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력과 사순절
교회력이란 해를 기준으로 한 양력이나, 달을 중심으로 한 음력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준으로해서 만든 교회의 달력을 말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절기가 부활절과 성탄절인데 부활절과 성탄절이 정해지는 기준이 당시의 달력과 관련해서 정해지기 때둔에 부활절은 음력으로 (유태인 달력으로 유월절이 음력이므로) 정해져서 매해 다르고 성탄절은 12월 25일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양력으로 정해진다. 그래서 이둘올 기준으로앞과 뒤의 일정 기간을 절기로 삼아 교회력을 형성한다. 그런데 교회력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고 만들어졌으므로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성탄절 4주 이전이 대강절(또는 강림절)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다. 보통 12월 첫 번째주일이 대강절의 시작이자 교회력의 시작이 된다. 그리고 12월 25일이 성탄절이고보통 1월 6일을 현현절(주현절)로 지키는데 이는 동방박사 세사람이 그리스도께 경배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원래 동방교회 전통). 그리고는 사순절, 부활절 전 40일 (단 그사이에 있는 주일은 제외된다)이며 첫 시작일을 '재의 수요일' (머리에 재를 뿌리고 회개하는 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부활절, 이는 유태인 달력으로 봄의 첫 보름달이 뜬 후 첫째날이다. 그래서 양력으로는 춘분이 지난 후 보름달이 뜨고 맞이하는 첫 주일이다 그래서 부활절은 보통 3월22일에서 4윌 25일 사이에 오게 된다. 그 다음 부활절이 지난 후 50일이 성령 강림절이며 이 이후에는 교회의 성장기, 또는 교회에 주어진 기간이라고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성장과 양육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순절의 유래
사순절은 어떤 성경적 근거나 성경에서 가르친 절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발전 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산물이다. 이런 절기나 의식은 교회사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한국교회에서도 상당부분 발견된다. 특히 주일 오후 예배나 수요예배, 또새벽기도회 같은 것들은 성경적 근거있다거나 성경에서 가르친 절기가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발전하게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잡은 전통이라고 말할 수있다. 사순절도 이와 같은 형성배경을 가지는 것이다. 원래 초대 교회에서는 세례 받을 사람들이 세례 집행 전에 품행을 조심한다거나 경우에 따라 금식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러한 금식은 하루나 이틀을 계속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클레멘트는 하루를, 히폴리투스는 이틀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습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부활과 연결되게 된다. 그 이유는 부활절에 세례를베푸는 것이 초대교회에서는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므로서 금욕이나 금식등이 부활의 준비와 연결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동참함이나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는 등의 의미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단 이때의금욕은 우리의 금식이라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좁은 의미가 아니라 마음가짐과 태도를 조심하고 음식물에서의 조심 (육식의 금지) 또는 생활에서의 제한 (오락이나 유회를 금하고, 사냥을 하지 않는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쨋든 이러한 전통이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히폴리투스 같은 교부들이 부활전 전 주간에하루나 이틀 정도 금식하는 것은 (병자들을 제외하고는) 당연한 의무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부들은 또한 이러한 금욕의 습관을 성경과 연결시키고자 하는노력을 하게 되는데, 터툴리안은 마가복음 2장 20절의 금식 내용을 고난주간의 금욕과 동일시하고 있고, 190년 경에 이레니우스는 부활사건과 금욕의 의미를 서로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레니우스의 이러한 설명은 유명한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5권 24장에 나오는데 (유세비우스, 엄성옥역, 교회사, 은성출판사,1990, 294-298쪽), 여기에서 보면 금식에 관해서 이미 논쟁이 있었던 것을 알 수가있다. 이것을 그대로 옳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논쟁은 날짜 뿐 아니라 금식하는 방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단 하루만 금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어떤 이는 이틀, 또 어떤 이는 그보다더 오랬동안 금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밤낮으로 40시간 금식해야 한다고 계산합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다양한 태도는 우리시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생긴 것입니다...' (윗책 296쪽).
이것은 마치 유윌절에 관한 논쟁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부활 사건과 관련하여 '전해진 관습'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원래 논쟁의 주제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비밀을 기리는 의무'(같은 곳)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금식에 관한 논쟁이 초대교회에서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유세비우스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하루나 이틀 외에도 40시간이라는숫자가 나온 것이 관심을 끈다. 이것에 대한 해석은 이틀을 시간으로 표시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굳이 40시간인가 하는 것은 질문할 가치가 있다 하겠다. 한편 바질리우스는 그의 설교집에서 5일이나 6일을 금식하도록권고하고 있는데 (TRE, Fasten), 이는 아마도 베드로 복음서에 근거하과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바질리우스가 6일간의 금식에다 헤 네스테이야톤 ( ,부활절 금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부활절과 금식 또는고난주간과 금욕의 연결은 당연시 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보면 교부시대까지는 부활절과 관련한 금욕이 일반화 되어있기는 하나 기간에 관해서는 아직도 정해지지 않고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것을 알수가 있다. 그런데 4세기경부터 40일간의 금욕이 언급되고 있다, 우선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에서도 이 문제가 언급되며, 아타나시우스가 설교집(329년)에서 전통적으로 6일간의 금욕기간이 지켜졌으나, 다음 해부터는 부활절 40일 전부터 거룩한 부활주간을 위한 금욕기간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유세비우스역시 40일간의 금욕이 부활의 준비를 위해서 충분한 기간임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40일간의 금욕이 언급되면서 이것의 성경적 근거를 찾는 작업이 시행되기 시작하는데 바질리우스나 크리소스톰, 이레니우스 등은 이것을 모세가 계명을 받기 전40일을 금식한 것 (신명기9장 18절), 예언자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으로 가는 기간이40주야인 것(왕상 19: 7-8), 예수님의40일 금식(마 4:1-11)과 연결시키고 있다. 서방 교회에서는 점차로 이렇게 40일이 고정되어 가지만 지역이나 사람에 따라서상당히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40일 즉 6주간 금욕이 행해지던 곳은 일리리아,서방교회, 리비아, 팔레스티나, 에집트 등이고, 콘스타티노플과 소아시아 지역은 7주, 또다른 지역은 3주간을 하되 격주로 해서 6주간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단이었던몬타누스파는 2주간의 금식 전통을 갖고있었다. 이러한 부활절 준비로서의 금식전통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다가 중세에 오면서 정형화되게 된다.
이렇게 정형화된 전통을 고정화시킨 사람은 중세 교황제를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는그레고리 1세인데 그 당시까지 서방교회는 6주 전통, 동방교회는 7주 또는 8주까지지키는 경우도 있었는데 7주는 주일만 빼고 계산해서 40일을 채우자는 것이고, 8주는 토요일과 주일을 빼고 계산한 결과이다. 이러한 전통을 조화시키고자 그레고리 I세는 동방교회 전통과 서방교회 전통을 조합시켜 6주와 7주의 중간점 즉 수요일을시작점으로 하고, 그 기간동안 주일을 제외하고 정확히 40일을 지키게 하므로서 시작일이 수요일이 되고 이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 또는 '성회수요일'(聖灰水曜日)이 된다. 그리고 그레고리2세가 715년 이 성회수요일에 대한 미사의식까지 제정하므로서 가톨릭 교회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것을 incohata ieiunila라고 이름붙이고 전체 서방교회의 공식적 행사로 정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유럽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면서 유럽의 문화와 밀접한 연결점을 가지게된다. 즉 카알 대제의 카롤링거 르네상스 때에 형성된 기독교 문화는이런 기독교 전통을 축제와 연결시켜 사육제 즉 카니발 문화가 만들어지게 되고, 카니발은 유럽이나 전통적 기독교 국가의 중요한 문화 행사가 되게 된다. 카니발은 사전의 풀이에 의하면 사순절이 오기전 3일에서 I주일 동안 행해지는 축제로 사순절에는 고기를 먹어서는 않되므로 이 카니발에 마음껏 먹고, 가장행렬을 하며 즐기는 행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