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경근이, 미술실로 내려와.”
죽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조폭 만화를 그렸으니 얼마나 맞아야 할까. 미술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선생님은 대뜸 “너, 미술 학원 다녀본 적 있냐?”며 백지 한 장과 볼펜 한 자루를 던졌다.
매 맞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얼추 그린 석고 데생이 ‘문제아’ 엄경근을 화가로 만들었다.
달동네를 화폭에 담다
화가 엄경근(35)씨의 작업실은 다음 달 열릴 전시 준비로 분주하다. 작업실 여기저기 검푸른 화폭에 성냥갑 같은 집이 빼곡하다. 어두운 밤, 달동네를 표현한 작품이다. 달동네는 가난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어린 시절 부산 동대신동 달동네에서 자랐어요. 달동네는 달과 가장 가까운 동네죠. 고단한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오르는 아버지의 뒷모습, 새벽 출근하는 어머니, 아버지 등에 업힌 채 골목골목을 지나며 스케치한 사람 풍경을 화폭에 담고 싶어요.
뱃사람이던 아버지에게서 나던 생선 비린내까지요.”
그에게 이번 전시는 특별하다. ‘문제아’ 로 불리던 자신을 화가이자 대안학교 교사로 이끌어준 스승과 함께하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보호관찰 대상, 전교 1등으로 사범대 진학
중·고등학생 시절, 그는 공부는 못해도 오토바이 폭주, 흡연, 음주와 패싸움이라면 자신 있었다. 부산 동대신동 근방 경찰서와 파출소를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술집에서 패싸움을 벌여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보호관찰 대상이 됐다.
“아버지는 배 타러 나가서 한 달에 한 번 오셨고, 어머니는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셨어요. 머리가 굵어지면서 가족과 대화가 단절됐죠. 실업계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뒤론 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었어요. 눈만 마주쳐도, 어깨만 부딪혀도 분노가 일었어요. 담 넘고 당구장에 가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고 싸움질하면서 우월감에 젖었죠.”
만화를 그리면서 우월감이 한층 커졌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조폭 만화를 야간 학생들까지 은밀히 돌려 보고 응원의 댓글을 적어주었으니 말이다.
조폭 만화를 담임선생님에게 빼앗긴 날, 그는 퇴학을 각오했다. 미술실로 불려가 벌벌 떠는 그에게 선생님은 뜻밖에도 데생을 그려보라는 게 아닌가. 미술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미술로 4년제 대학도 갈 수 있고, 선생님도 될 수 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어요. 선생님은 미술 학원에 다닐 돈조차 없는 형편을 알고 석 달 치 학원비를 내주셨죠. 덕분에 사범대 미술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문제 학생의 스승이 되다
엄씨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대안학교인 부산 자유학교에 부임했다. 청소년기를 방황과 좌절 속에 보내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누구보다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부산자유학교에서 가르친 제자들이 특별히 기억에 남아요. 왕따 피해자와 가해자, 항정신성 약물에 중독된 학생부터 경찰서 들락거리며 보호관찰 중인 건 예사고, 온몸에 문신한 학생까지 그야말로 부모도 포기한 아이들이 다 모였어요. 공감해주고 다독이며 설득해 그 시기를 잘 넘긴 아이들은 어느새 군 제대하고, 대학 진학해 과 대표를 맡고, 오토바이 타던 녀석이 퀵 서비스 업체 점장이 됐어요. 저처럼 미대에 진학한 녀석도 있고요.”
진심 어린 공감이야말로 변화를 이끌어낸 힘이다. 아울러 그는 졸업시키지 못한 제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자유학교를 퇴직하던 날, 마지막 종례에서 그는 아이들과 약속했다. “무조건 졸업해라. 나중에 너희 애들 보낼 학교는 내가 만들어놓을게.” 지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대안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가 꿈꾸는 대안학교는 학생과 교사가 모두 행복한 학교다.
정작 그는 어떤 스승이 되고 싶을까.
“저는 국·영·수 잘 가르쳐 서울대 보낼 선생님은 못 돼요. 공교육 밖의 아이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필요한 스승이 되고 싶어요.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시기를 무사히 지나도록 돕는 것, 딱 거기까지가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화가로서, 대안학교 교사로서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엄경근씨. 시간을 되돌려 중·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르게 살고 싶은지 묻자, 그는 “문제 학생으로 살 것”이라 답한다.
경찰서 들락거리는 문제 학생, 공부 못하는 꼴통이었기에 좋은 스승을 만났고, 미술대학에 진학해 화가로, 문제 학생들이 모이는 대안학교 교사로 살게 되었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냐고. 더도 덜도 말고 딱 이만큼. 그가 지치지 않는 이유다.
미즈내일
첫댓글 와~ 정말 따뜻하네요... 공감은 사랑인 걸 이제 알겠어요. 감사요~~~
우리 마음이 자비와 사랑으로 점차 물들면 어찌 공감하고 나누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찌 부드러워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