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문제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사회적 관심은 물론이고 정책대상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과거 정부는 북한 인권 단체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을 제기할 경우 남북화해와 협력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통일부는 북한인권팀을 해체하여 담당자 1인만을 남겨두는 조치를 취했으며, 외교통상부도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의 경우 북한 인권 문제는 자신들의 소관사항이 될 수 없다는 공식적인 발표와 함께 북한 인권 자료의 부족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정부기관의 이같은 무관심과 냉대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 단체와 운동가들은 국내외 회의 개최, 자료집 제작 배포, 대북방송 운영, 북한 인권 피해실태 조사, 북한 인권기록보존소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고 인권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북한 인권 관련자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권리의 문제이고 인도주의 사안이면서 남북한의 갈등요인이 되는 정치적 사안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 인권 문제는 기본적 원칙과 세부적 실천 전략에 대한 고민이 성숙돼야 실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 북한 인권 단체들은 물론이고 통일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국책연구기관들이 북한 인권 개선방안과 제도적 장치들을 제시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고민 없이 대통령의 발언과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자기 기관의 세 불리기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자세나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또한 정권교체에 따른 수혜자 입장에서 북한인권 운동의 참여자였다는 것을 앞세우려는 자세도 버려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는 철저히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는 인권 피해자와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한 한국의 정치적 지형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인류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인권 문제는 통일 전후과정에서 북한주민의 생명과 생존을 위하여 한반도 남반부의 우리들이 얼마나 뜨거운 민족애를 갖고 있었던가를 북한주민들에게 확인시켜줄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정책 의제 선정과 우선순위 결정, 그리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구체적 역할 분담 수준과 담당기관 선정은 정치적 가치, 정책적 가치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인권적 가치와 민족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부에 북한 인권 전담부서가 부활돼야 하며, 민간차원의 북한 인권 개선 활동역량 강화와 정부와 민간의 협력기능 강화를 위하여 북한인권재단의 설립과 현재 민간단체에서 운영되고 있는 북한 인권기록보존소의 운영을 정부와 민간의 협동운영형식으로 전환하여 안정적인 운영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까지의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 통일부의 북한 인권 전담부서 설치와 기존 북한 인권기록보존소의 정부와 민간 공동운영 방식으로의 전환, 그리고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은 사회적 합의의 수준이 높고 정책적 준비도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는 정부와 민간을 떠나서 담당자의 전문성과 헌신성, 그리고 진정성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북한 인권 전담부서의 설치와 북한 인권기록보존소의 운영방식 전환, 그리고 북한인권재단 설립 과정에 통일부와 정부 관련 기관 공무원들의 참여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을 맞이하여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현재 통일부의 조직 축소개편으로 발생하는 잉여인력의 자리 보전을 목적으로 북한 인권 관련 조직을 확대하고, 북한 인권 관련 업무를 지나치게 확대하려 한다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북한 인권 관련 직제가 신설될 경우 최소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하여 진정한 정책적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인력을 담당자로 배치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조직과 북한 인권 담당자의 전문성을 지켜내는 선행조건이 될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정부와 민간 모두 북한 인권이 강조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자리 보존과 기관 영역의 확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정부와 민간단체, 그리고 전문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북한주민의 생명과 생존이 위협받는 고통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는 진정성과 헌신성을 바탕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윤여상(북한 인권 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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