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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출사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배편 예약을 미리미리 체크하지 못한 제 잘못이 컸습니다. 그래서 석가탄신일과 5.18주말을 이용한 2박3일 일정의 정기 출사는 급하게 여수 거문도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출발 전날 남해와 제주도바다에 풍랑주의보 내려졌습니다. 이럴수가... 광주는 화창하고 맑은데 배가 뜨지 못하게 되다니... 부랴부랴 다시 또 급하게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박일구선생님은 출사지를 동해안과 설악산쪽이나 충북내륙으로 방향을 잡자고 했고 저는 원장님들과 전화통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고 참가여부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하여 정해진 일정은 출사지로는 설악산과 강릉쪽으로 하고 출발시각은 금요일 아침 9시로 정해졌습니다.
처음에 가시기로 한 분은 모두 11명이었는데 일정이 바뀌면서 8명이 참가합니다. 가시기로 한 분들이 비엔날레 주차장에 모입니다. 김진이 원장님은 신랑인 김기현원장님이 출발장소까지 데려다줍니다. 장용성원장님과 김낙현원장님을 아들이 몰고 온 차에서 내립니다. 다른 분들은 택시를 타고 오시기도하고 직접 차를 몰고 오시네요. 짐을 싣고 정리하는 중에 옆에 있는 어떤 차를 보는데 차에 열쇠가 꽂아져 있습니다. 문도 그냥 열립니다. 이상권원장님이 앞유리에 적힌 전화번호로 상황을 알려주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습니다. 이 차는 어찌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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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휴게소에 잠시 들려 호도과자와 커피로 여행의 들뜬 출발을 즐깁니다. 좀 더 가서 쉰 다른 휴게소에서는 돈까스와 고등어구이, 사골곰탕으로 점심을 대신합니다. 오후에는 풍랑주의보가 해제됩니다. 하지만 이미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미련은 없습니다. 가거도나 거문도는 날을 다시 잡을 수 있지만 설악산은 이렇게 얼떨결에 가지않으면 날잡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듯 합니다. 차 안에서는 장용성원장님이 암벽을 타신 경력이 있어 설악산의 여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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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의 모습입니다. 옷가지과 개인 물품을 담은 가방은 지붕으로 올리고 가운데 의자는 접어 그 위에 카메라가방을 놓습니다. 운전을 하는 1열에서는 박일구선생님과 정태환원장님이 핸들을 번갈아 잡습니다. 2열에는 김낙현원장님과 장용성원장님이 '윤창중'을 여러 각도에서 요리하고 있고, 3열의 김희숙원장님과 이상권원장님은 몇 보따리 과자와 음료를 수시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4열에서는 차의 흔들리는 박자에 맞추어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저와 원장님들의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김진이원장님이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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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설악산에 도착합니다. 몇 시간을 고속도로와 차안에서 보내서 그런지 설악산의 시원한 공기가 가슴을 뻥 뚫어주는 듯 합니다. 설악산은 광주보다 기온이 차다 싶습니다. 그 온도 차이 때문인지 나무들에서 손을 내민 새싹이 이제야 손가락을 펴듯 모양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높은 산봉우리를 피한 오후의 햇살이 계곡과 산기슭에 가득합니다. 차에서 졸다가 눈을 떠보니 가버린줄 알았던 봄이 다시 돌아와 곁에 남아있습니다. 아~~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요. 크고 작은 렌즈로 언덕과 계곡을 살핍니다. 먼 산의 숲과 가까이의 나무는 봄의 화사한 얼굴입니다. 카메라를 통해 봄의 얼굴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아침에 현관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잠든 딸아이들 얼굴을 들여다보듯 몇 번이고 살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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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을 넘어 동해바다로 나올 무렵이 되니 배가 고프다 못해 아플 지경입니다. 서울에서 밀려든 차량들로 길바닥에서 보낸 시간이 벌써 몇 시간째 입니다. 황금연휴에 강원도에 온 것이라 그려려니 합니다. 속초에 도착하니 날은 어두워지고 식당과 숙소는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 때 김낙현원장님이 무게있고 내공넘치는 전화로 숙소를 해결합니다. 까딱했으면 이상한 민박집에서 고생할 뻔 했습니다. 으음~~ 치과간판은 어디에 가도 눈에 들어오는군요. '속초가좋아서울에서온 치과의원'이라... 미소가 번지는 치과이름입니다. 식사하기로 정한 식당에 도착합니다. 따로 예약이 안되는 대게집입니다. 번호표도 없고 그냥 도착한 순서대로 기다리면되는 아주 간단한 시스템의 식당입니다. 동네에서는 낯을 가리는 원장님들이지만 여기서는 기다리는 것도 즐길만 합니다. 게가 떨어지면 영업이 끝난다는 주인아저씨가 커다란 홍게를 들어 보입니다. "아자씨 우린 엄청 큰 걸로 주셔야함다. 엥간해서는 양이 안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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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를 서비스로 2마리를 더해10마리나 먹고 등딱지에 꾹꾹 눌러 담은 볶음밥을 남김없이 해치웁니다. 그래도 속초에 왔으니 아바이순대를 맛보아야지요. 이상권원장님이 오미자로 담근 남원 황진이술을 8병 가져왔습니다. 이 술에 안주할려고 아바이순대 3팩과 오징어순대 1팩을 삽니다. 아바이순대는 모양과 맛은 이쪽과 비슷하지만 안에 당면 대신 찹쌀이 들어가 있고 겉의 돼지내장도 신선해서 식감이 아주 좋습니다. 아바이순대는 쪄서 데워주고 오징어순대는 기름에 부쳐서 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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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아침 일출을 맞이하는 원장님들 입니다. 4층 숙소 베란다에서 동해쪽 해뜨는 곳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새벽4시에 육중한 카메라가방과 무쇠다리 삼각대를 챙겨들고 해변을 이리저리 누볐을 원장님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열정은 여전하시지만 관심 사항이 바뀌신 것이겠지요? 시시각각 모양과 색이 변하는 아침 바다를 앞에두고 원장님들이 우리가 많이 변했다는 농담을 주고 받고있습니다. 변해야 될 것이 변했고 그 변하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시는 분들과 같이 나이 먹고 함께 사진찍으러 다니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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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시 도문동에 위치한 학무정(鶴舞亭)입니다. 1934년에 건립되었다니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정자입니다. 학무정 외에 달리 불리워지는 3개의 이름(영모재, 인지당, 경의재)이 더 있는데 주로 학무정으로 불립니다. 장용성원장님이 "학보다는 소나무가 춤추는 듯 하구나" 라고 감탄하시네요. 그러고보니 주위의 소나무가 춤추듯 몸을 틀고 가지를 펼친 것이 안개낀 날 왔더라면 정자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한 편의 군무를 보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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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 들어갑니다. 오~~이런~~~ 입구부터 사람들이 한 가득입니다. 돌아보니 올라온 길에는 승용차와 관광버스가 길을 메우고 있고 주차장을 지나서는 등산복을 차려입을 사람들의 행렬이 마른 계곡의 물보다 더 넘쳐납니다. 주차비를 오천원 계산하고, 국립공원 입장료로 각각 삼천오백원을 치릅니다. 케이블카요금은 일인당 구천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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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에서 내리기 전까지 떼로 몰려온 많은 사람, 바가지쓴 것 같은 입장료, 뿌옇게 흐린 날씨등에 투덜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산길을 걷기 시작하니 방금전의 불평은 사라지고 새로 세상에 나온 꽃잎의 싱그러움과 청량한 공기감에 감탄을 연발합니다. 권금성 바위에 오르니 동해쪽으로 속초시와 설악산 입구가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울산바위와 서쪽으로는 공룡능선이 위치해 있습니다. 설악산은 지리산의 포근한 어머니 같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뾰족한 바위와 가파른 각의 능선이 또 다른 맛을 즐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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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7년(인조25)에 지어졌고 설악산의 삼분의이에 해당하는 땅을 소유하고 있는 신흥사에 들립니다. 절 입구부터 경내 곳곳이 봄을 즐기려는 인파로 가득합니다. 무등산에 사람이 많다지만 그 정도로는 비교가 안되는군요. 극락보전의 아름다운 창살과 뜰의 모란 꽃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속에서도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 소리와 연인들의 환한 미소는 산사의 여유를 선사합니다. 모두에게 좋은 날이 될 아름다운 봄날, 부처님오신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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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명물 박물관 참소리박물관에서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손성목 관장이 50년간 모아온 소리와 영상에 관한 것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둘러보는 박물관 옆에는 새로이 영화박물관을 열기 위해 공사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나름의 열정과 철학으로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박물관을 열었다는 것이 부러움을 넘어 존경스럽게 다가옵니다. 손성목관장은 이제 여러 방면으로 수집의 영역을 넓히고 있으니 참소리 박물관은 개인의 소장을 넘어 박물관 비즈니스가 되어 갈 것입니다. 여기까지 밀고온 그의 금전적 동력과 정신적 마음가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결정의 순간 중에 판단의 기준이 되었을 그의 초심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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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테라로사입니다. 강릉을 커피의 명소로 만든 그 유명한 커피집입니다. 테라로사라는 이름은 '커피가 잘 자라는 비옥한 보랏빛 땅'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이 곳도 사람들이 붐비는데 들어가는 입구에서 한참 떨어진 큰 길에 차를 세우고 들어갑니다. 4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곳이었다면 돌아 나왔을텐데 뭔가 모를 포스에 이끌려 기다리기로 하고 진동번호표를 받아 테라로사의 이곳 저곳 둘러봅니다. 강릉이 커피의 메카로 자리 잡고 테라로사가 강릉의 대표적인 커피하우스로 인식되는데는 재일교포인 커피명장 박이추씨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는 드립커피를 소개하고 판매한 1세대 바리스타인데 1988년 서울 혜화동에 커피솝을 열었고 2000년 강릉으로 내려와 터를 잡고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그 제자들이 내렸을 예가체페 한 잔을 마시며 사업의 성공 이전에 박이추라는 걸출한 인물이 늘 마음에 두고 초심으로 삼았을 것들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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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전통가옥이라는 선교장에 들립니다.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타고 건너 다녔다하여 선교장이라 불립니다. 효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의 11대손에 의해 지어지고 그후 10대에 걸쳐 증축되고 보존되어져온 한옥입니다. 입구의 활래정(活來亭)은 창덕궁의 부용정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고 추사김정희를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기록이 있습니다. 안채 뒷편으로 펼쳐진 야산의 소나무 숲은 집의 운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상하좌우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인공미도 남도의 부드러운 자연미 못지 않은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랑채에 앉아 열화당을 바라보고 열화당 뒷편의 300년된 배롱나무와 초정을 돌아봅니다. 선교장의 주인은 관동지방의 유일한 만석꾼 이었으니 호남의 만석군 보다는 지역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훨신 더 높았을 것입니다. 부처님오신날과 5.18에 출사를 왔으니 높은 선교장의 영광 만큼이나 이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깊으면 더 깊었을 선교장의 또 다른 눈물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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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이 솔찮이 되는 분들이 느닷없이 강원도로 왔습니다. 식당은 물론이거니와 숙소도 정하지 못하고 무작정 차를 몰고 올라왔으니 대책없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어제 속초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 강릉에서도 김낙현원장님이 모텔과 펜션의 빈방여부와 시세를 알아봐 주십니다. 회원과 비회원을 나누어서 물어보기도하고 성수기와 비수기의 가격차이도 체크합니다. 첫날 속초에서는 동해콘도에서 묵어 아주 훌륭했습니다. 둘째날은 등대꽃 펜션에서 짐을 풀게 됩니다. 식사는 숙소옆 조개구이 집에서 해품닭(해물을 품은 닭)중짜리 두개를 시켰습니다. 광주의 맛집에 비하겠습니까마는 전날 못먹은 해물라면까지 먹고 나옵니다. 숙소는 예전의 술집에 그대로 전기판넬만 깔고 펜션이라고 만들었는지 사진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무작정 올라온 것이니 불평 대신에 옛날 학생 때 생각이 떠올라 나름 기억에 남는 하룻밤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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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의 마지막날 아침에는 비가 내립니다. 국보 제51호인 강릉 객사문을 찾아갑니다. 배흘림 기둥이 아름답고 기둥위의 각종 포가 간결하면서도 밀도있게 배치되었습니다. 고려시대의 건축기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입니다. 강릉의 관아가 고려말에 설치되어 조선말까지 유지되다가 일제 때 이 문만 남기고 대부분 소실됩니다. 배흘림기둥의 아름다움과 함께 안타까운 역사를 가진 객사문이 조용히 봄비를 맞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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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목장으로 가는 길의 어느 다리에서 카메라를 꺼냅니다. 오래 있으면 젖겠지만 그래도 잠시 맞을 만하게 내리는 비 속에서 열심히 촬영중이신 원장님들입니다. 김진이원장님은 그냥 차안에서 찰칵찰칵. 우리가 생각한 대관령 목장은 양떼목장인데 도착해보니 삼양목장입니다. 비오는날 삼양목장의 비포장길을 물창튀기며 내달리다보니 따뜻하게 끊인 삼양라면 생각이 간절합니다. 빗줄기도 좀 꼬불꼬불한 것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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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라면집 발견! 패스트푸드점 춘화분식입니다. 이동네 마스코트는 눈사람인데 이 눈사람이 분식점 뿐만아니라 마트와 식당, 관공서등 여러 곳에서 웃고 있습니다. 분식점 아주머니가 빠른 손놀림으로 라면을 휘휙 저어가면서 끊이고 있습니다. 폼이 나름 괜찮다 싶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정확한 정량배식을 합니다. 달걀과 파를 넣고 맨위에는 김가루를 얹어줍니다. 김치와 단무지 반찬, 그리고 고봉으로 담긴 공기밥으로 라면의 아름다운 마무리까지. 라면을 다먹고 깁밥 2인분인 4줄을 포장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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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은 영동고속도로를 경유해서 중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기로 합니다. 그런데 영동선에 오르자마자 시속 20킬로미터의 정체가 시작됩니다. 모 지역 사람들 욕을 하면서 차량 흐름에 맞추어 천천이 이동합니다. 어째서 버스가 안보인다 했는데 고속버스와 관광버스는 어떻게 알았는지 인접 국도로 씽씽 잘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평IC에서 31번 국도로 나오려던 계획을 바꾸어 진부IC에서나와 6번 국도를 경유해 31번국도로 들어갑니다. 영월쪽을 지나다보니 한반도지형으로 유명한 선암마을이 근처에 있어 들려보기로 합니다. 주차장에서 생각보다 멀어 불편하지만 남해와 서해쪽의 모래사장과 동해쪽의 절벽까지 비슷하게 우리나라 한반도를 닮아있어 지나는 길이라면 한번은 와볼만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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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날은 광주에 도착할 때까지 하루종일 식사는 라면 한그릇입니다. 춘화분식에서 아점으로 먹은 그 라면이 전부입니다. 차안에서는 남은 과자와 쵸코파이가 동납니다. 이가 부실해 먹네 못먹네 했지만 오징어도 10마리를 해치웁니다. 김낙현 원장님이 살까말까하신 춘화분식의 김밥4줄이 그나마 귀한 곡기 역할을 합니다. 비엔날레주차장으로 가기전에 고기집에 들려 안창살과 갈비살 그리고 구이용 등심스테이크로 그동안의 아쉬움을 달랩니다. 자랑하기는 조금 쑥스럽지만 고기 맛이 좋은 한우식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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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의 길었지만 결국은 짧은 출사를 마치고 비엔날레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우리가 출발할 때 주차된 차에 열쇠가 꽂혀있어 의문의 대상이던 벤츠S600의 그 차는 없어졌습니다. 주인이 가져갔으리라 생각하니 다행입니다. 우리 일행도 출발 모습 그대로 돌아와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김낙현원장님이 사비로 구입한 탁본본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추사가 강릉 선교장에 방문하여 기념으로 남긴 홍엽산거(紅葉山居)라는 글입니다. 목판을 보관하는 선교장의 박물관장도 거(居)자를 좌우로 뒤집어 쓴 추사의 디자인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사고에 대한 박일구선생님의 설명에 이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늑함과 포근함이 넘치는 홍엽산거(紅葉山居)의 거(居)자 처럼 인간미가 넘처 흐르고 즐거움이 넘처나는 온냐의 5월 출사였습니다. 후기를 쓰는 지금도 지난 여행이 오늘 낮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즐겁고 또 가고 싶은 출사였습니다. 박일구선생님과 온냐의 여러 원장님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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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강원도 후유증이 오늘까지 있네요
그나 분담금이라도 적게 나와야 할건디......
강원도에서의 2박3일이 머리속에 스쳐지나갑니다.정리를 잘해주시고...
대박...........
대단하십니다요.............
먼거리 만큼 엄청 긴 여행기 잘 봤습니다.^^
카페는 한 꼭지에 사진이 50장까지만 올라가네요...
50장으로 추려서 후기올립니다.... 조금 힘들어요ㅠㅠ
정기모임은 다음주입니다.
5/31(금)이니 문자 한 번 더 부탁합니다^^*
후기를 읽고 보며 강원도 일대를 다시 한번 다녀 왔습니다. 2박3일 다녀왔지만 후유증은 3박4일~그래도 그 순간들이 벌써 그리워집니다. 떠나기는 힘들지만 떠나면 넘 좋아요~ 언제 또 가나요?ㅋ ㅋ
회장님을 비롯한 김진이샘 박일구샘 정태환샘 이상권샘 김희숙샘 장용성샘 그리고 나 우리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