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Christian Science Monitor 미국시간 2010-6-8 심야 (번역) 크메르의 세계
[분석] 반-왕당 모의음모설로 시위대를 압박하는 태국정부
Thailand cites plots against king for clampdown on red-shirt dissent
태국정부는 "레드셔츠"(UDD) 세력이 존경받는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국왕을 폐위시키려 시도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태국 정부에 대한 비판세력은, 정부측이 가혹한 법률인 <왕실모독처벌법>의 보호를 받는 국왕을 이용해서, 반정부 세력을 탄압하려 시도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
보도 : Simon Montlake 특파원
레드셔츠 시위대에 대한 "제1차 유혈 강제진압"(4월 10일) 이후 2주가 지난 시점에서, 태국군 대변인은 한 인맥 조직도를 공개했다. 이 도표에는 전직 총리 3명을 포함하여 20명 이상의 야당 인사들과 주요 시위대 지도자들, 그리고 망명 중인 사회운동가들과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한 태국 음식점 소유주가 상호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주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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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피싯 웻차치와 태국 총리(1964년생).
객가어(客家話, Hakka) 사용 화교 집안 출신인 그의 고향(출생지)은 영국의 뉴캐슬이다. 이후 귀족 명문학교 "이튼스쿨"을 나온 후, "옥스포드 대학"(University of Oxford)에서도 특히 우수한 학생들만 입학하는 "철학, 정치학, 경제학 복합연계과정"(PPE 과정)에서 공부했고, 이후 동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영국 국적을 함께 보유한 이중국적자로 알려져 있는 그는(태국에서는 불법임), 2008년 12월 노란셔츠(PAD) 시위대의 방콕국제공항 점거농성 테러 및 사법부의 여당 해산판결을 거쳐, 군부의 막후 압력행사에 힘입은 정계개편을 통해 태국의 제27대 총리가 되었다.
아피싯 총리는 단명 총리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을 깨고 정치적 수명을 늘려나가고 있다. 가난한 농촌사람들과 도시 서민들을 중심으로 금년 3~5월에 발생한 레드셔츠 시위대의 항쟁에서, 그는 거의 90명이 사망하고 2천명 정도의 부상자(상당수가 총상환자)가 발생한 유혈사태를 초래하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함 없이 과감하게 작전명령 하달함으로써 단호한 총리로서의 이미지까지 부각시켰다. 이제 그는 "붉은역적들"(레드셔츠 시위대)을 좀더 많이 살해하기를 바라는 정서를 가진, --- 여기에는 "중립적 입장"이라고 떠들어대는 일부 한국인들까지 포함됨 --- 광의의 노란셔츠로 불리는 태국사회 보수 기득권층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고등교육 기관에서, "감히 손에 피묻히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인재"를 배출한 모습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우리가 사는 세계에 아직도 얼마나 많은 광기와 비이성적 요소들이 일상적으로 존재하는지를 자각하게 되어, 가끔은 자다가도 잠을 벌떡 깨게 되기도 한다. [크메르의 세계]
[사진출처: chonburi33.com] |
정부측이 주장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태국의 야권이 218년 역사를 지닌 태국의 군주제를 폐하려 한다는 것이다. 만일 <왕실모독처벌법>의 위반혐의가 적용되면 장기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고, 공화주의 성향의 인사들은 공포에 노출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주장은 또한, 1976년 소요사태 당시 친-왕정주의 군사조직들이 태국의 학생들을 유사한 불경죄를 저질렀다며 학살했던 전례를 떠올리게도 만든다.(역주)
(역주) 태국의 "1976년 10월 학살"은 당시 탐마삿대학 구내에서 농성중이던 좌익 계열 학생들과 시위대를, 군경과 우익 계열의 민병대들이 학살을 동반해 진압을 했던 사건을 말한다. 총 46명이 사망하고 부상자수는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특히 왕당파 반공주의자들이었던 민병대 "붉은 들소"(กระทิงแดง Krathing Daeng) 조직과 "부락 스카우트"(Village Scouts) 조직이 이 학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두 조직에 대해 푸미폰 국왕이 재정적으로 많은 지원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학살은 총기에 의한 사살 및 구타로 인한 사망, 그리고 일부는 대학 구내의 나무에 매달려 교수형을 당하기까지 했다. |
정부측과 시위대가 3주 동안의 평화적 협상과정이 결렬된 후, 태국 군부는 레드셔츠 시위대에 대해 군병력을 투입했다. "5월 19일의 진압작전"을 통해 마침내 2달 동안에 걸친 시위는 종료됐지만, 사망자만 88명에 이르고 약 2,000명이 부상을 입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지난 한 세대 동안 사태들 중 가장 참혹한 정치적 폭력으로 마무리됐다. 태국 정부는 친-레드셔츠 세력에 대해 폭력사태의 책임이 있는 "테러리스트들"이라 비난하여, 군대가 비무장 민간인들을 사살했다고 주장하는 시위대를 더욱 분노케 만들었다.
아피싯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총리가 양극화되어 힘에 겨운 자신의 국가를 통제하고자 씨름하는 동안, 태국의 언론들에 영향을 받은 친-왕당파들(기득권층)은 시위대가 주도하는 정국상황과 더불어 또다른 잠재적 세력인 군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려를 갖고 있었다.
이제 레드셔츠 반정부 세력에 대한 단속은 다시금 법질서의 통제권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 상황은 방콕 및 22개 도들에서 비상사태 선포 상황을 지속하고 일부 시민권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인권단체들은 군주제 폐지를 시도했다고 주장된 몇몇 인사들을 포함하여, 현재 수백명의 운동가들이 재판도 없이 구금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방콕 "쭐라롱꼰 대학"의 "안보 및 국제연구소"(Institute of Security and International Studies) 소장 티띠난 뽕수티락(Thitinan Pongsudhirak) 교수는 "군주의 보위라는 것은 아피싯 정부가 최종적으로 사용하는 카드이다. 하지만 이미 시위대는 해산됐고 그의 내각도 국회의 불신임안 투표를 견뎌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 카드가 불필요한 것"이라 말했다.
국왕에 대한 반감들
태국의 푸미폰 국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재임중인 군주로서, 많은 태국인들이 아버지 같은 왕으로 존경하고 있다. 비록 그의 헌법적 권한은 제한되어 있지만, 그의 영향력은 상당히 광범위하며 이전의 정치적 갈등에서 중재를 담당하기도 했다. 최근의 시위에서도 일부 레드셔츠 지도자들이 국왕의 개입을 요청했지만, 끝내 국왕의 반응이 없이 끝나고 말았다.
푸미폰 국왕은 지난 9월 이래로 병원에 입원중이다. 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후계자인 마하 와치라롱꼰(Maha Vajiralongkorn) 왕세자의 적합성과 이번 소요사태 과정에서 나타난 왕실의 나약함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의 대부분은 사법적,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밀실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레드셔츠 시위기간 중, 그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태국의 귀족정치(aristocracy)를 민주주의와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메세지는 농촌지역 및 도시노동자 계급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었다. 레드셔츠 지도자들 중 일부는, 개인적인 의견이긴 했지만 왕실이 더 이상 정치에 참견을 말고 친-왕당파 후원 세력이 정권을 상실하는 상황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레드셔츠 지지자인 한 사업가는 "그들은 자신들이 이 나라를 소유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들 자신까지도 소유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왕실의 후견시스템에 대한 반감은 또한, 태국의 강력한 군부에도 하나의 위협이 되는데, 태국의 군대는 왕실의 보위군 형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의 군부는 "2006년 쿠테타"를 일으켜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의 정부를 전복시켰다. 군부는 당시 탁신 전 총리가 국왕에 대해 불경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탁신 전 총리 자신은 이를 부인한 바 있다. 탁신 전 총리는 현재 외국에 망명중인 상태로 레드셔츠 세력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아피싯 총리는 군부가 공화정 수립 음모를 발본색원하는 일에 후원을 하고 나섰고, 레드셔츠 시위대 역시 새로운 총선보다는 "더 큰 목적"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아피싯 총리는 그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를 보여달라는 질문에 대해, "충성스런 국왕의 백성들"인 대부분의 레드셔츠 시위대들이 아니라, 레드셔츠 세력 중 극히 일부에 속하는 이들이 저술한 반-왕정주의적 저술들을 예로 들었다. 아피싯 총리는 지난 5월 29일 진행된 외국 언론들과의 기자회견장에서, "우리 정부는 국왕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법률위반 혐의에 대해 여러 증거들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증거들은 출판물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 속
2006년 쿠테타 이래로, 태국의 당국은 <왕실모독처벌법> 및 새로 제정한 <컴퓨터범죄법>에 의거하여 왕실을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사법처리를 계속해왔다. 작년도에는 "유튜브"(YouTube) 사이트에 반-왕실적 내용을 게시한 한 엔지니어에게 징역 10년형이 선고됐다. 그 외에도 온라인 상에 게시물을 올렸거나 영화관에서 국왕찬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기립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수사도 진행중이다.
하지만 태국의 대중적 여론은 이들 사건들을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태국의 컨깬(Khon Kaen) 도에 주재하면서 <왕실모독처벌법>에 대한 전문적 연구를 하고 있는 데이빗 스트렉푸스(David Streckfuss) 씨가 검토한 사법처리에 관한 통계자료를 보면, 사회적 오점이 될 가능성 때문에 판사들이 이러한 사건들을 고지하지 않는 경우가 하나의 파도와 같은 현상으로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스트렉푸스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5~2009년 사이에 <왕실모독처벌법>에 따라 기소된 사람들은 연간 33명 수준에서 164명 수준으로 5배 가량 증가했다. 이들이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 최대 징역 15년형까지 처해진다.
전문가들은 말하기를, 아피싯 총리 자신이 새로운 총선을 실시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전제조건이라면서 추진하고 있는 사회 정치적 화합정책은, 반-왕당파 및 일부 급진적 정서에 대한 단속과 병행하면서 긴장상황을 완화시켜야 하는 상당히 어려운 방식이라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이 악법을 이용해서 야권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군부와 왕실이 외부적 위협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한 하나의 행동기준으로 적용되야만 한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싱가포르 동남아시아연구소(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의 전문가인 마이클 몬테사노(Michael Montesano) 씨는, 설령 그것이 위협이라 할지라도 과거와 같이 권위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반-왕당파에 대한] 선전선동 및 차별화 전략이 명확하게 계획되고 시행됐지만, 이에 대한 증오심을 유발시키는 것은 지난 30여년 전에나 가능했던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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