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24년(1698) 단종비 정순왕후定順王后(1440~1521)에게 ‘정순定順’이란 시호와 ‘단량제경端良齊敬’이라는 휘호를 올리면서 제작한 옥책이다.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세조]의 강압에 의해 왕위를 선양禪讓하였는데, 이후 사육신死六臣이 주도한 복위 모의 사건에 연루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서인庶人으로 강등된 채 죽음을 맞이하였다. 따라서 단종과 사육신의 복권復權은 세조 왕권의 정당성과 직접 연결되는 민감한 문제였다. 마침내 숙종 7년(1681)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追封이 이루어졌고, 1698년 종친宗親 및 문무文武 관원 491명의 의견을 두루 수합한 뒤, 단종의 복위를 결정하였다. 이때 단종비 정순왕후도 함께 복위되었다.
정순왕후의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송현수宋玹壽(?~1457)의 딸이다. 단종이 선위하자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에 봉해졌다가, 이후 단종이 유배되면서 부인으로 강등되었다가 단종이 복위되자 정순왕후도 함께 복위되었다.
옥책문의 내용은 선양한 단종을 보필한 정순왕후의 인품을 찬양하고, 복위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숙종실록肅宗實錄』 권32, 숙종 24년 12월 25일 을축乙丑 기사에서는, 순행불상純行不爽함을 ‘정定’이라 하고, 비화우리比和于理함을 ‘순順’이라 하여 시호의 의미를 설명하였으며, 수례집의守禮執義함을 ‘단端’이라 하고, 중심경사中心敬事함을 ‘양良’이라 하고, 집심극장執心克莊함을 ‘제齊라 하고, 숙야경계夙夜儆戒함을 ‘경敬’이라 하여 휘호의 의미도 설명하였다.‘단량제경端良齊敬’이라는 휘호를 올리면서 제작한 옥책이다.
원문
維歲次戊寅十二月辛丑朔二十五日乙丑 嗣王臣焞謹再拜稽首上言 竊以顯號揚烈 追修躋祔之縟儀
令德儷尊 仍擧節惠之曠典 始克稱於名實 寔胥慰乎神人 恭惟懿德王后 篤生華宗 光孋沖辟 懿姿夙
慧 佐始初之淸明 陰化潛孚 協內外之雝穆 逮至達權而禪讓 蓋亦裨猷而資成 受太妃之崇名 且膺徽
美 享一國之隆養 共怡優閒 不幸時變屢興 遂致廷議多謬 日淪月晦 失黃道並明之暉 浦思山哀 結蒼
梧未從之痛 處約而玉度無玷 委順而寶算彌遐 神理久鬱於在天 芳塵寖翳 廟饗尙闕於累世 庶品同
嗟 念丕稱豈間於顯幽 而缺禮或待於久遠 參諸古制 斷自微衷 揆彼天道之必伸 敢緩表揭 冀我宗事
之無歉 宜備情文 爰復王章 升祧室而序代 並隆壼位 薦寶冊而易名 怳若翬翟之重輝 宛然乾坤之齊
體 想聖祖崇奉之雅意 豈不爲光 抑列朝陟降之明靈 默有所啓 眞遊斯集 漢陵之簾帷始新 耿光復昭
周廟之琬琰載煥 緬故實而增感 陳物采而致虔 謹遣臣議政府領議政柳尙運 奉玉冊 追上尊諡曰定
順 徽號曰端良齊敬 俯諒深誠 昭賜英鑑 垂徽彤史 雖歷二百年而可徵 衍慶瑤圖 庶汔千萬禩而靡替
嗚呼哀哉 謹言
번역문
무인년(1698, 숙종 24) 12월(초하루 신축일) 25일(을축)에 사왕嗣王 신臣 순焞(숙종의 이름)이 삼
가 재배再拜하고 머리를 숙여 아룁니다.
생각하건대 현호顯號로 공적을 드러내고 제부躋祔01의 성대한 의식을 이어서 시행하며, 훌륭
한 덕德을 존귀함과 짝 맞추어 절혜節惠02의 빠뜨린 전례典禮를 거행하니, 비로소 형식과 내용에
맞게 되어 진실로 신과 사람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의덕왕후懿德王后는 돈독한 자질로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어린 임
금의 훌륭한 배필이 되니, 아름다운 자태와 조숙한 지혜는 시초始初의 맑고 밝음을 도우셨고, 음
으로 교화함이 보이지 않게 진실하시어 내외의 화목을 도왔습니다. 권도權道를 알아 선양禪讓함
에 이르러 또한 계책을 도와 이루어지게 하여 태비太妃의 높은 이름을 받았고, 그리고 빛나는 아
름다움에 부응하여 일국一國의 융숭한 공양을 누리시니 모두 편안하고 한가로운 것을 기뻐하였
습니다. 불행하게도 당시 변고가 겹쳐 일어나 마침내 조정의 논의가 많이 그르게 되었습니다. 해
가 잠기고 달이 어두워지니 황도黃道03와 함께 밝아야 할 빛을 잃어버려 물가에 가서도 생각하고
산에 가서도 슬퍼하여 창오蒼梧04에 따라가지 못한 애통함이 맺혔습니다. 곤궁함에 처했으나 왕
비의 자세[玉度]는 욕됨이 없었고 순리에 따라 보산寶算05은 더욱 연장되었습니다. 신리神理가 하
늘에서 오랫동안 맺혀있어 아름다운 행적이 가려졌고, 종묘의 제사가 여러 세대동안 빠뜨려져
사람들[庶品]이 모두 탄식하였습니다. 비칭丕稱06을 생각하면 어찌 유현幽顯07에 차이가 있겠습니
까. 예를 빠뜨린 것이 혹시 구원久遠한 때를 기다린 것은 아니겠습니까? 옛 제도를 참고하여 저
의 작은 정성으로 결단하였습니다. 저 하늘의 도道가 반드시 펴진다는 것을 헤아리니 감히 드
러내는 것을 늦추겠습니까. 바라건대 우리 종사宗事에 부족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마땅히 인정
人情과 예문禮文을 갖추어 이에 국왕의 의례[王章]를 회복하여 조실祧室08에 옮겨 순서대로 하였
고, 아울러 왕후의 자리[壼位]를 융성하게 하여 책보冊寶를 올리고 이름을 바꾸니 황홀하여 마
치 휘적翬翟09이 거듭 빛나는 것 같고, 완연하여 하늘과 땅이 제체齊體10한 것 같습니다. 성조聖祖
가 숭봉崇奉한 고상한 뜻을 생각하면 어찌 빛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열조烈朝의 오르내
리는 밝은 영령이 말없이 열어주지 않겠습니까. 죽은 영령이 모두 모이니 한릉漢陵의 발과 장막이
비로소 새로워졌고, 밝은 빛이 다시 비추니 주묘周廟의 완염琬琰11이 비로소 빛나게 되었습니다.
옛날 일을 생각하니 감회가 더하여 물채物采12를 진설陳設하고 정성을 다합니다.
삼가 신臣 의정부 영의정 유상운柳尙雲을 보내어 옥책玉冊을 받들고 존시尊諡를 추상追上하니
‘정순定順’이라 하고, 휘호徽號를 추상追上하니 ‘단량제경端良齊敬’이라하였습니다. 깊은 정성을 굽
어 헤아리시어 밝게 영감英鑑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동사彤史13에 아름다움이 드리워진 것이 비
록 200년이 지났으나 찾아볼 수 있고, 요도瑤圖14에 경사慶事가 넘침은 천만 년이 되도록 쇠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 슬픕니다. 삼가 아룁니다.
01 제부(躋祔): 부묘(祔廟). 3년상이 지난 뒤에 신주(神主)를 조상의 신주 곁으로 모시는 것을 말한다.
02 절혜(節惠): 죽은 사람에게 마지막 은혜(恩惠)를 베풀어 그 시호(諡號)를 내려주는 일.
03 황도(黃道): 태양의 시궤도(視軌度).
04 창오(蒼梧): 순임금이 죽은 곳. 단종의 죽음을 비유한다.
05 보산(寶算): 임금의 나이로, 보령(寶齡)·보력(寶曆)·보주(寶籌)라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정순왕후의 나이를 가리킨다.
06 비칭(丕稱): 훌륭한 칭호라는 뜻으로 시호를 가리킨다.
07 유현(幽顯): 유명(幽明)으로, 이승과 저승를 뜻한다.
08 조실(祧室): 먼 조상을 모시는 사당.
09 휘적(翬翟): 붉은 비단에 꿩의 무늬를 수 놓은 왕후의 옷을 말한다.
10 제체(齊體): 등위(等位)와 품격을 같게 하여 동등하게 대우하는 등급의 몸이라는 뜻으로 주로 부부를 가리킨다.
11 완염(琬琰): 옥으로 만든 홀(芴)로 완규(琬圭)와 염규(琰圭)이다. 아름다운 행실을 후세에 전한다는 말로 쓰인다.
12 물채(物采): 제물(祭物)과 예단(禮緞).
13 동사(彤史): 동관(彤管)을 가진 사관(史官). 동관은 옛날 여사(女史)가 궁중(宮中)에서 궁중의 정령(政令)과 후비(后妃)의 일을 기록할 때 쓰던붓이다. 『후한서(後漢書)』 「광무곽황후기(光武郭皇后紀)」에 “여사가 동관으로 공을 기록하고 허물을 쓴다.”고 하였고, 그 주(注)에 “동관은숫대가 붉은 붓이다.”라 하였다.
14 요도(瑤圖): 제왕(帝王)의 세계(世系) 또는 족보(族譜). 여기서는 조선의 왕업을 비유한다.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