/또 가다가 한 모금” 마셔버렸다. 그리고 줄어든 막걸리 때문에 “한 쪽박 샘물로 덧채”워 아버지께 갖다 드린다. 그러자 “한 사발 거뜬 비우신 아부지”가 “오늘 막걸리는 왜 이리 싱겁다냐?” 하신다. 막걸리를 마신 그 아이는 “아지랑 묏등 앞에 발갛게 엎드”려 있다. 쓸쓸하고 그리운 옛날의 추억을 화자는 씁쓸하게 떠올린다.
김진수는 초도를 노래한 또다른 작품 「폐선」에서 “섬다랑에 한평생 박힌 물봉이”가 갈아앉더니, 썩어부러지며, 뻘물이 차오르는 모습을 본다. 그러자 화자는 “어찌된 일입니까? 아버지” 하고 묻는다. 그러자 아버지는 “너희는 모른다/이 몸 삭여 고요히 섬이 되고 싶은 것을” 하고 말씀하신다. 물봉이가 된 폐선처럼 초도의 폐선이었던 아버지의 삶을 훗날 알게 된 화자가 아버지의 삶에서 초도를 위해 살다가신 것을 형상화 하였다.
「파도타기」는 초도에서 태어나 자란 김진수 시인의 체험을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섬에서 살다보면 파도를 만나기 일쑤인데 어떻게 파도를 타야 하는지를 묘파하고 있다. 무작정 힘으로 버팅겨서는 안 되는 것이 파도타기여서 딛고 섰던 두 발을 사뿐히 떼면 파도가 금세 순한 양이 되는 것으로 파도를 타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때로는 파도를 비켜가기만 말고 파도와 맞짱을 뜨기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파도타기’는 인생의 ‘시련’을 상징적으로 말한 은유이다. 시련을 극복하는 방식을 통해 바다와 싸우며 삶을 일구어가는 초도 사람들의 지혜와 삶의 방식을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 초도를 노래한 김진수 시인의 시로는 「수수알 이야기」, 「헛장」, 「억새꽃」이 있다. 이들 작품을 통해 시인은 초도 사람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