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동신고
@ 창단 - 1974년
@ 해체 - 1975년
@ 우승 - 없음
@ 준우승 - 없음
@ 연도별성적
년도 |
감독 |
대통령배 |
청룡기 |
황금사자 |
봉황대기 |
비고 |
74 |
이근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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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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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
정법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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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16강 |
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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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광주일고와 광주상고, 전남고 등 세 팀이 있던 상태에서 70년대 이들 광주소재 학교가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하자 그 영향을 받아 광주에 신생팀들이 속속 탄생합니다...
1년만에 해체하긴 했지만 71년엔 광주고, 72년에 숭의실고, 73년에 진흥고에 이어서 동신고가 74년에 창단한 것입니다...
같은 74년에 창단한 전남지역(광역시 승격이전이라 어차피 예선을 함께 치뤄야 했겠죠..)의 목포상고까지 감안하면 정말로 많은 숫자의 팀들이 모여있던 시기였습니다...
대구지역도 마찬가지였듯이 어차피 정해진 선수자원에서 이렇게 많은 팀들이 공존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광주일, 광주상, 진흥고 세팀만 남기고 대부분 단명의 길을 걷긴 했습니다만 확실히 70년대 들어와 호남지역에 야구붐이 대단하기는 했었습니다...
동신고의 해체 역시 선수스카웃에서 비롯된 갈등이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76년 동신중을 졸업해서 당연하게 동신고로 진학하리라 믿었던 이상윤이 광주일고로 선회하자 무너진 스카웃질서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결국 해체에 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2년의 역사로 단명하긴 했지만 동신고의 창단맴버들은 상당히 실력있는 선수들이 많았는데 75년에는 전남예선을 두번이나 통과했었고 해체된 이후에도 2학년 선수들이던 김경훈, 김수남, 차용갑 등이 창단팀 신일고로 옮겨 핵심전력층을 이루면서 신일고가 창단과 함께 역대 최단기간내에 우승을 거둘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