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시집 '피조개, 달을 물다'
'속울음'이 차곡차곡 쟁여 싯뻘건 '불의 언어'로 풀어내
작성 : 2009-08-27 오후 8:24:12 / 수정 : 2009-08-27 오후 8:31:05
김기찬 시인(49)의 시 목덜미에선 오래된 누룩냄새가 난다.
12년 만이니, 참 오래 묵혀 뒀다. 시인 스스로도 "자신의 시가 서랍 속 모래먼지 서걱대는, 건기가 빽빽이 들어찬 사막의 시 같다"고 말했다. 발효될 대로 발효돼 단내가 났다고 느낄 무렵 두번째 시집 「피조개, 달을 물다」(고요아침)이 출간됐다.
"바다엔 묵직하고 진중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넌출넌출 뻗치는 시간의 발자국 같기도 하고, 제 밑바닥에 가 닿아 있는 질긴 울음 같기도 하네요. "
7년의 긴 터널을 견뎌낸 선퇴(매미 허물)를 보노라면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는 시인. 속울음이 차곡차곡 쟁여 차돌처럼 단단해진 것처럼 눈물겹게 퍼올려진 시들이다.
시 '계화도 女子'는 다름 아닌 조개다. 그는 "차돌처럼 다부지고 복숭아 뼈처럼 단단한 백합을 보면서 고단한 생이지만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는 생명력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시 '선퇴(매미 허물)'나 '누에'에는 출구도 없는 암흑 속에서 83년간 웅크렸다 나비가 된 아버지가, 거적떼기 몸으로 바싹 풍화가 되었던 어머니가 표상돼 있다. 그는 내변산 한바퀴를 휘돌아 쏟아지는 직소폭포 앞에서 매매 울음 소리를 들었고, 내변산 유유동 마을의 뽕밭골에서 뽕잎 써는 소리를 들었을 터. 옴스란히 나이테 안으로 모아들어 시들을 매달아 놓았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은 그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강원도 탄광촌에 가서 죽을 고생을 한 적도 있다. 지하 1800~1900m에서 '밤눈'을 밝히며 또박또박 시를 들춰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 어둠 밖 환한 세상에 나와 첫번째 시집 「채탄부 865-185」을 출간했다. 그는 "시는 캄캄한 세상의 흰 지팡이였다"고 말했다.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를 때 불의 긴 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시뻘겋게 이글거리는 (불의) 언어죠. 그렇게 뜨겁게 읽히던 책이 제 시집이 되면 좋겠습니다."
전북학생해양수련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다음 시집을 바다를 소재로 한 시집으로만 기약해 두었다.
부안 출생인 그는 1992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2006년 '전북시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