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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스크랩 웅도 / 하루 두 번 몸을 여는 섬
명성레이저뜸개발자 추천 0 조회 22 11.02.27 17: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웅도 / 하루 두 번 몸을 여는 섬

 

때가 되면 문득 바다가 열리곤 했다. 세상 모든 강물은 바다에서 모이는데,

모여든 강물은 큰 물 속에 하나가 되어 자취를 감춘다. 그 큰 물이 가끔씩 갈라져 섬으로 사람들을 허락하는 것이다.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섬, 웅도가 그러한 섬이다. 웅크린 곰을 닮았다 하여 웅도라 했다. 

 

볼거리 없는, 하지만 모든 것이 볼거리인

마을의 한 노인이 말했다. “이 섬은 딱히 볼 것도 없어. 그저 부락 생김이며 사는 모습 보려고 토요일, 일요일이면 사람들이 많이 오지. 4월이면 이제 바지락을 잡는데, 우리는 소달구지를 타고 뻘로 나가거든. 그거도 사람들이 와서 보고 신기하다고 하지.” 웅도는 그랬다. 물길 갈라지길 기다렸다가 발을 딛으면, 육지의 화려하고 다양한 볼거리 대신 잊고 살았던 느림과 고향과 향수와 애틋한 감상이 가슴 속으로 밀려오는 섬이었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송악IC를 나와 석문방조제와 대호방조제를 직선으로 달려가면 가로림만이 나타난다. 웅도는 이 만에 숨어 있다. 서산 대산읍내에 다가가면 오른쪽으로 ‘웅도리’라는 파란 팻말이 나타난다.

분명히 섬 간판을 보고 우회전을 했는데, 가도가도 농촌이다. 송림을 지나고, 장작 타는 냄새를 맡으며 오솔길을 지나 굽이굽이 차를 모니 거기에 ‘대산초등학교 웅도분교장’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분교 이름이 웅도이니, 분교가 있는 곳이 섬이라는 짐작만 갈 뿐. 그러고도 길을 한참, 그러니까 대로에서 10킬로미터를 들어가니 그제사 바다가 나온다.

마침 물이 막 빠지려던 참이었다. 잿빛 갯벌이 넓게 펼쳐지고 길 끝 바다 너머로 길다란 섬이 보인다. 섬과 뭍 사이를 연결한 시멘트 도로 위로 바다가 찰랑거린다. 도로 이편과 저편에서 차들이 엔진을 켜 놓고 기다리고 있다. 이제 저 물이 도로 밑으로 내려가면 우리는 섬으로, 저들은 뭍으로 교행할 것이다. 도로가 나타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정말 눈깜짝할 새에 아까 그 푸르던 바다가 허망하게 사라져버리고 눈 앞에 반짝이는 갯벌이 펼쳐진 것이다. 갯벌 위로 마치 기적처럼 차들이 느릿느릿 기어오고, 기어가고 있다.

그때 시간이 대략 오후 5시 정도였는데, 때마침 낙조가 짙게 깔리기 시작하던 때라 갯벌은 눈이 부셨고, 차는 갯벌 위 허공에 부양된 채로 섬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섬은 하루에 두 번, 6시간씩 몸을 허락한다.

앙증맞은 그네, 앙증맞은 학교

제법 경사진 섬쪽 입구를 지나면 마을이 나타난다. 작은 섬이지만 이미 몇백년 전부터 이 섬에는 사람이 살았다. 김해 김씨의 한 파가 이곳에 정착한지 12대가 지났으니, 섬 곳곳에 이 성씨의 유택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사당도 크게 지어놓았다. 전하기로는 조선조 때 역적으로 몰린 김자점이 이 섬으로 귀양온 것이 김씨의 집성 기원이라 한다.

하지만 세월이 무상한지라, 이제는 전체 가구수를 합쳐봐야 50가구가 채 되지 않고, 웅도리분교의 학생수는 전교생이 7명이다. 마늘밭,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임이 틀림없는 샛노란 수선화들을 즐기며 길을 가면 분교가 나타난다. 누군가가 “딱 유치원만하다”라고 여행기에 쓴 적이 있는데, 유치원치고는 조금 큰 유치원을 생각하면 되겠다. 앙증맞은 그네와 정글짐, 왕벚꽃나무가 있는 운동장에 아무렇게나 자전거랑 줄넘기가 누워 있다.

학교에서 나와서 길을 더 가니 황소 두 마리가 풀을 뜯는다. 거기 12대째 섬에 살고 있다는 한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이 섬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마다 바지락 철이면 소 마차 타고 갯벌로

“전쟁 때 인민군도 이 섬에 오지 못했지. 바다가 막혀 있으니까. 간첩도 들어오들 못해. 오면 뭐해, 이 작은 섬에서. 그리고 오면 죽게?”

“이 소들, 바지락 캘 때 마차 끄는 소들이여. 갯물이 짜서, 경운기는 1년이 지나면 망가지지. 경운기를 세차할 거여, 뭐할 거여. 소들이 제일이여. 그래도 이젠 배들이 많아져서 소들 잘 안 써. 사료값도 많이 드니께. 그래서 마차도 스무 대 있었는데, 지금은 여덟 대밖에 없어.” 

4월은 바지락 철이 시작된다. 연전에는 갯벌로 나가는 소달구지 행렬이 숱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불렀지만, 이제는 그 장대한 행렬을 볼 수 없다. 웅도에서 사라져가는 볼거리 하나다.

뭍을 연결하는 시멘트 도로는 15년 전에 생겼다. “그 전에는 징검다리였죠. 근디 국회의원들이랑 서산에서 놔줬지. 전에는 병원 갈라고 혀도 가들 못했으니까. 웅도가 정말 살기 좋은데, 교통 하나는 참 불편했어.”

사는 사람에게 불편한 요소들이 뜨내기 이방인들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이방인들은 이미 잊어먹은 지 몇백년은 될 옛 추억과 향수와 그리움이 섬에 남아 있는 것이다.

보라, 이방인과 눈이 마주친 촌로의 웃음을. 대문도 담벼락도 없이 확 트인 정원, 그 정원을 옆집과 나누는 공동체의 실존을. 길가 어디에 버려놓아도 제 것이 아니면 만고 닳도록 화석처럼 놔두는 미덕을. 나는 어르신과 작별하고 길을 잇는다.

대궐처럼 큰 민박집이 나왔다. 섬을 찾는 이들이 잦아지면서 생겨난 민박집이다. 송림에 에워싸여, 물때를 놓친 혹은 작정을 하고서 섬으로 들어온 이방인들은 마을에 몇집 없는 민박집에 묵으며 느림의 미학을 즐긴다. 이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표어가 집 벽에 적혀 있길, ‘숨은 00 찾아내자’다.

한적한 고요, 그리고 낙조

민박집을 지나 외길을 한참 가면 선착장이 나온다. 여전히 갯벌은 휘황찬란하게 낙조를 반사하고 있다. 선착장에는 아직 물이 덜 빠져서 시멘트도로와 수면이 거의 높이가 같다. 도로 위에는 따개비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소리를 지른다. 바다여, 돌아와 얼른! 숨막혀!

정면에서 해가 지는데, 초를 다퉈가며 대기가 붉게 물든다. 


물이 밀려든 어느 석양, 선착장의 모습.
다음날 다시 찾은 선착장은 물이 빠진 상태였다. 

썰물이 지자 선착장 옆으로 갯벌이 드러났다.

배들은 가까운 바다 위에 정박한 채 출어를 기다리고 있다. 주꾸미를 잡는 부부가 배를 타고서 소라 껍질을 매단 주낙을 건져올린다. “좀 잡으셨어요?” “별로요.” 아낙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물 빠진 굴양식장에는 굴을 매단 나무줄기들이 다닥다닥 수면 위에 도열해 있다. 

물이 빠지자 설치예술처럼 굴양식장이 드러났다.

대기의 붉음과 고요를 마음껏 즐기다가 길을 돌린다. 이번에는 산중이다. 오르막길을 지나 5분을 가니, 갑자기 고요하던 분위기가 깨진다. 자세히 보니 고라니 두 마리가 갈아놓은 밭에 내려와 먹이를 찾는다. 오호라, 이 작은 섬에 고라니들이? 엔진소리에 겁나게 달아나는 짐승들을 보며 내리막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선착장이 아니라 갯벌이다.

갯벌은, 땅이며 하늘이다 

석양 속에서 갯벌이 새카맣게 빛난다.

그래, 갯벌은 땅이며 하늘이다. 웅도 사람들에게 물 빠진 갯벌은 생명이다. 갯벌 곳곳에 키다리 대나무가 비죽이 서 있다. 물이 빠지면 장화 신은 다리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단단한 길을 표시함이 첫 번째 목적이요, 각자의 굴밭을 구획함이 두 번째 목적이다. 때로는 대나무 대신에 소나무를 꽂기도 하니, 그 단순함 속의 파격적인 풍경이 그 자체로 예술이다. 

갯벌 위 길과 굴밭을 표시하는 대나무 

갯벌에 야자수처럼 서 있는 대나무들.

사람들은 갯벌에서 감태랑 굴을 채취해 해변으로 나온다. 해변에는 빗물을 받아놓은 공동세척장이 있다. 사내 하나가 감태를 씻으며 말했다. “내 몸 움직이면 뻘에서 식량을 건지는데, 어찌 가만히 있겄소. 식당에서 사먹으면 맛이 없어.” 갈매기 한 마리가 훌쩍 솟아오른다. 갯벌에 그놈이 작품을 그려놓았다.

갈매기 작가의 행위작품 


썰물이 지면, 사람들은 갯벌 위로 난 길을 따라 굴을 따러 간다.

갯벌과 작별하고, 다시 산으로 들어간다. 오호, 마을이 어찌 이리 어여쁠고! 

집도, 새집도, 편지함도 모두 예뻤던 공간.

집 한 채를 위해 뚫어놓은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가니, 소나무 아래 진달래 숲 속에 빨간 우편함이 있다. 길섶에는 ‘행복한 집’이라는 커다란 팻말이 있다. 혹시 민박집이나 펜션은 아닐까 싶어 문을 두드리니 아무도 없다. 대신 두 채를 이어붙인 집 현관에 부부 두 쌍의 문패가 조용히 붙어 있다. 개인 가정집이다. 이름표가 붙어 있는 온갖 꽃들이 정원에서 봄을 맞고 있고, 어디선가 산새가 운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 뒤돌아보니 새까만 염소 한 마리가 소나무 아래에서 나를 째려보는 게 아닌가. 아니, 건방지게 저 놈이! 

섬마을 사람들은 마을 가꾸기를 취미로 하는 게 분명했다. 1박2일 동안 세 번이나 섬을 훑으며 돌아다녔지만, 농촌에서 흔히 보이는 쓰레기며 휴지조각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꽃들은 어찌나 많이 가꿔놓았는지, 집에서 집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한참을 멈춰서서 꽃을 감상해야 했고. 

짜릿함을 원한다면 놀이공원으로 가시라. 화려한 볼거리를 원한다면 명산대천으로 가서 군중들과 어울려 즐기시기를. 웅도는 바다가 내주는 시간 동안 느릿느릿 움직이며 그곳 대기를 호흡하고 섬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철학의 공간이다. 연인과 가면 좋고, 아이들과 가면 더 좋다. 특히나 대기와 갯벌과 바다가 생명으로 충만한 이 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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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수첩

1.가는길(서울 기준)

서해안고속도로 송악IC→석문, 대호방조제 방면→대산 방면 29번 국도→대산읍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으로 ‘웅도’ 이정표가 나오면 깜빡이→시골길로 10km 들어가면 바다가 나오고, 길 끝에 웅도 입구가 나온다.

1-1.대중교통(서울 기준)
동서울터미널과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서산행 버스. 동서울은 하루 3회, 남부는 30분 간격. 1시간 40분. 서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웅도행 시내버스. 1시간20분.

2.묵을 곳

- 웅도 내:민박과 함께 갯벌체험 프로그램 운영
①웅도민박(011-420-2744/010-9490-1950):웅도 입구의 목조건물
②웅도키토산민박(041-663-8916/010-6435-8916):선착장에 가깝다
- 웅도 바깥
①바다사랑 펜션타운(011-779-4100/011-9749-4692):농구장이 있는 대형 펜션타운. 조금 황량한 느낌.
- 대산읍내에 모텔 다수

3.먹거리
- 대산읍에서 웅도로 가다가 두 번째 웅도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벌말 방향 직진. 벌말에 각종 해산물 파는 횟집타운.
4.중요! 물때
-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에 바다가 갈라지는 곳의 물때 정보를 ‘반드시’ 메모해 갈 것. 홈페이지는 www.nori.go.kr

 

 

<출처;yahoo 바람아이 (ki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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