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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강좌 76-(5)문수사리문질품15
雖行無相이나 而度衆生이 是菩薩行이며
雖行無作이나 而現受生이 是菩薩行이며
雖行無起나 而起一切善行이 是菩薩行이며
雖行六波羅密이나 而遍知衆生의 心心數法이 是菩薩行이며
雖行六通이나 而不盡漏가 是菩薩行이며
雖行四無量心이나 而不貪着生於梵世가 是菩薩行이며
雖行禪定解脫三昧나 而不隨禪生이 是菩薩行이며
雖行四念處나 不畢竟永離身受心法이 是菩薩行이며
雖行無相이나 而度衆生이 是菩薩行이며
(수행무상이나 이도중생이 시보살행이며)
여기 문수보살하고 만나가지고 그야말로 유마거사가 가지고 있는 온갖 실력 그리고 그 실력도 전부 그야말로 알맹이만 정제해가지고 토해내 놓은 것입니다. 대목이 그런 대목 아닙니까? 문수보살하고 만나서 지금 하는 대목이죠. 그러니 뭐 불교의 그런 어떤 핵심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으로 필요한 그런 정제된 핵심만 여기서 소개한다. 이렇게 이해해도 될만한 대목입니다
비록 무상을 행하지만 중생을 제도할 줄 아는 것이 이것이 보살행이다
중생도 중생상이 아니고 부처다 이 말이죠.
중생이 중생상이 아니야 부처도 부처의 모습이 아니야
금강경에서는 無相(무상)으로 爲宗(위종)이라 그랬죠.
무상으로 相(상)없는 것으로 으뜸으로 삼는다. 그랬어요. 상이 병이거든요
병이 없는 상태 전부 무상이다 중생도 상이 없고 부처도 상이 없고 너도 상이 없고 나도 상이 없어 그러면 제도할 중생도 없고 제도하는 나도 없다 이래 될 것 아니야 그런 도리 잘 알아 그러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 그러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 이것이 말하자면 가장 바람직한 삶이고 보살행이다
중생이 있는 줄로만 그렇게 아는 것은 가관이다 해서 치우친 그런 생각이고
중생이 본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관이다 해서 허무주의 완전 공에만 떨어진 사람이고 중생이 본래 부처다 본래 부처인 중생을 제도한다.
이것이 중도 정견이고 중도관이다 여기서 그 말입니다.
무상을 행하지만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이것이 보살행이다.
과일이나 꽃이나 무슨 온갖 초나 향이 뭐 별거겠어요. 그야말로 허망하기 이를 때 없는 공양거리다 받는 사람도 받는 물체도 허망한 공양거리고 그런 줄 알지만 또 열심히 올리는 거야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정성을 다해 올리는 그 정성이 중요한 거라 비록 허망한 초고 허망한 향이고 허망한 공양이고 허망한 과일이고 허망한 음식이지만은 허망한 불상이야 불상도
그렇지만 우리가 거기에 열심히 올릴 줄 아는 그런 자세 그것이 말하자면 중도행이야 바람직한 소견이다 하는 것입니다
저 등상불에게 올리면 뭐해 이러고 있는 것은 바른 소견이 아닙니다. 절대 바른 소견이 아니야 누가 등상불인 줄 몰라 등상불인 줄 알지만 나 올려 그 차원이 이해 안 되는 사람들이 많아 세상에는 왜 등상불에게 왜 올리나 그런다고요 불자들이 등상불인 줄 누가 몰라서 살아있는 부처님이 자신다고 해서 올리는 사람들이 한사람도 없어 그런데 사람들 그 차원이 이해가 안 되니까 저 등상불에게 왜 올리나 부처님이 먹나 어쩌나 올리는 그 마음을 모른다니까 참 이상하죠. 이해 못하기로 하면 그 이해 못해요. 얼른 생각하면 그럴 것 같잖습니까 얼른 생각하면 그 등상불에게 왜 올리나 올렸다가 도로 나중에 또 내려올라고. 애먹으면서 그게 그래도 그게 아닌 도리가 분명히 있잖아 너무 확실하게 있잖아
그러니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참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각양각색인 것 이해 못하는 그런 삶이 부지기수죠 한두 가지가 아니죠. 특히 종교에 와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중생이 본래 부처에요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제도해야할 일이 있다고요. 부처님이 보니까 전부 말짱하게 부처의 지혜덕상을 다 가지고 있더라 이거지 그런 줄 알고 부처님은 열심히 중생제도를 했거든요 무상이라 무상을 행하지만 중생을 제도하는 것 이게 보살행이다
雖行無作이나 而現受生이 是菩薩行이며
(수행무작이나 이현수생이 시보살행이며)
비록 無作 지음이 없는 것을 행하지만
지음이 없는 것 본래 마음자리 진리의 입장 불성자리에서는 조작이 있어도 지음이 없어 아무리 지어도 지음이 없는 그런 자리라 지음이 없는 것이 본래심의 자리라고요
그런데 수생을 해 생을 받아 태어난다 이거야
태어나도 무작이라고 하는 말은 태어나도 태어남이 없는 도리 그 말인데
그러면서 보살들은 우정 내가 어느 지역에 어느 집에 어느 국토에 어느 나라에 태어난다 이거야 태어날 줄 아는 게 그게 보살행이다
이것은 보통 우리 삶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다면 있는 것인데 요것을 우리가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할 수가 있어요. 어디에 가도 본질상에는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간다. 갔다 오면 뭐하나 가면 뭐하나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서 즐거운 것이 안자서 심심한 것 보다 못하다 행락 철에 그렇죠. 보통 가면 고생 하죠. 가면 고생 할 줄 다 알아 그래도 가는 거야 그래도 가야 돼
가는 게 더 좋다고요 안자있으면 뭐해요 무작이거든 무작은 안자있다 꼼짝도 안하고 안자있다 무작을 행해 지음을 없는 것을 행해 그런데 거기 가서 而現受生이라는 말은 분명히 생을 받게 된다. 거기 태어난다. 이런 말이야
갔다가 와봐야 별 수가 없는 줄 알지만 그래도 가는 거야 갈 줄 알아야지 갔다 와도 별수 가면 별수 있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야 안자있으면 또 뭐해 안자 있으면 뭐 별수 있나 허~허 안자 있으면 별수 있나
무작으로 보자면 지음이 없는 것 해도 다 무상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무작이다 그런 뜻인데 그걸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아예 이야기가 되질 않습니다. 그런 도리를 알고 그런 도리를 실천하지만은 또 어디서 태어날 때 태어나고 태어나서 중생제도 할 일 있으면 제도하고 갈 일 있으면 가고 올 일 있으면 오고 그것이 보살행이다
雖行無起나 而起一切善行이 是菩薩行이며
(수행무기나 이기일체선행이 시보살행이며)
비록 무기 일어남이 없는 도리를 행하지만
요것도 무작, 무상, 무기 전부 같은 것예요
본래 우리마음으로부터 아무것도 일어남이 없는 그 자리를 행하지만은
일체의 선행을 일으키는 것이 이것이 보살행이다 온갖 선행
마음에는 한 생각도 일어나는 것이 없어 일으켜도 일어나는 것이 없지만은 그런데 거기서 일으켜가지고 일체선행을 또 지어 일체선행을 일으키는 것이 그게 보살행이다
그렇다고 마음자리에는 무슨 선행이 일어난 것이 있냐고 하면 아무것도 일어난 것이 없어 우리의 마음자리에는 어떤 흔적도 없고 어떤 자취도 없어 그러면서도 또 거기서 마음을 일으켜 선행을 행한다. 그게 보살행이다
그렇게 아는 것
雖行六波羅密이나 而遍知衆生의 心心數法이 是菩薩行이며
(수행육바라밀이나 이변지중생의 심심수법이 시보살행이며)
雖行六波羅密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보통 불자가 실천하기를 바라는 여섯 가지 덕목이죠. 그런 것을 행하기는 해 육바라밀을 행하기는 하나
而遍知衆生의 心心數法이 是菩薩行이며
육바라밀을 행하지만은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의 수법이 심과 심수법이 법을 두루 아는 것이 이것이 보살행이다 그러면 이것은 심과 심수라고 하는 말은
마음은 심왕이라고 해서 마음의 본체고 심수는 마음하면 하나지만 마음에도 여러 가지가 있죠. 선심, 악심 무슨 탐심, 진심, 치심이 있고 온갖 번뇌가 많아요.
그래서 여기 뒤에 사전에 보면 135페이지 한번 보세요. 거기에 보면 낱낱이 나열은 안했는데 제일 위에 있죠. 심수 해가지고 심소라고도 했는데 심왕의 소유다 그랬어요. 심왕의 소유 우리 마음의 본체를 심왕 임금왕자 써요 그게 왕이다 거기에서 딸려있는 마음들 이게 심수, 심소라고 그래요 그냥 심 하면 심왕이고 딸려있는 것이 많은데 뭔고 하니 탐내고 성내는 등의 온갖 작용하는 심법이 있죠. 마음하면 막연하지만은 거기에 여러 가지로 분류가 되는데 소승에서는 44가지 대승에서는 51가지 그렇게 마음의 여러 가지작용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탐, 진, 치로 부터요 먹고 싶은 마음이 있다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 등등 이것도 전부 심소에 해당되는 거여 기쁘다 슬프다 외롭다 이것도 전부 심수에 해당됩니다. 마음의 여러 가지 작용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런 것들을 두루 아는 것이 말하자면 보살행이다 육바라밀 하고 그것하고 정반대되는 마음이 본래 그런 것인데 그런 작용에 의해서 육바라밀을 행한다. 그렇게 이제 이해하는 것이 보살행이다
雖行六通이나 而不盡漏가 是菩薩行이며
(수행육통이나 이불진누가 시보살행이며)
육신통, 육신통을 비록 행하지만 누가 다하지 아니하는 것이 이것이 보살행이다 요것은 뭔 말이고 하면 육신통 속에는 누진통이 있어요. 번뇌가 다한 것 진누라고 하는 말은 漏가 번뇌인데 번뇌가 다한 것을 행해 육신통을 행해 그렇지만 번뇌를 남겨둔다 번뇌를 다하지 아는 게 그게 보살행이야 번뇌를 싹~ 없앨 수도 있어 그런데 번뇌를 남겨두는게 이게 보살행이라 우리처럼 번뇌가 들 끊는 사름들은 번뇌를 일단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번뇌가 없어진 사람들은 번뇌를 우정 남겨놓아요 그 번뇌가 있어야 중생 제도하는데 필요하다는 거야 물이 좀 어떻게 흐려야 고기가 놀죠. 깨끗하게 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적당히 고기가 놀 정도로 만들어 놓아야 고기가 논다고요 마찬가지로 보살도 완전히 깨끗한 열반의 세계로 가버리면 중생제도하기가 어려워 아주 힘들어요. 그래서 번뇌를 남겨둔다 그래요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날 그런 인연도 지어놓고 일부러 꾸지리한 중생이 하는 행위를 조금씩 하는 거여 더불어서
雖行四無量心이나 而不貪着生於梵世가 是菩薩行이며
(수행사무량심이나 이불탐착생어범세가 시보살행이며)
범세상 범천의 세상인데 요것은 깨끗한 세상이거든요
거기에 태어나는 것을 탐착하지 안이해 그것이 보살행이다
사무량심은 자비희사 그것을 행할 것 같으면 범세에 태어나죠.
깨끗한 세상에 태어난다고요 그 좋은 마음이니까 네 가지 좋은 마음이니까
그런데 거기에 태어나는 것을 탐착하지 않는다 이거여
그런 마음은 써 좋은 마음은 뭐 극락에 100번 갈 마음을 쓰기는 쓰지만은 그렇다고 극락에 태어나는 것 결국 욕심내지 않는다. 이것입니다
참 멋진 마음이죠. 아주 극락에 100번이나 태어날 수 있는 행위는 하지만은
거기에 태어나는 것을 크게 욕심 내지 않는다.
사무량심을 비록 행하지만은 범세에 태어나는 것을 탐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행이다
雖行禪定解脫三昧나 而不隨禪生이 是菩薩行이며
(수행선정해탈삼매나 이불수선생이 시보살행이며)
雖行禪定解脫三昧
선정, 해탈, 삼매를 이런 것들을 비록 행하기는 하지만
而不隨禪生이 是菩薩行
이것은 선정을 따라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선정을 따라서 살지 않는 것이 이것이 보살행이며
선정을 행하면서 선정대로 살지 않는다 이거여 그게 어려운거죠
뭐든지 뭘 한다 하면 그저 거기에 벌써 상이 생기고 그런데 선정을 행하면서 선정으로 살지 않는 것 참 그게 어려운 대목이죠. 어려운 대목
우리는 뭘 한다 하면 그저 냄새피우기 바쁘죠. 조금만 한다고 하면 냄새피우기 바쁘고 상내기 바쁘고 나부터라도 그런데 하면서 그것으로써 살지를 안 해 선정을 따라서 살지를 안는다. 선정을 행하면서 선정을 따라서 살지를 않는다. 어떻게 간단하게 보면 상 안낸다. 이런 뜻이 되죠.
때 안 묻는다. 거기에 선정을 닦는다. 참선한다고 참선하는데 때 안 묻고 도통했다고 도통하는데 때 안 묻어 도통해서도 도통한 것으로 살지 않으면 대단한거죠 부자지만 부자로 살지를 안 해 가난하지만 가난한 걸로 살지를 안 해 비굴하지 않고 부자라고 교만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해석을 한다면 그런 의미가 되겠죠. 아무리 보아도 저사람 부자 같지가 안 해 아무리 봐도 저 사람은 가난한사람처럼 비굴하지가 안 해 이것 그렇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정, 해탈, 삼매를 행하지만 선정을 따라서 살지를 않는다. 이것이 보살행이다
雖行四念處나 不畢竟永離身受心法이 是菩薩行이며
(수행사념처나 불필경영이신수심법이 시보살행이며)
사념처를 비록 행하기는 하지만은 끝내 신수심법을 영원히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념처는 신수심법을 떠나는 것이에요
뭔고 하니 신수심법에 대해서 이게 사념처인데
신은 무상하다고 관하는 게 사념처이고
수는 일체 고다 받아들이면 전부 괴롭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심은 무상하다 마음은 변한다.
그다음에 법은 일체법은 무아다
여기 사념처가 전부 여기 뒤에 사전에 나와 있는데 살펴보죠.
124쪽 밑에 단에 있습니다.
*사전:
1)심수(心數. 心所): 심왕(마음의 본체: 심)의 소유란 뜻이니,
탐하고 성내는 등의 작용을 하는 심법.
소승에서는 44가 있다 하고, 대승에서는 51이 있다 한다.
사념처(四念處) : 네 가지 경계가 지혜로 관찰하는 곳이란 말이니
소승행인이 五정심관을 닦은 뒤에 수행하는 것.
몸은 부정한 것으로 관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괴로운 것으로 관하고
마음은 무상한 것으로 관하고, 법은 내가 없는 것으로 관하 한다.
그게 신수심법 몸은 부정하다 받아들이면 전부 괴롭다 그다음에 마음은 무상하다 법은 아가 없다 이런 것이거든요. 그게 사념처인데 사념처를 행하지만은 신수심법을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그대로 몸, 받아들이는 그 마음, 법 그 속에 더불어서 산다. 차원 놓은 이야기입니다
몸이 비록 부정하다고 하지만 몸 가지고 산다. 몸 가지고 살아야 되잖아요. 또 비록 부정하지만 몸 가지고 살아야 되고 부정한 몸 인줄 알면서도 몸 가지고 살고 떠나지 않는다. 몸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 그전에는 요것을 권했습니다. 몸은 부정하다 해가지고 그래 부정관을 열심히 하는 거여 백골관해가지고요 백골관 백골을 관하거든요 또 무슨 썩는 것 창능관인가 그런 것 도 있고요 별별 관이 있어요. 신체 우리 육신에 대해서 관하는 관찰하는 습관들이 있는데 시체가 썩는 것을 그대로 보면서 거기 안자가 지켜 안자 가지고 그것을 관하는 것 인도에서는 그랬어요. 누구 하나 죽으면요 그 말하자면 가족들에게 허락을 받아가지고 사거나 얻어요. 얻어가지고 숲속에 들어가서 딱 놔두고 그 시체가 다 없어질 때까지 없어질 때까지 그 앞에 안자가지고 철저히 관하는 거여 육신에 대해서 저 육신처럼 내 육신도 그렇다 살아있는 내육신도 저 육신과 다를 봐 없다고 이렇게 관하는 거여 무섭지 참 그게 백골관이야
창능관이라고 해서 막 시커멓게 썩어가지고 불어터지는 것 또 벌레가 들 끊는 것 이런 것을 직접 시체를 앞에 놓고 눈으로 보면서 관한다니까요 이게 부정관이에요 시체를 산데요. 사던지 허락을 받아서 얻든지 그것 뭐 처리하기도 곤란한데 가져가겠다면 좋지 뭐 수행자들에게 그렇게 준데요 줘가지고 수행자는 그것을 하나 갖다 놓고는 그 앞에 안자가지고 몇 날 며칠이고 그것을 직접 봐가지고 철저히 그러니까 뼈에 사무치도록 그 보고 안자 있는 거여 그러니 그것 하나 참 지독하지 그런 공부는 지독한 공부라고 할 수 있지
그렇게 크게 좋은 관이 아니야 사실은 알고 보면
그러나 일단 그렇게 해서 한 단계를 넘기고 나면 초연해 지겠죠.
그런데 여기서는 그 사념처 그런 관을 행하기는 행하지만은 그렇다고 몸을 버리거나 자살해버리거나 이 몸뚱이 어떻게 던져버리는 그런 씩은 아니다 끝내 필경은 끝내 영원히 신수심법을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가지고 있다 시체를 가다놓고 해골바가지가 될 때까지 관을 해가지고 이 신체에 대해서 육신에 대해서 초연해졌지만은 그렇다고 이 육신 버리는 것이 아니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대로 애지중지 하고 먹여주고 닦아주고 다한다 이거야 그래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또 그렇다고 이놈의 육신이 영원할 줄로 그냥 그렇게 영원한줄 그래 알아도 그것도 병이죠. 이 몸이 무상하다고 해서 버려도 포기해도 그것도 병이고 너무 애착해도 병이고 그래서 여기서는 그런 중도적인 관점 또 그런 중도적인 그런 삶을 가르치고 있죠. 이게 가장 바람직한 삶이다 이런 뜻입니다 전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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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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