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사찰 순례-북한산 승가사
한국의 명산에는 악산(惡山)이 많다. 악산이란 바위가 돌출된 험한 산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악산은 강원도 설악산이고 그 다음이 북한산이다. 북한산은 원래 삼각산, 한산, 화산 등으로 불렀으나 북한산성이 축성된 이후 북한산으로 공식화 되었다.‘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해동오악이 있는데 북에는 백두산, 동에는 금강산, 서에는 묘향산, 중에는 삼각산(북한산), 남에는 지리산이 있다. 북한산은 한반도의 중악으로 인식될 만큼 비중이 있었던 산이다. 그만큼 수도 서울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즉 설악산 다음 가는 아름다운명산이 서울의 병풍 역할을 하고 한국의 제일가는 한강이 동남쪽을 둘러싸고 있으니 조후용신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서울은 내사산(內四山 - 북악산,낙산,인왕산,남산)과 외사산(外四山 - 북한산, 관악산, 용마산, 덕양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북한산의 좌청룡 우백호의 한 가운데 자리에 승가사가 위치하고 있다. 승가사에 가면 4군데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첫째가 대웅전이다. 대웅전 지붕 위쪽을 보면 ‘사모바위’가 보인다.(사진 참조) 형상이 옛날 벼슬들이 쓰던 모자인 사모와 같다고 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이 사모봉의 끝자락에 대웅전이 위치하고 있다.
둘째가 마애불이다. 대웅전 왼쪽에 108 계단을 올라가면 거대한 암벽에 새긴 마애불이 있다.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머리위에 화개도 잘 보존되어 있다. 아주 잘 생긴 부처이며 입석에 새겨놓은 부처는 쳐다보기에도 좋고 신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셋째가 산신각이다. 북한산 바위의 맥이 내려오다가 멈춘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기도의 영험이 대단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산신 기도에 지켜야 할 사항은 개고기를 삼가야 하고, 초상집이나 아이 낳은 집에 가지 말아야 하며, 부부관계를 삼가야 산신기도의 효험을 볼 수 있다고 전해진다.
넷째가 108계단 입구에 위치한 약사전이다. 신라시대부터 승가굴로 널리 알려져 왔으며 법장 ‘혜인’ 이 수도한 곳이고 약사불상 뒤의 석조 광배도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이 석굴안에서 나오는 석간수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자연석굴이면서 그 내부에 먹을 수 있는 물이 나오고, 춥지 않은 조건이라면 원시동굴 법당인 곳이다. 입구 암벽에 영천(靈泉)이란 글자를 보더라도 많은 병자를 치료한 영험이 있음을 알려주는 곳이다. 세종대왕비 소현왕후가 바로 이 약수를 먹고 병을 완치했다는 자료가 남아 있으며 추사 김정희가 이 글을 새겼다 한다. 또한 승가굴 앞에도 가양천신(可養天神)이란 글귀를 볼 수 있다.
승가사의 현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산 1번지이다. 북한산 승가봉 밑에 해발고도 580M 에 자리잡고 있다. 옛날 한양의 4대 사찰로는 북-승가사, 서-진관사, 남-삼막사, 동-불암사 를 꼽았다. 승가사 연혁기를 읽어보면 승가사는 신라 경덕왕 15년(756년)에 수태선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또한 진흥왕 순수비가 승가봉에서 800m 거리에 있다. 이 순수비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비봉(碑峰)이다.
승가사는 서울 중심이 지척인 좋은 위치이지만 유일한 비구니 도량이다. 그 이유는 승가사 왼쪽의 좌청룡 형상이 옷을 벗은 여자가 비스듬히 누워 있는 ‘나부반와형’이라 한다. 그래서 비구 스님이 들어오면 오래 있지 못하고 절을 떠난다. 비구승은 정진기도가 흐려지고 정신이 혼미해져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한다. 산에서 오랫동안 기도 정진을 해 온 스님들 사이에서는 무의식 속에 산과 인간이 호환되는 경험을 무시하지 않으며 중요한 부분이 신심이고 신심은 부처의 가피를 통해 두터워지는 것이다.
승가사에서 열심히 기도한‘대원화’보살은 1995년 6월 29일 간호사인 첫 딸 민지의 혼수를 준비하기 위해 오후에 삼풍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기로 약속하였는데 전날 꿈에 승가사 부처님이 열심히 손을 흔드는 꿈이 무언가 다급하게 말리는 모습이었다 한다. 그래서 딸에게 전화를 하여 엄마가 몸이 아프니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었고 집에 들어온 민지는 엄마가 멀쩡함에 놀랐고, 잠시 후 TV 뉴스에서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어 수백 명이 실종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다시 놀랐다고 한다.
승가사에서 눈여겨 볼 것은 목탱이다. 칠불암, 봉정암, 부산의 내원정사도 목탱이 있지만 대웅전, 산신각, 영산전, 명부전 모두 후불탱화를 목탱으로 조각한 절은 승가사가 유일하다. 불모(佛母)인 김광한, 김광열, 김광복 3 형제가 8년간 승가사에서 숙식을 같이하며 은행나무로 이 목탱 작업을 한 기록이 있으며, 전체 목탱을 제작하기 위하여 들어간 은행나무가 200그루였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상이 간다.
첫댓글 잘 배우고 갑니다.. 지장보살()()()..
승가사에 다녀왔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배우고 나니 다시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승가사 의 유래에 대해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래전에 다녀왔는데 이제 가면 더 신심이 날 것 같습니다_()_
좋은 정보 넘무감사합니다 저에아저씨와 꽃 한번 다녀
오개읍니다 공부 잘 하고갑니다
선생님에가르침에감사합니다.
승가사에 같다왔지만 아무것도모르고 ....
이렇게 승사의 유래에대해 설명해주시니 공부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_()_
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유익한 내용 감사합니다
기회가되면 가보려합니다.정보감사합니다
음! 북한산 승가사라! 아! 약 십오륙년 전에 구기동에서 등산길에 보았던 거대한 마애불, 그 때에는 불자가 아니라서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갔었는데, 그렇게 유명한 절이었군요.감사합니다.어쨋거나 그 절을 구경할 인연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나무남방화주대원본존지장보살마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