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 T.V 무상사 무비스님의 법화경 산림
무비스님의 행복특강
법화경, 꽃을 피우다
2009년 10월 14일
제 28 강 - 1
무비스님의 불교 T.V 무상사 ≪ 법화경, 꽃을 피우다 ≫ (28-1) 중 일부
≪법화경≫ 강의 오늘은 스무 번째 품,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입니다.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 항상·상(常)자 아니 불(不)· 자 가벼울· 경(輕)자, 항상 가벼이 여기지 않는 보살이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누구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가? 많은 인류를 가벼이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경하고 받들어 섬기고 돌보고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이 모든 일들이 만인류에 대한 이러한 마음이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또 업신여기지 않는다하는 이런 그 말 속에 다 포함 되어있습니다. 아마 ≪법화경≫에서 가장 그 많이 거론되는 내용이 상불경보살품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도 다른 법회에서 다른 내용의 법문을 할 때도 이 상불경보살의 이야기를 제일 많이 아마 인용했지 싶습니다. 그만치 상불경보살품은 그동안 ≪법화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인간의 위대함, 지극히 고귀한 가치, 이 점에 대해서 상불경보살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인물을 등장시켜서 현실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가? 이것을 이제 표현하는 내용이 상불경보살품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을 우리가 그동안 많이 했습니다만 설사 앞에서 공부한 것을 다 잊어버린다하더라도 이 상불경보살품만 잘 기억하고 우리가 실천할 것 같으면 우리인생은 참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고 나아가서 어쩌면 매일매일 축제가 될 것입니다. 매일매일 엄청난 복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일어난 불편한 점, 갈등,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해결의 열쇠도 바로 이 상불경보살품의 가르침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아주 지극한 인간존중의 가르침이다, 그런 뜻이에요. 인간존중도 보통이 아니고 모든 이를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그와 같은 지극히 인간을 존중하는 그와 같은 내용이 바로 상불경보살품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상불경 이야기는 중간에 이제 나옵니다. 우선
‘1. ≪법화경≫의 죄(罪)와 공덕(功德)’
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보면 ≪법화경≫을 비방하든지 ≪법화경≫을 가지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든지 할 것 같으면 설사 욕설을 좀 한다하더라도 그 사람은 엄청난 죄의 과보를 받는다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왜 그런고 하면 ≪법화경≫을 비방한다고 하는 그 일은 곧 인간을 비방하는 일이고, 인간을 비하하는 일이고, 인간을 업신여기는 일이고, 인간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그 인간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자기 자신이 그것을 포함되어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제 1번으로 포함되어있어요. 그래서 여기서는 이제 ≪법화경≫ 이 뭐 경전 종이로 되고 글자로 설명돼있는 이 경전을 가지고 옳다 그르다 시시비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속뜻은 사람 사람을 존중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명을 경시해서 온갖 그런 참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그런 어떤 사건이 생긴다든지 하는 그 인간존중에 대한 그 마음이 없는, 그리고 나아가서 무시하고 멸시하고 사정없이 인명을 해치는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서 인명을 해치는 그런 일들을 ≪법화경≫을 비방하는 일이다, 이렇게 말한 거예요. 속뜻은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비방하는 일이고, 자기 자신을 무시하는 일이고 하기 때문에 곧 큰 죄벌을 받는다. 이런 의미가 포함되어있습니다.
|
앞에서 그런 말이 여러 번나왔습니다.
|
육근 청정의 공덕을 분별공덕품에서 아주 자세히 설명했었죠. 뭐 공덕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정말 이 ≪법화경≫의 가르침에 눈을 뜨면 세상에 눈을 뜨는 것이 되고 세상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감지하는 폭이 넓어지고 따라서 우리들 자신이 변화가 된다하는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있습니다. 여기 이제 ‘2. 위음왕(威音王)여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 이제 위음왕을 이제 보통 말하기를 최초의 부처님, 이런 표현을 해요. 왜 그런고 하니 ‘위(威)’라고 하는 말은 ‘물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육신을 말하는 거죠. 그 다음 ‘음(音)’하는 것은 ‘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우리가 육근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어떤 그 구성체를 이야기하는데 그 최초가 뭡니까. 색·성(色·聲)이야. 안·이(眼·耳)야. 눈으로 보는 사물. 또 귀로 듣는 소리. 그래서 그 둘만 취해서 여기서 표현한 것이 ‘위음(威音)’이 됩니다. ‘위(威)’는 ‘형상’을 말하는 것이고 ‘음(音)’은 ‘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위음왕 이전하면 우리 인간이 생기기 이전 우리 인간의 의식이 처음에 움직이기 이전 그것을 이제 위음왕 이전 이런 표현을 이제 선가(禪家)에서는 잘 써요. 그래서 이것도 상징하는 뜻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최초의 부처님. 그런 의미가 여기서 이제 숨어있어요. 요 내용을 2번 단락을 우리가 함께 독송하겠습니다.
|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가르친 그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있지 않습니다. 설사 앞으로 어떤 부처님이 나오신다하더라도 이러한 차제에 의해서 이러한 그 사람들의 수준과 근기에 맞춰서 대게 세 종류의 법을 이야기할 수가 있다. 그게 이제 소위 삼승이라는 거죠. 이승과 보살승. 거기 여러분 보면 성문성을 위해서 사제법 고집멸도 사제를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벽지불 그보다 한 단계 높은 거죠. 벽지불을 구하는 이에게는 십이 인연법(十二因緣法)을 말씀하고 그 다음에 이제 보살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최상의 깨달음을 인하여 여섯 가지 바라밀 법을 설하시어 구경에는 부처의 지혜를 얻게 하셨느니라. 그랬습니다. 여기 이제 그 삼 단계로서, 저 앞에서도 여러 번 정리를 했습니다. 뭐 대통지승불이 세상에 출현했을 때도 이와 같은 법을 말씀하셨고 석가모니부처님도 이와 같은 순서에 의해서 말씀하셨다. 그래요.
≪법화경≫은 그 불교의 총서이기 때문에 그 불교 전반에 대해서 전부 간추릴 수가 있고 정의할 수가 있도록 되어있는 게 이 ≪법화경≫입니다. 이런 것을 좀 더 부연설명하면 예를 들어서 가장 낮은 차원의 성문법은 사제법, 사제법 속에는 또 팔정도가 또 들어있죠. 그 다음에 이제 벽지불하면 이제 연각이라고도 하는데 그 차원은 이제 십이인연이 근본이 되면서 연기의 이치 또 무아의 이치, 공의 이치, 이런 것들이 또 쭉 이렇게 설명될 수가 있습니다. 대게 이제 우리 불교는 그런 내용으로 짜여져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이제 보살 거기서 이제 한 단계 높은 입장인데 거기엔 뭐라고? 여섯 가지 바라밀을 말씀하셔서 그 바라밀을 통해서 구경에는 부처님의 지혜를 부처님이 얻으신 그 지혜를 얻게 한다, 라고 하는 그런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법화경≫공부를 우리가 유심히 잘하면 사실 이러한 불교 전반적인 그 교리라든지 이런 것들을 아주 쉽게 정리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전부 정리를 잘해서 아 이것은 어디에 해당되고 이것은 어디에 해당된다. 내가 어떤 내용을 좋아하면 아, 나는 이건 성문법이구나. 나는 이것은 벽지불, 연각법이구나. 아, 이것은 예를 들어서 육바라밀을 잘 닦고 보살행을 잘하는 사람은 아, 이것은 보살법이구나. 이런 것을 알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쯤에 이제 우리가 ≪법화경≫을 공부했으면 이러한 것을 통해서 간단하게 정리를 했잖습니까? 다시 우리 마음속에서 그동안 공부한 불교전반을 이렇게 정리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제 간단하게 제목만 열거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어디서 누가 사제법을 한다든지 팔정도 법문을 한다든지 아 저것은 성문법이구나, 성문법이구나, 만약 여기도 이제 해당되지 않는 것 성문보다 더 밑의 법이 있어요. 그건 이제 인천인과교라 해서 불교 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건 이제 세속에서도 똑같은 말을 하고 불교 안에서도 그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건 뭔고 하니 성인 선과 악의 낙과 선한 일을 하면 선한 과보를 받고 악한 일을 하면 악의 과보를 받는다. 그래서 이제 사람으로 태어난다든지 아니면 사람으로 태어나서도 아주 천상사람처럼 복을 많이 누린다든지 이런 그 이야기가 많이 불교 안에서 설해지고 있잖습니까? 그것이 이제 소위 ‘인천인과교’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으로 아주 또는 아주 부유한 삶, 천상의 삶과 같은 그런 삶을 염두에 두고 좋은 일을 하고 그런 그 원리를 심는다. 그건 이제 성문보다도 더 이제 밑이에요. 그걸 이제 유치원의 수준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고 성문은 초등학교 수준, 그 다음에 벽지불은 고등학교나 중학교 수준, 그 다음에 보살은 고등학교 수준, 그 다음에 이제 부처의 삶을 사는 것 이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 그래서
‘회삼귀일(會三歸一)’ 그러죠. 이 삼승을 다 모아서 성문, 벽지불, 보살 이것을 전부 모아서 하나의 부처의 삶으로 회향하도록 돼있는 것. 이것이 이제 ≪법화경≫의 중요한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한 마디로 ‘회삼귀일’이다, 이렇게 이제 표현을 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위음왕부처님도 석가모니부처님이 그렇게 설명하셨듯이 역시 이제 이러한 차제에 의해서 설법하셨다하는 내용입니다. 그 다음
|
뭐예요? 위음(威音)은 뭡니까? 듣는 것, 보는 것, 또 사물. 음(音)은 듣는 것. 보고 듣는 이 사실입니다. 이 사실. 그게 뭡니까? 사람이죠.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부처님이 많이 탄생을 하고 또 새로운 부처님이 오신다하더라도 역시 사람으로 오셨고 그것은 결국 다른 차원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부처님이시다.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많고 많은 세월 전에 기껏해야 인류의 역사가 불과 만년도 채 안됐는데 언제 무슨 부처님이 있었단 말입니까? 이건 다 우리를 깨우치기 위한 상징적인 이야기예요.
역시 이제 위음왕부처님인데 십호(十號)를 구족했다.
|
왜 또 2입니까. 삼만억도 좋고 일만억도 좋고 사만억, 오만억도 좋은데 이건 상대적인 것을 표현한 것이다.
‘2’라고 하는 것은 나와 너, 주관과 객관, 이 모든 것을 이라고 하는 숫자는 전체를 다 아우르는 말입니다. 전체를 아우르는 말. 그 뭐 위음왕 부처님이 석가모니부처님처럼 그렇게 역사적인 인물로서 이 만억 부처님이 차례차례로 출현하였다면 뭐 어떻게 무슨 이야기죠 그게 도대체. 석가모니부처님이 오신지가 기껏해야 이천육백 년밖에 안되는데 그때만 해도 미개한 시대였었고 한데, 이만 억이라니 한 부처님이 출현해서도 어마어마한 세월이 지나고 그 부처님이 열반해야 또 어마어마한 세월이 지나게 되는데 이러한 것을 우리가 깊이 이제 마음에 새기면서 이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보면 너도 나도 따지고 보면 본래로 부처님과 같은 존귀한 존재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이 상불경 보살을 등장시켜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데 그런 그 표현을 하기 이전에 말하자면 정지자급?이라고나 할까. 사전 분위기조성을 위해서 이와 같은 위음왕부처님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상불경(常不輕)보살의 인간존중(人間尊重)이라, 이건 이제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같이 그 페이지를 읽고 또 말씀을 드리도록 하죠. 같이 읽겠습니다.
|
이것입니다. 이것이 ≪법화경≫입니다. ≪법화경≫의 말하자면 핵심이 이 한 단락에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것을 잘 우리가 기억해서 일상생활에 실천에 옮길 것 같으면 우리 삶은 매일 매일 축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한한 복이 매일 매일 쏟아질 것이다, 내가 서두에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궁극적으로 불교라고 하는 것이, 또 성인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가정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다 행복하게 하자고 하는 것이 성인의 뜻이요, 불교의 최종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그 열쇠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그 열쇠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바로 이 단락입니다. ‘상불경 보살의 인간존중’! 인간을 어느 정도로 존중하는가?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예배하고 찬탄하고 공경하고 찬탄하고 공양올리고, 이렇게 함으로 해서 첫째는 가까이로는 우리 가족과 가족 사이에 이러한 마음자세로 살면 그 가족은 정말 화기애애할 것이고, 늘 행복이 넘쳐날 것이고, 한 마을에서 서로 예배하고 공경하고 찬탄하고 힘닿는데 까지 보살피고 공양올리고, 나아가서 부처님처럼 우리가 마음속으로 그렇게 받든다면 그 마을은 정말 행복한 마을이요, 행복한 삶을 모두 다 같이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 어느 집에서 굶는다고 하면 부처님이 굶고 있으니까 얼른 쫒아가서 돌보아 줄 것이고 누가 아프다고 하면 얼른 쫒아가서 위로해 주고 간호해 줄 것입니다. 이것이 좀더 확대되어서 전 국토 아니, 전 세계로 이게 이러한 운동이 퍼져나간다면 그건 뭐 두 말 할 것도 없이 성인들이 꿈꾸던, 그리고 부처님이 꿈꾸던, 불교가 꿈꾸던 그런 그 평화와 행복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내놓은 세계평화의 유일한 열쇠입니다.
이것 밖에 달리 다른 열쇠 없어요. 모두 무슨 과학은 과학대로 의학은 의학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모두가 세상을 행복하고 평화롭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마는 그러한 것으로는 결코 세상이 평화롭거나 행복할 수 가 없습니다.
정말 이 성인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에 우리가 탄복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은 정말 행복의 열쇠를 너무나도 정확하게, 유일무이한, 최선의 방법으로써 이러한 그 열쇠를 우리에게 내 놓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예배하고 찬탄하고 공경하고 보살피고 받드는 일, 이것이 진정한 ≪법화경≫이다.
그래서 이것을 이제 가정에다가 연결시켜서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이제 그러지마는 가족 부처님을 일단 먼저 잘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위하고 공경하라.
법당에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일을 배우는 것은 연습장이다, 여기는. 여기는 연습장이니까 연습장에서 잘 연습을 쌓아서 가정에 가서, 실전에 가서 잘 써라 말이야, 실전에. 부처님께는 그저 코가 땅에 닿도록 예배하면서 그 뭐 부처님은 무슨 부처님, 불상창고 잔뜩, 곳곳에 쌓아놓은 저 한량없는 부처님에게 그야말로 창고에 쌓아놓은 그야말로 불상 아닙니까? 저 불상 만드는데 가보면요, 정말 신심 떨어지게 해요.(대중, 웃음)왜냐? 내가 만들어도 다량으로 제작하려면 그 뭐 어떻게 합니까? 일일이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만들 수는 없잖아요.
내가 옛날에 그림을 좋아해가지고 탱화 배우러 갔었어요. 탱화 그리는 분에게 어려서 가가지고 아주 그 참 내가 아주 고불화와 같은?? 천하에 제일가는 그림을 한번 그려 보겠다고 탱화 그리는 분을 이제 찾아 갔었습니다. 지금도 그 분 살아있어요. 누구라고 하면 다 알 수 있는 분인데 가서 가만히 한 달간 이제 필력 올리는 연습을 시키더라구요. 필력, 그러니까 처음엔 이제 사불이라 해서 그림을 그대로 밑에다 놓고 그 위에 자꾸 그려요. 그래 가지고 필력을 올리고 하는 그런 훈련을 한달 쯤 받고, 어느날은 한번 이렇게 내 방에서 나와서 그 스승 되는 스님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니까, 탱화를 큰 이런 그 방에다가 널어놓고 그리는데 지근지근 밟으면서 그리는데(대중, 웃음), 불상을 지근지근 밟으면서 그리는 거야.
넓은, 큰 불상이니까 안 밟으면서 그릴 수가 없어, 사실은. 알고 보면은 밟지 않고는 그릴 수가 없게 되어 있는데 내가 그 밟는 것을 보고는 그만 신심이 따~악 떨어져가지고는 그 길로 나와 버렸어요.(대중, 웃음)
우리는 그림도 그와 같이 생각을 합니다. 그림도 그와 같이 생각을 하고 저 불상도 부처님이다, 고 생각합니다. 또 부처·불(佛)자 하나만 모래에 써놓고도 그것 발로 감히 못 지웁니다. 손으로 곱게 지우죠.
신문에 부처 불자 하나만 써놔도 그것을 함부로 처리하지 못하고 가서 태우든지, 함부로 휴지통에 못 버리는 게 우리 불자의 마음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또.
우리는 연습장에선 그렇게 합니다. 정말 코가 땅에 닿도록 그렇게 연습을 하고 정작 실전에 가가지고는, 실전에 가가지고는 뭐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들이나 형제들이나 보면은 그저 이해관계로 눈치보고 신경질부터 내고 이마에 내 천(川)자부터 쓰고 그렇게 하면 안 돼죠.
여기서 연습장에서 잘한 그대로 연습한 대로 뭐라고? 실전엔 연습같이, 연습은 실전같이, 그렇게 사세요, 좀.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같이, 여기서 연습한 대로 집에 가서 우리 가족들을 전부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하면은 가정은 뭐 설사 좀 궁하게 살아도 먹을 것이 좀 모자라도 정말 화기애애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제 차츰차츰 퍼져 나가고 이웃집으로 또 이웃집으로 이래서 동네에서 전 시내로, 그리고 전 국토로 전 세계로 이렇게 퍼져나간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세계 평화를 가져오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인간존중, 어느 정도로 존중하는가? 부처님처럼 존중한다. 우리가 평소에 부처님을 존중하듯이 그렇게 존중한다 하는 게 이게 이제 상불경 보살품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의 모든 내용 다 잊어버려도 좋다, 그리고 이 상불경 보살품에는 ≪법화경≫의 그 아주 핵심, 그리고 오롯한 정신 그대로 다 담아 있다.
그것을 상불경이라고 하는 보살이 구체적으로 등장해서 우리에게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페이지 또 같이 읽겠습니다. 너무 좋은 내용이에요.
|
정말 ≪법화경≫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 분은 경전을 읽는 것도 아니요 무슨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니요 참선을 하는 것도 아니요 무슨 염불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모든 사람이 부처님으로 자기 눈에 비치니까 아무리 경전 외우고 참선하고 하는 것이 바쁘더라도 기도하고 하는 게 바쁘더라도 어떻게?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께 일단 예배부터 하고 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 법당에 오셔서 우리가 일단 부처님께 먼저 예배를 하지 않습니까? 이 분은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부처님으로 보이니까 부처님께 예배하다가 보니까 경전 읽을 시간도 없는 거야. 참선할 시간도 없고 기도할 시간도 없어. 이런 표현도 이 속에 아~! 정말 깊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 하는 일은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고 예배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보살피고 하는 그 일이다, 하는 것입니다. 무엇 보다 우선 하는 일이,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그 일’이다.
그래서 이제 멀리서 사부대중을 보더라도 또 일부러 거기에 쫒아 가가지고 또 예배하면서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부처님이 저 만치 있다 하면 우리가 가만히 여기 앉아서 뭐 자기 볼 일 보겠습니까? 아니죠! 쫒아 가겠죠. 부리나케 달려가서 예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는 그대들을 깊이 공경하고 감히 가벼이 여기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보살의 도를 행하여 마땅히 성불(成佛)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하였다.
‘당신은 부처님’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당신은 부처님’, ‘그대들은 마땅히 성불하리라!’‘당신은 부처님’, ‘당신은 부처님’!
아 우리가 이것이 참 마음에서 얼른 우러나지 않고 또 몸으로 쉽게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 밖에 달리 다른 답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내용이 뭐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을 모두 행복하게 하자는 것이고 행복하게 하려면 어떻게? 지혜의 눈이 있어야 된다. 지혜의 눈은 뭘 하자고 하는 것인가? 사람의 지극히 고귀한 가치에 눈을 뜨자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극한 고귀한 가치란 바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한 마디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그 말뜻에는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죠.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부처님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안목은 곧 지혜입니다. 그것이 지혜예요.
내가 간혹 비유를 들죠. 수억 짜리 고려청자에 눈이 어두울 때는 그걸 볼 줄 모를 때는 개에게 밥이나 주는 쓸모없는 개밥 그릇 정도로 보았지마는 정말 고려청자에 이해가 있고 눈을 뜨고 알아보는 안목이 있을 때는 그건 정말 둘도 없는 국보급 고려청자라고 하는 것을 알면은 얼마나 잘 위합니까?
몇 백 만원짜리 아마 함을 짜가지고 그 안에다 넣을 겁니다. 그와 같이 우리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을 때 인간을 존중하게 되고 위하게 되고 받들어 모시게 되고, 또 불우한 사람,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 저 그늘 속에서 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말하자면 내가 가서, 우정 달려가서 그들을 돕고 위로해 주고 감싸주고 보살펴주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이제 간혹 사부대중 가운데 화를 내거나 마음이 부정한 사람은 그런 말을 듣고는 나쁜 말로 욕설을 하면서 “이 무지한 비구야! 네가 뭔데 어디서 와서 뭐 경멸하지 않는다, 존경한다 하면서 수기, 허망한 수기를 주는가?”
이렇게 하더라도 그에게 전혀 화를 내거나 대꾸하지 않고 그 욕설과 꾸짖음을 당하여도 절대 화내지 아니하고 역시 ‘그대들은 마땅히 성불하리라’, ‘당신은 부처님’ 이라고 하는 그 마음은 변함이 없고 그 말은 역시 변함이 없이 그들에게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백련화 사진
º 地圓 스님
사진 및 동영상 촬영
º 문수법공양회 º 慧明華님 º 석천 慧江님
|
첫댓글 나는 그대들을 깊이 공경하고 감히 가벼이 여기거나 업신여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보살의 도를 행하여 마땅히 성불 할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_()()()_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가정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다 행복하게 하자고 하는 것이 성인의 뜻이요, 불교의 최종 목표입니다...고맙습니다_()()()_
상불경보살품 공부할때는 상경화보살님이 생각납니다. _()()()_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예배하고 찬탄하고 공경하고 보살피고 받드는 일, 이것이 진정한 ≪법화경≫이다...고맙습니다. _()()()_
_()()()_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고맙습니다.
인간을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끊임없이 예경하고 공경, 찬탄, 공양올리면서 가족과 마을과 국가와 전세계가 평화와 행복의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불교에서 내놓은 “유일한 열쇠”가 바로 우리에게 인간존중의 모습을 보여주는 법화경 고맙습니다._()()()_
역시 사람으로 오셨고 그것은 결국 다른 차원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부처님이시다..._()()()_
모든사람을 부처님으로 예배하고 찬탄 공경하고 보살피고 받드는일 이것이 진정한 법화경이다, 명성화님 고맙습니다,_()()()_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고 예배,존중,공경하고 보살피는 일.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일....사람이 부처님이다.고맙습니다.촌음을 아껴가며 불사하시는 명성화님 고맙습니다. .._()()()_
상불경보살의 인간존중 사상에 흠뻑 빠져봅니다.당신은 부처님!.명성화님,고맙습니다_()()()_
너도 나도 따지고 보면 본래로 부처님과 같은 존귀한 존재다..명성화 님! 수고하셨습니다.._()()()_
상불경 보살의 인간존중(법화경의 핵심)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일... 당신은 부처님~~ 고맙습니다.._()()()_
당신은 부처님 _()()()_
무엇 보다 우선 하는 일이,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그 일’이다...고맙습니다._()()()_
_()()()_
≪법화경≫을 우리가 그동안 많이 했습니다만 설사 앞에서 공부한 것을 다 잊어버린다하더라도 이 상불경보살품만 잘 기억하고 우리가 실천할 것 같으면 우리인생은 참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고 나아가서 어쩌면 매일매일 축제가 될 것입니다. 매일매일 엄청난 복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일어난 불편한 점, 갈등,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해결의 열쇠도 바로 이 상불경보살품의 가르침에 있습니다.
_()()()_
南無實相妙法蓮華經 南無實相妙法蓮華經 南無實相妙法蓮華經..常不輕.._()()()_
그 무엇보다도 우선 하는 일은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고 예배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보살피고 하는 그 일이다, 하는 것입니다. 무엇 보다 우선 하는 일이,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그 일’이다. ... _()_
_()()()_
법화경을 비방함은 무엇을 뜻하는가 ... 다시한번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_()_
상불경보살 _()()()_
감사합니다()
(**)()()상불경보살님처럼 살아야지...(*)()()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예배하고 찬탄하고 공경하고 보살피고 받드는 일 이것이 진정한" 법화경 " 이다. 고맙습니다. 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읍니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예배하고 공경하고 찬탄하고 보살피는 것=상불경 보살
--법화경의 핵심
상불경 보살;경전을 읽지도 않고 예배만 하고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수기줌
-참선 기도 독경보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고 예배,존중하고 받듬
-한 마디로 사람이 부처님임을 실천하는 것
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_()()()_
_()()()_
감사합니다 나무 묘법연화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