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최미선 기자/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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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까탈스러울 줄 알았다. 깍쟁이같은 인상으로 새침도 적당히 떨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예상을
뒤엎어버렸다. 격의없이 대하는 태도가 친언니같은 느낌을 준다.
말투며 행동이 화끈했다. 뒤끝도 없어 보였다. 구질구질하게 뒷말하는 건 딱 질색이다. 최근
그에게 붙은 별명은 ‘터프 아줌마’. 정말이지 ‘한 터프’ 하는 스타일이다.
“별명이 나왔으니 말인데 어떤 사람들은 날보고 글쎄 ‘묘숙이’래요. 이건 얼굴이 확 예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생긴 것도 아니고 분위기가 묘하다고요.”
그랬다. 이미숙에겐 말 그대로 딱 꼬집어낼 수 없는 묘하고 야릇한 분위기가 흘러 나왔다.
…성격
혈액형은 B형. 정도 많고 샘도 많다. 누가 자기보다 더 예쁘다고 하면 아직도 발끈한다. 젊었다는 증거다.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 ‘자뻑파’라고 슬쩍 귀띔해준다. 자신에 대해 스스로 뻑간다나?
공주과이지만 내숭떠는 공주병이 아니라 솔직한 왕비다.
때론 오해를 살 만큼 자신을 숨기지 못한다. 화끈하다는 평을 듣는 것도 다 솔직함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걸러서 얘기하잖아요. 특히 저처럼 중년(?)을 맞이하는 입장에선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새기든지 화가 나더라도 참고 그러는데 전 그걸 못해요. 아무리 고치려 해도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천상 배우를 해야 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좋고 싫음이 분명한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걸 적당히 가려서 표현할 수도 있으련만 그걸 죽어도 못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직장인이었더라면 0순위로 잘렸을 거고 사업가였으면 애저녁에 망했을 사람이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렁저렁 살아가는 게 싫어요. 그래도 고집부릴 건 고집부리며 살아야죠.”
바로 그 고집이 이미숙만의 색깔을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호락호락 넘어갈 것 같지 않은 까탈스러움이라는.
성격도 급하고 말도 빠른 편이다. 그러다보니 가끔 말을 더듬는 게 그의 트레이드 마크. 이것저것 참견도 잘한다. 때문에 가끔 뜬금없는 소리를 해 주위 사람을 웃게 만든다. 어떤 이는 코미디언이 따로 없다고 한다. 한창 인터뷰중에 갑자기 말한다.
“사진 안 찍어도 돼요? 아유 해떨어질까봐 겁나 죽겠네.”
해떨어지는 걸 사진기자보다 더 걱정하는 이미숙. 그리고는 불쑥 “제가 원래 스태프형 배우걸랑요. 잔소리도 많이 하고... 스태프들이 죽으려고 해요. 소품, 조명, 의상 할 것 없이 다 참견하거든요. 자칭 총감독이죠 뭐.”
그는 단순한 걸 좋아한다. 단순하다는 게 때론 바보스러울지 모르지만 잔머리 굴리는 건 질색이다. 거짓말하는 사람들, 계산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종하고 싶지 않다. 한꺼풀 뒤집어쓰고 대하는 그들을 보면 징그럽기까지 하다. 그 진상이 밝혀지면 마치 뱀이 허물을 벗고 도망가는 것처럼 소름이 돋는다. 다 내마음 같겠거니 했던 사람들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회물을 어느정도 먹고 이 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린 나이에 뭣모르고 시작해서인지 계산하고 필요에 의해 나를 만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사람을 못 믿는 버릇이 생겼어요. 누가 접근해오면 경계한다고 할까? ‘저 사람이 날 이용하려고 만나는구나’ 사람 사귀는 걸 굉장히 두려워하는 편이죠. 사람한테 상처받는 게 싫은 거죠. 가끔 이게 혹 정신병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연기생활 20여 년 동안 항상 일과 집, 집과 일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벗어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보니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곧 그의 삶이었다. 사람을 속이고, 때리고, 배신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고 뺏고.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들만 20년동안 봐오다 보니 어떨 땐 이게 곧 사횐가 싶어 겁이 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서울 후암동에서 딸부잣집의 둘째로 태어났다. 딸들의 재롱속에 그럭저럭 화목하게 지내던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뀐 것은 그가 아홉 살 때.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금도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떤 건지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해서 제가 힘든 건 없었어요. 엄마만 힘들었죠. 생계를 위해 뛰었던 사람은 엄마뿐이었거든요. 시장통에서 온갖 막일을 다 하셨죠.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우리를 자유스럽게 키우셨어요. 좋게 말하자면 자유지만 그냥 무관심 속에서 키운 거죠. 엄마는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우리 네 딸들은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엄마가 서운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먹고 사느라고 정신이 없으셔서 그렇지 엄마가 우리를 무관심 속에 방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릴 때는 무척 순한 편이었다. 오죽하면 순덕이란 별명이었을까. 다만 지금도 가끔 손가락을 빨고 입술을 물어뜯는 버릇은 남아 있다. 어릴 때 젖배를 곯아서다. 그래서 요즘엔 일부러 손톱을 기른다. 손톱이 길면 서로 아구가 잘 안 맞아 입술을 잘 못 뜯기 때문이다.
워낙 ‘독립적’으로 크다 보니 남에게 의지하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외로움을 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아이들 키우는 법을 확실하게 터득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스킨십이죠. 사랑으로 만져주는 거요.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항상 옆에 있어주는 걸 원해요. 제가 어렸을 때 그런 걸 너무 많이 느꼈었거든요. 공부 잘하는 거요? 다 필요없어요. 아이들에겐 그저 시간있으면 같이 부딪쳐주는 게 중요한 거죠.”
시간 맞춰서 밥 주고, 공부시키고, 예쁜 옷 사입히고… 부모의 할 도리만 제대로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아이들과 같은 입장이 되어주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이렇게 놀아도 되나?’ 스스로 걱정할 정도로 놀게 해요. 엄마가 하도 놀으라고 하니까 나중엔 걱정이 되는지 자기가 알아서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하더라고요. 억지로 시켜서 될 일이 아니거든요. 어릴 때 제가 원했던 게 뭐였는지 생각해보니 아이들 키우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죠.”
학교다닐 땐 다들 그의 언니가 배우를 할 거라고 했다. 얼굴도 더 예쁜데다 성격도 쾌활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극히 내성적이었던 자신이 배우가 되리라곤 생각도 안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몸 한구석에 뭔지 모를 ‘끼’를 담은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 같다.
화장은 잘 안하는 스타일이다. 옷도 심플한 걸 좋아한다. 색깔있는 것은 싫다. 선이 굵은 타입이라 화장을 진하게 하면 영락없는 곱단이가 되고 꽃분홍을 입으면 섬마을 아줌마가 된다는 걸 안다. 그저 자연스러운 게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일
열여덟살 때 1978년 미스롯데 선발대회에 나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고만고만한 나이의 소녀들의 관심거리는 바로 미스롯데였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원서를 들고 와 응모해보라고 적극 밀어붙였죠. 그 친구 집이 사진관이었는데 거기서 사진 찍고 접수도 그 친구가 해줬어요. 저는 제가 1등할 줄 알았었어요. 미안한 얘기지만 원미경씨가 1등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죠.”
그때 같이 뽑힌 사람이 원미경, 차화연, 경인선씨 등이었다. 모두 다섯명을 뽑았다. 그러나 3등 안에도 못 들었다. 인기상을 받았는데 그게 등수로 따지자면 5등이었다. 말하자면 턱걸이로 간신히 붙은 것이다.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아버지 돌아가실 때보다 더한 충격이었죠. 그때 막 울면서 엄마에게 말했던 기억이 나요. 나는 기필코 유명해질 거라고요. 그리고 그것을 오래 지속시킬 거라고요. 이를 물고 다짐했었어요.”
그게 밑거름이 되었다. 그때의 좌절이 없었다면 물 흐르듯 적당히 살아가다 지금쯤은 아마 그냥 아줌마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동글동글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모로 봐도 개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글동글하게 예쁘게 생긴 사람도 싫어한다. 각진 얼굴, 각진 연기, 개성있는 연기자를 좋아한다. 알 파치노와 미셸 파이퍼를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영화 <스카페이스>에서 두사람이 보여준 연기는 잊을 수가 없다.
“마피아 보스의 정부.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에요. 세상에 어떤 남자가 여자 하나를 차지하려고 자신이 모시는 무시무시한 보스를 죽일 수 있어요? 그런 사랑 한 번 해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에겐 새롭게 시작한 일이 또 있다. 작년 말부터 장학재단을 세웠다. CF 출연료 1억원 남짓으로 시작한 장학사업을 통해 20여 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결식하는 아이들도 마음에 걸린다. 소년소녀 가장도, 낙도 어린이도 눈에 밟힌다.
“돈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여유가 있어야죠. 보세요. 돈 많아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게요.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주 작은 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 보면 너무나 안타까워요.”
그는 이번에 수재민을 돕기 위해 전화를 수도 없이 눌렀다.
…사랑
밋밋한 처녀보단 열정적인 유부녀가 낫다고 생각한다. 환갑 노인이 되어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흔히 말하는 불륜이라는 걸 욕하지 않는다. 비록 불륜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겐 절절한 사랑이다. 그걸 단순히 관습에 의해 비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사랑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불현듯 찾아올 수 있는 것. 그때야 비로소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얘기할 것인가? 사랑이란 그렇게 함부로 얘기할 것이 아닌 것이다. 이미숙은 정작 사랑이 뭔지 아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