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12.5.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삼상 1:14~18
*제목; 사무엘상강해(1) 하나님과 통(通)하다!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삼상 1:14~18)
1. 사무엘상의 서론
사무엘서 바로 앞에 성경은 ‘룻기’이지만, 그 시대적 배경은 ‘사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 전체를 평가하는 한 문장이 사사기 마지막 절에 나옵니다. ‘삿 21:25’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그런데 이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사사’들은 그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 따라 백성들을 지도하고 판결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사기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고 평가하는 것일까요? 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시대였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니라.”
왕되신 하나님이 버젓이 옆에 계셔도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이스라엘. 자기 소견대로 하고 싶어서 왕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이스라엘. 그래서 사사기 이후 이스라엘은 “영적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철저히 지키십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눈동자같이 지키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은 “자기 소견” 지키느라, 하나님의 그늘을 벗어나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살아가는 암흑기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어려움은 삶이 진정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소견을 더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발로 차버리는 어리석은 삶을 사는 우리 자신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입니다.
이제 왕이신 주님께로 다시 돌아오십시다. 그리고 그 놀라우신 은혜를 다시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이런 영적 암흑기를 겪고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회복’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풍성히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그 회복의 방법이 바로 “사무엘”(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방법은 이처럼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만남의 복, 사람의 복”이 최고의 복입니다.
이것이 사무엘서가 시작된 배경이고 서론 이야기입니다.
2. 엘가나와 한나 그리고 브닌나
사무엘상 1장은 사무엘이 태어날 가정의 설명으로부터 시작합니다. ‘1절’입니다.
“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삼상 1:1)
사무엘의 아버지는 “엘가나”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레위지파’이고 ‘제사장’이고 ‘예배 음악을 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이런 위치에 있다면,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대단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이 집안에 비극이 담겨진 걸 보게 됩니다.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삼상 1:2)
두 아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일부일처제’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영혼과 영적 지도를 담당하는 ‘엘가나’가 두 아내를 거느린다는 사실도 나쁘지만, 이 사실 자체가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가 바로 “영적 암흑기”임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사실은 정부인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으나, 첩인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순서는 서열과 중요도를 나타내는 가장 귀한 의미를 가지는데, 그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열매가 있어야 할 곳에 열매가 없고, 열매가 없어야 할 곳에 열매가 있는 그런 안타까운 시대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할 부분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말아야 할 부분에만 열매를 맺고 있다면, 우리도 영적 암흑기 속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도의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입니까? “천국의 열매, 천국에서도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열매”가 아니라 “천국 문 앞에서 다 불타 없어질 열매”를 맺고 있지는 않습니까?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이제 열매 맺지 말아야 할 자인 ‘브닌나’가 자신이 열매 맺음을 보고 ‘한나’를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5~7’입니다.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삼상 1:5~7)
여기서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가 있습니다. 브닌나의 조롱에 한나는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매우 아파합니다. 왜일까요?
자식이 없어서요? 아닙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 정확하게 알아야 한나의 슬픔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여인의 가장 큰 수치는 임신하지 못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여인의 가장 큰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의 사람들은 여인이 임신하지 못하면 두 가지를 증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그를 징계하신다는 의미이고, 나아가서는 그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닌나가 조롱한 사실도 바로 이것,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다는 사실입니다. 한나가 눈물을 흘리며 통한해 하는 사실도 자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브닌나의 말처럼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슬퍼해야 하는 사실이 바로 이것입니다.
건강을 잃어서가 아니고, 돈을 잃고 권력을 잃어서도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끊이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불쌍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하나님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든든하게 묶여져 있습니까? 아니면 단절된 상태이고 그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든든히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기쁨입니다. 둘째가 감사입니다. 셋째가 소망입니다.
우리가 진짜 통한하고 슬퍼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세 가지가 내 안에 없을 때입니다.
3. 한나, 기도를 시작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역시 기도입니다. 기도밖에 답이 없습니다.
‘한나’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놓고 성전에서 몸부림치며 기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런 이유 때문에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 5:4’에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
이 애통으로 기도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한나를 위로하십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17~18절’입니다.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삼상 1:17~18)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증거를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슬픔의 빛이 없이 기쁨과 감사와 소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정확한 증거가 ‘11절’에 나옵니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삼상 1:11)
아들을 주시기로 하셨고, 이는 단순히 자식을 가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한나도 역시 그 아들을 하나님께 나실인(하나님의 종)으로 드리겠다고 서원하는 것입니다. 아들 달라는 기도로 그쳤다면 이 기도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중심 소원이었고, 그 응답의 열매를 그래서 하나님께 편안하게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과 한나가 기도로 서로 “통”했다는 증거가 히브리 원문에 보면 정확하게 나옵니다. ‘11절’에 아들을 “주시면”의 단어는 “나탄”(주시다)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여호와께 드리겠다는 단어도 “나탄”(드리다)입니다.
서로가 “나탄”으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처럼 하나님과 통하는 시간, 통하는 영혼이 되는 시간입니다.
이를 통해서 사무엘서1장의 병치구조의 해소가 드러납니다.
브닌나에게 아들이 있고, 한나에게는 아들이 없어 슬펐습니다.
엘리에게는 제사장을 대신할 아들이 있고, 하나님에게는 참 말씀을 전할 선지자가 없어 슬펐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한나의 소통을 통해서, 한나에게는 아들이 하나님에게는 참된 선지가가 생겼습니다.
기도의 소통을 통해서 우리 삶에 이런 은혜와 헌신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길 소원합니다.
4. 정리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세우십니다.
열매 맺어야 할 곳(영적인 곳, 천국에 합당한 것들)에 열매 맺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진짜 슬퍼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문제가 생길 때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기쁨과 감사와 소망이 생깁니다.
문제는 기도가 항상 답입니다. 기도로 우리는 하나님과 통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첫댓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 애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질 때의 애통입니다. 이를 위한 해답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그 얼굴에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