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아이들 이야기
나는 생산성이 높은(?) 사람이라 아이가 셋이나 된다. 큰 아이가 조치원중학교 2학년이다. 그 아래로는 초등 2학년과 1학년이 있다. 내가 충북 조치원의 고려대 서창캠퍼스에 발령을 받고 근무하게 된 것은 1997년 봄부터였다. 그 전에 우리는 경기도 과천에 살고 있었다. 큰아이 한결이는 최근에 집단따돌림으로 한 학생이 자살했다는 과천의 ㅁ초등학교를 1995년 봄부터 다니고 있었다. 나는 독일에서 학위를 마치고 1994년 여름에 귀국했는데 1995년 봄까지는 대학강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인지라 1995년 봄에 내가 한결이를 데리고 입학식에 갔다. 멋도 모르고 좋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가로수 길을 걸어가는데 내 머릿속엔 ‘마치 송아지를 끌고 도살장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듯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스스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이런 생각이 든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나 스스로도 마산에서 초등학교를 잘 다니고 창원에서 중학교를, 또다시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나름대로 잘 다닌 사람으로서 왜 내 자식이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것을 그렇게 이상하게 받아들여야 했는가?
나는 언제부턴가, 아니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세상의 교육체제가 아이들을 올바로 사는 인간으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가 써먹기 좋은 노동력을 기르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하게 깨닫게 되었다. 요즘 같으면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는 ‘신지식인’이 그 모델이요, 박정희 시절 같으면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는 ‘산업전사형’이 바로 그 모범이다. 그리고 나는 독일생활을 하면서 그러한 노동력 기르기 모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새로운 교육모형들을 보아왔기 때문에(크게 보면 모두 마찬가지일 수 있지만) 더욱 더 군대식의 한국 학교체제에 아이를 맡기기가 싫어진 것이다. 우습게도 바로 내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인데도 말이다. 물론 아내의 고민을 듣고 서로 토론을 하면서 최소한 초등학교만 해도 나름의 자율성이 있다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를 그렇게 보내면 자연히 나중에 중고등학교도 그런 식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두려움에 마음이 영 놓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학교가 ‘도살장’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이 아이들 스스로가 ‘도살당할 송아지’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들도 예전에 우리가 만났던 분들보다 더 나은 분이 많았다. 나만 그런 문제를 고민하는 줄 알았으나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고민을 하고 이미 그 해결을 위한 실천도 하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갖게 되었다. 선생님들과 학교에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교육체제와 그 목적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많은 교육관료들은 아직도 이전의 패러다임에 젖어 있다. 중요한 것은 갈수록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고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며 상호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살아있음의 느낌, 이것이야말로 희망의 원천이 아닐까 싶다.
큰아이 한결이가 3학년까지 과천에서 다니다가 1998년 3월부터(아내가 마침 교원대학교에서 2년간 공부를 더 할 수 있게 되어) 온 가족이 조치원과 가까운 청주의 한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수도권을 벗어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수도권 벗어나기’는 아내와 나의 소망이었다. 한결이는 거기서 4학년을 다니게 되었는데 등교길에 소가 풀 뜯는 모습도 보고 풀이나 들꽃도 보면서 학교를 잘 다녔다. 선생님은 숙제를 많이 내는 편이었는데 제 어미와 나는 솔직히 그런 선생님이 싫었다. 한결이는 서울 외곽인 과천보다 청주 외곽의 시골학교가 왠지 더 좋다고 했다. 너무나 다행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직행하는 셔틀버스를 탔으나 우리는 한결이에게 집에서 ‘숙제만 하고 실컷 놀라’고 했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의 여러 교수님들은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까 그래도 시골학교에 보내는 게 좋지.”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중고등학교 갈 때가 되면 도시로, 서울 쪽으로 보내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사실 많은 분들이 중고등학생 아이만 있으면 도시로 나가거나 도시에 머물러 있다. 자신은 시골에서 살고 싶은데도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어려서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에 가더라도 시골에서 크는 것이 더 좋다고 여긴다. 그래서 “교육문제를 생각하시거든 시골로 가야죠.”라며 단호히 말한다. 물론 대학생 나이가 되면(자기가 원한다면) 그 어디라도 보내어 서서히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한결이가 5학년이 되던 1999년, 나는 조치원 캠퍼스 뒤편에 전통 귀틀집을 짓기 시작했다. 물론 귀틀집을 지어오신 목수님과 인부들이 와서 주된 작업을 하고 나는 먹을거리와 모든 자재를 사다 나르며 흙벽치기나 사소한 뒷일을 거들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일의 관장은 내가 했다. 당시 마산에 계시던 부모님을 하루빨리 모시고 싶은 강한 열망에 모든 것을 단호하게 결심하고 일을 저질러버린 것이다. 나중에 깨닫는 것이지만, 시골에 아담한 흙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사는 꿈은 결코 이런 식으로 ‘저지르지’ 않으면 평생 꿈으로 남을 뿐이다. 여하튼 1999년 가을, 집을 다 지은 뒤에 한결이를 고려대 캠퍼스 옆에 있는 ㅅ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과천에서 청주로, 청주에서 조치원으로, 보통 사람들이 가는 방향과는 반대로 옮겨 간 셈이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0리가 좀 못 된다. 첫째 아이(한결) 학교와 둘째(아롬), 셋째 아이(한울)의 놀이방을 왔다갔다하기가 처음 일 년 동안은 좀 힘들었지만 그 후로는 적응이 되었다. 아침에는 내가 출근하면서 데려다주지만 하교길은 한결이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니는 동생들과 함께 저희들끼리 걸어왔다. 그리고 한결이는 과천보다 청주, 청주보다 조치원의 학교가 더 좋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리고 사실은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ㅅ초등학교는 한 학년당 한 학급만 있는 ‘작은 학교’라서 더욱 좋았다.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공부 많이 시키느라 ‘갈구기’보다는 ‘같이 놀아주는’ 스타일이라서 너무나 좋다고 생각한다.(대부분의 조치원 사람들은 학급 수가 많은 큰 학교로 아이들을 보낸다. 마치 일류대학을 보내려면 초등부터 큰 학교로 가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지금 1학년인 막내 한울이는 글씨도 엉망으로 쓰고 있다. 그 위 말괄량이 딸 아롬이는 2학년에 다닌다. 얘들은 겨울철만 되면 손등이 거북이 등처럼 된다. 어떨 때는 손등 갈라진 틈 사이로 피가 흐른다. 늘 흙과 뒹굴며 놀기 때문이다. 선생님께 다소 창피하더라도 ‘그게 아이들 아닌가’ 하고 스스로 위로하며 넘어간다. 봄이면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너무나 신기해하고 올챙이를 잡아 개구리로 키운다고 법석을 떨며 강아지와 닭들을 보고 만지면서 친구처럼 지내고, 여름이면 모기나 나방과 싸우면서도 자두와 복숭아를 직접 산지에서 사 먹거나 얻어먹고, 가을이면 도토리와 밤을 줍고 낙엽이 떨어지는 이치와 단풍이 드는 이치를 배우며 겨울이면 눈썰매를 타거나 눈사람을 만들고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을 하는 우리 아이들, 이 놈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축에 들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내가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키운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참 좋지요? 아이들은 그렇게 커야 해.”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대개 이렇다. “그런데 아이들이 더 크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특히 중고등학교는 어디로 보낼 것이냐는 말이다.(사실 나도 모른다. 한결이는 이미 조치원중학교를 다닌다. 실은 그 전에 국악중학교 시험을 보았다가 떨어져서 그냥 조치원에 있기로 했다. 그런데 구내 미용실 아주머니는 “조치원중학교는 공부 못 하는 학교라던데…” 그러면서 “청주에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고 친절히 조언한다.) 그런 말 뒤에는 ‘일류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대전이나 서울, 아니면 최소한 청주로라도 내보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깃들어있다. 중고등학교를 도시에서 다녀야 일류대학을 가고 일류대학을 가야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착각).
나는 그러한 물음에 (너무나) ‘쉽게’ 대답한다. “한 마디로 ‘일류대학 강박증’만 버리면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이 모두 해방될 것 아니겠습니까?”
2. 교육에 대한 세 가지 편향들
나는 사실상 우리 교육의 근본 문제를 이렇게 생각한다. 객관적으로는 시장지상주의, 자본주의적 경쟁 관계, 획일주의적, 관료주의적, 입시 위주 교육제도, 교육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등이 문제이지만, 이러한 모순된 구조를 바꾸어야 할 우리 자신의 주관적 태도는 아무 문제가 없는가? 교육문제만 나오면 모두가 최선의 해결책이 있는 것처럼 기염을 토하지만(대개 책임을 장관이나 제도, 교사 같은 외부로 돌리지만) 과연 본인 자신은 교육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가? 이와 관련해서 나는 나를 포함한 우리 나라 사람들이 크게 세 가지의 주관적 편향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첫째, 일류대학 강박증이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행동한다. 하나는 서울(도시) 시내나 그 주변에 살면서 서울(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본다. 특히 강남 학군(그리고 강남의 아파트들)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도 이와 연결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일류학교와 일류학원을 다녀야 하며 가능한한 ‘일등’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릴 적부터 일등을 해야 일류대학을 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방 도시나 시골에 사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도 언젠가 시골서 텃밭을 일구며 여유롭게 전원생활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생각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물론 도시(아파트) 생활의 간편주의에 중독된 삶의 방식(당연히도 대개 가사 노동에 치이는 부인들이 더 그러하다) 또한 그 발목을 꽉 잡고 있다. 게다가 직장 자체가 도시에 있다면 더욱 움직일 수가 없다. 대단히 튼튼한 여러 족쇄들을 차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스스로 쉽게 떨칠 수 있는 족쇄조차 과감히 부셔버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심지어는 이런 학부모도 있다. 본인은 시골에 살면서 아이는 도시에 있는 중고등학교로 보내기 위해 주소만 도시지역으로 옮겨 놓는다. 일단 배정이 되면 아이는 시골에서 도시로 통학을 한다. 가까운 학교를 멀리 하고 먼 도시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꼭 일류대학을 가는 것도 아니고 또 일류대학을 간다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낭비를 한다. 이렇게 되면 학생이나 부모나 모두 고생이다. 또한 그런 식으로 ‘편법’을 쓰다보니 아이도 편법을 배우면서 자라난다. 요령과 약삭빠름을 배워서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경쟁 욕구를 마치 자연스런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편 이런 ‘일류대학 강박증’이 생기게 된 사회적 배경을 보면 이렇다. 그것은 이른바 ‘일류대학을 나와야 더 좋은 직장을 구하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남보다 더 편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는 지극히 엘리트주의적이고 경쟁주의적인 세계관에 기초해 있다. 실은 나 자신도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내가 대학 들어갈 때 재수한 것도 사실은 ‘최고’의 대학을 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오늘의 나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국방,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망치는 사람들을 보라. 80~90%가 일류대학 출신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안위와 권력과 부를 위해서 대다수 민중들을 핍박하고 있지 않은가? 최소한, 기득권층이 누리는 기득권은 자신의 노력보다는 직간접으로 대다수 민중의 희생에 기초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앞으로는 일류대학을 나온다고 저절로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금도 이미 그런 현상은 나타나고 있다. 결국 ‘일류대학 강박증’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 그리고 사회 전체를 망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 마음 같으면 앞으로 아들이 설사 일류대학 갈 실력이 된다손 치더라도 이류나 삼류대학을 가도록 권하고 싶을 정도다.(어떤 이는 나더러 “당신은 일류대학을 다녀봤으니 가슴에 한이 없을 것 아니냐. 그러나 못 가본 사람은 한이 맺혀서 자식이라도 보내고 싶어한다”고 말할 것이다. 맞다. 그러나 과연 자식 교육을 ‘자기 한풀이’ 관점에서 볼 것인가?) 가장 바람직한 것은 우리 스스로 일류, 이류, 삼류 식의 등급화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그 어느 학교를 가든 아이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러한 나의 생각을 우리 아이들과 자주 나누는 것이 나의 숙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보편화되는 것이 사회적 과제다.
둘째, 조급성이다. 이는 교육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생활 전면에서 관찰되는 특성으로서 경제의 초고속 성장 과정과 관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도덕한 군사정권이 그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확보할 목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높은 경제적 성과를 내려고 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의 순리나 인간성,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보다는 무조건 남보다 빨리 우위에 서려는 치열한 경쟁심리가 온 사회에 강화, 재강화되었을 터이다. 물론 이 과정은 또한 인간다운 노동과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풀뿌리 민중들의 목소리와 몸부림을 강제로 억압하는 과정이기도 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더 깊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조급성이 사회적으로 강화되는 과정은 타자를 억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로 조급하게 서두르는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억압은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며, 자기 내면이 솔직히 느끼는 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책상 앞에 붙은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자기 억압 과정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내면의 억압은 역설적이게도 더 빨리 높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자기 강제로 연결된다. 올림픽 경기의 구호, ‘보다 빨리, 보다 많이, 보다 높이’로 상징되는, 좋은 성과를 남보다 먼저 성취해야만 한다는 자기 강제와 조급성,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 아이들과 우리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이 아닌가?
많은 교육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자신과 관계맺는 모든 이들과 친밀하고 솔직한 소통을 필요로 하며 자라는 단계마다 습득하고 체험해야 하는 독특한 내용과 과정들이 있다. 그런데 만일 아이들이 경험하는 모든 관계들이 조급성에 의해 좌우된다면 비록 시장에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는 남보다 빨리 진출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내면이 부실하여 곧 쓰러지고 말 것이다.
막내 아이 한울이가 글자를 잘 모르는 채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어떨 때는 80~90점을 맞으나 어떨 때는 40점을 받기도 한다. 둘째 아이 아롬이는 2학년인데도 받아쓰기를 하면 겨우 80~90점을 받고 구구단은 아예 모른다. 선생님께 창피스럽기도 하고 아이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럴 일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 녀석들은 한글과 셈하기를 모르기에 그것을 배우러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배우고 오면 될 게 아닌가? 나아가 어제 배운 것을 오늘 까먹거나 어제 알던 것을 오늘 틀리게 썼다고 해서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었는가? 어른들의 체면과 위신, 자존심 때문에 아이를 성급하게 닦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의 초등 2학년 때 기억을 떠올린다. 담임 선생님이 산수시간에 분수를 가르치신 것 같다. ‘1/2 + 1/3은 얼마인가’하는 것이었다. 통분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분모는 분모대로, 분자는 분자대로 더하면 되지 하고 생각해서 답이 2/5라고 했다. 선생님이 한꺼번에 모든 아이에게 물어보실 수 없으니 좀 잘 하는 아이들과 둘씩 짝을 맺어주면서 귓속말로 답을 말하라 하고 답이 맞은 학생과 틀린 학생을 양편으로 갈라놓았다. 물론 나는 틀린 답을 말한 아이들 쪽에 서 있었다. 그 당시는 창피스러운 줄도 몰랐다. 더욱이 내가 왜 틀렸는지를 몰랐다.
맞다. 바로 이것이 아닐까? 지금의 우리 아이도 자기가 쓴 글자가 왜 틀렸는지 잘 모를 것이다. 그리고 왜 어른들이 화를 내는지, 또 왜 벌을 주는지, 왜 점수를 가지고 자기를 다르게 대우하는지가 이해가 안 될 것이다.(사실 이것이 아이들에게 ‘이해되기’ 시작하면 바로 그때부터가 진짜 문제다.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 자체를 아이들이 드디어 내면화하고 자기규율화하기 때문이다.) 글자나 셈하기, 그 외 대부분 우리가 학습하는 것은 시간이 가면서(체험과 대화, 자기 생각과 자아 성찰 등을 하는 삶의 과정 속에서) 서서히 그러나 끈기 있게 학습하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마 이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가만히 기다리면 문이 닫히는 데도 바로 그 몇 초를 참지 못해 닫힘 단추를 꼭 누르는 경우(때로는 여러 번 반복해서 누르는 사람도 있다)와 마찬가지이리라.
셋째, 소위 ‘옆집 아줌마’ 이야기이다. ꡔ민들레ꡕ 19호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참교육학부모회나 교육 바로 세우기 토론회 같은 제 아무리 훌륭한 모임에서 참교육, 인간교육, 바른 교육 등을 말하고 배우고 다짐하고 결심하고 해도, 집에 돌아와 옆집 아줌마만 만나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것이다. 옆집 아줌마는 ‘남들은 다 아이들을 학원에도 보내고 족집게 과외교사에게 맡기기도 하는데 참교육이니 인간교육이니 하면서 그런 고지식한 얘기만 하다가는 나중에 자식들한테 원망듣기 딱 좋다’며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게 아닌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래 맞아, 참교육이니 인간교육이니 하는 것은 꿈이나 이상에 불과하지 현실은 아니야’ 하며 냉철한 현실주의자가 되자고 재차 다짐한다. 특히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고생하는 남편을 보면 더욱 그러하고 파트타임이나 용역으로 일을 하는 자신을 보면 더욱 그렇게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정말 ‘말짱 도루묵’이 된다. 바로 이게 그 무서운 ‘옆집 아줌마’ 이야기다.
나는 이 지적이 너무나 맞다고 본다. 물론 여기서 비본질적이긴 하지만 왜 하필이면 또 ‘아줌마’를 마녀로 몰아가느냐고 항의할 마음도 인다. 그래서 옆집 ‘아줌마’가 아니라 옆집 ‘이웃’이라 고치면 페미니스트들의 화살을 비켜나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피상적인 ‘잔머리 굴리기’에 불과하다. ‘옆집 아줌마’가 맞다고 인정해야 한다. 왜냐면 사실상 아이들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걱정을 ‘아줌마’들이, ‘어머니’들이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정한 위에서 ‘아저씨’들, ‘아버지’들의 상대적 무관심(돈만 벌어 갖다주면 된다는 식의, 또 일하는 것도 힘든데 교육까지 내가 고민해야 되느냐 식의 무관심과 안일함, 그리고 무책임함)을 나무라야 순서가 옳다.
여하튼 ‘옆집 아줌마’의 고뇌 어린 충고와 우려는 하루 종일 참교육을 고민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단호한 결심조차 일거에 격파해버린다. 초전박살이다. 그런데 이 ‘옆집 아줌마’는 도대체 왜 그렇게 위력적인가? 생각컨대 옆집 아줌마 이야기는 참교육 논의와는 달리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관념적이지 않고 물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교의 대상을 바로 옆집에서 찾을 수 있고 그 현실적 결과가 바로 내 눈 앞에 보이니,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나중에 자식이 ‘왜 나를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시켜서 일류대학에 집어넣지 못했느냐’고 원망할 것이라는 두려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이 두려움이야말로 바로 그 ‘옆집 아줌마’로 하여금 그토록 강한 파괴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다른 편에서 생각해 보면, 자식들이 나중에 ‘왜 나를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서 일류대학에 가게 만들지 못했느냐’고 원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몇 가지 점에서 잘못되었다. 첫째는 일류대학을 간다고 해서 아이들이 과연 행복하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둘째는 아이가 가진 재능과 소질, 취향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은 채 무조건 점수 따기 공부만으로 성공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속물주의는 아이에 대한 정신적 폭력일 수도 있다는 문제이다. 그리고 셋째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기 인생에 대한 자기 책임성의 문제이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건강하게 키우고 흥미를 갖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발견해서 옆에서 도와주는 것 정도로 그쳐야지 마치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처럼 끝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부모가, 특히 엄마가 자기 인생을 아이의 인생과 동일시하여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다면 아이도 자기 정체성을 잃게 된다. 나중에는 둘 다 불행해진다. 가까우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두는 것, 이것이 올바른 자세이리라.) 만일 아이가 그런 식으로 부모를 원망한다면 두려워하거나 자책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따뜻하게 나무라는 것이 옳으며, 근본적으로는 어릴 적부터 자기 책임성과 자율성을 기르도록 사랑으로 도와주며 키우는 게 옳다. ‘교육’ 자체가 아이의 잠재력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일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입장은 불행히도 ‘교육은 어차피 경쟁력 강화의 문제’라고 보는 진념 전 재경부장관 식의 경제주의적 발상과 정면 대치된다. 사실상 대부분의 교육관료나 기업가들은 교육을 경쟁적 노동력 육성 관점에서 보고 있는데 이런 시각부터 바꾸지 않으면 모든 교육적 노력은 사상누각이 된다.)
3. 대안교육운동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이런 관점에서 다시 우리 아이들 교육을 바라보면 크게 두 가지 대안이 있을 것이다.(이것은 나의 경우 ‘과연 우리 아이들을 장차 어떤 학교로 보낼 것인가 또는 어떤 교육을 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데 아직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아이들과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정할 것이다.) 두 가지 대안 중 하나는 현재의 제도교육 안에서 참교육운동을 더욱 왕성히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 마을학교나 홈스쿨링, 이념형 대안학교 따위와 같이 아예 제도권 밖에서 완전히 대안적 개념으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둘 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둘 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수많은 선생님들이 밥줄을 걸고 싸운 결과 전교조 중심의 참교육운동이 제도권 안에서 뿌리내리고 있고 공교육 내부에서도 ‘작은 학교’ 만들기 논의가 있으며, 아직도 많은 ‘꼴통’들이 윗자리를 차고 앉아 무가치한 통제와 간섭만 일삼고 있음에도 현장은 서서히 그러나 끈질기게 변화하고 있다. 나아가 홍성의 풀무학교나 산청의 간디학교처럼 제도권 밖의 대안적 개념으로 만들어진 학교들도 재원과 인력이 부족함에도 나날이 더 큰 사회적 관심을 얻어가고 있고 그곳에서 배출된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행복하게 보내면서도 바르고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제도권 안의 참교육운동이 교육관료들, 특히 친일파 등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교육분야 전문가들의 간섭과 통제, 아직도 교육이 ‘경쟁력 강화’의 문제라면서 교육을 경제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편협성,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면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후속 관료 세대들의 타성을 얼마나 잘 극복하고 진정한 참교육을 구현할 수 있을지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나아가 제도권 내 참교육운동만으로 참교육운동이 성공하기는 어렵고 정치경제적 체제를 변혁해야만 비로소 참교육운동이 성공할 수 있다는 지적과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다른 한편, 자연과 어우러진 곳에 세워진 대안학교 모델에 대해서 돈과 시간이 있는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냐, 결국 대안학교도 계급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비판도 있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심하게는, 바로 그런 관점에서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시장의 논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신자유주의와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다. 물론 ‘자립형 대안학교’ 같은 모델들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자율’과 ‘선택’의 구호와는 달리 높은 학비를 부담할 수 있는 가진 자들만의 특별한 학교가 되어 새로운 엘리트 교육을 재생산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라는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교육제도를 사회-생태적으로 비판하면서 그 오류를 극복하고자 출발한 많은 이념형 대안학교들까지 그렇게 몰고 갈 필요는 없다. 물론 학비가 일반학교보다 더 많고 거리도 먼 것이 흠이다. 하지만 이것은 국가적(=전사회적) 지원이 적거나 거의 없기에 그러한 것이며 또 이제 갓 새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기에 동네마다 만들 수도 없어 그러하다. 마치 땅과 사람을 모두 살리는 건강한 유기농산물이 농약과 제초제로 길러진 일반 농산물에 비해 비싸다고 하여 중산층운동이니 신자유주의니 하며 비판하는 것과 비슷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처음에는 비싸더라도, 아니 오히려 비싼(=정당한) 대가를 치러 가면서라도 올바른 일에 대해서는 신념을 갖고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지금의 대량생산 방식으로 지나치게 값싸게 생산한 상품들은 사실은 인간과 자연의 남용과 파괴를 대가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정당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파괴와 착취, 억압과 지배, 오만과 남용의 잘못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고자 시도하는 그런 대안교육이라면 그 어떠한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절대로 ‘처음의 뜻’을 굽히지 말고 (물론 귀와 마음은 열어 놓고) ‘처음처럼’ 줄기차게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런 학교들조차 제도권 내 참교육운동과 마찬가지로 사회구조 전체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섬처럼’ 자기들끼리만 좋은 교육을 한다고 참교육이 되겠느냐는 비판은 정당하다. 따라서 자체의 오류 점검과 더불어 일상적 자기 혁신이 필요하고, 나아가 제도권 내에서 보수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든 진보 세력들과도 ‘생동하는 연대’를 이루어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이 모든 노력이 새로운 혁신운동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4. 마사 베크의 아담 이야기와 우리 부부
이 글을 한창 쓰고 있는데 녹색평론사에서 예쁜 책이 하나 왔다. ꡔ아담을 기다리며ꡕ라는 책이다. 하버드대학의 박사과정 학생 부부인 마사 베크와 존 베크가 뜻하지 않게 두 번째 아기를 임신하면서 학문적(세속적) 성공과 생명 존중이라는 갈림길에서 고뇌하던 과정을 그린 책이다. 학문적 성공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중절수술을 해야 하고, 생명체, 그것도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기(‘아담’)를 낳자니 박사 되기를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그들은 긴 고민 끝에 지혜롭게도 성공보다는 생명이라는 길을 택했다. 일단 이런 단호한 결단을 내린 뒤에 그들은 아기가 뱃속에 있는 동안에는 진정한 평화와 사랑을 누렸으며 출산 무렵에는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안목으로 세상을 보게 되어, 과연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하찮은 것인지에 대해 근원적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삶의 속도를 늦추어야 할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며 우리들의 안팎에 있는 ‘작은 것들’ 속에 아름다움과 진리가 있다는 깨우침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그들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풍요로워지고 진정한 내면의 행복을 얻게 되었다. 마사 베크는 미국 ꡔ마드모아젤ꡕ지의 칼럼니스트이며 ‘인생설계상담소’라는 조직을 만들어 상담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부부는 세 아이들과 친한 친구 하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이 교훈적인 이야기는 사실상 하버드대학으로 상징되는 엘리트주의적이고 일류지상주의적이며, 시장경쟁적인 세계관이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비인간적인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그러나 감동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김종철 선생의 소개 글처럼 “무지의 세계에서 지혜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회상록을 통해서 우리는 진실한 인간 기록만이 베풀어줄 수 있는 깊은 고양감을 느낀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책을 보고 매우 놀랐다. 학문적 성공이냐 새로운 생명이냐를 놓고 갈등한 베크 부부가 학문적 성공보다는 새로운 생명을 택했다는 용기와 슬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 이 책을 제대로 읽진 않았지만,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1989년 9월에 아내와 함께 독일로 유학을 떠날 당시 10개월 된 첫째 아이 한결이를 포대기에 싸서 안고 비행기를 탔다. 초기 유학생활에 적응하랴, 아이 돌보랴(당시 한결이는 감기와 열로 고생을 많이 했다), 어학코스 들으랴 정신이 없는데 몇 개월 뒤 어느 겨울날 아내가 ‘혹시 임신한 것 같기도 하다’며 말을 꺼냈다. 뱃속 느낌이 다르고 생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때부터 우리는 앞의 베크 부부처럼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아직 박사과정에 들어가지도 못한 애숭이 유학생이 곧 둘째 아이를 낳는다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외국에서 아이들 뒤치닥거리 하다가 세월을 다 보낼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우리는 당시 독일에서 갓 첫돌을 보낸 한결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기도 했다. 어느 가족계획상담소를 찾아갔는데 마침 상담시간이 아니라 문이 닫혀 있어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속으로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 일하나?’ 하고 불평하면서). 공부가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이상하게 짜증도 많아졌다. 아내와 나는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도 잦아졌다. 다른 한편 나는 속으로 둘째 아기를 낳는다고 설마 ‘하늘이 무너지랴, 산 입에 거미줄치랴’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니야, 아직은 안 돼!’라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며칠이 지나갔다. 우선은 정말 임신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았다. 아내가 ‘이상하다’고 말한 지 한참 뒤였다. 그런데 검진을 마친 의사 선생님 왈, “아이가 생기다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남은 찌꺼기를 청소하는 수술을 해야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이 말에 우리 부부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는 거짓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으나 기숙사로 돌아와선 서로 껴안고 기뻐했다. 새로 생길 아기가 우리의 사정을 잘 알고 너무나 고맙게도 자기가 먼저 사라졌구나, 아가야 정말 고맙다 하고 인사했다.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생기다가 만 아기에 대해 너무나 미안했다. 지금처럼 근본적으로 생각하진 못했지만 내심 새로운 생명을 기쁘게 맞이하려 하기보다는 ‘제발 없어졌으면’ ‘하필이면 왜 지금 생기느냐’는 식의 반생명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움과 죄책감이 동시에 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사 베크 부부에 비추어볼 때 생명의 탄생보다는 세속적 성공을 택하려 했던 우리 부부(특히 나)의 태도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의 이런 태도가 막 생기던 뱃속 아기를 죽였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 뒤 우리는 베크 부부의 감동적인 선택과는 반대로 ‘학문적 성공’을 위해 (최소한 지금) 둘째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된다며 더욱 조심했다. 마침내 나의 학위 공부는 1994년 여름에 마무리되어 영구 귀국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첫째 아이 한결이와 둘째 아이 아롬이 사이에는 6년 정도의 나이 차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 동안 그 일을 잊고 있다가 ꡔ아담을 기다리며ꡕ라는 책을 보는 순간 지나간 일들이 다시 떠오른다.
사람들은 베크 부부와 우리 부부 사이에 누가 먼저 깨닫느냐 하는 시간 차이가 있을 뿐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더욱 실용적으로는, 일단 학문적으로 성공한 뒤에 생명에 대한 근원적 자세를 취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베크 부부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엉터리로 살고 있다. 비록 내가 세속적인 의미의 ‘학문적 성공’ 후에 시간이 갈수록 더욱 사회생태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하게 추구하며 살고 있지만, 까놓고 말해서 훌륭한 사람들 ‘흉내만 내며’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베크 부부의 용기와 슬기에 다시 한번 존경심이 솟아오른다.
끝으로 한 마디만 하고 이 글을 마무리하자. 베크 부부의 사랑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고민하는 교육의 문제를 제대로 푸는 열쇠가 아닐까?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아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 아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로 기르고 싶다’거나 ‘나보다는 더 공부 잘 하고 더 좋은 학교를 다니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이를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경쟁적 노동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력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이의 행복한 삶을 미뤄버리거나 사랑으로 잘 보살피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비교육적인 것은 없다.
생각컨대, 정말 사랑하는 두 사람이 순수한 사랑의 결실로 아이를 낳고 사랑으로 아이를 대하고 또 그 아이는 사랑을 머금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을 배우고 또 다른 이를 사랑하고 그래서 또 사랑의 결실을 맺고… 이런 식으로 인생이 돌아가야 하고 이런 식으로 사회가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살맛이 난다. 사실 그밖에 무엇이 필요할까? 여기에는 일류대학이니 이류대학이니 하는 것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높은 지위, 많은 권력, 큰 명성 따위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허망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인간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그리하여 그를 통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괜스레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것들이 아닌가? 또 이런 관점에 서면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더 빨리 더 잘해야 한다는 조급성도 필요 없어진다. 옆집 아줌마가 무슨 소리를 해도 흔들릴 필요가 없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옆집 아줌마가 사라질 것이다. 모두가 그런 관점을 나누어 가진다면 말이다.
그래서 사랑에서 사랑으로 순환되는 그런 삶의 구조, 이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정치경제, 사회문화, 교육종교, 그 어느 분야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릴 적부터 아이를 노동력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이 세상은 차별과 위계, 점수와 경쟁으로 얼룩지고 마침내 지배와 억압, 착취와 파괴가 강화된다. 결국 삶이 아니라 죽음을 낳게 된다. 경쟁과 분열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더욱 그러하다. 요컨대 복잡한 교육문제, 골치 아픈 삶의 문제들, 이 모든 것의 근본적 열쇠는 사랑이라 확신한다.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일류대학 강박증도, 조급성도, 옆집 아줌마 이야기도 모두 이겨낼 수 있다. 오늘 집에 가면 나는 우리 아이들을 더욱 따뜻한 마음으로 껴안아줄 것이다. 아이들과 내가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내일도 마찬가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