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교의 전도자, 조선족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한 1985년
이삭 목사가 만주에 있는 조선족
사역자들에게 성경을 배달하고
돌아서면서 받았던 부탁이다.
이것으로 북한 선교가 시작되었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북한과 국경이
맞닿은 중국의 길림. 요녕, 흥룡강성 등에
거주하는 조선족 교회와 성도들이야말로
북한 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팬더믹 상황을 지나면서
북한을 비롯한 선교지의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본회는 2023년 '나라에서 민족'
즉 국가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선교 전략의 변화를 가져 결정했다.
이로 인한 전술의 변화 중 하나가
조선족을 통한 북한 선교이다.
본회는 조선족으로 오랫동안 중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을 오가며 북한 선교를
감당해 온 일꾼 부부를 만나 지금까지
어떻게 북한에 가서 성도들을 만나고
실질적인 선교가 이루어졌는지를 듣고
앞으로 조선족 교회와
성도들의 역할에 대한 정리하였다
보따리 장사가 북한 선교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북한 돈으로 신학을 했습니다.
1987년에 신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학비가 1,200원이었습니다.
당시 한 달 월급이 26원이었습니다.
정말 가난했지요
그래서 아내가 북한에 가서
보따리 장사를 했습니다
그때는 북한의 편지 한 통만 보내며
친척 관계가 맺어졌습니다.
그렇게 친척 방문을 신청해서
북한에 들어가 한번 장사하며
6개월 생활할 돈이 벌렸습니다.
보따리 장사가
어마어마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복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서 들어갔습니다."
조선족 사역자는 오래전
기억의 한 조각을 꺼내 들었다.
두만강에서 압록강까지
북한과 인접한 중국의 길림, 흑룡강성, 요녕성
지역은 조선족들이 살아가는 자치국이다.
중국 단동에서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한 신의주가 건너다 보이고,
장벽에서는 강가에 빨래하러 나온
북한 혜산 주민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육안으로 장마당까지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두만강 건너 중국 동문에서
다리를 건너 바로 북한에
남양 세관에 도착한다.
그만큼 수월하게 조선족들은
북한의 친척 방문을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공산주의를 채택한 북한과 중국은
혈맹 관계로 맺어져 있어서 조선족 중에는
이민자로 북한에 이주한 사람이 많았고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차단된 북한임에도
중국 국적을 유지한 화교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자유로이 중국에 오갈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경제적인 활동을 빌미 삼아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만나는 은혜를 나누게 하셨다.
믿는 지하교회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떠나는
보따리 장사는 거의 대부분이
물물교환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만난 조선족 일꾼 역시
북한의 남양, 혜령, 해산, 신의주, 등
여러 지역을 방문할 때 해산물과
중고 컬러 TV 등을 가지고 가서 팔고
북한에서는 일제 중고 TV 등을
사 가지고 와서 중국에 팔았다.
먼저는 친척들로 등록된 집에 도착해서
가져간 물건을 북한 사람들에게 준 다음
그 후에 그들에게는 돈을 받았다.
그때는 물건을 가져간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는데 한 달이 걸리기도 했다.
장사하러 북한에 간 일꾼의 아내는
그곳에서 믿는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그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말씀의 감동은
지금까지의 통틀어서 최고라고 전해 주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듣고 싶다고 일꾼들에게 부탁했다.
" 1993년이었습니다.
장사를 떠났던 저는 한 달 동안 북한 ☆☆시에
있는 할머니 댁에 머물렀습니다.
하루는 제가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 하며
찬양을 흥얼거리는데
작은 소리로 할머니가 따라서 불렀습니다.
찬양을 마치고 나서 할머니는 제 가까이 와서
두 손을 귀에 가리고는
" 네가 예수 믿는구나" 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조심스럽게
장롱 깊숙히 숨겨 놓은 사진첩을 꺼내어
보여 주었습니다.
빛바랜 사진이었는데
옛날 예배당 십자가 앞에서 찍은 주일학교
시절의 사진이었습니다.
보물처럼 간직하는 사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할머니와의 믿음의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회상하는
일꾼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져 갔다.
일꾼의 아내는 할머니와 친분이 쌓이자
중국에 와서도 편지로 계속
소식을 주고 받았다고 했다.
믿는 성도임을 알게 되면서 할머니에
대한 신뢰가 생긴 일꾼의 아내는
또 다른 조선족 자매를 그 할머니와
친척 관계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일이 준비되었을 때
곧바로 일꾼의 아내는 그 자매와 함께
물건을 마련해서 북한을 방문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