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0-12)
그리스도인은 행복의 비결을 아는 사람입니다.
구원의 비결을 알고, 매일 매일 기쁨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행복과 성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는 최선의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행위와 언어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대로 표현됩니다.
나쁜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악한 행위로 표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선한 행위로 표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선해야 합니다.
둘째, 무엇이든지 보고 배운 대로 바르게 행하여야 합니다.
좋은 생각을 했다면, 그 생각을 바르게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에 옮길 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순종이 뒤따라야 합니다.
순종은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10-12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아멘.
“괴테”는 “가장 유능한 사람은 계속해서 배우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셋째, 무엇이든지 자족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미소가 있습니다. 남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감사할 줄 압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우리는 자족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자족하는 비결을 터득하려면, 일체의 욕망을 버려야 하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해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은 욕망과 감정을 버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런 것을 버린다 해도, 결코 자족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욕망과 감정을 보다 가치 있고 거룩한 것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더러운 욕심을 거룩한 욕심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은 언제나 반복됩니다.
아굴은 하나님께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7-9)라고 기도했습니다.
배 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 할 수 있습니다.
배 고프면, 도둑질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라고 노래했습니다.
한나는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삼상 2:7-8)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일체의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 때, 우리는 자족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