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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A-11 이범선 「오발탄」
[앞의 줄거리] 정신이 혼미한 어머니, 만삭의 아내, 영양실조 걸린 딸, 상이군인 동생 영호, 양공주가 된 동생 영숙과 함께 사는 월남민 출신 송철호는 계리사 월급으로 해방촌의 빈곤한 삶을 이어 간다. 어느 날 철호가 생활 태도에 대해 충고를 하자 이에 영호는 자신의 생각을 토로한다.
(가)
… 그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 돈을 어떻게든가 구해야죠. 이가 쑤시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그걸 형님처럼, 마치 이 쑤시는 것을 참고 견디는 그것이 돈을―치료비를 버는 것이기나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안 쓰는 것은 혹 버는 셈이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거야요. 그렇지만 꼭 써야 할 데 못 쓰는 것이 버는 셈이라고 할 수 없지 않아요. 세상에는 이런 세 층의 사람들이 있다고 봅니다. 즉 돈을 모으기 위해서만으로 필요 이상의 돈을 버는 사람과 필요하니까 그 필요하니 만치의 돈을 버는 사람과, 또 하나는 이건 꼭 필요한 돈도 채 못 벌고서 그 대신 생활을 졸이는 사람들. ㉠신발에다 발을 맞추는 격으로. 형님은 아마 그 맨 끝의 층에 속하겠지요. 필요한 돈도 미처 벌지 못하는 사람. 깨끗이 살자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시겠지요. 그래요. 그것은 깨끗하기는 할지 모르죠. 그렇지만 그저 그것뿐이지요. 언제까지나 충치가 쏘아 부은 볼을 싸쥐고 울상일 수밖에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야 형님! 인생이 저 골목 안에서 십 환짜리를 받고 코 흘리는 어린애들에게 보여 주는 요지경이라면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값만치 구멍으로 들여다보고 말 수도 있겠지요.
… (중략) …
“아니야. S 병원으로 가.”
철호는 갑자기 아내의 죽음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운전수는 다시 휙 핸들을 이쪽으로 틀었다. 운전수 옆에 앉아 있는 조수 애가 한번 철호를 돌아다보았다. 철호는 뒷자리 한구석에 가서 몸을 틀어박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었다. 차는 한국은행 앞 로터리를 돌고 있었다. 그때에 또 뒤에서 철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 경찰서로 가.”
눈을 감고 있는 철호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이미 죽었는데 하고.
이번에는 다행히 차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냥 달렸다.
“× 경찰서 앞입니다.”
철호는 눈을 떴다. 상반신을 번쩍 일으켰다. 그러나 곧 또 털썩 뒤로 기대고 쓰러져 버렸다.
“아니야. 가.”
“× 경찰섭니다. 손님.”
조수 애가 뒤로 몸을 틀어 돌리고 말했다.
“가자.”
철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디로 갑니까?”
“글쎄 가.”
“하 참 딱한 아저씨네.”
“…….”
“취했나?”
운전수가 힐끔 조수 애를 쳐다보았다.
“그런가 봐요.”
“어쩌다 오발탄(誤發彈)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운전수는 기어를 넣으며 중얼거렸다. 철호는 까무룩히 잠이 들어가는 것 같은 속에서 운전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멀리 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철호는 점점 더 졸려 왔다. 다리가 저린 것처럼 머리의 감각이 차츰 없어져 갔다.
“가자!”
철호는 또 한 번 귓가에 어머니의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푹 모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범선, 「오발탄」
| <보 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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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소설은 가혹한 현실을 부정하는 인간을 그리거나, 그런 현실 속에 매몰되고 훼손된 인간을 재현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전후 생존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현실적 삶이 부여한 ⓐ개인적 과제에 억압된 인물들이다. 이들은 폐허의 공간에서 실존적 삶의 문제에 직면한 전후 세대를 상징한다. |
1 <보기> 분석
「오발탄」은 1950년대 전후 사회의 경제적 궁핍, 모순적인 현실을 고발하는 전후 소설이다. 전후 소설이란 전쟁 이후의 일상과 사회적 문제를 다룬 소설로, 우리나라에서는 6.25전쟁과 그 이후의 상황을 다룬 소설들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전후 소설은 전쟁의 경험으로 인한 허무주의와 실존적 불안감을 다루거나,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이에 대해 반항하는 인간상, 미래에 대한 전망 없이 비관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를 지닌 인간상, 전쟁의 폭력성으로부터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을 겪고 있는 인간상을 형상화한다. 「오발탄」은 철호 일가의 비참하고 궁핍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는 본문 [앞의 줄거리]에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내용은 <보기>에서 설명하고 있는 ‘현실적 삶이 부여한 ⓐ개인적 과제’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전후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철호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보여 준다. 따라서 ⓐ에 해당하는 내용을 [B]에서 모두 찾아 쓴다면,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도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일 것이다. |
<보기> | 분석 |
전후 소설은 가혹한 현실을 부정하는 인간을 그리거나, 그런 현실 속에 매몰되고 훼손된 인간을 재현한다. | - 영호: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하고 폭력에 의지함. 현실을 부정하고 강도 행각을 벌이는 반항적 인물, 좌절과 분노, 파멸상징 ➞ 가혹한 현실을 부정하는 인간
- 철호: 힘든 현실 속에서 양심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극적이고 현실 순응적 인물이지만,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절망과 괴로움을 느낌. ➞ 현실 속에 매몰되고 훼손된 인간
- 어머니: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실향민.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실성하여 ‘가자’라는 말만 되풀이함. ➞ 현실 속에 매몰되고 훼손된 인간 |
소설 속 인물들은 전후 생존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현실적 삶이 부여한 ⓐ개인적 과제에 억압된 인물들이다. | ⓐ개인적 과제 : 비참하고 궁핍한 삶 속에서 집안의 가장인 철호에게 부여된 책임
[B]에 나타난 ⓐ개인적 과제 - 아들 구실: 정신이 혼미해 고향으로 ‘가자’는 말만 되뇌이는 어머니 - 남편 구실: 생활고에 시달려 생기를 잃고 아이를 낳다가 죽는 만삭의 아내 - 애비 구실: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린 딸 - 형 구실: 전쟁에서 부상당한 상이군인으로, 권총 강도 행각을 벌이다 수감 되는 남동생 영호 - 오빠 구실: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양공주가 된 여동생 명숙 -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 생계를 위해 성실히 일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호 |
이들은 폐허의 공간에서 실존적 삶의 문제에 직면한 전후 세대를 상징한다. | 1950년대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 상징 |
2 ‘영호’가 중시하는 가치
이 작품에서는 현실과 타협하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이 드러난다. 특히 형 철호와 동생 영호는 현실 대응 방식과 가치관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러한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전후 사회의 비참하고 궁핍한 현실 때문이다. 형 철호는 가난하게 살더라도 양심과 도덕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현실 순응적인 인물인 반면, 동생 영호는 가난하게 사는 데 도덕과 양심, 법은 소용이 없으며, 그것들은 가진 자들만의 논리라고 생각하는 반항적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호의 가치관과 현실 대응 방식은 [A]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
[A] | 분석 |
… 그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 돈을 어떻게든가 구해야죠. 이가 쑤시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그걸 형님처럼, 마치 이 쑤시는 것을 참고 견디는 그것이 돈을―치료비를 버는 것이기나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안 쓰는 것은 혹 버는 셈이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거야요. 그렇지만 꼭 써야 할 데 못 쓰는 것이 버는 셈이라고 할 수 없지 않아요. | 형 철호의 소극적이고 순응적인 현실 대응 방식 비판 |
세상에는 이런 세 층의 사람들이 있다고 봅니다. 즉 돈을 모으기 위해서만으로 필요 이상의 돈을 버는 사람과 필요하니까 그 필요하니 만치의 돈을 버는 사람과, 또 하나는 이건 꼭 필요한 돈도 채 못 벌고서 그 대신 생활을 졸이는 사람들. ㉠신발에다 발을 맞추는 격으로. 형님은 아마 그 맨 끝의 층에 속하겠지요. 필요한 돈도 미처 벌지 못하는 사람. | 돈을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세 가지 계층에 대해 이야기 ➞ 영호가 중시하는 가치가 돈과 관련 있음을 알 수 있음 |
깨끗이 살자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시겠지요. 그래요. 그것은 깨끗하기는 할지 모르죠. 그렇지만 그저 그것뿐이지요. 언제까지나 충치가 쏘아 부은 볼을 싸쥐고 울상일 수밖에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야 형님! 인생이 저 골목 안에서 십 환짜리를 받고 코 흘리는 어린애들에게 보여 주는 요지경이라면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값만치 구멍으로 들여다보고 말 수도 있겠지요. | 양심과 법을 지키며 살아가지만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철호의 현실 대응 방식 비판
- 철호: 양심, 도덕, 법규의 가치 중시 - 영호: 그러한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 (돈의 가치 중시) |
3 ㉠신발에다 발을 맞추는 격의 의미
㉠의 의미를 앞뒤 문맥을 고려해 서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별다른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앞뒤 내용을 살펴 충분히 서술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
문맥 | ㉠의 의미 |
… 그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 돈을 어떻게든가 구해야죠. 이가 쑤시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그걸 형님처럼, 마치 이 쑤시는 것을 참고 견디는 그것이 돈을―치료비를 버는 것이기나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안 쓰는 것은 혹 버는 셈이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거야요. 그렇지만 꼭 써야 할 데 못 쓰는 것이 버는 셈이라고 할 수 없지 않아요. 세상에는 이런 세 층의 사람들이 있다고 봅니다. 즉 돈을 모으기 위해서만으로 필요 이상의 돈을 버는 사람과 필요하니까 그 필요하니 만치의 돈을 버는 사람과, 또 하나는 이건 꼭 필요한 돈도 채 못 벌고서 그 대신 생활을 졸이는 사람들. ㉠신발에다 발을 맞추는 격으로. 형님은 아마 그 맨 끝의 층에 속하겠지요. 필요한 돈도 미처 벌지 못하는 사람. 깨끗이 살자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시겠지요. 그래요. 그것은 깨끗하기는 할지 모르죠. 그렇지만 그저 그것뿐이지요. 언제까지나 충치가 쏘아 부은 볼을 싸쥐고 울상일 수밖에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야 형님! 인생이 저 골목 안에서 십 환짜리를 받고 코 흘리는 어린애들에게 보여 주는 요지경이라면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값만치 구멍으로 들여다보고 말 수도 있겠지요. | - 신발: 경제적 형편 - 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출
신발 크기에 발 크기를 맞춰야만 하는 모순된 상황 ➞ 치료비가 없어 통증을 참고 견디는 철호의 상황을 빗대어 표현 (궁핍한 경제적 형편에 맞추느라 꼭 필요한 지출도 하지 못하는 모습) |
4 ㉡의 상징성 + 철호의 반복적인 말의 의미
앞선 ㉠은 앞뒤 문맥을 토대로 그 의미를 추론할 수 있었지만, ㉡은 ㉠‘오발탄’이라는 제목의 상징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토대로 의미를 추론해야 했다. 즉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야 했다. ㉡의 ‘오발탄’은 과녁에서 벗어난 탄환을 의미하는데, 목적과 방향성을 상실한 전후의 왜곡된 인간상을 보여 주는 소재이다. 한편 철호는 [B]에서 ‘가(자)’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지만, 그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 이는 방향성을 상실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철호가 택시를 타고 나아갈 방향을 좀처럼 잡지 못하는 이러한 장면은 1950년대 전후 사회가 뚜렷한 방향성을 상실한 채 혼란에 빠져 있음을 보여 준다. 작품에서 철호는 삶의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한다. 이는 방향성 있는 삶, 양심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염원하는 작가의 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
㉡의 상징성 | [B] 철호의 반복적인 말 | 그 말의 의미 |
㉡ 오발탄
과녁에서 벗어난 탄환. 목적과 방향성을 상실한 전후의 왜곡된 인간상 상징. | “아니야. S 병원으로 가.” “아니야. × 경찰서로 가.” “아니야. 가.” “가자.” “글쎄 가. | 전후 사회 속에서 목적지 없이 삶의 방향성을 상실한 절망적인 외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