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진주잔치에 함께한 분들 모두 즐거우셨지요. 올해 마지막 달리기를 우중주로 아주 즐겁게 잘 마무리 했습니다. 부지런히 몸 생각하면서 뛰고 달리기를 기원합니다.
ㅡ2017년 진주마라톤 참가기ㅡ
1. 정유년 닭의 해가 이제 마지막 달력 한장에 의지한 채 그 생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 생의 2017년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허전하고 아쉽고 외롭습니다. 술과 달리기로 채워지지 않는 회한과 쓸쓸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속삭였을지도 모릅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며 나를 위무하고 다독거렸을 것입니다. 굳이 먼길을 달리는 것은 그 자체의 즐거움보다는 구멍뚤린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넣는 것이요. 생의 마감으로부터 나를 건져내는 것입니다. 1년 내내 갖은 번뇌로 내 염정한 마음을 갈아먹기만 하고 피폐해진 나를 구하러 올해 마지막 달리기를 하러 갑니다.
2. 뛸까말까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출발을 합니다. 12월은 항상 죄값을 치르는 달입니다. 열한달동안 등한시하였던 각종 모임과 사람들에게 해가 가지전에 참석하고 얼굴을 보면서 갖은 핑계와 죄스러움으로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부어 마시는 술과 이로 인하여 불어난 몸상태로 과연 뛸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듭니다. 이미 흥마의 형님들과 함께 가기로 하였기에 반반의 심정으로 새벽 5시30분 연화재 공영주차장에서 호득, 선경 형과 출발을 합니다. 새벽녘 여명의 빛이 주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하루의 개봉박두에 대한 썰레임과 먼저 움직이며 살아 숨쉬는 내 존재에 대한 알 수 없는 경외심이 있습니다. 어제보다 날씨가 많이 풀리었으나 차가움은 그대로 이고 구름이 내려앉아 스산하기도 합니다. 며칠간 운동을 하지 않아 몸은 가볍고 아주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진주로 가는길이 결코 무겁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3. 08시 30분경에 도착하여 옷을 갈아 입습니다. 춥습니다. 일회용 우의를 입고 보온을 유지하려하나 09시가 넘어가면서 이슬비가 내립니다. 영하의 날씨에 비까지 내립니다. 그럼에도 현장은 사회자의 신나는 멘트와 댄서들의 스트레칭 춤과 비닐끼리 부딪히는 소리 등으로 활기가 넘치는 난장판입니다. 그 분위기에 추워 움추려들 여지가 없습니다. 오늘도 마음은 항시처럼 330 완주를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약간의 허기가 느껴집니다. 찰떡 2개와 바나나 1개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입니다. 허겁지겁 봉지커피 1잔을 마시고 에너지 젤 4개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빗속을 출발합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우중주 대회를 해 봅니다. 이리 기분 좋을 수 없습니다. 아마 집이었다면 아직 자고 있을 지도~~~
4. 1킬로를 4:38초에 지납니다. 오늘은 목표는 330 이나 저번 춘천때처럼 첫출발이 약간 빠르므로 이대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 지 또 다른 헛발질을 구상합니다. 달리는데 큰 지장이 없을 정도의 비와 낮은 기온으로 인하여 하체 근력만 받쳐주면 오늘 좋은 기록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허황된 생각도 하면서 달립니다. 초반부터 흥마의 호득형을 페매삼고 따라갑니다. 10킬로를 지나면서 입고 있던 비닐우의를 벗어던집니다. 옷은 땀과 비로 흠뻑 젖어 몸에 달라 붇어 약간 불편합니다. 12킬로가는 오르막에서 40초대로 밀린 것 이외에는 이대로 13킬로까지 4분 20 내지 30초 대로 잘 달려 나갑니다. 7킬로미터 진수대교를 지날때는 전후좌우 펼쳐진 빗속의 흐릿흐릿한 진양호의 운치에 숨이 넘가갈 듯 아름다움에 심취합니다.
5. 13킬로 이후에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가민시계가 4:40초대를 찍습니다. 모든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몸은 시계에 정확히 자신의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초반에 너무 급하게 뛰었다고 멀리 내다보면서 내 몸과 체력에 맞게 뛰어야 하는데 다소 오퍼페이스로 뛰었다고 그러니 이제 조금씩 몸에 맞추어 천천히 뛰어야 겠다고 속삭이는 것이었고 그 결과가 디지털 GPS시계에 반영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몸이 따로 놀고 가고 있습니다. 내 몸을 위하여 14킬로에서 에너지 젤을 하나 먹여주고 몸에게 걷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라고 명령합니다.
6. 대관교 19킬로를 지나는데 저 멀리서 풀코스 선두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 포항의 김정열 초고수입니다. 잘 달립니다. 고수의 행렬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하프반환점까지 그들을 쳐다보면서 가는 길이 이리 즐거울 수 없습니다. 굳이 내가 저리 될 필요는 없지만 저리 되기까지 수많은 땀과 훈련을 하였을 것입니다. 1시간36분45초에 풀반환점을 돕니다. 빨라도 너무 빠릅니다. 30킬로 이후가 약간은 걱정이 되나 걷지만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이대로 쭉 갑니다. 반환점으로 오는 길에 이미 비는 그치고 22킬로를 지나면서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던지고 내리쬐는 햇볕에 눈을 뜰 수 없어 땅만보고 뜁니다. 24킬로에서 에너지젤로 몸을 보충하고 30킬로를 향하여 맹렬히 뛰어 갑니다. 29킬로까지는 억지로 4분대를 유지하나 30킬로로 향하는 긴 오르막이 심장을 터지게 합니다. 이미 오늘은 게임이 끝났습니다. 이 정도 오르막에서 이리 힘이 든다면 남은 12킬로는 절대로 4분대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신으로 각인됩니다. 30킬로를 올라 내리막을 달려가면서도 5분 2-30초대에 머물고 하체 다리 근력이 소진되는 느낌과 호흡이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남은 10킬로를 1킬로다 배치된 입간판을 하나씩 제거해 가는 서바이벌 게임이기도 합니다.
7. 35킬로 지점을 지나갑니다. 마지막으로 아껴두고 아껴두었던 보물과도 같은 에너지 젤을 먹고 힘을 내 봅니다. 몇몇 사람이 추월해 가고 주로에 급수 봉사 학생들의 파이팅 응원구호도 무미건조하게 들립니다. 다만 “최구열 아저씨 힘내세요”라는 여고생의 앙칼진 응원은 무슨일이 있더라도 걸으면 안 된다는 결기를 갖게 합니다. 38킬로지점 포항제철공고 출신의 거제도 마라토너가 아는체를 하면서 알약을 하나 건네주나 마음만 받고 실제 먹지는 않았습니다. 도로위에 올라서면서 40킬로를 지나고 3시간14분이 경과하고 있습니다. 더 빨리 뛰고 싶으나 힘이 소진되어 어찌할 수 없습니다. 저 멀리 골인지점이 보입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활력이 넘칩니다. 다 왔다는 안도감과 빨리 이 여정을 마무리하고 삼겹살에 소폭 한잔을 먹고 싶은 마음이 꿀뚝 같습니다. 올 해 10번째 풀코스마라톤 그리고 2017년 마지막 마라톤 대회가 이렇게 종결이 됩니다. 눈물까지는 아니지만 내 자신에 대한 최대한의 존경과 든든함을 만끽하면서 그리고 사회자가 내 이름 석자를 울부짓듯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골인을 합니다. 3:25:14 !!!
뛸 때마다 거의 비슷한 기록이고 그 밥에 그 나물같이 특별한 레시피도 없고 감동도 없는 기록이나 매 때마다 내 나름의 스토리가 있고 나름 최선을 결과이니 얼마나 감개무량하고 대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쳐다보고 또 쳐다보기를 반복합니다.
8. 작년 한해의 혹독한 부상의 아픔을 견뎌내고 올 2017년 정유년은 원없이 한없이 달리기를 하였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짓이라면 절대로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다녔더라면 절대로 하지 못하였을 것을 내가 몸 담고 있는 마라톤 클럽(흥해, 마팟)과 함께 하였기에 1년 내내 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풀밭이 꽃밭이 되는 비책은 네도 꽃피고 나도 꽃 피면 되는 것고,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은 네가 물들고 나도 물들면 되는 것입니다. 내년에도 마라톤을 통하여 클럽과 회원들과 함께 즐거울 수 있다면 그리하여 모두가 웃고 건강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꽃밭이 되고 활활 타오르는 산이 되지 않을까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진주에서의 하루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