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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차 아침가리골 + 흘림골 - 밉상 강요이
[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8)
2008-08-06 13:41:27
[204차] 아침가리골 + 흘림골
2008. 8. 6. / 밉상 강요이
산행일 : 2008. 8. 2(토) ~ 3(일), 1박2일
산행길 : • 아침가리골 계곡 트래킹 (8/02, 토)
• 설악산 흘림골, 등선대 (8/03, 일)
참가자 : 문수, 광용, 상국, 민영, 웅식. (총 5명)
200차 가칠봉 산행에서도 비박 한 번 해보자던 내 꿈은 차 안에서 텐트를 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이후, 나는 꿈속에서도 텐트(?)를 치고 기타도 치며 노닐고 다닐 정도로 야영에 대한 미련이 가시지 않는다. 작년 구덕산우회에서 다녀온 아침가리골이 생각나 고수님께 문의하여 그 기록을 훑어보기도 하고, 다른 산행기 몇 편을 읽어보니 못 갈 길은 아니다 싶어 내 휴가 기간에 다녀오기로 한다. 중간에 약간 혼선이 있기도 하였으나, 선달님께 연락하니 선달님은 곧바로 정기산행으로 공지를 올려버린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지루한 장마는 끝이 나고 폭염 속에서 많은 인파가 휴가 가는 때인 만큼 같이 가겠다는 산우는 많지 않다. 조금이라도 많이 참가케 하고자 일정을 조정하기도 했으나 여의치 않다. 출장 갔다 비행기 내리자 마자 배낭 메고 달려온 장사님, 학교 행사로 홍도에 울지 않고 다녀온 지기님, 오랜만에 토-일 산행이 가능하다며 마나님의 윤허를 받고 나온 곰식이, 그리고 선달님과 나, 모두 5명이 참석키로 한다.
최근 들어 욕을 워낙 많이 먹어 밥을 안 먹어도 배 부를 기상청 예보관의 말을 믿어야 하나? 토-일에는 계속 비 내리겠다는 예보다. 원칙적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산행지 들머리에는 가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무조건 간다’를 외치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엔 걱정이 맺혀있다. 당일 토요일 아침, 침대와 부엌까지 챙기고 나서니 배낭이 장난이 아니다. 집결지 카페로 나가보니 가는 비는 보슬보슬 내리고, 조금 후 장사님이 도착하고, 선달님이 곰 한 분 모시고 오느라 조금 늦었다. 여러 의견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산행 들머리까지는 가기로 하고, 막히는 길을 퇴촌으로 돌아 홍천으로 빠진다.
홍천에서 아점으로 식사를 마치고 꼬불꼬불 강원도 길을 따라가는데, 문수 선달도 처음 가본다는 ‘전투과학화부대’ 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지나는 길에 조그맣게 세워둔 안내판을 보고 찾아 들어간 용소폭포, 이끼 낀 바위가 미끄러워 폭포 바로 앞은 들여다보지 못하고 만다. 폭포 아래로 이어진 소에는 가족과 함께 휴가 나온 아이들의 물놀이 모습이 평화롭다. 이 산골 구석에까지 팬션인지 뭔가가 들어서 있는 걸 보면 정녕 이 땅에 ‘오지’는 없어져버렸나 보다.
인제군 현리에서 저녁에 구워먹을 돝고기도 좀 사고 간식으로 쓸 강냉이도 조금씩 사 넣고, 30분을 더 달려 찾아간 진동계곡의 아침가리골 초입에는 많은 인파가 모여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날씨는 우중충하게 흐려있는데 물은 그다지 차갑게 느껴지질 않는 모양이다. <진동산채> 앞의 주차장이 만원이라, 그 옆의 노인정 앞에 주차하고, 계곡산행을 준비한다.
과연 오늘 밤을 어디서 자야 할지 걱정이다. 지리산으로 가자는 의견도 있었고, 덕유로 가자는 의견까지…… 오늘 텐트에 침낭, 매트리스까지 지고 물길을 올라가다가는 반도 못 갈 것 같다. 결국에는 ‘오늘밤 비가 억수로 온다’는 일기예보를 핑계 삼아 코스를 변경하여, 조경동교에서 방동약수 쪽으로 하산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신발 갈아 신고 배낭을 다시 꾸려 오후 1시 출발이다.
진동계곡에서 아침가리골이 합류하는 모래무지로 바로 건너가는 물길이 너무 사나워 보인다. 할 수 없이 빙~돌아 진동2교를 지난 곳에서 배수구를 타고 올라, 거추장스러운 덤불을 지나면 이제야 본격적인 아침가리골의 시작이다. 휴가 나온 가족들이 곳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고 있다. 어쩌면 여기서의 야영은 비가 온다면 다 철수해야 할 것 같다. 그물로 된 텐트 속에서 오수를 즐기는 한 가장의 모습이 유난히 평온해 보인다.
시작부터 아예 반바지 차림에 물길을 지팡이 짚고 오른다. 그 물이 너무 맑아 내 발톱에 낀 때까지 선명하다. 종아리에 난 털이 느끼는 물살이 부드럽다. 어제 내린 비로 불어난 물길은 조그만 수중보를 넘쳐난다. 아무도 없는 계곡하류를 거슬러 때로는 무릎까지, 때로는 허리까지, 때로는 유순하게, 때로는 쏜살같이 계곡의 물은 도도히 흘러간다.
이렇게 한 시간을 올랐을까? 처음으로 쉬어 간다. 아직 배고픔을 느끼기엔 너무 이른 시간인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출발이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음산해지고 깊은 골짜기에는 안개까지 피어 오르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때로는 물길 옆으로 난 흙 길로 가기도 하고 때로는 물길을 바로 치고 오르기도 하며 상류로 향해간다. 이제서야 한 무리의 산행객들이 하류로 내려온다. 아마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거꾸로 내려오는 것일 게다.
어느 산악회에서 단체로 온 산객들과 마주친 모모는 어느 몸매 좋은(?) 여성 산객의 안절부절 하는 모습에 팔을 붙잡으며 도와주려던 것이 오히려 그 산객을 물에 풍덩 빠뜨려버리는 소동이 일어나고,,,,,,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그 순간 모모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지 싶다.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는 킥킥대기만 하고…… 언제 어디서나 다정다감하게 다가오는 우리의 모모 그 정이 넘칠 때도 있나 보다.
때로는 흙길을 따라 때로는 물길을 가로지르며 약 두 시간을 더 올랐을까? 다시 쉬어간다. 선달님이 넣어뒀다는 과일을 찾아 10분 이상을 허비한다. 내가 메고 간 상구기 배낭에 멀쩡하게 넣어둔 과일봉지도 이제는 못 찾아내는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제 조금씩 지치는지 ‘언제까지 올라가야 하느냐’며 약간의 불평이 들리기 시작한다. 자두, 사과, 초콜릿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다시 행장을 꾸린다.
상류로 갈수록 물살은 드세지고 치고 오르는 힘도 그만큼 배가된다. 이제는 흙길을 가는 경우가 물길로 가는 시간보다 많아졌다 여길 즈음, 요란한 엔진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방동약수에서 오르는 임도가 가까워졌음을 알겠다. 마침내 조경동교에 이르렀다. 원래 예정은 여기서 상류 쪽으로 올라 왕승골 가는 길목에서 비박할 예정이었으나, 우려되는 많은 비에 계획을 수정하였기로 이제는 임도를 따라 방동약수 방향으로 내려갈 거다.
나 역시 여기서 내리막인 줄 알았는데,,,, ㅎㅎㅎ 알고 보니 조경령까지 고도 300미터를 더 올라야 했더라. 시차 극복한다며 공항에서 달려 나온 장사님도, 홍도에서 너무 재밌게 놀다 온 지기선사도 자꾸 처지는 눈까풀을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나마 폭 넓은 임도라 그렇지 꼬불꼬불 산길이었다면 조금은 위험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저어기 걱정되기도 하더라.
조경동교에서 힘들게 한 시간을 더 올라 조경령에 닿는다. 이 한적한 길에 차량이 여러 대 주차돼있다. 어디를 다니려고 올라온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근처에 민가가 있는 걸까? 의문 하나를 남기고 이제는 내리막을 내려간다. 모두들 샌달 신은 발이 내리막에서 고생이다. 이렇게 사람 마음이 간사한 모양이다. 사진 한 장으로 기억을 남겨두고 다시 내림길을 재촉한다.
‘방동약수’를 알리는 낡은 비석이 하나 서 있고, 그 급사면을 따라 50미터만 내려가면 닿을 곳인데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 저 아래에서 빙~돌아가는 포장길을 새로 만들어 두었다. 조경령에서 다시 한 시간을 걸어 방태산휴양림 갈림길에 닿을 때쯤 내리기 시작하는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방동2교를 지나면 곧바로 진동계곡의 버스정류장이다. 우리의 운짱 문수선달은 다시 차량 회수하러 가야 한다. 장대 같은 빗속을 거닐어 기어코 히치하이킹 성공, 10분을 기다려 돌아온 차에 탑승 완료.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 끝에 오색리로 가는 걸로 결정. 빗길을 달리는 선달님의 현란한 운전솜씨에 필레령을 넘어 한계령 넘어오는 길 44번 국도와 만나고 오색의 <남설악식당>으로 향한다. 각종 산나물이 먼저 올라오고 벌건 황태구이가 뒤이어 올라왔을 무렵, 다정이 넘치는 우리의 곰돌이가 직격탄을 날린다.
“무슨 더덕이 냄새가 하나도 안 나노?”
듣고 있던 우리는 무슨 소린가 하며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아이구, 곰아! 이게 무슨 더덕이고, 황태지!”
하는 순간 모두가 뒤집어졌다. 뒤이어 올라온 진짜 더덕구이, 한 젓가락 맛을 본 곰식이,
“야~~! 이게 진짜네. 서울에서 이런 냄새 맡을 수 있나?”
이렇게 황태를 더덕으로 변환시켜버린 곰식이, 니가 있어 더욱 행복한 날이었다.
휴가 시즌이라 좀처럼 민박집이 구해지질 않는다. 식당에 부탁하여 얻어낸 방 하나, 할머니가 우릴 마중하러 식당까지 찾아왔다. 함께 민박집으로 타고 가고, 조금은 좁다 싶은 방에 짐과 몸을 누인다. 근데 걱정이 많아졌다. 현리에서 사온 고기의 양이 적지 않은데 이걸 언제 구워먹나? 상국이가 준비한 김치와 내가 따로 준비한 파절이와 야채는, 곰식이가 준비한 된장찌개는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래도 추억 하나는 만들어 가자는 생각에 비를 피할 수 있게 준비된 평상에 또다시 전을 펼친다.
문수 선달님, 그 먼 길을 혼자 운전하랴,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랴, 너무 지쳤나 보다. 한 번 뻗은 몸을 다시 세울 줄을 모른다. 나머지 네 명이 평상에 모여 앉아 고프지 않는 배를 다시 채운다. 고기 절반만 구워 먹기로 하고 나머지는 쥔집 냉장고에 맡겨둔다. 김치, 파절이, 상추와 어우러진 돝고기 한 점이 또 다른 행복을 불러온다.
옛날 같으면 할아버지 행세했을 나이이지만 아직은 쓸만하다며 풀어낸 각종 음담패설! 평상 옆에는 창고인 줄 알았는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 부부인 듯한 한 쌍이 들락거리더라. 그 안에서 밤새 우리의 얘기를 다 듣고 있었을 그들 앞에 우리가 이토록 미안했던 적이 있었을까? 이렇게 설악의 밤은 굵은 빗속에 깊어만 간다.
이튿날 아침, 5시에 떠진 눈은 다시 감기지 않는다. 엎치락뒤치락, 한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아침밥을 짓기로 한다. 그래도 야영할 거라며 나온 길인데, 밥 한 끼 해먹지 않으면 입에 가시 돋을까? 문수는 버너 준비, 나는 밥을 안치고, 곰식이는 준비해온 된장찌개를 준비한다. 나머지 둘은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나 보다. 많이도 피곤했을 거다. 어쩌면 시차 극복하는데 산행처럼 좋은 운동도 없지 싶다.
내가 한 밥이지만 정말 잘됐다. 지금껏 몇 차례 야외에서 밥을 지어보긴 했지만 3층밥이 아닌 2층밥으로 이렇게 적당한 밥은 처음이다. 비록 양이 좀 많긴 했지만 말이지. 곰식이가 준비한 된장찌개, 정말 환상이었다. 아침밥을 이처럼 많이 먹어본 적이 언제였을까? 설악의 한 귀퉁이에서 하얀 쌀밥 위에 찌개 끼얹어 김치와 한 모금 하고 나서, 다시 끓여먹는 누룽지의 고소함이란??? 야영에서 참으로 귀찮은 일 중의 하나가 설거지 아닐까 싶다. 그런 일을 장사님이 다해줬다. ‘착한표’ 한 표 받고……
다시 배낭을 꾸려 길을 떠난다. 3년 전인가? 수해가 있은 직후에 규빈이를 데리고 온 적 있는 흘림골로 간다. 한계령 못 미쳐 오름길에서 시작하는 흘림골에는 숨어있는 비경 하나가 있으니,,,,,, 그 비경을 찾아 다섯 나무꾼이 찾아 들어간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여름날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야속하다. 밤새, 아니 새벽까지 내렸던 그 빗줄기는 어디로 사라지고 푸르디 푸른 하늘에 잠자리만 가득 맴돈다.
작년 여름인가? 수해를 다시 맞아 허물어진 길을 이젠 복구가 다 끝난 모양이다. 다리까지 새로 만들어 놓았고, 흘림골 입구도 근사하게 꾸며놓았다. 복구완료를 알리는 비석까지 설치해뒀다. 하지만 바로 뒤에 펼쳐진 수해의 현장은 아직 그때의 처참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그대로가 자연의 한 부분임에야……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게다. 너무나 많이 허물어진 계곡길 위로 나무 계단을 설치하고 고무판을 깔아놓았다.
여심폭포까지 한 800미터 되려나? 쉬엄쉬엄 올라가면 전망대를 만들어놨다. 헌데, 어제 내린 비가 너무 과했던지, 아니면 그녀가 너무 흥분했는지? 그 부분을 살짝 가려버렸다. 지난 번 사진이 없다면 그 진짜 모습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상구기가 혼자 끙끙대며 메고 올라온 9킬로짜리 수박 한 덩이를 들고 온갖 장난질이다. 그 구멍을 메꿔야 한다나? 각도 조절에 실패하여 엉뚱한 구멍을 찾은 사진도 있고……ㅋㅋㅋ
더 올라가면 적당한 장소가 없을 것 같아 여기 전망대에서 수박을 깨기로 한다. 주방장을 자처한 곰식이가 잘라주는 수박 한 입에 잠깐의 행복을 느끼며 남은 나머지는 뒤 따라온 팀에게도 나눠준다. 비닐 봉지 하나 얻어 뒤처리 말끔히 하고 배낭은 남겨놓은 채 등선대로 오른다. 다시 약 400미터를 오르면 등선대 마루에 닿고, 다시 100미터를 더 올라 등선대에 이른다.
남설악의 조망처로는 주전골 아래에 있는 남설악 만경대가 으뜸이겠지만 그곳은 금지구역이라 이곳 등선대만한 곳도 힘들 것이리라. 여기서 보는 설악의 주봉 대청봉이 구름에 가려있고, 지난 봄 다녀온 귀때기청봉도 구름과 숨바꼭질한다. 한계령 아래로 보이는 칠형제봉이 너무나 선명한 선을 긋고 있고, 뒤로는 점봉산과 망대암산이, 아래로는 주전골 깊은 골짜기가 칼날 같은 바위 틈새를 비켜가며 그 길을 보여준다. 여기서 보는 여심폭포는 짙은 숲으로 싸여 있지만 그 소리는 너무나 웅장하다. 아마도 그녀가 우릴 보고 많이 흥분(?)한 것일 게다.
이제는 다시 길을 바꿔 내려간다. 내 맘 같아선 주전골을 거쳐 오색까지 달리고 싶지만 여러 산우의 의견은 다른 것 같고 나중에 차량 회수에도 문제가 있어 그냥 오늘은 여기까지 만족하기로 한다. 다음에 다시 찾아올 핑계를 만들어 주는 셈이다. 왔던 길을 그대로 내려오고 여심폭포 전망대에 내려뒀던 배낭을 다시 메고 내려오면 2시간 반에 걸친 흘림골-등선대 산행을 완료한다.
12시가 다된 시각, 이제 서울로 돌아가자! 다시 필례령을 넘어 선달님의 안내로 하추리계곡으로 들어간다. 바로 가는 것보다는 조금 돌아가는 것이지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하는 선달님의 정성이 고맙다. 언제 우리가 다시 이리로 와볼 수 있을 것인가? 이곳도 수해를 당했던지 새로 보수한 흔적이 눈에 많이 띈다. 이제는 불가능하겠지만 가족끼리 오붓하게 놀기는 딱이겠다 싶다.
계곡길을 따라 유유자적하게 달리면 신남리 부근에서 44번 국도(새로 난 길)와 만난다. 여기서는 잘 아는 길, 쭉쭉빵빵이다. 조금은 허기를 느낄 즈음, 항선달님의 배꼽시계는 어김이 없다. 가리산 입구의 막국수 집을 찾아간다. 이번에는 동동주가 제법 숙성된 것이 지난 번과는 달리 입에 맞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대는 이 집의 비결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길을 나선다.
돌아오는 길, 잠은 쏟아지고 항선달님은 라디오 볼륨을 최대로 키워놓았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나온 결론은 양평에 가면 차가 밀릴 것인즉 당구 함 치고 가잔다. 이런이런?? 또 물이백 뽀록나게 생겼다. 자~~! 할 수 없다. 이제 만천하에 공개하자.
“그래. 나는 물이백이다. 담에는 너그가 놓으라는 대로 놓으께. 그래도 폼은 한 삼백쯤 안 되더나??”
아~~!! 이는 악몽임에 틀림없다.
다시 차를 몰아 밀리는 양수리를 돌아 퇴촌으로 간다. 퇴촌을 벗어날 무렵 8시가 넘은 시각이라 저녁을 먹기로 하고 선달님이 밀면을 사준다. 고맙게 잘 무�다. 이제 더 이상 밀릴 구간은 없는지라 잘 달려 다시 카페 앞 광장에 당도하니 9시 조금 못된 시각이더라.
모두 잘 들어갔다니 다행이고, 모두들 수고했심다.
지금도 아찔하다. 그날 텐트치고 야영한다고 고집 부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으니, 설악산 산신령이 지켜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래도 야영은 진~~~짜로 함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