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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신년 2 강
말씀 신명기 6:1-25
요절 신명기 6:5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한 율법사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로 2008년 신년2강 요절인 신명기 6:5을 인용하여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4절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아 들으라”고 하면서 이 말씀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했습니다. 율법의 대가였던 모세 역시 이 말씀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을 때 속으로 찔리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회복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라 (1-3, 10-25)
신명기(申命記; Deuteronomy)라는 말은 '율법의 복사‘ 또는 ’되풀이되는 율법’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처음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전한 것은 출애굽한 지 3개월 후 시내 광야에서였습니다(출 19:1). 그런데 신명기 1:1-3을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40년 되던 해 11월, 그러니까 BC 1406년 11월, 모세는 아라바 광야에서 다시 하나님의 법을 가르칩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이었고, 모세는 느보 산에서 최후를 맞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의 법을 다시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이스라엘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절을 봅시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후 40년 동안 출애굽 1세대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은 그 2세대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직접 배우거나 하나님의 훈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을 본받기 쉬웠습니다. 그 사람들의 우상을 섬기며, 그저 종교적 본능으로 무서워서 제사 드리고, 제사 드리고 나서는 음란한 사육제를 벌일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없으면 이스라엘도 가나안 족속들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본능에 따라 살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2세대가 가나안 족속들과는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모세를 통해 다시 하나님의 법을 주셨습니다.
둘째, 이스라엘로 장구하고 번성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절 마지막에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장구한다’는 말은 개인으로 말하면 오래 살면서 생을 즐긴다는 뜻이요, 이스라엘로 말하면 그들의 공동체와 그 공동체의 정신이 끊임없이 지속되며, 계속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3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그의 법을 가르치시는 것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2세들과 그 후손들이 오래도록 하나님께 쓰임 받으며 번성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법을 지키라 하면 마치 얽어매거나 속박하려는 것 같습니다. 또 잔소리 늘어놓으며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려 한다는 선입견이 듭니다. 그러나 교통법규가 운전자를 보호하고 사람들의 안전을 위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장구하고 번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는 ‘우주에는 자연 법칙(Law)이 있고, 성공이란 그 법칙에 따라 사는 자들이 누리는 열매’라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성공하는 습관’이란 원칙 중심으로 사는 습관 - 법칙을 따라 사는 습관입니다. 성공하려면 남보다 부지런해야 하고 또 남보다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잔인해 질 줄도 알아야 하고 머니머니해도 돈이 있어야하고, 또 줄을 잘 서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3절 말씀에서는 율법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면, ‘그리하면!’ 복을 받고 번성하리라고 약속합니다. 제 결혼 요절이 마태 6:33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0,11절을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특징은 ‘짓지 않고, 채우지 않았고, 심지 않았고, 파지 아니한’ 것입니다. 축복이란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법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법을 지키며 살면 ‘그리하면!’ 복을 누리지만 하나님을 잊고 그를 경외하기를 잊으면 ‘그리하면!’ 복을 잃어버립니다(12-17). 복이 독이 됩니다. 제게는 성공에 대한 압박감이 있습니다. 늘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안된다’는 의식 속에 삽니다. 은행업무란 성격상 그러하고 무한 경쟁 시대에 성공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망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마음에 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그 율법을 지키면, ‘그리하면!’ 장구하고 번성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2008년 새해에는 이 약속을 굳게 붙들고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라 (4-9)
이제 4,5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앞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고 가르쳤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곧 그의 법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행위의 문제라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의 법을 지키는 마음 상태나 감정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무서워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하면, 누가 볼 때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욕심대로 행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라야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기 전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분이시다.” -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이나 이방인들은 신들이 아주 많거나 또는 모든 자연만물에 다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다신론이나 범신론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신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들은 신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신들을 달래기 위해, 신을 섬깁니다. 열왕기상 18장에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이 대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바알 신의 응답이 없자 제단 주위에서 뛰놀며, 큰 소리로 바알을 부르고,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합니다. 뿐만 아니라 몰렉 신을 섬기는 자들은 자기들의 딸이나 아들을 불살라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무서워 벌벌 떨면서 제사를 드린 후에는 질펀하고 음탕한 사육제로 긴장을 풀곤 했습니다. 그들은 신에 대해 무지했고, 그래서 어리석고 끔찍하고 음란했습니다.
그러나 참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생명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세상에 살게 하셨으며, 우리를 장구하고 번성하도록 도우십니다. 그 분은 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그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속죄제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이 마땅하며, 사랑이 그와 관계를 맺고 그와 함께 하는 방법입니다.
신약의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고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도망가 다시금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서 책망하기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무서워해야 할 분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분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죄의식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했을 때 그는 예수님의 명대로 양을 쳤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에게 띠 띠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어떠해야 합니까? 5절을 다시 봅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음을 다한다, 뜻을 다한다, 힘을 다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려고 주석책을 보면 더 헷갈립니다. 이 말씀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려하기 보다 성경의 예를 찾아보는 게 더 쉬울 것입니다.
먼저 다윗이 좋은 예입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에 나가있는 형들에게 가보니, 거기에는 골리앗이라는 자가 그 큰 몸을 과시하며 이스라엘 진 앞에 버티고 서서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며 공갈을 치고 있었습니다(삼상 17:23). 이스라엘은 그저 골리앗의 위세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과 그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을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요,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골리앗의 위세나 공갈도 소용없었고, 형들의 책망이나 왕의 만류도 소용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밖에 없었고, 그의 뜻은 온통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더 이상 모욕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온 힘을 다 해 골리앗을 향하여 물맷돌을 던졌습니다. 그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고, 골리앗은 그 한방에 뻗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 해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었습니다(요한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머리털이나 체면이나 자존심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는 아끼는 것도 없었고 남겨두는 것도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1%도 다른 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기드온의 변화 과정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줍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그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고 부르셨지만, 그는 자기 민족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삿 6:12,13).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요구대로 여러 가지 표징을 보여주자 그는 점차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그 후 하나님의 능력과 살아 계심을 깊이 체험한 후에는 더욱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자기와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보지 않았습니다. 미디안 군대의 크고 많음을 보지 않았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 해 하나님을 믿고 사랑했습니다. 그리했을 때 그는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민족적인 영웅이 된 후, 백성들이 그들을 다스려달라고 요청했을 때에도 그는 오직 여호와께서 그들을 다스리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권력도 사랑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디안에게서 탈취한 각종 금붙이를 달라고 요청하여 에봇이라는 옷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왕으로 추대해도 거절하던 사람이 에봇은 왜 만들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그는 100%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2프로는 에봇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스라엘이 그 에봇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삿 8:27). 즉 이스라엘은 당시 실로에 있던 성막에 가서 제사하지 않고, 기드온의 에봇이 있는 오브라에서 제사를 드림으로써 점차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100% 사랑하지 않고 2프로가 부족할 때, 그 2프로가 독소가 되어 사람을 망하게 하고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예를 들 수 있겠지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결국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라, 하나님에게 집중하라, 아끼는 것도 없고 남겨둔 것도 없이 하나님에게 올인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니, 이제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의 2세들이 그곳에 있는 우상에 현혹되어 그들을 가까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으며, 장구하고 번성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학창시절에는 선생님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사랑은 나를 목마르게 하고 예수님이 나의 영원한 생수가 된다는 것을 96년 여름수양회에서 깨닫고 예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예수님이 나를 얽어매거나 속박할 것 같다는 두려움 속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신앙생활 했습니다. 군 제대 후에는 훈련하고 속박하는 듯한 UBF를 떠나 집근처 교회에 다니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곧 허드슨 선교사님이 중국 선교사로 가신다는 말을 듣고 선교사로 나갈 때까지만 센타에 나가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다 노원목자님과 일용할양식훈련을 하고 메시지 훈련까지 받고 어느새 풀타임 훈련을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속박이나 얽어매는게 아니라 꿀 송이 같이 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젠가는 평생 일대일만 하다가 죽고 싶을 만큼 저는 말씀공부를 사랑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다가 장학금을 받은 적도 있고 또 시간을 많이 빼앗겨 장학금을 놓치기도 했지만 저는 행복했습니다. 경희대 기독학생연합회장을 하면서 주변의 동역자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장래 걱정으로 보낼 대학3,4학년 시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니 참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사랑했습니다. 피곤할 때 여호와를 앙망하여 기도하면, 독수리의 날개치며 오르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 저는 평생 기도하다 죽는 비전을 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했을 때 하나님은 제가 논문을 써서 상을 받도록 하셨고 또 좋은 직장을 얻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캠퍼스 생활이 광야생활이었다면 직장생활은 그야 말로 가나안 땅 같았습니다. 그곳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너무나 많았고 유혹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또 신한은행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조직을 사랑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제가 이런 일들로 마음을 빼앗길 즈음에 동생이 교통사고를 내었고 연이어 어머니께서 신장이식 수술을 했습니다. 간신히 문제가 수습되려는 즈음에는 송노원목자님 가정이 개척을 한다며 남산센타로 훌쩍 떠났습니다. 가뜩이나 마음에 갈등이 큰데 도와줄 목자들이 떠나며 제게 더 큰 갈등을 안겨 주니 분노가 일어나고 순종심마저 사라지려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2006년 여름수양회에서 인생소감을 다시 쓰도록 하셨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민권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저는 이 예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다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내려 놓음>이란 책을 읽으며 제가 사랑할만한 모든 것들을 내려 놓았을 때, 하나님을 사랑할 힘을 얻었고 내가 많은 것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리라 결단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은 2007년 봄, 믿음 좋고 아름다운 이수희 목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또 지난해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동역자가 잉태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또 직장에서 4+의 인사고과를 받았습니다. 물론, 직장생활의 피곤함 때문에 저는 때론 피해의식에 빠졌고, 센타의 십자가들이 나를 얽어매는 것 같아서 겉돌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어느때보다 크게 자기 부인하였고 또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자신을 드린 한해였고 그래서 하나님의 주신 복이 큰 한해였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믿음을 체험했습니다.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절충시키는 삶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에게 ‘그리하면!’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는 믿음 주시길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6-9절을 보면 하나님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이든지, 말씀을 강론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그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심지어는 말씀을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당대에 끝낼 일이 아닙니다. 또 센타내에서나 가정내에서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의 모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일이 행동의 기준이고 사고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계산기를 손목에 매고 또 미간에 매어두고 삽니다. 저도 은행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는 늘 계산에 기초해서 판단하고 계산에 기초하여 행동합니다. 계산에 필요한 법, 지식, 이론들이 제 판단과 행동의 기초입니다. 이러다가 자식들에게도 ‘여호와를 사랑하라’하기 보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강의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의 표로 삼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계산기 업그레이드하는 실용서적보다는 사랑을 풍부하게 하는 책을 읽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 맺는말 - 20:80의 법칙 Vs 2:98의 법칙 :
경제학에서 20:80의 법칙(파레토 법칙)이란게 있습니다. 상위 20%의 사람들이 하위 80%를 지배한다는 뜻인데, 경제나 정치 모든 분야에서 이 이론이 거의 맞아 들어 거의 법칙으로 알려졌습니다. 결론은 하위의 80%보다 상위 20%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세계에서는 2:98의 법칙이 있다 생각합니다. 부족한 2%가 사람을 완전히 망하게 할 수도 있지만 2%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면 남은 98%를 모두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마치고 오면 남은 힘이 2%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2%를 어디에 드리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남은 2%가 나머지 전부를 지배합니다. 우리가 남은 2%까지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열정과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온전히 질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장구하며 번성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