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은 잘 알려진 유태인 학살만 저지른 것이
아니라 위대하고 순수한 독일 민족에 해가 될 수
있는 존재에 대하여 무자비한 학살 정책을 폈다.
베를린의 티어가르텐가 4번지에 있는 건물을
본부로 사용해서 T4작전이라고 알려진 계획에
따라 "심각한 유전성과 선청성 질병"을 관리한다고
하면서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등록시킨 후
살해하였다.
정신지체, 다운증후군, 소두증, 수두증, 기형 등의
신생아를 평가하고 특별 구역에서 향상된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고 해 놓고서는 몇 주간 평가를
거친 뒤 치사 주사로 죽이고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보통 그 주검을 해부 해서 뇌
표본을 얻는 작업으로 연구에 사용 한다고 하면서,
이것이 전체 의료 발전에 기여 한다면서 일반 국민
들을 달랬다. 나치가 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는
신생아 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 나이에 해당
하는 이들까지 그 프로그램의 평가 과정에 포함시켜
많은 살인을 공공연하게 저질렀다. 급기야는 어른을
대상으로까지 확대 해서 정신분열증, 간질, 무도병,
뇌 매독, 노인성 치매, 마비, 뇌염 환자들을 여기에
적용사켜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 하였다.
이에 대한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7만 5천 명에서 20만 명의 장애인이 학살 당한
끔직한 일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 일을 얼핏 들었고
무자비한 나치 정권에 참여한 의료진들의
수치스러운 행동 정도로 알고 있었을 뿐
이었는데, 베를린 출장 중에 우연히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을 때, 그 버스 정거장
뒷벽에 앞에서 언급한 내용이 아주 자세하게
쓰여 있었고, 바로 그 버스 정거장이
티어가르텐가 4번지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거장이라 그렇게 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내용도 충격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늘
타고 다니는 버스의 정거장 근처에 그 내용을
표시하여 자신들이 얼마나 끔직한 일을
저질렀는지 회개하려는 태도가 더 놀라웠다.
독일이 과거 나치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는 것은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원을 독일 수도 베를린의 가장 핵심 중심가 넓은
땅에, 커다란 관을 연상시키는 직육면체의 잿빛
비석들을 무려 2,711개 세워서 학살 저질렀다는
것을 되새기려는 태도는 정말 높이 살만했다. 독일
어디에 가더라도 유대인 학살이나 그 당시 고통 겪는
유대인의 모습 등을 형상화한 동상이 있는데, 종전
70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그 동상 앞에
매일 생화로 헌화하는 독일인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저지른 끔직한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잘 말해준다.
종전 이후 유대인의 나라인 이스라엘에
지금까지 849억불을 손해 배상 했는데
이는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제공한 8억
불과 비교된다. 그렇게 이스라엘에게
정성을 쏟다보니 한 조사에서 이스라엘
국민들이 가장 선호도 높은 나라들 중
한 곳으로 독일이 되었고, 이스라엘 수상이
독일 차를 공식 의전 차량으로 타고 다닐
정도가 되었고, 이스라엘이 자국의 핵 잠수함
제작을 독일에게 맡길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는
회복이 되었다.
이렇게 아주 오래된 잘못이지만 가해자
진정으로 잘못했다고 하고 피해자에게
최선을 다해 회개하고, 용서 구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하면, 피해자도 용서하게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계까지 맺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용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용서는 피해자가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충심으로 잘못했다고 하고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서 애를 쓰고, 또 그런
진심이 보여 진다면 아무리 피해를
당한 사람도 용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냥 용서하라고 하면서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면 참 용서하기 어렵다.
현충일은 영어로 메모리얼 데이
(memorial day)라고 한다. 기억하는 날
이라는 말이다. 자꾸 잊기 쉬운 일을
기억하면서 그 때 나라를 위해서 희생
했던 사람들을 기리자는 날이다. 이런 뜻에서
내가 저지른 잘못을 기억하고 그런 잘못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해서 늘 죄책감에 사로 잡혀 살라는
말은 아니다. (끝)
- 채정호 교수/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교수, 옵티미스트 클럽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