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5.
감자 수확
하지 전에 감자를 캐야 한다. 일주일 정도 여유가 있어 장마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감자알이 충분히 성장했다는 객관적 자료는 없다. 몇 뿌리 캐서 확인한 바로는 지금 당장 수확해도 후회할 일이 아님을 안다. 아직 감자밭을 몽땅 뒤엎은 교육생은 없다. 대개는 한두 뿌리를 뽑아 수확일을 저울질하는 중이다. 새벽에 일어나 체력단련실에서 잠시 몸풀기하다가 뜬금없이 감자 수확을 결정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월요일 가족들에게 택배를 보내려면 2~3일 전인 오늘은 캐야겠다는 심사였다.
새벽 5시에 감자를 수확한다. 씨감자 110 쪼가리 3kg을 심었다. 그 결과를 오늘 수확하는 것이다. 땅이 여물어 호미로는 흙이 파이질 않는다. 삽으로 두둑 주위를 무너뜨린 다음에 감자 뿌리 근처를 한 번 더 파내기로 했다. 나는 땅을 뒤집어엎고 아내는 감자를 주웠다. 미숙하다 보니 삽날이 감자 몸통을 가르고 호미가 감자 옆구리를 긁어버리기를 서너 차례 했다. 생재기가 찢기는 아픔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저울이 없어 수확량이 얼마인지 모른다. 큰 놈은 어른 주먹만 하지만 몇 개 안 되고 감자 모양을 갖춘 것들까지 한편으로 모았다. 눈대중으로 20kg 상자에 담았다 붓기를 해보니 두 상자 남짓이다. 엄지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작은 감자는 조림용이라 하지만 양조간장을 부어 조릴 겨를도 없어 보인다. 아내는 벌써 계산이 다 된 듯하다. 아들, 딸, 시동생, 사촌 시누이와 오빠랑 동생까지 예닐곱 등분이 끝났다. 작은 수확이라도 가족끼리 나누겠다는 예쁜 마음을 가진 아내가 사랑스럽다. 아내의 손짓에서 예전에 고향 땅 농부인 재홍씨의 모습이 겹친다.
유기농 감자는 저장성이 없다. 인과 칼륨 성분의 비료를 줬어야 감자가 단단하고 껍질이 두꺼웠을 텐데, 생각이 짧았다. 교육생 중에 아주 일부는 수확 20일 전에 복합비료를 뿌렸다. 나로서는 비료에 대한 견해가 부정적이었고 웃거름 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무경험의 교육생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에서 게으름을 택한 나의 변명이다. 수확하고 나니까 걱정이 앞선다. 저장성이 약하니 서둘러 먹어 없애는 방법이 최고라 판단된다.
마음에는 걱정이라는 보따리 하나가 들어와 앉는다. 내심 택배비가 만만찮아 보인다. 몇 개 안 되는 감자 알맹이를 자그마한 상자에 담아서 보내면 양이 작아 안쓰럽기도 하겠지만 얼마나 반갑고 고마울까 싶다. “이런 게 정이지, 뭐!” 풍족이란 사랑과 반비례할 수도 있으니 무조건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해야겠다. 아내가 구해온 작은 상자들이 눈앞에 굴러다닌다. 사랑이다.
첫댓글 맞어 사랑이야
우린 큰 감자가 없다. 그래도 갯수로는 우리가 제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