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1991년 8월 14일자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510&PCode=0007&DataID=199108140016000028
“금세기통일” 예언한 「단 할아버지」 권태훈옹(세계일보인터뷰)
◎“백두산족이 세계를 이끌 대운을 탔다”/
7∼8년후 연방제형식 거쳐 20년후 완전통일/
북한기운 기울어…
김일성만 죽으면 금방 변화/
남북통일은 황인종이 득세할 「황백전환기」의 기점될것 1984년,냉전이 극에 달해 LA올림픽에 소련등 공산국가들이 불참하고 남북한간에는 아웅산폭파사건으로 긴장감이 감돌던 시절,대정교 총전교인 권태훈옹(91)은 소설 「단」을 통해 감히 통일을 「예언」했다.
『앞으로 15년,그리던 남북통일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쓴 소설 「단」은 불안한 시절에 한줄기 빛이 되어 1백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으나 「예언」이 성취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의 예언」은 지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최근 세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도 전 국민의 43%가 「금세기내 통일」을 믿고 있다. 그뿐 아니다. 세계의 중심이 백두산족에 옮겨질 것이라는 권옹의 예언도 최근 남북한 소련 중국 4개국의 동북아경제권 논의로 실제화되는 정세다. 권옹을 만나 「통일의 예언」과 백두산족의 미래 등을 재확인해 본다.
<편집자주> 흰 수염.뒤로 한번 묶어 허리까지 늘어뜨린 백발. 주름살이 거의 없는 홍안에 맑은 눈동자.
「단할아버지」로 알려진 여해 권태훈옹은 옛날 그림속에 나오는 도인의 모습이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44의3 만수당한의원 응접실에서 권옹은 1시간여동안 꼿꼿이 앉아 「통일의 예언」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해주었다. 권옹의 청력이 나빠져 큰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여 인터뷰에는 대정교 삼일원연구원생인 우원상씨(정경정사편수위원)가 배석해 도움을 주었다.
노태우대통령이 지난7월 남북통일이 금세기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통일을 예언했던 84년 당시 많은 사람들이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웃었던걸 생각하면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선생님의 「예언」을 다시 확인하고 싶습니다.
△예언은 무슨 예언입니까.알고 해야 예언이지 아무 말이나 마구 하면 망발이지요.
(권옹의 답변은 전혀 뜻밖이어서 이후부터 인터뷰는 사실상 즉흥대답이 돼버리고 말았다) 망발이라니요.선생님의 「예언」이 착착 현실화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번에 평양에서 총리회담이 열린다고 하지만 성사될게 하나도 없습니다.
제의가 성사되려면 양쪽이 서로 닿아야 합니다.
이쪽에서는 여기 이야기만 하고 저쪽에서는 저기 이야기만 해서는 성사가 될리가 없죠.
그러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좋겠습니까.
△동족으로서 동질성을 찾는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남과 북의 뿌리가 같으니까 조상찾기가 좋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겠습니까.
△이번 8·15에 대종교는 「제2광복선언」을 합니다.
민족 5천년간 이어온 개천절 행사를 남북 공동으로 백두산에서 하자는 겁니다.
그게 바로 조상을 찾자는 이야기입니다.
북한당국은 백두산을 김정일이 태어난 「밀영」이라고 성역화해 놓고 우상화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단군신화를 받아들이겠습니까.
△백두산의 단군역사는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광복선언에 「제2」라는 수식어가 왜 붙습니까.
△1945년의 광복은 반쪽만 찾은 것입니다.
앞으로 「제2의 광복선언」은 남북통일로 잃어버린 것을 다 찾자는 「완전한 광복선언」입니다.
앞으로 「제3의 광복선언」이 나올 겁니다.
「제3의 광복선언」은 무엇입니까.
△소설「단」이 나온 후 미국학자들이 아홉번이나 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첫번째는 보스턴에 있는 대학의 교수였는데 여기 오기 전에 8개월간 조선말을 배우고 중국 곤륜산에 들러 노인들도 만나보고 준비를 단단히 했더군요.
그 노인들이 이야기를 제대로 해줬을리는 없겠지만.
곤륜산의 노인들이라면 선도를 닦는다는 도인들이군요.
△그 미국교수가 며칠째 계속 만나러 오면서도 제대로 말을 못하고 머뭇거려요.
그래서 내가
『당신들이 옛날부터 갖고 있는 생각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에 대해 묻고 싶어서 온 것 아니냐』고 운을 뗐더니
『그게 뭐냐』고 되묻더군요.
내가 『「황화」,그것이 걱정 아니냐』고 했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어떻게 아셨느냐』고 해
『내가 황인종이지 백인종이냐.「황화론」 찾는데 어찌 나한테 오느냐』고 야단을 쳐서 보냈습니다.
다음에 온 미국교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황화론이란 황색인종의 융성이 백인 기독교문명에 위협이 될 것이므로 유럽이 단결하여 대처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1895년 독일황제 빌헬름2세가 처음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옹은 백두산족에게 3천년의 대운이 와 만주 몽고 북중국이 백두산족의 영토가 되며 세계의 중심이 동양으로 선회하는 「황백대전환기」를 맞이한다고 예언했다.)
△6·25를 동족상잔이라고 하지만 큰 눈으로 보면 황인종들이 망하도록 백인종들이 일으킨 전쟁입니다. 미국이 6·25때 우리를 도왔다고 할아버지 위하듯 받들면 안됩니다.
우리는 잘살건 못살건 자립해야 합니다.
남의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게 세상의 이치죠.
현재 국제정세로는 미소가 통일을 돕고 일본이 방해하지 않나 싶은데요.
△일본인은 우리와 같은 백두산족입니다.
신무천황은 제주에서 구주를 거쳐 들어간 조선족입니다.
백제사람들도 많이 가서 일본토족들을 몰아냈습니다.
우리는 제사드릴때 북쪽을 보고 절하는 데 일본인들은 서쪽이나 서북쪽을 보고 절합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백두산에다 절을 하는 겁니다.
소련도 시베리아 지역은 옛날에 「흉노」라고 불리던 백두산족의 영토입니다.
중국도 양자강 이북은 7할 이상이 백두산족이 살고 있습니다.
남북통일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들 백두산족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대운이 왔습니다.
「제3의 광복선언」은 이 백두산족의 공동운동선언이 될 것입니다.
남북통일은 「황백전환기의 기점」입니다.
그렇다면 남북통일이 「단」에서의 예언대로 금세기내에 이뤄지는 겁니까.
△84년에 15년을 이야기했으니까 아직 7∼8년 남았죠.
통일은 우선 양쪽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연방제 형식이 될 겁니다.
그리고 20년쯤 지나야 실질적인 통일이 됩니다.
갑오년(2014년)이 돼야 할 겁니다.
북쪽 사람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공산주의에 물들었는데 어디 쉽게 물이 빠지겠습니까.
억지로 누르면 안되고 천천히 순리적으로 풀어나가야지요.
소설「단」이 나왔을때 많은 사람들이 읽었습니다만 대부분「재미는 있지만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웃었습니다. 사람들이 납득하고 믿을 수 있도록 그 근거를 설명해 주십시오.
△사람들이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하는데 없다고 하는 것이죠.
나는 오랜 수도생활을 통해서 깨달은 비법으로 본걸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선생님은 시베리아가 우리의 영토가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러시아가 옛날에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아넘기고 얼마나 후회했는데 소련이 시베리아를 우리에게 넘기겠습니까.
△옛날같이 무력으로 점령하는 영토개념으로 보면 그렇지요
.미래의 영토개념은 그런게 아닙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왕래하고 경제 문화적으로 우리의 영향권에 들어오면 우리의 영토입니다.
선생님은 역술은 물론 천문 지리 산법까지 통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관상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내가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의 관상을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항간에는 김일성이 「흑용상」이라느니 여러가지 얘기도 있습니다.
보신대로 말씀해주십시오.
△김일성의 운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북쪽의 운이 기울기 시작했죠.
김일성은 고려말에 죽은 장군이 환생한 인물입니다.
살다가 죽도록 놔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김일성의 전생이 아까워서 나는 욕도 못하겠습니다.
그렇습니까…
김일성이 내년에 80세가 되면 노동당 7차 전당대회를 열어 김정일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은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데요.
△김일성은 절대 물러나지 않습니다.
김일성이 가면 김정일은 대번에 쓰러집니다.
김일성이 죽으면 북한이 금방 변할 겁니다.
소설 「단」에서 통일과 함께 광개토대왕같은 탁월한 지도자와 을지문덕같은 대영웅이 출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남북통일을 맞는 대통령은 그야말로 「대운」을 지닌 지도자라고 하겠는데 그게 누구입니까.
△지금 「대권」운운하는 정치인들 중에는 그런 인물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호칭이 하도 많아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학도인」이라고도 하고 「권필진옹」이라고 하는데 어느 호칭이 옳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배석한 우원상씨가 대답했다) 「우학도인」「권필진」은 소설을 쓴 작가가 지은 이름입니다. 아호는 모든 것을 수용한다는 뜻이 담긴 「여해」고, 대종교인들은 「도형」또는 「대형」이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건강하게 오래 사십시오.
△옛날에는 일제때 순경이 내 손목과 팔에 묶은 포승줄을 끊어버린 힘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요. 앞으로 7∼8년쯤 더 살겁니다. 19세기의 마지막해인 1900년에 태어난 권옹이 굳이 자신의 수명을 20세기말까지로 강조한 것은 「통일의 예언」을 반드시 지켜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1991.08.14 (수) 07:30
봉우선생님 평화 신문 1992년도 인터뷰 기사
이 글은 구재회 님께서 2002년 7월29일 구 연구소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주셨던 내용입니다. 몇년전 홈페이지 개편 와중에 게시판의 많은 자료가 소실되었는데 다행히 연구소에서 따로 이 자료를 프린트하여 보관하고 있었던바 이번에 다시 봉우선생님의 귀한 말씀이 담긴 자료를 올립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귀한 자료를 올려주셨던 구재회 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평화신문이 가톨릭 종교신문인 점을 참고하고 보시면 내용 이해에 조금 더 도움이 되시리라 봅니다. - 관리자 주 -
이하 구재회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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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9 구재회 등록]
봉우 할아버지 평화 신문 인터뷰 기사
이 기사는 단기 4325년(서기1992년) 9월말, 당시 평화신문 취재부장이었던 필자가 봉우할아버지를 뵙고 인터뷰한 기사 원고입니다. 그해 개천절을 기념하여 인터뷰, 취재하였으나 신문사 편집방침등 사정상 기사화 되지는 못하였습니다. 아래에 당시 필자가 쓴 원고를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참고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기사를 다시 쓴다면 이렇게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표현법이나 내용면에서 당시 무식했던 필자를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할아버지와 함께 촬영한 사진도 여러장 있으나 여기에는 올리지 않겠사오니 양해 있으시길 바랍니다. 당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생생합니다. 큰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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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 :
단군 왕검이 이 나라를 세운지 4325년이 되었다는 올해 10월 3일 개천절, 21세기를 앞둔 오늘의 한국인들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우리민족의 미래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인간정신 함양에 남다른 신념을 가지고 90평생 민족의 뿌리 탐구와 그 고유한 얼을 구현하는데 힘을 기울여 온 여해 권태훈옹(93, 사진)을 만나 민족과 세계에 대한 그의 ‘구도자적 신념’을 들어 보았다.
“우리 겨레가 역사의 전면에서 퇴조하기 시작한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중국의 중화주의, 일본의 국수주의, 서구열강의 패권주의에 의해 온갖 역사적 굴욕과 침략, 문화적 수탈을 당해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금 이같은 역사의 어둠을 벗어나 새로운 새벽을 열어야 합니다.”
또박또박 ‘습니다’ 말미를 구사하는 권옹의 모습은 93세의 노인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의 쇠운은 끝이 나고 서서히 권토중래하게 됩니다. 고구려의 옛 영광, 그 이상의 세상이 도래할 것으로 봅니다. 7~8년 이내로 무혈의 남북통일이 이루어져 북만주까지 우리민족의 세력은 뻗어 나갈 것입니다. 이제 세계사는 우리 중심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인류 최초의 동방 문명을 건설한 주역이라고 한다. 그간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질서를 파괴했던 각종 인명살상용 무기를 오히려 무력화 시키는 새로운 무기 -히로시마 원폭의 60배에 달하는- 가 우리 손에 의해 발명 된다는 것이다.
이 무슨 점인가, 예언인가, 아니면 신념인가. 정신을 가다듬고 어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는 이미 지난 1984년에 말한 것이라 했다. 소련의 분열, 중국의 양분을 미리 예측해 두었다는 것이다.
“단군 왕검과 고구려 후손의 기상이 어디 갔습니까? 왜 만주족을 적으로 알며 중국 만리장성 이북과 시베리아를 남의 땅으로 믿습니까? 우리는 식민사관의 사슬로부터 무기력과 나태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된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도래할 우리 민족의 영광의 시대는 결코 경쟁과 투쟁의 시대가 아니고 조화와 평화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가져야할 의식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한국인이면서 세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것만 보지 말고 지구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너희나라 따질 것 없습니다. 나는 좋은사람, 너는 나쁜사람 이렇게 말할 때 문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홍익인간을 논할 수 있는 겁니다.”
그는 이어서 인간을 우주진리의 결실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인간의 머리골 안에 온 우주를 창조하신 신이 내려 있다고 한다. 따라서 60억 인류 전체에 내려있는 하느님의 얼이 하나이기 때문에 온 인류를 하나로 보는 자세가 올바른 인간관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류 일체감에 대한 좌표가 홍익인간이라는 것이다. 80년대 중반 언젠가 개천절을 지난 한달 후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에서 가톨릭도 제 모습을 다하기 위해서는 홍익인간의 참뜻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우리 인간 전체가 한 몸이라고 볼 때, 비로소 세계를 볼 수 있는 이치입니다. 그것이 또한 사랑의 본질입니다. 자기 자식만 사랑한다면 공리주의적 이기주의가 아닙니까? 진정한 의미의 성인은 말하는 자연이요, 자연은 말 못하는 성인입니다.”
누구나 쉽게 알아듣기 어려운 표현이다. 권옹이 생각하는 자연 또한 마찬가지 신성한 피조물로써 귀중하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돌과 나무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 절대자 진리로 갈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했고, 부처님이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는데 여기서의 ‘나’는 개인 예수나 석가가 아니고 바로 그리스도요 불성이라고 봅니다. 실체를 깨달은 ’나‘가 알고보니 진리이고 결국 ’나‘와 ’진리‘가 하나였더란 말씀입니다.”
결국 인간 생명을 말살하는 전쟁이나 낙태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설명이 이처럼 길어진 것이다. 다른 민족을 핍박, 멸시하거나 권익을 말살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권옹은 또 지난 84년 황백전환을 주장했다고 한다. 백색인종이 쇠하고 황색인종이 득세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 대한 극진한 애착의 결과로 분석되지만.
“미국의 석학들이 이미 아홉 차례나 저를 찾아왔습니다. 미국에서는 전부터 황화론이 대두되 긴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학자들은 미국을 능히 극복할 황색인종이 어느 나라인지 미리 파악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비밀스레 조사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히말라야 곤륜산을 10여 차례 다녀왔으며 중국에도 수십차례 다니며 조사해 보았으나 장생법이나 연구할 뿐 자기 민족의 장래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미국을 감히 넘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반으로 쪼개져 별 수 없을 터인데 왜 찾아왔냐고 물었습니다. 정신을 연구하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나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권옹이 우리 민족의 장래를 점치는 것은 단지 희망사항이 아니고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못을 박는다. 여러 가지 근거를 설명하기에는 시간적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결론만 얘기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남북 관계도 문제점은 있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소련이 갈라지고 나니 김일성은 중국밖에 갈 곳이 없었지요. 중국은 ‘그럼 북한 땅을 내놔라, 그러면 너 죽을때까지 봐주겠다’고 했다 합니다. 김일성은 그후 사람들을 통해 여러번 나를 좀 만나자고 했습니다. 자기가 오면 만나줄 수 있지만 내가 가지는 않습니다. 정이나 만나고 싶으면 백두산 꼭대기로 오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 백두산족이 갈라졌느냐 하면서 말입니다.”
그는 남북이 하나가 되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 그에 있어서는 만주, 몽고, 시베리아 모두 한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중국 학자들도 만리장성 이북은 자기네 땅이라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인재임을 토로한다. 운이 따른다 해서 무엇이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땀과 노력이 있는 곳에 결실이 있다는 신념이었다.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젊은이들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독립군에 가담한 적도 있었으며, 상해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을 도왔던 값진 추억도 있는 여해 권태훈 옹. 일본 형사들에게 스물일곱 번이나 구속되어 갖은 곤욕을 치렀던 그가 부르짖는 우리 민족의 이념, 즉 홍익인간의 실현도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에 근거하는 것이리라.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