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민들레 꽃대를 따며
이성교
(화순문인협회)
볕이 잘 드는 마당 구석, 오늘도 나는 하얀 민들레와 한바탕 ‘전쟁’ 중이다. 허리를 숙여 꼿꼿하게 올라온 꽃대들을 따내다 보니, 문득 이 작고 질긴 생명력이 우리 집안에 뿌리내리게 된 오래전 기억이 아련하게 피어오른다.
이 민들레는 원래 효심의 씨앗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부친의 병환을 고쳐보겠다고, 셋째 동생이 인근 지역을 샅샅이 수소문해 귀한 흰민들레를 구해왔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약으로 쓰고 남은 시든 뿌리 몇 점을 아내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심었다. 아내의 지극한 정성 덕분이었을까. 기적처럼 싹을 틔운 한 뿌리를 이듬해 봄 장인어른의 시골 텃밭으로 옮겨 심었고, 그것이 번성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이 가냘픈 뿌리가 이토록 무성한 가족의 역사를 써 내려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흰민들레의 효능을 직접 체험하신 장인어른은 이웃과 지인들에게 그 이로움을 전하는 전도사가 되셨다. 그러나 생명력이란 때로 경이로움을 넘어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어느덧 칠순을 훌쩍 넘기신 장인어른의 일상은 매일 솟아오르는 민들레 꽃대를 따는 일로 채워졌다. 텃밭을 점령하다 못해 온 집안을 하얗게 덮어버리는 민들레와의 전쟁. 그런 장인어른의 고단함을 보며 우리 부부는 '원죄인'의 마음이 되어 해마다 봄이면 처가로 달려가 뿌리째 민들레를 캐내곤 했다. 하지만 대지를 뚫고 나오는 그 처절한 생존 본능을 이길 수는 없었다.
몇 년 전 귀촌을 결심하고 지금의 집으로 오면서 아내는 다시 처가에서 민들레 몇 뿌리를 가져와 담장 밑 가장 구석진 곳에 심었다. 이번만큼은 그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기를 바라는 간절한 경계선이었다. 하지만 자연의 본능은 인간이 그어놓은 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느새 마당 곳곳에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하여 나 또한 생전의 장인어른이 그러하셨듯 매일 아침 꽃대를 꺾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를 이어받고 말았다.
오늘 아침 유독 눈에 띄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커다란 나무 밑동에 눌려 비스듬히 삐져나온 꽃대 하나가 무려 30센티미터나 족히 넘을 정도로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그 가냘프고도 질긴 줄기를 보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찡해 왔다. 저 가느다란 줄기가 그토록 길어진 이유는 단 하나 어떻게든 해를 보고 꽃을 피워 자손을 퍼뜨리겠다는 처절한 ‘생존 본능’ 때문이었으리라. 녀석은 억눌린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는 대신 남들보다 몇 배나 더 긴 줄기를 밀어 올리는 지독한 수고를 기꺼이 택한 것이다.
민들레 꽃대를 손에 쥐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본다.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어깨 위에 놓인 '무거운 짐'이나 나를 둘러싼 '척박한 환경'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을 감당해 내는 나의 마음, 그리고 그 시련을 뚫고 올라오려는 생의 의지가 어떠하냐에 따라 삶의 빛깔과 결과는 달라지는 법이다.
밟혀도 일어나고, 눌리면 돌아가며, 기어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는 민들레의 생명력 앞에 나는 한없이 숙연해진다. 그리고 평소 힘든 순간마다 지팡이가 되어주던 성경 구절 하나를 나직이 읊조려 본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세상의 짐이 무겁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 짐을 나 혼자 짊어지려 애쓰기보다, 절대자에게 의지하며 참된 쉼을 얻을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30센티미터를 웃자라 기어이 빛을 찾아낸 저 하얀 민들레처럼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생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내일의 꽃을 피워내리라 다짐해 본다. 마당 가득 퍼진 민들레 향이 오늘따라 유난히 진하고도 향긋하다.
| 이 성 교 월간<아동문학> 동화 당선(92), 계간<크리스찬문학> 동화 당선(93)KBS-1TV 드라마 소재 공모 당선(85),(선집) 한·중 아동문학 선집 2(94),호남 시인 106인 대표 시선 하(99),한국문인협회 회원, 화순문인협회 회원, 화순문인협회 회원 |
첫댓글 화단에 흰민들레 천지예요
흰빛이 좋아서 노란민들레를 자꾸 뽑아냈더니 ㅎ
풀꽃의 강인함을 배워야겠지요
선생님!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흰민들레 꽃대를 따며 ㅡ 수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