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범증산종단사 3판과 관련하여 근하(槿下) 김종용(金宗用) 선생님의 용화사사(龍華社史)를 정리하면서 예전 신문기록을 검색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전혀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엉뚱하게 인정도덕원(仁正道德院)관련 사건의 일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인정상관 대경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듬해(1939) 봄, 본주(本主)님께서 조장(서상섭)이 고향에 갔다 온다고 아뢰니 “가지말라” 하시었다. 그러나 조장(서상섭)은 친우와 약속이라 어쩔 수 없이 떠나더니 나주(羅州)에 가서 붙잡혀 수감(收監)이 되고 몇 개월이 지나 병보석으로 풀려나왔는데 사경(死境)을 헤매었다. 이때 본주(本主)님께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쓰다듬으니 나쁜 물이 대소변으로 흘러나와 며칠이 지나 회복이 되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뢰니 “얼른 피하라” 하셨다. – 인정상관대경전(仁正上觀大經典)
그리고 이것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찾았습니다.
영암 선도교 사건
17명 취조 일단락, 근일 중 목포검사분국에 송치
【전남지사발】
전라북도 정읍군 입암면 신금리의 서상섭(43) 은 본래 보천교 신도였는데, 교주 차경석 사후 보천교가 해산하게 되자 자기 고향인 나주군 문평면 대도리로 가서, 암암리에 나주군을 위시한 인근 함평·영암 등 각 군에서 작년 4월경부터 동지를 모아 사교(邪敎)인 선도교(仙道敎) 를 주창하였다.
그는 스스로 교주가 되어 허무맹랑한 교리로 농촌 우민을 농락하고, 제1착수로 칠백오십 명의 교도를 모집하여 조직체계를 정비해 활동하려던 차에, 금년 3월 20일 서상섭이 영암에 출장하였다가 영암경찰서원에게 검거 단서가 발로되었다.
그들은 활동 초에 검거를 보게 되어 금전 사취는 불과 오륙백 원에 지나지 않았으나, 유언비어가 많았다고 한다. 그간 영암서에서 취조가 일단락되어 17명을 2~3일 내 목포검사국(목포검사분국)에 송치하려는 바, 죄명은 보안법, 육군형법 등의 위반이라고 한다.
송치 대상자 주소·성명은 다음과 같다.
1. 정읍군 입암면 신금리 — 서상섭(43)
2. 나주군 반남면 하촌리 — 김낙도(46)
3. 동 영산포읍 산정리 — 문천여(61)
4. 동 [시종/세지면] 내정리 — 정병선(50)
5. 함평군 학교면 금곡리 — 서익만(45)
6. 동 — 윤덕진(61)
7. 나주군 금천면 석전리 — 정종희(46)
8. 동 — 유진환(61)
9.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 — 김종용(金宗用)(42)
10. 동 나주읍 석현리 — 나성채(58)
11. 정읍군 입암면 신금리 — 심지택(44)
12. 나주군 왕곡면 신원리 — 박행래(62)
13. 영암군 시종면 대간리 — 정병문(53)
14.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 원용구(60)
15. 나주군 영산포 관정리 — 김창수(49)
16. 무안군 안좌면 암동리 — 이윤기(69)
17. 동 망운면 연리 — 윤상만(57)
- 1939년 6월 21일 조선일보
근하(槿下) 김종용(金宗用)의 기록을 찾다가 이 사건이 검색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사건관련 송치대상자 명단에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 — 김종용(金宗用)(42) 이 있습니다. 그래서 검색이 되었습니다.
이 송치대상자 명단에 있는 분이 근하(槿下) 김종용(金宗用)님이신지 아닌지는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그래도 범증산종단사 용화사사에는 기록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근하(槿下) 김종용(金宗用)은 증산천주님의 친필 용봉(龍鳳)을 이중성 선생님에게서 받아서(?) 관리(?) 하셨던 분입니다. 후일 증산참신앙이 이 용봉 독존석가불을 많이 홍보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사진이 범증산교사에 있는 용봉 독존석가불입니다.
이 번에 하늘이 도와주셔서 사진 한 장을 얻었습니다.
근하(槿下) 김종용(金宗用) 선생님께서 용봉 독존석가불 액자를 들고 계신 사진입니다. (얼굴 부위는 제가 일부러 흐릿하게 처리했습니다)
용봉 독존석가불의 크기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