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댕댕” 미국 서부 시에라 마운틴 끝자락에 평화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부대중 1000여명은 숨죽이고 귀를 기울여 ‘평화’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겼다.
선 수행을 위해 자리 잡은 이곳 도봉산 태고사는 지난 19일 한국식 사찰로 둥지를 튼지 10주년을 맞아 ‘10주년 개산대재’를 봉행했다. 이번 개산대재의 시작은 첫 타종식으로 시작됐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 불사를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벽안의 무량스님이 미국 땅에서 홀로 한국선불교 수행도량을 위해 바친 피와 땀이 사막의 꽃을 피워 올리는 순간이었다.
미국 LA에서 두 시간 떨어진 시에라 마운틴은 10여년전 황량한 벌판에 짐승뼈들이 널려진 곳이었다. 숭산스님이 이 터를 처음 보고 “이곳 도량이 좋은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자넨 운이 좋다”고 말했듯 이곳은 벽안의 무량스님이 그토록 찾던 ‘명당’자리였다. 이후 텐트, 캠핑카, 모빌 홈 생활 7여년 만에 지금의 관음전인 요사채를 개원했다. 작년 대웅전 봉불 점안식을 통해 사찰 도량의 중심을 가다듬었다.
스님은 10년 동안 같은 작업복과 목장갑을 끼고 직접 터를 고르고 직접 트랙터와 불도저를 몰고 불사를 이뤄냈다. 특히 “수행법 중 선불교가 깨달음의 정도이듯이 수행처를 접하는 초심자에게 정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스님은 직접 한국가람을 눈으로 익히고 한국전통 가람형식만을 고집했다.
대웅전 등 한국전통 그대로
벽안의 무량스님 직접 노동
평화의종.선방등 불사 계속
앞으로 ‘평화의 종’ 종각은 지난 5월 기공식을 갖고 내년 말 개원식을 앞두고 있다. 이어 기숙사를 겸한 지장전, 일주문, 북각을 비롯해 선 수행 사찰을 지향하는 ‘태고사’의 건립사상에 맞춰 3개월 동안 두문불출 정진하는 수행자를 위한 ‘선방’ 건립 등 불사는 계속된다. 사찰 건축 이후에는 이곳에서 2km 떨어진 곳에 노인과 고아들을 위한 복지관을 지을 예정이다.
가시적인 불사의 성과보다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수행과 삶이 일치되는 일과다. 스님은 10주년 행사 전날까지도 종각 주변정리 등을 위해 어둠으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트랙터를 몰았다. ‘노동이 곧 수행’‘일일부작 일일불식’이라는 태고사 청규에 따라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2시간여 예불과 간단한 참선을 한다. 매끼 식사는 채식으로 이뤄진 간단한 공양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노동이다.
이번 10주년 행사에 참석한 계룡국제선원 주지 무심스님은 “17년전 무량스님과 함께 수덕사, 화계사에서 정진했던 때가 엊그제 같다. 사형이지만 스님은 사제들에게 엄격한 법이 없었다. 어느날 스님이 머물던 대둔산 태고사를 방문하니 그곳은 ‘일일불식 일일부작’을 청규로 낮부터 밤까지 일하고 있었다. 한국과 미국을 초월해 찰라에 살고 있는 스님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토렌스에서 온 캐롤 페터 씨는 “이번에 처음 와 보았는데 한국식 사찰구조가 눈에 띈다. 미국인들에게 한국불교를 알리는 불법도량의 역할을 할 것”이라 말했다.
인류의 먼 미래를 생각한 친환경적 수행공동체 운영도 스님의 원칙이다. 이를 위해 스님이 직접 만든 물 분해용 비누를 제외한 화학적 샴푸와 비누의 사용은 제한된다. 모든 쓰레기는 분리수거가 원칙이다.
캘리포니아 하시엔다에서 온 한 불자는 “대웅전 생기기 전인 5~6년전 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뀌는 이곳 사막에서 10여년 동안 불사를 이뤄온 스님을 보면서 불자로서 큰 가르침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관음사 주지 도안스님, 라스베가스 운주사 혜안스님을 비롯해 숭산스님의 제자인 LA달마선원 무상스님, 계룡국제선원 무심스님, 현각스님, 현문스님, 뉴욕 조계사 묘지스님이 참석했다. 이외에도 기업인, 방송인 등 20여명으로 구성된 ‘무량회(회장 허은)’를 비롯해 각 봉사자들이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미국 LA=임나정 기자
“10년불사…많이 배웠어요”
-무량스님 인터뷰
10주년 행사가 있었던 날 유난히도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불었지만 무량스님의 표정만큼은 밝았다. “한창 공사가 진행될 무렵 개울 물길을 돌리기 위해 웅덩이를 판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장대비가 쏟아졌고, 빗물이 흙을 쓸어 쏟아져 건축자재, 쓰레기로 메워진 적이 있습니다. 어려웠던 순간도 지금도 이제는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내색 하지 않지만 10여년 직접 전각들을 지어올리고, 외국 땅에서 한국식 전통사찰을 고집하기란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때론 시간과 비용에 비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던 때도 있었고, 그 결과 스님이 직접 목장갑을 끼고 삽과 괭이를 들었다. 사찰 곳곳과 요사채의 타일과 바닥 하나에도 스님의 꼼꼼함과 세심함이 돋보이는 이유다.
스님의 10년여 불사 여정에 관한 기록과 사진은 오는 10월 10일께쯤 한 권의 자서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밤낮없이 일하는 스님에 감동”
-‘태고사 돕는 모임’ 이원익 회장
캘리포니아 주, 네바다 주 등 각 지역에서 모인 신도들은 직접 몸으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이번 행사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 회장은 “각기 생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이번 행사에 휴가를 얻어 스님을 돕기 위해 온 부부 등 각기 다른 지역이지만 태고사를 위한 마음은 같습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스님과는 텐트생활하다 모빌 홈으로 옮기는 시점에 인연을 맺었다. 태고사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거주를 하면서도 2~3년여 스님의 손과 발이 돼 왔다.
“스님은 일할 때는 일만 생각하고, 다른 것에는 제외시키십니다. 그래서 옆에서 주변 일들을 정리해 주는 정돕니다”라고 말하지만 이 회장은 이번 1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숨은 장본인이다.
[불교신문 2067호/ 9월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