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박 15일 동안 EBS가 보성의 자연과 보성인의 삶을 오롯이 담아냈습니다.
TV 시 청 안 내
일시 : 2010년 4월 19일 ~ 23일 저녁 9시 30분~50분까지(20분간씩 방영)
내용 :
1부. 차향(茶香)의 시절(월요일 저녁 9시 30분)
보성의 봄은 바닷가 차밭으로부터 온다.
따뜻한 바닷바람이 있어 사철 눈이 드물고 적당한 습기가 있으며
토질이 우수해 차재배지로 오래전부터 이름 높았던 곳.
겨울 동백꽃이 지고, 진달래, 목련꽃이 한창일 4월 중순이면
굽이굽이 차밭에도 봄이 성금 오고, 참새의 혓바닥만한 차의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첫차는 약간 떫지만 그 향이 제일이어서 금보다 귀하게 취급받는데...
어떤 차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대원사 뒤란에 수백 년 묵은 야생차의 새순이다.
그래서 봄만 되면 차 잎 올라오는 기운에 염불조차 잃어버릴 정도라는 대원사 차밭.
차밭 밑에 은은하게 땅 밑에서 올라온 맑기 깊은 샘물.
봄 향기 그윽한 어느 봄날 그 차향 속에 잠시 취해보는 스님에게
극락이 따로 없다. 깊은 차향에 사바의 번뇌를 떠올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밖에도 차를 만드는 과정, 차와는 뗄 수 없는 자연미의 차사발 만드는
도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2부. 강골마을의 봄(화요일 저녁 9시 30분)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오봉산 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
이곳은 11세기 양천허씨가 처음 터를 잡은 뒤, 원주이씨를 거쳐 16세기 광주이씨가 들어와
정착하게 된 집성촌이다.
시절이 변하고 세상 풍경도 모두 변했지만 아직도 옛 전통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 지금도 30여 채의 튼튼한 한옥은 왜 우리의 전통 집들이 아름다운지를
잘 보여준다.
뒤로는 대밭이 바람에 일렁이고, 황토담벼락 밑에는 민들레며, 할미꽃이 자라고
작은 텃밭을 따라 갓이며 마늘, 상치 등이 봄 햇살에 못 이겨 제 빛을 먼저 발하는 곳.
오순도순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은 봄만 되면 삼삼오오 쑥을 캐거나
한집에 모여 전통 엿을 만든다.
예로부터 양반 선물용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강골엿.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엿기름과 섞어 12시간 숙성한 다음 다시 조청이 될 때까지
끓여 만들어내는 강골엿의 옛 맛과 향을 봄의 아름다움과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3부. 서편제를 만나다(수요일 저녁 9시 30분)
옛 전통음악을 분류하면 정악과 판소리를 들 수 있다.
정악이 궁중음악이라면 판소리는 서민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
옛 선비들이 <허튼소리>라 하여 자못 비하하기도 했지만 판소리는 서민의 삶에서 나온
소리였기에, 서민의 가슴에서 나온 소리였기에 살아남았다.
주로 남도지방에서 시작된 판소리는 남원을 기준으로 동쪽은 동편제, 그 서쪽의 소리를
서편제로 분류하기도 한다.
소리도 자못 달라 동편제가 빠르고 씩씩하며 웅장하고 고솔한 소리인 반면
서편제는 느리고 애잔하며 애끓는 소리가 많다.
그런 서편제 중에서도 특히 보성소리가 유명하여 따로 분류하는 사람이 있기도 한데
보성 소리의 맥이 지금도 지방 소리꾼들에 의해 도도하게 전수되고 이유도 그만한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보성소리협회장 장장수씨와 함께 서편제 속에 들어있는 보성소리의 맛과 멋을 찾아본다.
4부. 널배에 실은 꿈(목요일 저녁 9시 30분)
허리까지 빠지는 갯벌 속으로 어머니들이 들어간다.
서해의 갯벌이 모래가 섞여 단단하다면 벌교의 갯벌은 오로지 개흙으로만 돼 있어
끝없이 빠져든다.
이런 갯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만든 것이 널배다.
널배를 타고 갯벌 속으로 하나 둘 들어가 온종일 캐내는 꼬막.
우리나라의 꼬막 대부분을 생산하는 이곳은 꼬막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읍내 어딜가나 꼬막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회로도 먹고, 삶아서도 먹고, 무쳐서도 먹는, 그저 꼬막만 있으면 됐다는 보성.
보성의 옛말에 <꼬막맛이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꼬막맛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시집 온 며느리 면접도 꼬막 삶는 것으로 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새꼬막, 참꼬막 등 종류도 여럿인데....
천혜의 갯벌을 갖고 있는 땅 보성...벌교 갯벌만이 아니라 장도의 바지락, 낙지잡이 등
보성사람들의 바다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5부. 바다와 육지를 잇는 정거장, 벌교(금요일 저녁 9시 30분)
벌교는 또 하나의 보성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군의 소재지는 아니지만 결코 소재지에 뒤지지 않을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까닭이다.
벌교의 지리적 위치를 살펴보면 왜 벌교가 유명해졌는지 금방 알게 된다.
밑으로는 세계 제일의 갯벌을 갖고 있으며 고흥반도와 전라 내륙을 연결하는 징검다리자
위로는 너른 평야와 산맥들을 고루 같고 있다.
이런 지리적 요건은 그러나 늘 벌교역사의 부침과 맥을 같이 했다.
일본인들은 해산물과 내륙의 농산물을 수탈해가는 기지로 삼았다. 1930년대에 벌써 이곳에
철도를 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번성함은 늘 이권사업과 연결됐고, 거기엔 이권을 노리는 소위 <주먹>들이 활개치기에
안성맞춤이 됐다. 벌교에서 주먹자랑, 돈자랑 하지 말라는 이유도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영화와 애환을 동시에 갖고 있는 땅 벌교.
벌교 이야기는 벌교이야기만이 아닌 지난 시절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