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윤_음유낭만환상-원효로와 청파동에서_장지에 수묵채색 / 영상_210×900cm / 00:03:15_가변설치_2007 Hongjiyoon_Minstrel, romance, and Fantasy at Wonhyoro and Cheongpadong_Colored ink painting on Korean paper, video_210×900cm, 00:03:15_installation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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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변.주.곡_운율을 담다 ● 음악과 시를 좋아하는 그녀의 청파동 작업실에는 노래와 시상詩想이 그치질 않는다. 그녀 특유의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기질에서 비롯된 시적 감흥은 붓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발상의 시초가 되어 우울과 즐거움, 슬픔과 기쁨을 적어 내린다. 그리고 그것은 작품이 된다. 홍지윤의 작업은 시상詩想 에서 출발한다. 그의 글은 순수한 외면적 사물, 인간활동에 대한 과장된 묘사도 아니며 내면적 영혼, 사변, 철학에 대한 추구도 아니다. 현실적 인간세계에 대한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인식과 느낌이고 동경과 집착이다. 여기에는 일종의 풍성하고 젊은 정열과 상상이 스며들어 있다. 설사 낙심, 우울, 슬픔에 대해 묘사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역시 젊음, 자유, 기쁨의 기운이 약동하고 있다. 그 기운은 글과, 글을 담은 글씨와, 글씨를 벗한 그림을 통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렇게 작품은 운율韻律을 담는다.
홍지윤_서쪽하늘 들국화_장지에 수묵채색_210×450cm_2007 Hongjiyoon_A Chrysanthemum at the Sky in the West_Colored ink painting on Korean paper _210×450cm_2007
홍지윤_세상의 모든 꽃들_장지에 수묵채색_210×150cm_2007 Hongjiyoon_All flowes in the world_Colored ink painting on Korean drawing paper_210×150cm_2007
상충相衝의 미학 ● 문자와 그림의 조합은 2005년 개인전《사계》와 지난 2006년 독일 뮌헨시청갤러리에서 열렸던《친구 넷-사군자》전시1)에서 그래픽을 이용, 문자와 그림을 오버랩하며 구체적으로 영상화되기 시작한다. ‘문자(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의미를 지닌 문자)’가 작품 안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된 이번 전시는 시, 서, 화詩書畵 일치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또 다른 방향’이란, 그의 작업이 동양화의 기본이 되는 지, 필, 묵紙筆墨과 시, 서, 화를 적절히 따르면서도 표현방식으로는 다양한 매체, 즉 형광안료와 천, 라이트박스 등을 혼용하고, 내용은 문학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고도의 은유와 함축의 상징성을 사용함으로써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이중적 작풍을 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얼개처럼 짜여진 구조는 한 매체나 기조가 다른 것에 흡수되는 형국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함으로써 퇴진출신(退陣出新_낡은 것을 사라지게 하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게 함)2)의 국면을 본능적으로 시도한다.
홍지윤_무지개에게_장지에 수묵채색_210×150cm_2007 Hongjiyoon_To the rainbow_Colored ink painting on Korean paper_210×150cm_2007
홍지윤_용서_장지에 수묵_210×150cm_2007 Hongjiyoon_forgiving_Colored ink painting on Korean paper_210×150cm_2007
작가는 대표적 표현기법들의 대치를 통해 내용을 극대화하는데, 각 기법과 내용은 팽팽한 긴장의 연상선상에서 균형을 잡는다. 즉 글씨와 색, 내용과 이미지를 대치시키거나 매체의 적극적인 활용이 바로 그것이다. 화려한 색동바탕에 먹으로 써 내린〈환상적인 무지개〉, 〈환상적인 세상〉등 환상시리즈나〈좋을 好〉,〈무지개에게〉와 같은 작품은 강렬한 색과 그에 버금가는 문자의 강제성이 충돌하며 증폭된 효과를 만든다. 문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이들에게 ‘읽히는’ 강제성을 지닌다. 때문에 문자를 그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시도다. 글자의 강제성으로 인해 여타의 시각적 요소들을 일순간 불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위험요소를 형광의, 발광하는 색동과 대치시킴으로써 양측에 균형을 부여한다.
홍지윤_슬픔이여 떠나라_장지에 수묵_210×150cm_2007 Hongjiyoon_reply-Chega de saudade_ink painting on korean paper_210×150cm_2007
홍지윤_불꽃나무_장지에 수묵채색_210×150cm_2007 Hongjiyoon_Flame tree_colored ink painting on korean paper_210×150cm_2007
이러한 위험은 내용과 이미지 사이에도 일어나는데, 사군자四君子의 소재인 국화나 만개한 꽃, 새의 고전적 이미지를 사용함과 동시에 강렬한 노랑과 분홍, 주황의 형광안료와 가장 극적으로 대치되는 검은 먹을 끌어들임으로써 이미지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서쪽하늘의 들국화〉나〈꽃 속에 꽃이 핀다〉처럼 자칫 이미지를 삼켜버릴 수 있는 텍스트의 강렬한 아우라를 그에 대응하는 형광색동과 만개한 꽃 이미지를 병치시킴으로써 무게중심을 잡은 것이다. 또한 문자를 흘려 씀으로써 가독성(可讀性)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마치 문양처럼 처리한 것도 역시 동일한 효과를 가져온다.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뜨리고 전통의 굴레를 타파해 나가되, 씨실과 날실의 조화처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은 다층적 층위의 교묘한 장치들을 통해서 동양과 서양을 혼재하되, 매체의 혼합만이 아닌, 이미 그 구분이 모호해진 사상과 화풍의 혼합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홍지윤_환상적인세상_장지에 수묵채색_210×300cm_2007 Hongjiyoon_Fantastic world_colored ink painting on korean paper_210×300cm_2007
홍지윤_음유낭만환상_라이트박스_가변설치_각 25×35cm_2007 Hongjiyoon_Minstrel, Romance, and Fantasy_digital print-light box_installation_each 25×35cm_2007
수묵을 바탕으로 음각처럼 그림과 글씨의 윤곽을 파나간〈용서〉,〈불꽃나무〉,〈슬픔이여 떠나라〉등은 보다 전통적 동양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수묵을 주조主潮로 작가자신을 형상화한 여인이나 매화, 새를 등장시킨 것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이여 떠나라’는 브라질 전통가요의 구절을 새기거나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여인, 또는 일견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손을 뻗어 용서를 구하는, 혹은 베푸는 여인의 모습은 수묵이라는 재료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일순간 깨뜨리며, 그 이상을 누린다. ● 홍지윤의 작업은 이렇듯 텍스트와 이미지가 상충한다. 또한 먹과 현대의 안료가 상충한다. 종이와 미디어 역시 충돌한다. 이 다층적인 충돌은 작업 전면의 적절한 장치와 구조를 통해 해결되고 화해함으로써 홍지윤의 퓨전동양화3)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문화적 선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홍지윤_파랑새에게_디지털 프린트, 라이트박스_가변설치_25×35cm_2007 Hongjiyoon_To a blue bird_digital print, light box_25×35cm_2007
환상은 어디에 ● 작가는 환상을 시공간과 대유하며 순차적 정의를 내린다. 그것이 지나간 것에 대한 환상(喚想, illusion)이든, 지금 눈앞에 보이는 환상(幻像, phantom)이든, 나도 모르는 새에 일어나는 환상(幻想, fantasy)이든, 실체도 없이 허망하고 덧없는 내일의 환상(幻相, vision)이든. (홍지윤, 작업노트 중에서, 2007) ● 이번 전시의 모태가 된 ‘환상’의 인상은 익숙한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감정들을 구체화 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터무니없지만, 즐거운 상상의 나래는 작가적 상상으로 발전하여 앞서 언급한 다양한 매체와 내용으로 작품에 발현된다. 따뜻한 홍차를 약속한 그녀의 초대 (홍지윤의 詩,〈초대〉中)를 따라 원효로와 청파동의 골목인상을 반갑게 맞이할 일이다. 서양인에게도 낮선 / 동양인에게도 낮선 / 그 간극에서. ■ 성윤진
홍지윤_음유낭만환상-원효로와 청파동에서_동영상_가변설치_00:03:15_2007 Hongjiyoon_Minstrel, romance, and Fantasy at Wonhyoro and Cheongpadong_video_installation_00:03:15_2007
초대 ●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날 / 오후 3시 즈음에 이리로 오세요. / 뿌연 겨울 해가 따뜻하고요 / 그 해가 보이는 창가에는 조용한 새들이 가끔 날아가요. / 그리고 바흐의 아리오조를 첼로독주로 들으면요 / 그 어떤 여행지보다 / 그 어떤 천국보다 더 천국 같거든요. / 바닥엔 너무 깨끗하지 않게 먼지 몇 개 찬찬히 얹혀 져 있고요 / 새로 단 표백하지 않은 베이지 빛 광목 커튼이 / 찬 겨울바람도 막아준답니다 / 편안한 의자에 앉았다가 / 좀 겨를이 나면 / 따뜻한 홍차도 끓여 드릴께요 / 당신이 꼭 이 곳에 왔으면 좋겠어요. ■ 홍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