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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30회
화령-윤지미산-무지개산-신의터재-지기재
20230301
1.봄날을 꿈꾸는 산하
3월의 첫날, 오늘은 조선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하고 시민들이 수개월에 걸쳐 독립만세를 외친 3·1절 104주년 날이다. 조선 민중들은 비폭력적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조선의 독립을 이루지 못했고 일제는 패망할 때까지 조선의 약탈과 조선 민중들을 강제 징용하고 일본군 위안부로 이용하였다. 그런데 현재 일본의 자세는 어떤가? 일본은 조선의 식민 지배를 지금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데도 오직 선린善隣 외교만이 최선일까?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면 유관순 누나가 생각난다. 옥 속에 갇혀서도~~ 3·1절을 맞이하여 산행을 떠났다. 날은 구름이 잔뜩 끼어 흐리다. 파란 하늘이면 좋을텐데 잿빛 하늘이다. 희망의 마음으로 하늘을 본다. 뜨거운 가슴으로 시대를 간다.
화령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사진 몇 장을 남긴 뒤 남쪽 윤지미산 방향으로 백두대간 산줄기 산행을 출발한다. 주어진 시간이 6시간 30분이기에 여유있게 천천히 산길로 들어서 첫 고개를 올라섰다. 당진영덕고속도로가 화령 옆 화서1터널로 내달리고 남쪽으로 윤지미산이 어림된다. 산행팀 일행이 모두 앞지른 뒤 맨 뒤에서 여유를 부린다. 날씨는 흐리지만 봄의 따사로운 기운이 온몸을 파고들어 몸이 덥혀져 결국 방풍옷을 벗었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어려운 유일한 오름길, 윤지미산 된비탈길을 힘겹게 올랐다. 오른쪽으로는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판곡저수지가 들어온다. 윤지미산,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지만 설명안내판에는 유래는 없고 지리적 위치만을 설명해 놓았다.
낙엽이 쌓인 윤지미산 비탈길을 내려가면 백두대간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그랗게 돌아서 동쪽 무지개산 방향으로 이어가다가 무지개산 갈림목에서 남쪽으로 꺾어 이어진다. 이 길에서 윤지미산과 멀리 봉황산을 조망하는 즐거움, 동남쪽 무지개산을 가늠하며 꼬불꼬불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을 걸었다. 들꽃들은 아직 피지 않았고, 참나무 새싹은 봄날의 싹틔움을 위해 열심히 물길을 나뭇가지에 퍼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지개산은 3개의 동그마한 산봉들이 이어져 있는 끝 산봉이다. 왜 무지개산일까? 동쪽 하늘에 무지개처럼 동그란 형태로 솟아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을과 연관된 이름인지 알 수 없다. 이런 것은 설명안내판에 적어두면 얼마나 좋을까? 무지개산에서 북쪽으로 윤지미산이 조망된다. 지금까지 몇 차례 이 구간을 산행하면서 윤지미산의 위치의 중요성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무지개산을 내려와 서쪽에 동쪽으로 돌며 남진하는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간다. 여전히 멀리서 윤지미산이 손짓하고 방금 올랐던 무지개산은 가까이서 눈짓한다. 노간주나무 군락지 산봉에 올랐다. 노간주나무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 오전수업만 마치고 야산에 노간주나무를 심으러 다녔다. 그 시절에나 가능했을 것이다. 공부를 가르치지 않고 학생들을 동원하여 노역을 시키던 학창시절이 그리움과 약오름으로 가슴에 사무친다. 노간주나무 군락지 아래 안부에서 점심을 먹었다. 봄바람이 불어왔다. 쌀쌀한 기운이 있었지만 봄기운을 숨길 수 없다.
점심을 먹고나서는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산줄기는 동남쪽으로 이어진다. 여전히 윤지미산은 증표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그 동쪽으로 무지개산이 존재를 밝히고 방금 올랐던 노간주나무 군락지 산봉이 이들과 함께 조망된다. 산줄기는 갑자기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가다가 다시 동남쪽으로 이어진다. 산인 듯 들인 듯 농원이 있는 들에서 북쪽으로 윤지미산 능선이 멋지게 들어온다. 윤지미가 인명일까?
신의터재까지 백두대간 산줄기는 낮은 야산인 듯 작은 산봉을 거쳐간다. 오른쪽으로는 상주시 화동면 선교리의 비닐하우스 포도농원인 듯, 대규모로 펼쳐져 있고, 봄바람은 솔숲을 거쳐 불어온다. 바람은 몸을 서늘한 듯 따사한 듯 감싸고 흐렸던 하늘이 조금 맑아진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봄바람이 대지를 흔들며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다. 신의터재에 도착하니, 이곳저곳 여러 설치물들이 정신을 사납게 한다. 필요한 설치물들이기에 하나씩 샆펴 보았는데, 신의터재를 유래한 김준신 의병 대장과 신의터재 설명안내판, 신의치정 들만이 길손에게는 소중한 설치물처럼 보였다.
신의터재에서 지기재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오늘의 징표가 되는 윤지미산을 신의터재 남쪽 산줄기 송전탑 앞에서 최종적으로 바라보았다. 윤지미산, 오늘 너 덕분에 봄날을 꿈꾸는 백두대간 산줄기 산행을 즐겁게 한다. 이제 너를 어디서 볼까? 다시 만나러 와야 되겠지. 비닐하우스 포도농원을 거쳐 산길로 들어서서 동쪽으로 이어가다가 낮은 산봉을 올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상주시 모서면 석산리 지역에 이른다. 이곳에서 백두대간 산줄기는 끊어져서 마루금을 잇지 못하고 도로를 따라가게 된다. 마루금을 따라가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석산4길을 따라가다가 백두대간 마루금을 잇는 산길로 들어서 지기재로 내려왔다. 지기재 남쪽에는 안심산이 솟아 있고 지기재 들에는 봄농사에 바쁜 트랙터들이 굉음을 내고 있다. 봄날을 맞이하여 모두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만물이 약동하는 봄, 이 땅의 산하(山河)는 봄날을 꿈꾸며 분주하다.
2.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6.98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37분
언덕에 화령정이 있다.
국도25호선 영남제1로가 화령을 지나고 있다.
국도25호선 화령 남쪽에 백두대간 나들목이 있다.
화령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에 위치한 고개로 원래 이름은 화령(化寧)이었으나 지금은 화령(化寧)이 화령(火嶺)으로 바뀌었다. 이는 시대의 가치관이 변한 탓으로 보인다. 이 지역이 삼국시대부터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많이 일어난 국경지역이고 김유신 장군이나 후백제의 견훤이 중요시 여겼던 군사 요충지였으며, 6·25 때에도 이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라는 것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탓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해서 불 화(火)자를 붙인 탓에 평안한 땅 화령(化寧)이 불길이 끊이지 않는 봉우리인 화령(火嶺)이 된 듯하다. 그러나 화령에 설치된 비석에는 화령을 고려 때 이곳 일대를 관할하던 화령현(化寧縣)의 지명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옆에는 화령재라 표기된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인식 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서 총 길이는 약 1400km에 이릅니다.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맥세계와는 달리 지표분수계(分水界) 를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지인식체계입니다.
국도제25호선이 지나가고 화령재 옛표석과 화령정, 그리고 새로이 세워진 백두대간 화령 표석이 있다.
화령은 낙동강과 금강 분수령이다. 그 옆에 백두대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백두대간 화령나들목에서 남진한다.
백두대간 백두대간은 국토를 남북으로 내딛는 대동맥이며, 동해로 흐르는 물과 서해로 흐르는 물을 갈라놓은 대분수령이다. 14개 정간, 정맥의 모태이고 모든 강의 발원지이며, 한반도 산지 분류체계의 상징으로 한민족의 인문, 사회, 문화, 역사의 기반이 되어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중심축을 이루는 대표산줄기다. ▣ 총길이 : 1,400KM, 남한: 684KM, 북한: 716KM
고속국도30호선 당진영덕고속도로가 화령 옆을 통과하여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화서1터널을 통과한다.
맨 뒤 중앙이 윤지미산일 것이라 어림한다.
화령재 0.8km 지점, 임도를 따라가다가 왼쪽 윤지미산 능선으로 진입한다.
임도에서 왼쪽 이정목 있는 능선으로 진입한다.
화령재 1.0km, 윤지미산 1.9km 지점이다.
무덤에서 안부로 내려가는 곳에 세워져 있다. 화령재 1.5km, 윤지미산 1.4km 지점이다.
안부로 내려오면 넓은 골짜기가 나오며, 북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은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지름터골인 듯.
안부에서 오른쪽 윤지미산 능선으로 진입한다.
화령재 1.8km, 윤지미산 1.1km 지점으로 윤지미산 오르는 비탈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윤지미산 가파른 비탈길 마지막 어려운 곳을 힘겹게 올라간다.
윤지미산 정상을 오르며 내려보니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판곡저수지가 보인다.
윤지미산은 화령재 2.7km, 신의터재 8.8km 지점으로, 백두대간 이정목, 윤지미산 설명안내판, 윤지미산 정상표지목, 윤지미산 정상표석 2개가 세워져 있다.
윤지미산은 경북 상주에 위치한 해발 538m의 산. 백두대간 중 경북 상주 화서면과 내서면 경계를 지나는 백두대간 능선에 높낮이가 거의 없는 산이다. 30번 고속도로 화서2터널 동편 끝 바로 우측으로 보이는 윤지미산은 신의터재- 무지개산갈림길-438봉-윤지미재- 화령재 백두대간코스 중 하나인 산이다
윤지미산 정상표석 2개, 정상 표지목, 윤지미산 설명안내판을 배경하여 셀카로 윤지미산 산행을 기념한다.
고속국도30호선 영덕당진고속도로가 화서2터널을 통과하여 남행하고 있다.
왼쪽의 산봉이 438m 산봉인 듯. 백두대간은 오른쪽 산봉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화령재 3.8km, 윤지미산 1.1km, 신의터재 8.1km 지점의 이정목을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윤지미산 능선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니 봉황산이 보인다.
윤지미산을 내려와 무지개산 가는 능선은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곧바로 동쪽으로 길게 돌아간다.
무지개산 가는 산길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윤지미산이 솟아서 위치 확인의 표지가 되어 준다.
무지개산은 백두대간에서 벗어나 있다. 백두대간은 오른쪽으로 빙 돌아서 무지개산 갈림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무지개산 가는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윤지미산과 438m봉이 북쪽에서 확실한 표지가 되어 준다.
무지개산이 앞에 보이고, 중앙에 무지개산 갈림목이 보인다. 백두대간은 무지개산 갈림목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왼쪽 윤지미산에서 오른쪽 438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백두대간은 438봉 직전에서 남쪽으로 꺾어진다.
화령재 6.7km, 윤지미산 5.6km, 신의터재 5.2km 지점으로 오른쪽으로는 금강블루베리농원 내려가는 길이다.
산악회 리본들이 많이 달려 있는 산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간다.
산악회리본들이 많이 달려있는 산봉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윤지미산 6km, 신의터재 4.8km 지점이다.
이곳에서 백두대간은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200m 지점에 있는 무지개산을 다녀온다.
무지개산 정상표석과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무지개산 표지판이 나무줄기에 달려 있다.
무지개산 정상표석이 앙증스럽게 예쁘다.
왼쪽 윤지미산에서 오른쪽 438m 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무지개산에서 내려와 산줄기는 서쪽으로 돌아서 남진한다. 남쪽 능선에서 무지개산을 올려보았다.
윤지미산을 내려와서 올라온 산봉에 산악회 리본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노간주나무 군락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노간주나무 군락지 아래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12:31)
노간주나무 군락지 산봉을 내려와 낮은 산봉을 오르며 북쪽을 바라보면 왼쪽에 윤지미산, 중앙에 무지개산, 맨 오른쪽에 노간주나무 군락지 산봉이 모두 조망된다.
산줄기가 급작스럽게 북쪽으로 꺾여져 북진하는 지점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화령재 8.8km, 신의터재 3.1km 지점이다.
왼쪽 뒤에 윤지미산, 오른쪽 뒤에 무지개산이 보인다.
왼쪽 뒤에 무지개산, 오른쪽에 노간주나무 군락지 산봉이 보인다.
산줄기가 농원이 있는 들로 내려오는데 이곳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윤지미산 능선이 멋지게 조망된다.
농원이 있는 들에서 산길로 올라서면 다시 노간주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노간주나무 군락지에서 오르면 화령재 9.7km, 신의터재 2.2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이 산비탈에 세워져 있다.
산비탈 이정목 산봉을 내려가며 남쪽을 바라보면 신의터재에서 남쪽에서 동쪽으로 내리벋는 백두대간 능선이 보인다.
아래쪽 들에는 비닐하우스 농원이 있고 낮은 산비탈에는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산길을 지난다.
솔숲과 낙엽송 군락지 낮은 산봉을 내려오면 무덤이 있는 안부에 이르며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화령재 10.8km, 신의터재 1.1km 지점이다.
안부에서 올라오면 삼각점이 있는 산봉에 이른다. 이곳에서부터 신의터재까지 가깝지만 몹시 지루하게 느껴졌다.
오른쪽 아래에 상주시 화동면 선교리 지역에 대규모 비닐하우스 포도농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삼각점봉을 넘어 오른쪽으로 대규모 비닐하우스 농원을 보면서 산봉을 오르면 신의터재 0.5km 지점이다.
신의터재 남쪽 백두대간 능선이 동쪽으로 벋어가고 있다.
경북 상주시 화동면 선교리 신의터재, 화령재에서 11.3km 지점이다. 어산로가 신의터재를 지나며, 이 지역의 명산물 팔음산포도 광고판이 우뚝하다.
화동산악회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백두대간 신의티 표석이 신의터재 어산로 북쪽에 세워져 있다.
신의터재 어산로 남쪽에 장묵상 선생 치산공적비, 새마을비, 신의치정(新義峙亭), 신의터재 표석, 낙동강과 금강 분수령 표지판, 의사 김준신 유적비, 위쪽에 백두대간 신의터재 표석, 신의터재 설명안내판 등이 세워져 있어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의치정(新義峙亭) 옆에 장묵상 선생 치산공적비와 새마을비가 세워져 있다.
신의터재는 해발고도 280m의 고개로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 개머리재에서 화령 구간은 개머리재를 시작으로 지기재, 신의터재, 윤지미산,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에 위치한 화령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신의터재는 임진왜란 이전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렀던 고개로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장이었던 김준신이 의병을 모아 큰 공을 세우고 임진년 순절한 후부터 신의터재로 불렸으며, '지방의 관리나 귀양중인 옛 벼슬아치들이 나랏님으로부터 승진 또는 복직 등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던 고개였다는 사연이 전해지는 고개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민족정기를 말살한다고 어신재로 개명되었으나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이름을 되찾은 사연 많은 고개이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인식 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서 총 길이는 약 1400km에 이릅니다.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분수계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지인식체계입니다.
송전탑 앞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중앙 왼쪽 뒤에 윤지미산이 조망된다. 오른쪽 산봉은 노간주 군락지 산봉일 것이라 가늠한다.
송전탑을 지나서 왼쪽 산길을 따라 내려가면, 신의터재 0.6km, 지기재 4.1km 지점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주목과 무덤이 있는 산봉을 올랐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가는 곳에 지기재 3.5km를 알리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이정목 지점에서 내려섰다가 살짝 올라가는 왼쪽 비탈에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건너편 포도농원에서 쉬기 위해 이 의자를 설치하였을까?
상주는 팔음산 고랭지 포도가 유명한 것 같다. 백두대간은 오른쪽 산길로 올라가 왼쪽 능선으로 이어간다.
왼쪽 뒤 의자가 설치된 곳에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돌아와 숲길로 진입한다.
포도농원을 지나서 숲길로 진입하는 곳, 신의터재 2.2km, 지기재 2.5km 지점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신의터재 2.8km, 지기재 1.9km 지점의 산봉으로 진달래꽃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서 내려가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신의터재 3.2km, 지기재 1.5km 이정목 산봉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급경사 비탈길을 내려간다.
김해 김씨 묘를 지나 내려오면 백두대간은 끊어져 산줄기를 잇지 못하고 도로를 따라가다가 다시 산줄기로 들어간다.
백두대간은 왼쪽 산줄기로 이어지는데 이를 잇지 못하고 오른쪽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끊어진 백두대간에서 내려와 석산4길을 따라 내려간다.
앞에서 왼쪽 산길로 들어가 끊어진 백두대간 산줄기를 잇는다.
왼쪽 산허리에서 오른쪽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중앙의 농장 앞 석산4길로 들어와 이곳으로 내려왔다.
석산4길에서 백두대간을 잇기 위해 산길로 진입한다.
신의터재 4.2km, 지기재 500m 지점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은 조금 더 위쪽에서 이어지는 것 같다.
창녕 성씨 묘를 내려가 대숲길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이어 지기재로 내려간다.
대숲길을 지나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아래가 지기재, 지기재 남쪽의 왼쪽 산봉은 백두대간 능선에서 벗어나 있는 안심산이다.
지방도 901호선 백화로가 지나는 지기재가 바로 아래에 있으며, 왼쪽 뒤의 산봉은 안심산이다.
지방도 901호선 백화로가 지기재를 지나고 있다. 건너편은 백두대간 남쪽 개머리재 방향 나들목이다.
지방도 901호선 백화로가 지나는 지기재 북쪽에 지기재 이정목과 설명안내판, 금강과 낙동강 분수령 표지판, 상주고랭지포도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지기재는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에 위치하며, 상주와 황간을 잇는 고갯마루로서, 개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개머리재와 '지방의 관리나 귀양중인 옛 벼슬아치들이 나랏님(御)으로부터 승진 또는 복직 등 좋은 소식(義信)이 오기를 기다리던 고개'였다는 사연이 전해지는 신의터재 사이의 고갯마루이다. 이곳은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며 옛날에 뒷동산에 도둑이 많다 하여 적기재로 말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지기재로 불린다고 한다. 지기를 기준으로 서쪽은 대체로 완만한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논과 밭이 넓게 분포하고 있으나 동쪽은 산지가 대부분이다. 마루금 등산로는 대체로 완만하다.
백두대간 화령-윤지미산-무지개산-신의터재-지기재 구간 산행을 마치며 셀카로 기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