劍道와의 因緣 때문이리라. 나는 日本의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영화를 즐겨본다. 그러다 보니 영화 장면 중에서도 특히 시선을 집중하는 부분은 결투장면 즉 眞劍勝負(신겐쇼부)이다.
日本 무술영화는 中國 무협영화와는 감흥이 완전히 다르다. 내가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 담백한 칼의 쓰임새 때문이다. 일본의 劍法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사실적이다. 일본말로 '앗싸리'하다.
거기에는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벚꽃처럼 활짝 피었다 산화(散華)하는 사무라이들의 삶이 투영돼 있다. 중국 무협영화의 그 황당무계한 장면들이 없어서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이다.
나는 일본 검술영화를 볼 때마다 新羅의 화랑도나 百濟 계백 장군의 오천 결사대에서 보듯 훌륭한 무사도의 정신을 지녔던 이 나라에는 왜 이같이 의연(毅然)한 검법이 계승되지 못했는지 참으로 딱하기만 하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일본 무사도의 원조국은 바로 우리 한반도에서 흥망성쇠했던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이었을터인데.... 그런 상념들을 떠올리며 올 연말 또 한편의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접하게 됐다.
영화 전문기자인 金重基 記者가 CD로 구워 준 것이어서 개봉관에서 일반 관객들이 보는 것과는 달리 수입업자들이 가위질하지 않는 원작품을 그대로 감상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 한편의 사무라이 영화를 통해 나는 또다른 감동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한 시골 무사의 비장한 삶의 이야기였지만, 가족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아버지의 웅숭깊은 가슴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편소설집 '철도원'(1997년)으로 나오키상(直木賞)을 수상한 아사다 지로(淺田次郞)의 원작을 영화화 한 '바람의 검-신선조'. 과연 장부(丈夫)의 가슴을 적시는 걸작이었다. '비밀'과 '음양사'(陰陽師)의 타키다 요지로(瀧田洋二郞) 감독과 일본 영화 음악계를 대표하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까지 합세했으니......
아이를 종살이 보낼 만큼 가난한 가족들을 위해 돈에 비굴한 웃음을 지어야 하는 처절한 가장. 그러나 무너져 가는 막부(幕府)에 대한 마지막 의리와 남부 무사의 명예를 위해 사지(死地)로 뛰어드는 최후의 사무라이. 그리고 패배의 치욕을 씻는 할복(割腹).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속깊은 사랑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사도 정신이 오버랩(Overlap)되며 그 진한 감동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하얀 눈 속에 붉은 피를 뿌리며 스러져가던 외롭지만 아름다운 죽음.
영화 속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말 일본 도쿠가와(德川) 막부(幕府)시대 말기. 자신의 어릴적 친구이자 모시던 주군인 오노(大野)의 만류를 뿌리치고 도망쳐(脫藩),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당시 최강을 자랑하던 검객 집단 '신선조'(교토의 치안을 담당한 막부의 경찰조직)에 입단한 시골출신 무사 요시무라 칸이치로(배역 中井貴一).
모리오카의 남부 번(藩.에도시대 다이묘가 다스렸던 영지) 출신의 요시무라는 순박한 외모와 달리 뛰어난 칼 솜씨를 지녔다. 그는 무사다운 기백보다는 고향 자랑을 늘어놓는가 하면 능청스럽게 돈을 밝혀 사이토를 비롯한 동료 무사들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셋째 아이를 몸종으로 들여보내고 자살을 기도한 아내 시츠를 부여안고 자신의 칼로 돈을 벌겠다고 결심했던 그의 처절한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고향의 아름다운 산천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즈음 막부의 쇠락과 함께 천황파가 득세를 하면서 신선조는 분열의 위기에 처한다. 쇼군(將軍)을 추종하며 의를 중시하는 무리들과 새 권력을 잡은 천황파로 갈라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선선조를 이탈한 사이토와는 달리 칸이치로는 녹봉을 배로 주겠다는 제의도 단호히 거절했다. 번(藩)을 나와 한번 저버린 의(義)를 두 번은 저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신선조로 다시 돌아온 사이토와 함께 반역자들을 제거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대세는 어쩔 수 없었다.
신선조의 임무가 해체되고, 대정봉환(大政奉還=1867년 일본 도쿠가와 막부가 천황에게 국가 통치권을 돌려준 사건)이 이루어지지만 칸이치로와 신선조 무사들은 쇼군을 위한 전투에 참여한다. 그러나 신식무기를 앞세운 천황파의 군대에 패해 배신자로 몰리게 된다.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상대진영의 고함소리에 갑자기 한 무사가 분연히 칼을 들고 총탄이 쏟아지는 적진에 뛰어든다. 고향에 아리따운 가족을 두고 온 칸이치로였다.
초주검이 된 몸으로 옛 주군인 오노(大野)에게 돌아온 칸이치로. 눈 내리는 허공 속에서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을 애타게 떠올리며 할복으로 무사다운 생을 마감한다. 그는 가족을 위해 자존심을 버렸지만, 신념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 2003년 12월 말. 또 한해를 보내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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