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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장부엉이 원문보기 글쓴이: 김 붱장
먼저 정동영의 공에 대해서 열거해보고자 하오. 정동영은 2001년 민주당내에서 정풍운동을 일으켜 당시 동교동계를 당의 2선으로 퇴진시키고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선출을 국민경선방식으로 만드는데 일조했소(당시에 노블리님께서 이 정풍운동에 참여하지 않으셨고, 이 정풍운동의 결과로 결국 김대중대통령님이 민주당의 총재에서 물러나셨다는 사실도 첨부하오.)
2002년 대선때 비록 머뭇거리긴 했지만(이때 씨티즌유가 "정동영의원님, 어디서 뭐하십니까?"라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해서 독촉까지 했었소.관련기사는 아래 클릭) 결국 노블리님의 선거운동을 도와 노블리님의 대선승리를 도왔소.
2004년 열린우리당창당할 때는 초대 당의장으로 선출되서 '몽골기병운동'과 '광폭민생탐방운동' 및 참신한 이미지와 전략으로 노블리님 탄핵 전까지 우리당의 지지율을 꾸준히 올리는 역할을 하였소.
2004년 통일부장관 입각이후엔 경쟁자인 김근태 복지부장관보다 여러 면에서 장관직수행을 잘 하였고 그 결과 남북관계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하였소. 쉫은 정동영을 꽤 괜찮은 통일부장관으로 기억하고 평가하고 있소.
여기까지요. 정동영의 '공'은.
지금부터 아래에 열거할 것들은 정동영의 '과'들이오. 위의 '공'들과 비교해서 어느 쪽에 더 무게중심이 실리는지는 햏들께서 판단하시구랴. 그리고, 그 '과'들이 '현실적한계'때문에 어쩔수없이 생긴 '과'들인지, 아니면 '자신의 사리사욕'때문에 '의도적'으로 저지른 '패악질'인지도 말이오.
1.정동영은 초대 열린우리당의장을 맡고나서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었소. 당시에 씨티즌유와 친노세력들이 창당 초기에 의장에게 리더십과 힘을 실어줘야 당이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고(이 판단엔 노블리님도 동의를 하셨다고 하오) 그래서 씨티즌유도 "정동영과 신기남에게 내 표를 줬다"고 공개했소. 헌데 정동영은 당원들과 친노세력들이 실어준 힘을 이용해 총선 공천자들을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자기 사람들로 채우는데 급급했소. 아래는 관련 기사요. "탄핵지갑 줏은 탄돌이들"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은 이 때가 시초요.
2.어쨌든 우여곡절끝에 탄핵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의석을 달성했소. 정동영의 "노인폄하발언"파장과 총선전략부재, 그리고 공천잡음등으로 과반수의석달성이 의심스러웠던 상황에서 가까스로 선전한 결과였소. 총선이 끝나자마자 정동영 당시 의장은 의원워크샵에서 "실용주의"를 제대로 된 토론도 거치지 않고 당의 정체성으로 못박았소. 이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개혁후퇴"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모호"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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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이대로 끝낼 겁니까?" 28일 강원도 양양에서 열린 당선자 워크숍 퇴소식에서 유시민 의원이 "비공개 전체토론을 하자"고 긴급제안을 하고 있다. 유 의원은 이날 귀경후 개혁당 출신 원내외 인사들과 함께 '참여정치연구회'(가칭)를 결성했다. ⓒ2004 오마이뉴스 이종호 |
3. 얼마후 노블리님은 우리당의 차기주자 양대산맥은 정동영과 김근태를 입각시켜서 차기주자로서의 경력관리 및 국정운영경험을 쌓게 하려고 하였소. 노블리님의 애초 구상은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상징성이 있는 김근태를 통일부장관으로, 총선때 노인폄하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정동영을 복지부장관으로 임명해서 노인폄하발언의 오명을 씻게 만들려고 하였소. 헌데 이 때 정동영은 상대적으로 위상이 높은 통일부장관으로 들어가려고 온갖 로비와 언론플레이를 자행하였소.심지어는 김근태의 가족 월북을 거론하며 색깔론까지 제기하였소.
'통일부 장관은 내꺼야!' 정동영ㆍ김근태 입각 앞두고 '자리다툼'
4.정동영은 총선 직후 자신의 계보인 이강래를 정당개혁추진단장으로 임명하고, 이강래는 우리당에서 기간당원제를 사실상 폐지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오. 이는 당원이 주인되는 상향식정당이라는 우리당의 애초 창당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태였소. 이에 분노한 씨티즌유는 2005년 전당대회에서 정동영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김근태계와의 연대를 표방하게 되오. 이 이후 씨티즌유는 전당대회에서 수많은 정동영계 계보의원들에게 속칭 '다구리'를 당하면서 '왕따 유시민'이라는 닉넴을 얻게 되오.
5. 2005년 말에 노블리님께서 씨티즌유를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입각시키려고 하자, 당시 정동영계 소속 의원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성명서를 작성하며 씨티즌유의 입각을 반대하였소. 세상에 자기 당 소속의원이 입각한다는데 성명서써가면서 반대하는 호로색히들이 어디 있소?그리고 당으로 복귀한 이후 정동영과 김근태의 유시민입각에 대한 입장표명도 서로 달랐소. 원래 친노의 또다른 한 축이었던 의정연구센터는 정동영.김근태계에 대한 호불호가 거의 없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정동영측과 사이가 벌어졌다 하오.
6.사실 노블리님에 대해서는 면종복배모드로 일관하던 정동영은 결국 2007년에 본색을 드러내고 열린우리당해체와 노블리님 탈당요구 및 비난에 앞장서게 되오. 결국 노블리님은 우리당을 탈당하시고, 퇴임 직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한미FTA,이라크파병 등 힘들고 가슴아픈 결정이나 일들이 많았지만, 그것들 백개를 합친 것 보다 열린우리당이 사라진게 제일 가슴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표명하셨소.
7.씨티즌유와 노블리님과 중요한 시점마다 부딪쳐온 정동영은 신당경선을 박스떼기,버스떼기,대리투표,명의도용등으로 흙탕물로 초토화시키며 결국 대장부엉이님과도 일전을 치르게 되오. 당시에 정동영계의 시의원이 명의도용을 하다가 어처구니없게 노블리님의 이름이 신당경선 참가자명단에 오르는 사태가 발생하여 검찰의 수사가 들어가게 되오. 이 때 대장부엉이님은 정동영을 "요괴"라고 칭하시면서 강력하게 비난하셨고, 정동영은 이해찬측이 권력을 동원하여 "정동영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자해공갈쇼를 하였소. 이에 대장부엉이님께서는 토론회에서 정동영이 "내 오랜 친구 이해찬"운운하니까 "친구라고 부르지도 말라"고 역정을 내셨소.
정동영측 "친노의 후보찬탈 음모" 이해찬측 "진실 없는 곳 요괴가 판쳐"
이해찬 "신의 중요, 정동영 나쁜 사람" 정동영 "유시민때문에 이해찬 변했다"
35년 우정’이해찬―정동영 대립 격화
8.대선에서 패배한 후, 정동영은 2009년 재보선이 다가오고 전주에서 재보선이 열리자, "땅짚고 헤엄쳐"보려고 전주에서 출마하겠다고 선언을 하였소. 당의 대선후보를 지냈던 자가 수도권에 출마해서 바람을 일으켜보려 하진 않을망정 자신의 정치적고향이자 당선이 100%보장된 전북 전주로 내려가려고 하였던거요. 당선이 유력했던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또 다시 내려가 처절하게 낙선했던 노블리님과 비교하면 진짜 조무래기같은 처사였소.
이에 정세균 당대표가 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위해 정동영의 전주 덕진 출마를 용인하지 않고 공천에서 탈락시키자, 자신이 대선후보를 지낸 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전주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소. 이는 가히 이인새의 행위와 도찐개진일 것이오.
위에 열거한 것들이 정동영의 과오들이오.
정치인들이란 순도100%의 공만 세울 수 없소. 심지어 노블리님이나 김대중대통령님에게도 과는 존재하오. 대장부엉이님이나 씨티즌유,봉하신기들도 마찬가지요.
허나 그 "과오"가 순간적인 전략적인 판단미스나, 실천역량부족등에 기인한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일으킨 "패악질"이냐는 아주 중대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하오.
본햏의 판단기준으로 볼때, 정동영은 공을 상쇄하고도 넘쳐흐를만큼 많은 과를 저질렀는데, 그 과들이 대부분 "사리사욕"으로 "의도적"으로 저지른 "확신범"이오.
"기회주의자는 포섭해야하지만 지도자로 모실 순 없다"라는 노블리님의 명언으로 볼때, 정동영은 절대 지도자로 모실 수 없는 인간인데, 지금 DJ계승자 1순위로 거론되고 있소. 이런 상황은 빨리 타파해야 하오.
그리고, 적어도 민주개혁진영에서는 자신의 사리사욕으로 전체진영을 흔들고 무너뜨리는 자가 또다시 지도자반열로 오르는 일이 절대 없어야한다고 보오. 만약에 정동영이 복권되고 또다시 부활한다면, 민주개혁진영에선 제2,제3의 정동영이 계속 속출할 것이오. 노블리님께서 2002년 대선후보 국민경선에 출마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오? "내가 대통령이 못 될지언정 이인제같은 기회주의자가 민주개혁진영의 지도자가 되는건 막아야겠다"라는 절실한 마음때문이었소.
정치판에서는 어찌됐든 정동영이 2007년에 민주개혁세력의 대표주자로 대선에 출마했기에, 내놓고 배제시키긴 힘들거요. 대장부엉이님도 마찬가지요. 하지만 우리같은 바닥민심만이라도 정동영을 결코 용서하면 안되오.본햏은 공교롭게 노블리님 서거때 봉하마을과 김대중대통령님 노제 때 시청에서 두 번 다 정동영이랑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면상에다 대고 욕지거리를 시전하였소. 김대중대통령님 말씀처럼 담벼락이 아니라 면상에다 대고 욕이라도 해야 하오.그래야 민주개혁진영에서 제2,제3의 정동영같은 존재가 나타나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