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설교(60)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마13:51-52
예수님은 마13장에서 천국에 관한
여러 가지(7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 곡식과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감추인 보화 비유,
진주 비유, 그물 비유 등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
이 비유의 말씀들을 마치신 후에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51)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여러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이렇게 확인하는 질문을 하시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말씀을 선포하신 후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말씀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알아서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렇게 질문하셨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천국이라는 주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실제를 확신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깨닫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천국에 대한 분명한 확신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만일 천국이라는 실제가 없다면
우리의 구원은 헛일일 것입니다.
영생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죄사함도 의미가 없고,
부활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말씀을 마치신 후,
다시 한 번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대답>
제자들의 대답은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마13: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제자들이 100%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나름대로
깨달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교> 막4:13에 의하면 제자들은 깨닫지 못해서
예수님께로부터 책망을 당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따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막4:33-34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분명한 것은 100%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 대한
분명한 소망과 확신을 얻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비유의 가르침
-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제자들의 깨달음(믿음)을 확인한 예수님은
또 하나의 비유를 통하여
이 모든 천국 비유를 마무리 짖습니다.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서기관’에 비유하셨습니다.
이것은 뜻밖의 비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당시의 ‘서기관’들을
아주 싫어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서기관들을 야단치시고
저주하시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특히 마23장에는 서기관들을 향해
무려 일곱 번이나 “화 있을진저”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서기관’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서기관이 어떤 사람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기관이란 에스라 시대 때부터 내려온
사회 종교 계급입니다.
아주 존귀한 직책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옮겨 쓰고
해석하는 사람입니다.
에스라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서기관들이 원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전락해 갔습니다.
가장 신앙적이고 잘 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뒤에서는 돈을 사랑하고 권력을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제도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들을 종교적으로 억압하고 자기의 배를
불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시면
‘화 있을진저’라고 저주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렇게 비판하셨던
서기관들의 이름을 역설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본래의 뜻을 되찾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서기관’이란 단어 앞에
‘천국의 제자 된’이라는 구체적인 형용사를 붙여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제자들은,
서기관은 서기관인데,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이 해야 할 사명>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을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에 비유하셨습니다.
먼저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농촌에서는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그 농산물을 저장하는 곳간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그 해에 그 농산물을 다 소비하거나
팔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는 농산물을 곳간에 저장합니다.
또한 농가의 창고에는 농산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각종 농기구를 비롯해서
생활에 필요한 온갖 잡동사니들을 보관합니다.
그 창고에는 새것도 있고 옛것도 있습니다.
오직 집주인만이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집주인은 필요에 따라 옛것과
새것을 꺼내 사용합니다.
(예 - 주부들이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남의 주방에서는 일하기 힘듭니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새것과 옛것이 들어있는 곳간>
천국은 일종의 커다란 창고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무진장한,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창고입니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이 창고에 있는 모든 것을 빼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주인이 창고에서 옛것과 새것을 빼내는 것처럼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즉 진정으로
천국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이 신령한 축복들,
엄청난 하늘의 보화들을 마음껏
빼내어 쓸 수 있습니다.
혼자만 빼내어 쓰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주는 사명을 가르치십니다.
서기관의 사명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것과 옛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서기관’이라는 단어와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뜻이 분명해 집니다.
서기관은 율법과 선지자의 모든 글과
교훈을 지키고 복사(필사)하고 해석하여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옛 것”은 구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율법과 메시아에 대한 예언).
“새 것”은 지금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들은 새로운 말씀, 곧 천국의 복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로 신약성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창고에는 끝없이
풍성한 말씀(구약과 신약)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서기관이 “창고에서 새것과 옛것을
마음대로 꺼내 쓰는 집주인” 같다는 것은
신구약 성서를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곧 제자들은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바로 해석하여 전파하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주인처럼 자신의 창고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모르고는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도
하나님의 옛 말씀과 새로운 말씀을
알지 못하면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십시오.
마13: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고
고백한 다음 그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서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옛것과 새것)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천국을 발견해야 합니다.
<맺는 말씀 - 그리스도인은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마음껏 풀어
세상을 향해 ‘천국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과 세상 사이의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사명이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관광할 때에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나이아가라 폭포’입니다.
이곳에 가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외친다고 합니다. “나이야, 가라!”
여러분도 기회가 있거든 한번 해보십시오.
그러면 조금 젊어진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이곳에 나이아가라를 가로지르는
‘레인보우 브릿지’(Rainbow Bridge)라는
다리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다리는 1847년에 세워졌는데
소위 말하는 ‘현수교’(懸垂橋, a suspension bridge)
방식으로 건설되었습니다.
‘현수교’란 케이블로 강의 양쪽을 연결하고,
그 케이블 위에 다리를 놓는 그런 방식입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강의 폭도 워낙 넓고 절벽도 워낙 높았기 때문에,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굵은 강철 케이블 줄을
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기술자들이 나이아가라에는
현수교를 건설할 수 없다고 포기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 문제는
의외의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연날리기였습니다.
먼저 연을 강 건너편으로 날려 보내서,
그 연줄에 조금씩 더 굵은 줄을 연결하여
계속해서 옮기면 마침내 강철로 만든
케이블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 어린 소년이
강 건너편으로 연을 날리는데 성공했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의
‘레인보우 브릿지’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다리를 통해서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면서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험한 폭포 위에 놓인 웅장한 다리가
아주 가느다란 연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신앙적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 놀라운 역사도 처음부터 무슨 천지가
개벽되는 그런 사건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사실 연줄같이 가느다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인간의 불순종과 죄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사망의 깊은 계곡이 놓여있습니다.
사람 편에서는 그 누구도
이 계곡을 뛰어넘어 하나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이 계곡에 다리를 놓아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것은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천국과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의 사명입니다.
연에 작은 줄을 매어 날리는 기분으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복음의 다리가
되어 주십시오.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가십시오.
여러분의 친척과 친구들 중에서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다가가서 다리가 되어 주십시오.
이와 같이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또한 서로에게, 다리를 놓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날마다
확장되어가는 놀라운 기쁨을 더욱
풍성하게 맛보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바로
천국의 말씀을 깨달고,
천국을 소유한 자가 되어 천국과 세상을
잇는 작은 다리의 역할을 감당하는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