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2장 36~38절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로 안나라는 여예언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았다. 그는 처녀 시절을 끝내고 일곱 해를 남편과 함께 살고, 과부가 되어서,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바로 이 때에 그가 다가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 <표준새번역>
성경배경주석에서 대림절과 관련하여 필요한 내용을 찾던 중 아주 재밌는 설명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 대림절에 만나볼 두번째 인물, '안나'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지금 문화에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 문화에서 충분히 그랬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내용이라 옮겨 적어 봅니다.
'유대문화와 헬라-로마 문화는 보통 재혼한 경험이 없는 과부를 경건하고 신실한 자로 여겼다. 유대 전승에 나오는 유명한 과부인 유딧은 105세에 죽을 때까지 과부로 살았다고 한다. 본문에 나오는 두 숫자 7과 84를 더하고(84라는 숫자를 안나의 나이로 보기보다는 안나가 과부로 산 기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서), 그녀가 결혼 적령기인 14세에 결혼했다고 한다면, 그녀 역시 105세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IVP 성경배경주석 신약편 224p)
바로 이 '안나'라는 인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분명해 보입니다. 안나는 '경건하고 신실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일단 안나가 어느 지파 사람인지 분명히 기록합니다. 시므온처럼 신비주의가 아니었던 이유는 그녀가 여예언자였는데, 당시에는 예언자들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남예언자도 잘 없었을 때였기에, 여예언자라는 것을 뒷받침 해주기 위해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이라는 것을 밝힘으로 그녀의 신분을 정확하게 보증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또한 안나는 시므온과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계시를 받고, 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선포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는 핸디캡이 있었습니다. 먼저 나이가 많았습니다. 흔히 나이가 많다는건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더 줄어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 다음에 바로 어떻게 나이가 들어왔는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처녀 시절을 끝내고 7년을 남편과 함께 살았는데 안타깝게도 남편이 먼저 죽습니다. 하지만 안나는 재혼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재혼을 택하지 않은 이유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녀는 성전을 떠나지 않는 성전 중심의 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단순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한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금식과 기도는 안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안나는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 나이 들어 가고 싶습니다. 한 살 한 살 더 나이가 많아질수록 성전중심의 생활을 이어가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금식과 기도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과부'라는 말이 주는 절망의 뉘앙스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부족해 보이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보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보이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 곁에도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안나는 그것을 분명히 깨달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남은 인생을 주를 위해 살리라 고백하며 하나님을 섬겨왔습니다. 언제나 절망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절망이라고 하지 않고 '위기'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한 지 7년만에 남편이 죽었지만, 거기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게 되는 기회를 안나는 꽉 붙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절망은 언제나 '기회'가 되는 위기의 순간입니다. 그 순간이 올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참 과부로서 의지할 데가 없는 이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간구와 기도를 드립니다. <디모데전서 5장 5절, 표준새번역>
안나는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깁니다. 오직 하나님만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구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둡니다. 그렇게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오래 참고, 인내했던 인물이 안나입니다. 그런 그녀에게도 시므온과 같이 '그런데 마침', '바로 그 때에' 오늘 본문과 같은 만남이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안나도 시므온의 찬양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결예식이 진행되는 그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기 예수를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여자는 예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 바로 그 자리에 왔다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이 구원될 날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의 이야기를 하였다. <누가복음 2장 38절, 공동번역>
안나는 그 자리에 가서 아이를 보자마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사실이 별거 아닌거 같지만 다시 한번 배워야 할 점이라고 느껴집니다. 만약에 저였다면 분명 먼저 감사부터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기 얼굴을 보려고 하거나, 안아 보려고 했다거나 다른 행동이 먼저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나는 다른 어떤 행동 양식이 첫번째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녀에게는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 땅에 성취되었음에 감사를 드린 후 그녀는 다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는 듯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고령의 여예언자가 곳곳으로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자신만 알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한 명이라도 더! 예루살렘이 구원될 날을 기다리던 모든 이들에게 '메시아'의 탄생을 전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적은 숫자가 아닌 듯 보입니다.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을 바라는 이들을 찾아가 이 아기에 대해서 전해주었습니다. 진정 '굿뉴스, 복음'을 전했던 사람이 바로, 안나였습니다. 안나는 기꺼이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아기 예수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다시금 믿음을 재정비할 수 있었을 것이고, 다시 하나님을 향한 설레임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안나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듣고는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진짜 신앙인이라면 이런 통로가 되어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시므온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성경에는 '안나'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 한명의 성령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어냈습니다. 추측하건대 안나는 매일매일 더 많은 사람에게 '메시아'를 전하면서 감사로, 기쁨으로 삶을 마무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안나의 삶이 실로 신앙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이 대림절에 '안나'를 만나본 이유입니다.
짧은 글을 정리하면서 지금도 여전히 이 '안나'로 살고 계시는 수많은 집사님들, 권사님들이 떠올랐습니다. 오늘도 눈물로 주님의 날을 기다리면서 대림절을 보내고 계실 그 분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 전에 없던 감사와 박수를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게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아가 아름다운 삶을 살고 계시는 집사님들, 권사님들이 아름다운 다리가 되어, 축복의 통로가 되어 많은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를 연결해주는 귀한 다리와 통로가 되어주시길 마음 다해 바래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8bxykulKAo
https://www.youtube.com/watch?v=3Mq17zCUaZo
https://www.youtube.com/watch?v=N1Y_jjrili8
https://www.youtube.com/watch?v=VeMTmt0sV1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