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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2013년 내고장 문화재 지키는 날
농다리 봉사 - 2013년 하반기 내 고장 문화재 가꾸는 날
28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아내도 출근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지난밤에 꿈에 농다리가서 열심히 청소를 하는 꿈을 꾸었다고 웃으며 꿈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제가 봉사 활동하기 위해 집사람에게 너무 많은 부탁을 했고, 남편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지방에 내려가서 혼자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걱정되었고 또한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되기를 바라는 祈願이 있었나 봅니다.
2006년에 있었던 제2회 전국문화재지킴이 대회에 농다리와 관련하여 제가 적은 글이 『또 하나의 유산』 (아름다운 사람들의 문화재 가꾸記) 이라는 책자에 실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6년 이후로 매번 진천 농다리 지킴이로 위촉해주신 쿠웨이트 정부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진천 초평저수지 오경마을 죽정래(붕어마을) 사람 임충섭입니다.
진천 농다리는 중부고속도로 상행선 증평을 지나 초평 터널을 지나면 고속도로 맞은편 산에 폭포수가 흐르고 아래쪽에 지네처럼 생긴 돌다리가 보이는데 그곳에 진천농다리가 있습니다. 진천 농다리는 진천의 아름다운 8경중의 하나로 농다리 상판위에 소복이 쌓인 눈이 아름답다고 하는 농암모설(籠岩暮雪)이라고 조선환여승람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 (1976. 12. 30)로 지정된 농다리는 『朝鮮寰輿勝覽』 및 『常山誌』의 기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籠橋在郡南一里洗錦川加里川合流之屈峙前橋也距今九百餘年前卽麗朝初葉時代屈峙林氏先祖傳稱林將軍…….중략』 기사내용으로 보아 고려초기 즉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쯤(麗朝初葉時代)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진천 농다리는 제가 초등학교 학생 이전부터도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갈 때나 이모 집에 갈 때 건너다녔고, 진천 장날 장에 갈 때도 어머니 손을 잡고 건너다녔으며, 조금 커서 중학생이 되었을 때도 3년 동안 농다리를 건너다니며 진천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여름에 학교 갔다 올 때 날씨가 더우면 훌러덩 옷을 벗고 멱을 감기도 했고, 겨울에 얼음이 얼었을 때는 빙판위에서 놀다 오기도 했던 정겨운 다리로서 눈을 감고도 다리를 건널 수 있을 만큼 친숙한 다리입니다.
그 후 농다리와 반대 방향인 고등학교를 청주로 다녔고 대학도 대구에서 다녔으며 군 복무 역시 대구 통합병원 치과부에서 했습니다. 그리고 1978년 3월에 쿠웨이트 정부 치과병원에 취업 되어 현재까지 35년 동안 근무하고 있습니다. 고향을 오랫동안 떠난 탓으로 농다리를 잊고 살았습니다.
쿠웨이트에 1990년 여름 걸프전(Gulf War,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으로 인한 한국으로 피난 나와 있을 때 어떤 계기가 있어 깊은 관심을 갖고 농다리 관련 공부를 시작했고 앞으로도 계속 하여 농다리 지킴이 역할을 흔들림 없이 굳건히 할 것입니다.
근래에 한류의 열풍이 전 세계 각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음을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피부로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을 방문 하겠다고 비자 신청하는 외국인들이 폭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관계자들로부터 자주 듣고 있습니다. 한류 열풍은 한국의 경제 성장으로 인한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난 삶의 질이 향상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70~80년대에 한국의 건설사들이 해외에 진출하여 한국인들의 인내와 끈기를 보여주었고 근면 성실한 우수한민족인 것을 외국인들에게 각인 시켜주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것이 한류 열풍이 해외에서 안착 할 수 있는 기틀의 근원을 만든 것입니다.
다음으로 품질 향상된 Made in Korea 브랜드의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품질이 상대국인 일본 제품에 비해 우월하거나 같은 수준으로까지 올라있음을 외국인들이 인정하였고, 대한민국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어 한류열풍 안착에 탄탄한 바탕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한국의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한국의 음악이 세계 곳곳에 울려 퍼지게 되어 해외의 많은 이들로 하여금 대한민국 방문을 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방문하여 보고 싶어 합니다.
무엇을 보여줄까요?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여행사의 안내로 한국의 고궁을 방문하여 문화재를 관람하게 되고 한국의 5000년 긴 역사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통하여 한국의 근본 바탕을, 한국의 역사를, 한국인의 전통을, 한국인의 인성을 찾고자 할 것입니다.
고국의 문화재를 보고 감탄하는 외국인들은 한류열풍을 고착화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하며 또한 문화콘텐츠는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한국의 창조경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10월 26일은 문화재청에서 『2013년 하반기 내 고장 문화재 가꾸는 날』 로 정한 날입니다. 전국에 있는 모든 문화재 지킴이들은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지정한 문화재에서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날이었고 모든 문화재 지킴이들께서 각자의 위치에서 ‘지정 문화재 참 사랑 행사’를 아낌없이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문화재 지킴이 모든 분들은 새로운 모습의, 새로운 방법으로 한류열풍의 첨병이라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꾸준히 참여하여 우리 모두 문화재의 찬란한 빛을 발하는 프리즘 (prism) 역할을 다 함께합시다.
문화재청에서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저를 「독도천연보호구역」 및 「진천농다리」 지킴이로 위촉해주고 있습니다.
마침 이번 한국으로 휴가 중에 많은 문화재 행사 및 교육이 있어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문화재청 문화재 지킴이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2013년 하반기 내 고장 문화재 가꾸는 날』 행사공지가 있었고 저도 함께 동참하기 위해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여러 날 고민도 했고 많지는 않지만 차근차근 필요 할 것으로 예상되는 도구들을 준비하였습니다.
우선 성남 모란 시장에 가서 행사에 필요한 여러 종류의 청소도구를 구입하였습니다. 2013년 하반기 내 고장 문화재 가꾸는 날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과 봉사 활동하는 동안 입게 될 조끼의 등판에 부착하는 「한문화재 한 지킴이」 로고도 문화재청으로부터 원본 모델을 받아 주문 제작 부탁하였습니다.
25일 일기예보에 26일부터 많이 추워진다고 따뜻한 옷차림을 권하는 방송이 나오더군요.
봉사 당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온도를 체크하니 6°C 로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감기 들지 않게 옷차림에 신경을 썼습니다.
제가 35년 동안 거주하고 있는 쿠웨이트가 열사의 나라 인 것을 모두가 인정하는 국가입니다. 저로서는 추위 때문에 항상 초가을에 휴가 와서 추운 겨울 되기 전에 다시 쿠웨이트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겨울 추위에 약한 저로서는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옷을 두껍게 입게 되면 봉사 활동하는데 불편할 것으로 생각되어 下衣 속옷으로 아빠보다 키가 큰 딸내미의 스타킹을 하나 더 신었고 상의는 봉사 하는 낮에는 기온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되어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아들의 겨울 외투를 입었습니다.
분당에서 농다리가 있는 충북 진천을 가는 첫차가 야탑동 종합버스터미널에서 7시 30분에 있습니다. 분당 오리역에 6시 40분경 지하철타고 야탑역 버스터미널로 부지런히 갔습니다. 버스표 구입 후에도 10분정도 남는 시간이 있어 휴대 가능한 음식으로 호두과자와 물 한 병을 급히 사서 버스에 승차하니 바로 출발 하였습니다.
진천 버스터미널 도착 9시 20분. 택시로 농다리 전시관에 도착한 시각은 9시40분경이었습니다. 전시관에 들러 관계자 (진천군 문화체육과 직원들)와 커피 한잔 마시며 담소 후 쓰레기봉투를 지원받아 바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계획은 30여년 넘게 병원근무만 해온 저로서 힘든 일을 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여 홍수로 인해 농다리가 잠수교가 되었을 때 상류로부터 흘러 내려와서 다리 상판과 교각에 붙어있는 쓰레기를 청소 하는 것만을 계획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현장을 잘 모르고 세웠던 계획인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주말(토요일)이어서 농다리를 찾는 관광객이 얼마나 많았는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대형 버스(관광버스)도 많았고 일반 승용차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초등학생들의 단체 관광도 많았습니다. 농다리를 건너 초평 저수지 주변 산책로를 걷고 돌아오는 관광객들로 붐벼서 도저히 농다리 상판에 있는 쓰레기를 청소한다는 것은 관광객들의 보행에 불편을 줄 것으로 생각되어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보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농다리 주변의 물속을 청소하고 상판 아래쪽의 쓰레기를 줍기로 하였습니다.
준비해간 장화를 신고 물속에 있는 쓰레기를 먼저 줍고 다음으로 교각에 붙어있는 세금천 상류 쪽에서 농사관련 쓰레기가 떠내러 와서 걸려있어 미관상 좋지 않은 것들 모두를 수거하였습니다.
환경오염과 무관한 지푸라기와 물에서 자란 식물 그리고 종잇조각들은 강물에 흘려보냈고 환경오염과 관련된 비닐조각, 그물, 농약병, 화학물질의 끈, 나무토막, 플라스틱용기 등을 수거하였습니다.
물살 센 교각에서 교각과 교각에 다리 한쪽씩을 걸치고 발을 벌린 상태에서 상판 아래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해보지 않으신 분들은 모르실 것입니다. 특히 저는 평생토록 병원근무만 해온 힘든 노동이라는 것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사람으로서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의 돌다리(石橋)들을 공부하다보면 거의 人工美가 가미된 네모반듯하게 조각된 石材를 사용하고 있으며 교각과 교각 사이도 넓고, 모퉁이가 특이하게 돌출되지 않아 상류로부터 부유물이 떠내려 와도 교각에 걸림 없이 그대로 쉽게 흘러가도록 설계되고 시공 하였습니다.
하지만 농다리는 石橋로서 다른 돌다리와 비교되는 특징은 여럿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사용한 石物들이 자연석으로 생긴 그대로를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뾰쪽한 모퉁이가 외부로 돌출된 돌이 많아 부유물이 상류로부터 흘러 내러오면 교각에 걸릴 수 있는 확률이 다른 다리보다 더 높습니다.
농다리가 위치한 마을의 주민들 및 관내 봉사 단체에서 가끔씩 농다리 주변 환경 정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쿠웨이트에 있으면서도 뉴스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각사이 깊은 곳에 있는 쓰레기들은 수거를 미처 하지 못 한듯합니다. 26일 날 제가 28개의 다리 교각 사이의 쓰레기들은 거의 다 제거 했다고 생각되는데 다리 상판을 청소하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깨끗하게 하려면 2~3일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천에서 분당 가는 막차가 5시 20분에 있어 4시10분경부터는 교각 위로 주워 올린 쓰레기를 지정 봉투에 담았고, 고갈된 체력을 추슬러 농다리 밖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였는데 발걸음 한발자욱씩 옮긴다는 자체가 힘들었었습니다. 작업 종료 후 오전에 타고 농다리에 왔던 택시를 전화로 다시 불렀습니다. 기다리는 중에 얼른 옷을 갈아입고 있으니 금방 택시가 왔습니다. 택시 탑승 후 기사님께 5시 20분차가 막차이라며 좀 빨리 가지고 특별 부탁을 했더니 기사님 말씀은 이미 5시15분이라며 막차시간까지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진천에서 서울 양재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5시 55분 출발하는 것이 있어 중간 중간 수많은 지방 정류소를 거처 서울에 양재에 도착하니 8시30부이다 전철타고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60이 훨씬 넘은지라 의욕은 앞서가지만 체력이 따르지 않음을 한탄할 뿐이었습니다. 몸은 피곤하였지만 충청도 양반 인심은 변하지 않아 농다리를 건너다는 관광객 많은 분들께서 “어르신 수고 하십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가실 때는 그래도 보람된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어떤 관광객들을 문화재 지킴이를 아시는 듯 “문화재 지킴이님 수고 하십니다”라는 인사를 하고들 가시기도 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농다리에 관하여 질문도 하여 친절하게 답해주기도 했고 어르신들도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느냐고 관심 있게 질문하실 때는 자세히 설명도 해주면 나를 다시 보며 각별한 친근감을 보이시며 새롭게 인사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등 뒤에 붙였던 「한문화재한지킴이 로고」가 없이 작업을 하였다면 관광객들은 저를 생활보호 대상자로서 郡 혹은 文化財 관련 단체로부터 일당을 받고 일하는 일용 근로자로 알았을 것입니다. 옷이 물에 젖기도 했고 구부렸다 일어섰다 를 반복하다보니 옷매무새 또한 엉망인지라 영락없는 시골 아저씨의 모습이었습니다.
2013년 하반기 내 고장 문화재 가꾸는 날 행사로 비록 몸은 형용하기 힘들만큼 고되었지만 마음은 참 기뻤으며, 의미 있었던 큰 봉사를 하는 순간 저는 고려 초엽시대의 중세 시대의 장인(石工) 처럼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진천의 대표적인 문화재 진천 농다리를 앞으로 다가오는 또 한 번의 천년을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기 위해, 지난 천년동안 고고하고 당당하게 같은 자리에서 원형을 유지하며 온갖 成相을 버티며 이어온 귀중한 문화재를 내손으로 깨끗이 정화작업을 했다는 사실은 (체험)은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내 고장 문화재 가꾸는 날 행사가 아니더라도 다음 휴가 때는 수시로 진천군 문화체육과에 허락을 받고 정화작업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문화 컨텐츠에 저도 일원이 되었었다는 자부심을 얻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두서없는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년 10월 28일
한문화재 한 지킴이(독도천연보호구역 & 진천 농다리)
쿠웨이트 치과병원
임 충섭 올림
첫댓글 수고 많이 하였네.
수기를 보냈더니 저의 것도 선정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