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상해(幸福想解)
이종석
한 달에 한 번은 부모님께서 다니시는 성당에 미사 참례를 간다. 프로테스탄트와는 달리 말씀의 전례 부분과 성찬의 전례 부분으로 구성이 되는데, 이 둘의 완성이야 말로 미사예절의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다. 간혹 전자에만 열중하고 후자에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는 작은 책자를 한 권 구입해서 읽는 것으로 대신하곤 했다.
오늘도 성물방에 들러 소책자 한 권을 고른다. 그동안 이렇게 고른 책들이 과연 몇 권이나 될까. 속으로 숫자를 헤아려 보고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성물방의 자매님에게 “지금 행복하세요?” 라고 물어 보았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갇혀 있는 모습이 답답해 보여 그랬나보다. 그런데 뜻밖에도 “네 행복해요.”라고 너무나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내가 고른 책자의 제목 ‘행복’을 보여 주면서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러면 행복 하지 않을 때도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아이들이 미사 도중에 딴 짓을 한다거나 일찍 나가버리거나 할 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신앙적인 부분 말고 다른 것은 없느냐고 물었는데, 다른 부분은 이렇게 봉사하면서 사는 것이 마냥 행복 하다고 했다. 단순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런지 모르지만 그 자매가 참 부럽게 느껴졌다.
나에겐 작은 차실이 하나 있다. 주말이면 대부분의 시간을 그 곳에서 보낸다. 어느 날 딸아이가 찾아와 담벼락에 페인트로 그림을 그린 뒤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썼다. 일본에 공부하러 가고 없는 딸을 떠올리며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생각해본다. 아빠의 행복을 염려한 탓일까.
행복이란 어떤 일정한 기간 느끼는 감정이라기보다 순간순간 느낄 수 있는 심리 상태다. 그 상태가 자주 그리고 오래 지속 될 수 있도록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지금 행복 하십니까 라고 말 했을 때 “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답하기를 주저 할 것이고 또 더러는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 하면서 울기도 하고, 억울함을 들어 주기를 원하기도 할 것이다.
딸아이는 국립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리고는 전공과는 무관한 제과제빵 공부를 하겠다고 일본이라는 나라로 홀로 떠나갔다. 물론 학부시절에 일본어를 전공 했으니 의사소통이야 지장이 없겠지만, 아이를 홀로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은 걱정이 먼저 앞선다. 이제 일 년의 기간이 지나면 프랑스로 가서 나머지 일 년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 그냥 교편이나 잡으면서 좋은 혼처가 나타나면 시집이나 가 줬으면 하는 아버지 마음 따위는 아랑곳없이 자기 욕심만 채우는 딸아이가 야속하기도 하다. 자신의 앞날을 위하여 매진하는 딸의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노동 강도가 높은 일본의 제과제빵 전문대학에서의 생활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지 염려된다.
현직에 있는 동안 열심히 벌어서 노후 준비를 하고 또 다른 제2의 인생 설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뒷바라지에 전력을 쏟는 것을 보고, 동생이란 녀석이 질투를 하는 모양이다. 이번까지만 지원하고 자기도 좀 돌보아 달라고 한다. 전공을 살려 공부를 하려면 먼 나라의 학업에 대한 유학이라는 절차가 있으니 그 때를 대비하여 자기 몫을 좀 남겨 놓으라는 것이다. 참으로 욕심이 많은 녀석들이다. 대학까지야 어떻게 되었건 그 이후는 자신들이 알아서 해 주면 좋을 듯한데. 그래도 아이들이 부자아빠 라고 하는 소리에 웃을 뿐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가지고 생활을 하는 사람이야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는 않더라도 즐기는 일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산을 좋아 하는 사람들이 주말이면 좋아하는 먼 산 혹은 가까운 산을 찾아서 산행을 즐기며 혹은 숨겨진 데이트를 즐기면서 컬러풀한 복장에 심홍난색의 절경을 즐긴다는 것, 이 또한 그 사람의 일락의 하나라고 생각 된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백 개를 친다거나 혹은 싱글을 한다거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장을 갖추고 자연과 하나 되어 그 순간을 즐기는 그것이야 말로 기쁨이요 즐거움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카페 활동을 하기도 하며 먼 길을 달려가 멋있는 집은 아니더라도 맛있는 음식이나 새로운 것을 만나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 등도 기쁨을 창출하는 행위의 일종이다.
좋은 차를 타는 것 이라든지, 좋은 와인을 즐기는 것 이라든지, 좋은 차를 구해서 마시는 행위 등은 개개인이 즐기는 취미에 따른 분류의 즐거움을 주는 하나의 쟝르로 볼 수 있다. 행복은 여정에 있는 것이지 목적지에 있지는 않다. 사람들은 즐거운 것은 선택 하지만 고통스러운 것은 피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의견 일치를 보이는 그것이 바로 행복 이라면 예수의 행복이나, 붓다의 행복이나, 딜라이라마의 행복은 과연 서로 다른 것일까?
노부모에게 찾아뵙고 같이 시간을 보낼 때 역시 작은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 또한 묵묵히 앉아서 자신의 일을 수행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가지는 것도 행복이다. 인생은 말한다. 행복은 참을성 있게 노력 하는 자에게 특별히 내리는 상이라고. 목표점의 반을 달리면 기쁨이 오고, 계속 달리면 목표점은 반환점이 된다.
첫댓글 "행복은 과정이다" 좋은 수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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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쟝르 가운데 보이차처럼 편안함을 주는것이 "수필"이 아닌가 새 느끼게 됩니다.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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