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화순(和順)은 전라남도에 화순군 일원의 옛 지명으로 백제 때 잉리아현(仍利阿縣)이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여미현(汝湄縣)으로 개칭하였고, 능성군(綾城郡: 綾州)에서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화순현(和順縣)으로 바꾸어 1018년(현종 9)에 나주(羅州)에 속하였다가 후에 능성현(綾城縣)에 편입시켰고, 1390년(공양왕 2)에는 감무를 파견하여 남평현(南平縣)을 겸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1394년(태조 3)에 남평현을 분리하는 대신 동복현감(同福縣監)을 겸임시켰고, 1405년(태종 5) 동복현을 병합하여 1407년(태종 7) 복순현(福順縣)이라 고쳐서 칭하였다. 1416년(태종 16) 다시 동복현을 독립시키고 능성현(綾城縣)에 병합하여 순성현(順城縣)이라 칭하다가 1418년(태종 18)에 각각 복구하였다. 1594년(선조 27)에도 능성에 편입되었다가 1611년(광해군 3) 다시 화순현을 분리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화순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전라남도 화순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읍내면이 화순면으로 개칭되고 능주군을 화순군으로 개편되면서 동복군을 흡수하였다. 1963년 화순면이 화순읍으로 승격하였다.
성씨의 역사
화순최씨(和順崔氏)의 시조는 최세기(崔世基)이다. 고려시대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그가 화순의 옛 이름인 오산(烏山)에 봉해짐으로써 화순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최세기와 같이 몽골군의 침입 때 공을 세우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부(崔傅)를 함께 시조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상계가 실전되어 서북면도감판관(西北面都監判官)을 지낸 최언(崔堰)를 기세조(起世祖)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는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최윤의(崔允儀)를 기세조로 삼는 계통도 있다.
화순군 화순읍 만호산(萬湖山)에 시조묘가 있다.
분적종 및 분파
5세에 이르러 감찰공(監察公) 최덕윤(崔德潤), 밀양공(密陽公) 최자해(崔自海), 부정공(副正公) 최자하(崔自河), 문정공(文貞公) 최자강(崔自江), 대사성(大司成) 최자빈(崔自濱)으로부터 5형제파가 분파되었으며, 그 외에 시정공파(寺正公派), 유수공파(留守公派), 도사공파(都事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첨사공파(僉使公派), 지평공파(持平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등이 있다.
주요 세거지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운계리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용두리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가천리
경상남도 거창읍 남하면 무능리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동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유곡리
전라남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도남리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화순최씨는 9,572가구 총 31,173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