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기랑 (불당초 3)
강화도 안녕
강화도에 갔다. 강화도에서 고인돌을 봤는데 고인돌은 너무 커서 멋있었다. 그래서 나도 죽었을 때에는 특별하게 자손들이 나를 고인돌에 묻어놔서 뉴스에 나와서 죽어서까지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미국이 우리를 쳐들어왔다고 했는데 나는 여태까지 미국이 우리를 도왔다고 들었는데 미국이 우리를 쳐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미국한테 실망했다. 그리고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일하신 박병선 할머니는 예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책을 되찾아 줘서 박병선 할머니가 너무 멋있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나도 팔만대장경판을 만들어서 나도 어머니한테도 자랑해서 엄마한테 칭찬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책을 많이 쌓아서 유명해지고 그 책을 팔아서 재벌이 될 것이다.
박강민 (쌍정초 3)
강화도에 갔다 와서
오늘 강화도에 와서 본 것 중에 기억나는 것은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와 고인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먼저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청자였다. 무엇이 가장 아름답냐면 진짜같은 연꽃 무늬가 아름다웠고 연꽃이 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무덤이었다. 궁금한 점은 족장들만 죽으면 고인돌에 묻힌다. 그런데 평민들은 죽어서 고인돌에 묻힐까? 내 생각에는 고인돌에 묻히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고인돌을 만들 때에는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신분이 높은 사람만 묻히는 것 같다.
박준혁 (불당초 3)
강화도에 다녀와서
아침 8시에 출발해서 10시 30분에 도착했다. 나는 그때 졸면서 갔다. 버스에서 내릴 때 완전 추웠다. 그래도 참았다. 우선 고인돌을 봤다. 고인돌의 무게는 10톤이 넘는다고 한다. 어떻게 사람들이 10톤을 드는지 궁금하였다. 그런데 내가 말한 게 아니었다. 옛날 사람들의 고인돌 기술 쓰는 게 참 신기하였다. 이제 강화역사박물관에 들어갔다. 우선 들어가서 고인돌 기술도 봤고 고인돌 안에 그 물건들도 봤다. 그리고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전쟁에 대해서 봤다. 그 전쟁 난 곳에 직접 가봤다. 거의 산 위였다. 그런데 거기 밑에 어떤 성이 있었다. 그 이름은 외규장각이었다. 거기에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프랑스가 뺏어갔다. 하지만 다시 가지고 왔다. 박병선 학자 덕분이었다. 참 우리나라를 위해 엄청 많이 노력해주신 분이다. 하지만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고 한다. 참 슬펐다. 그리고 이젠 차를 타고 선원사에 갔다. 거기에 가서 팔만대장경 만드는 과정을 봤다. 신기했다. 이제 집에 가려고 한다. 오늘도 즐거웠다.
박진아 (두정초 4)
고려궁터와 선원사터
나는 강화도에 있는 고려궁터와 선원사터를 갔다. 고려궁터에는 외규장각이 있다. 외규장각은 일종의 ‘책창고’라고 말할 수 있다. 옛날 병인양요가 일어났을 때 프랑스 군대가 외규장각의 책을 수레에 싣고 가서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여러 가지 외규장각의 책을 보관해 놓았다. 그런데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세계책전시회를 할 때쯤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이신 박병선 박사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지하실에 내려가 세계책전시회에 내보낼 책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글씨가 있는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고 열심히 연구를 해서 ‘직지’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만들어진 책이란 걸 발표했다. 그리고 또 파란 비단으로 감겨 있는 우리나라의 책을 연구하다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오해를 받아 쫓겨났지만 다시 빌려서 연구해서 ‘의궤’라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박병선 선생님께서는 계속 프랑스에 살다가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 그리고 또 선원사터에 가서 팔만대장경판이 만들어지는 순서를 알았다. 첫째, 산벚나무나 돌배나무를 잘라 다듬는다. 둘째, 소금물에 나무를 담아서 삶아 말린다. 셋째, 나무판에 불경을 새긴다. 넷째, 마구리를 만들어 끼운다. 다섯째, 습기가 차지 않도록 옻칠을 한다. 그리고 팔만대장경판을 세계기록유산이다.
박찬혁 (불당초 3)
내가 가본 강화도
나는 강화도를 갔다. 그런데 강화도는 정말 추웠다. 그래도 재밌었다. 그런데 강화역사박물관에서 고인돌을 보고 놀랐다. 왜냐하면 고인돌이 엄청 컸기 때문이다. 나는 고인돌을 책에서만 봤는데 진짜 보니까 신기하였다. 그리고 고인돌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나는 프랑스 사람들이 나쁜 것 같다. 왜냐하면 강화도에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팔만대장경판이 세계기록유산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도자기 깨진 조각을 주웠고 유찬이가 도전을 종 밑에 던지는 것을 보았다. 다음에는 경주에 가고 싶다. 왜냐하면 경주에 못 가봤기 때문이다. 또 경주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나는 꼭 경주에 갈 것이다. 즐거운 하루였다.
배진수 (양당초 3)
선원사 절터에 간 날
선원사 절터에 갔다. 절터에 갔는데 탑도 없었다. 실망이었다. 불에 타서 없어진 것 같은데 탑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또 팔만대장경도 보았다.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데 20년이나 걸렸다. 팔만대장경은 불경을 하나하나 나무판에 새기고 인쇄해서 만든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나무판은 산벚나무나 돌배나무 같은 곱고 단단한 나무여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 단단하면 글씨를 새기기가 힘들고 너무 무르면 글씨를 새기다가 글씨가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면 못할 것 같은데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배진우 (양당초 4)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책
오늘 강화도에 갔다. 거기에서 고려시대의 책과 조선시대의 책에 대해서 보았다. 고려시대의 책은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판은 세계기록유산이고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라는 절은 세계문화유산이다. 세계문화유산 안에 세계기록유산이 있는 것은 드문 일이다. 조선시대의 책은 의궤이다. 외규장각에 있던 책을 프랑스 군대가 1866년에 강화도에 쳐들어와서 훔쳐 갔다.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가 있다는 것을 최초로 발견해서 널리 알렸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돌려받았다. 그런데 프랑스 군인들은 나쁜 것 같다. 왜냐하면 무슨 책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앞뒤 표지가 비단으로 되어 귀한 책이라고 가져갔기 때문이다.
신다은 (서당초 3)
강화도에 가다
오늘은 강화도에 갔다. 재미있긴 재미있었다. 솔직히 그리 재미있진 않았다. 저번보다 훨씬 추웠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고인돌을 보았다. 고인돌을 보자마자 ‘고인돌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속에는 그 사람이 쓰던 물건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 프랑스 사람들이 고려를 쳐들어왔을 때 외규장각 안에 있는 귀한 책들을 훔쳐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 공부를 끝내고 도서관에 취직을 해 지하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가져온 의궤를 찾아내어 그것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주었다. 이 분이 박병선 박사님이었다. 그리고 오늘 본 것들은 실제가 아닌 본뜬 것이었다.
신동호 (두정초 4)
의궤와 외규장각
나는 강화도에 가서 의궤와 외규장각을 보았다. 의궤는 원래 우리나라 것이었지만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넘어갔고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박병선 선생님 덕에 프랑스로부터 돌려받았다. 나는 이번 일로 의궤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유솔찬 (서당초 3)
강화도 탐험
강화도로 갔다. 강화도가 영국 같았다. 한국의 영국! 처음엔 고인돌을 봤다. 삐딱하게 놓은 고인돌. 큰 돌 3개로 만들어진 고인돌이 있었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또 프랑스군이 쳐들어왔다고 들었다. 프랑스군은 깡패? 프랑스군이 쳐들어오기 전에는 몽골이 쳐들어왔다고 들었다. 몽골은 싫다.
이서현 (가온초 4)
강화를 찾아서
먼저 강화고인돌을 답사했다. 고인돌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알았지만 고인돌에 묻힌 껴묻거리를 몰랐는데 들어보니 청동무기,돌칼,돌망치,어망추,반달돌칼,간돌도끼,갈판,갈돌,민무늬토기가 있었다. 그 중 돌망치,어망추의 뜻을 몰랐는데 다시 알았다. 그리고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도 기억에 남았다. 왜냐하면 이름도 길었고 색깔 모양도 아름다워서이다. 이번에 찾아간 강화에도 많은 유물이 있는 것 같다.
이유찬 (불당초 3)
강화도 역사탐험
강화도에 갔다. 나는 오늘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를 봤다. 모양이 연꽃모양이어서 참 예뻤다.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를 보고 “참 예쁘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조선시대가 되자 고려의 궁궐터에 도서관을 지었는데 그 도서관의 이름이 외규장각이다. 그리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외규장각에 대하여 박병선 선생님이 연구를 했다고 한다. 난 박병선 선생님이 참 대단하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고려 사람들이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자’ 하여 81,258개의 팔만대장경판을 만들었다. 나는 고려 사람들의 몽골을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은빈 (탕정초 3)
강화역사박물관과 선원사지
강화역사박물관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이상했던 것이 가까이 있는 일본이나 중국도 아닌, 멀리 떨어져 있는 프랑스가 우리나라에 침입했다는 사실이다. 또 박병선이라는 분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의 책들이 거기 있다는 걸 밝혀냈다. 그 다음은 선원사에 와서 팔만대장경판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나무판을 만들 때는 고운 나무(산벚나무,돌배나무)를 이용해 만들었다. 나중에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벌레먹지 말고 습기에도 잘 견디라고 옻칠을 해주었다. 나는 팔만대장경판을 만드는데 시간이 별로 안 걸리는 줄 알았는데 무려 20년이 걸린다고 하니 신기했다. 8만 개의 나무판을 만드느라 20년이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크지도 않은 물건이 20년이 걸린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즐거운 하루였다.
이주영 (환서초 4)
고려의 문화가 숨쉬는 강화도
나는 아주 추운 날에 강화도 역사탐험을 갔다. 몇 시간을 달려와서 먼저 강화도 고인돌을 봤다. 고인돌을 보면서 옛날 족장들은 아주 거대한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엔 강화역사박물관에 갔는데 거기에서 고려청자를 보았다. 그것의 원래 이름은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라는 긴 이름으로 국보 133호이다. 어떻게 그렇게 긴 이름을 가졌을까? 그리고 그것을 짧게 줄이면 어떻게 불릴까 궁금하다. 청자의 무늬가 연꽃잎 모양이어서 더 우아하게 보였다. 그 다음은 외규장각이다. 규장각은 도서관의 이름이다. 난 외규장각이 ‘외규 장각’인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외규장각의 뜻을 알았다. 창덕궁 안에 규장각이 있고 창덕궁 밖에는 외규장각이 있다는데 창덕궁에 불이 나서 도서관이 다 타버리면 바깥에 있는 도서들은 괜찮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병인양요로 인해서 외규장각의 도서가 없어졌다. 그런데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박병선 선생님이 우리 의궤를 발견해서 우리 의궤를 구하셨다. 우리나라 것은 훌륭한 것 같다.
이준모 (불당초 3)
강도에 가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서서울을 지나고 김포 톨게이트를 넘어서 강화도에 갔다. 고인돌에 가니까 와! 정말 큰 두 개의 돌 위에 웅장한 돌 하나가 떡 하니 있었다. 오른쪽 돌은 살짝 기울어졌는데도 흔들거리기는커녕 우뚝하게 서 있었다. 혹시 살짝 기우는 게 더 균형을 맞추는 비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역사박물관에 있는 강화동종은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고려의 웅장함도 느꼈지만 그걸 만든 고려 백성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외규장각으로 갔다. 창덕궁에 규장각이란 도서관이 있다면 그것을 도둑맞았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었는데 바로 외(바깥에 있는)규장각이다. 외규장각에서 본 의궤는 겉표지부터 왕 꺼 티가 확 났다. 선원사에 있는 박물관에 가니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었다. 그전까지는 그냥 나무를 베어서 새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딱 좋은 나무로 네모나게 똑같은 크기로 해야 한다. 강화도는 참 사연이 많은 곳 같다.
임주미 (용암초 3)
강화도 역사탐험
나는 오늘 강화도에 갔다.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간낭비는 아니지만 진짜 이 탐험 때문에 못 놀아서 짜증났다. 그리고 진짜 다리가 아팠다. 다은이와 나는 맨 뒤에서 계속 춥다고 말했다. 강화도에서는 고인돌을 첫 번째로 보았는데 선생님께서는 죽은 사람을 큰 돌 밑에다 넣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일을 하던 박병선 박사님이 돌아가신 얘기를 듣고 정말 슬펐다. 왜냐하면 박병선 선생님께서는 큰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강화도에서는 청자로 만들어진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를 보았는데 참 아름다웠다. 왜냐하면 손잡이에 개구리 한 마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연꽃과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재미는 없었다.
정다원 (용암초 3)
강화도를 갔다오며
오늘 강화도를 갔다 왔다. 맨 처음 지도를 보고 고인돌을 보았다. 고인돌을 보니 우리 할머니가 계시는 고창이 생각난다. 고창에는 고인돌이 많다. 고인돌은 무게가 트럭 10대, 코끼리 10마리와 똑같다고 했다. 강화역사박물관을 가서 지도를 보니 고창에 고인돌이 거의 많았다. 기분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또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 청자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름이 어려웠다. 옛날에 프랑스가 무역을 하자고 부탁했으면서 다시 공격을 했다. 더 부탁하면 좋았을 것을……. 팔만대장경을 만든 방법도 배웠다. 방법은 첫째는 산에서 나무를 잘라 네모난 판이 되게 하고 둘째는 나중에 나무가 마르면서 뒤틀리거나 갈라지지 않게 소금물에 삶고 종이에 불경을 써서 나무판에 뒤집어 붙인 다음 칼로 정성 들여 열심히 칼로 새기고 셋째, 양쪽 끝에 마구리를 만들어 끼우고 마지막 나무판에 옻칠을 한다. 다음이 기대된다.
조남인 (백석초 3)
강화도에 다녀와서
오늘 강화도를 왔다. 나는 ‘도’자가 붙어서 배를 타고 가야되는 줄 알았다. 다행히 다리가 있어서 차를 타고 왔지만 오는데 시간이 조금 많이 걸려서 멀미가 났다. 나는 외규장각하고 선원사터가 기억에 남았다. 박병선 박사님이 큰 공을 세워서 나도 우리나라를 더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외규장각에는 귀한 책들이 많았다. 팔만대장경은 81,258개나 되는 나무판으로 되어 있다. 나는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면서도 그걸 만드는지 궁금했다. 우리나라는 못 살았고 더군다나 우리나라가 몽골과 전쟁을 하고 있는데도 그런 걸 만들다니 그래도 그것 덕분에 전쟁에서 이겼으니까 다행이긴 하다. 나는 우리나라를 쳐들어온 나라가 왜 그렇게 많은지 궁금하다.
홍채린 (불당초 4)
강화도 역사탐험
오늘 강화도를 다녀왔다. 강화도는 섬 같지가 않고 꼭 서울의 뒤편 같다. 강화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고인돌을 봤는데 고인돌 한 개만 있어서 조금 썰렁했다. 고인돌의 건축 방법을 보니 옛날 사람들은 현대의 사람들처럼 기술이 뛰어나다는 걸 느꼈다. 나는 박병선 박사님이 정말 존경스럽다. 프랑스에게 뺏긴 우리의 것을 되찾아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박병선 박사님의 별명이 정말 자랑스럽다. 그런데 박병선 박사님이 돌아가셨다니 정말 슬프다. 팔만대장경판을 만드는 과정은 정말 복잡하다. 그 중에서는 글자를 새기는 과정이 가장 어려울 것 같다. 조금이라도 잘못 파면 힘들게 한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한편으론 불쌍하다. 하지만 그런 작업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팔만대장경판이 있는 것이다. 팔만대장경판을 만든 사람들은 하늘에서 뿌듯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