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제 이론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단어 중 하나가 조작(操作)입니다. 피아제가 자신이 구성한 인지 발달 단계를 ‘전조작기’,‘구체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로 나눌 만큼, ‘조작’은 피아제 이론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피아제를 이해하는 기준이 된다고 하여도 그다지 과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림이라는 도식적 언어를 통한 표상도 사실은 피아제가 이야기 하는 조작의 한 형태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선생님들이 하시는 활동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이해에 토대한 자기 활동의 논리적 정당성과 교육적 적실성으로 스스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다음 글을 통해 연구회 선생님들이 의문스러워 하는 것들의 일부가 해소되고, 또 도식적 표상의 활동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심화되었으면 합니다.
조작은 동작(動作)의 한 형식으로서, 물체를 직접 손으로 다룰 때처럼 직접적인 형식을 취하기도 하고, 머리 속으로 사물이나 사물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을 다룰 때처럼 내면적인 형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공을 벽에 던져 튀어나는 활동을 통해 입사각과 반사각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조작 활동 중 직접적인 동작의 형식을 취하는 조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환경과 관련된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공장 폐수, 죽은 고기 등을 매개(상징체)로 이들 간의 관계와 환경 오염을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내면적 형식의 조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조작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조작의 정의와 종류가 아니라, 조작이 인지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직접적 활동이든, 머리 속의 내면적 활동이든 조작은 우선 실제 세계의 현상을 머리 속에 넣고(내면화), 그 현상들을 조작하는 “정신 활동” 혹은 “지적 활동”이라 것입니다. 그래서 조작의 정의 중 하나가 ‘조작은 내면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지적 활동을 의미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술한 입사각과 반사각간의 관계를 찾는 과정은, 그리고 공장 폐수와 고기의 죽음간의 관계를 해석하는 것은, 사실은 직 ․ 간접적인 조작 활동 과정에서 이들의 관계를 사고하는 지적 활동이지요. 이렇게 보면, 조작 활동의 목적은 조작의 과정을 통해 조작할 내용을 정신 구조(精神 構造)로 바꾸는 것이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성된 정신 구조는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 됩니다. 그리고 정신 구조로 바뀌게 되면 실제 행동을 해보지 않고도 머리 속으로 이해가 가능해 집니다. 다시 말해 공을 다시 벽에 던져 튀어나오도록 하는 활동을 하지 않고도 입사각과 반사가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조작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가역성(可逆性)입니다. 여기서는 빼겠습니다.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연구회가 하고 있는 도식적 표상도 일종의 직 ․ 간접적인 조작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직접적 조작 활동이고, 손으로 그리기 위해 먼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간접적 조작 활동이라 할 수 있지요. 따라서 그림 그리기의 핵심은 겉으로 들어나는 직접적 조작이 주가 아니라 그것을 유도하는 간접적 조작, 즉 내면적 조작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면적 조작의 들어남이 그림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활동이 올바르게 되면 조작 내용과 관련된 정신 구조가 형성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조작 내용과 관련된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을 구성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최선생님이 하신 그림자에 대한 도식적 표상 과정이 이와 유사하다가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그리는 것들은 그림자 모습이지만, 그 모습들의 변화는 사실은 그림자에 대한 아이들의 내면적 사고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이렇게 볼 때, 최지은 선생님이 그림자 그리기 지도에서 맞추어야 할 초점은 아이들로 하여금 빛과 대상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림 내용은 빛과 대상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였는지를 판단하는 근거입니다. 따라서 그림은 아이들의 내면적 사고 과정과 결과를 이해하는 하나의 준거 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림을 토론의 매개체로 사용하였을 때의 장점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지속적인 대화가 가능하였다’ 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내면화와 그것의 표상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고차적으로 될 것으로 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림 그리기라는 조작 활동은 조작 내용과 관련된 아이들의 사고 수준과 사고 과정, 사고 결과를 이해하는 중요한 원천이며, 교사는 그것을 토대로 아이들에게 맞는 맞춤 교수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은 수준별 교수를 토대로 자신들의 사고를 재정립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의미는 레지오 에밀리아 수업에서 자주 보았습니다. 레지오 교육의 특징인 상징화 주기가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것도 아이들의 생각을 교사가 그림을 통해 판단하고, 그 판단을 토대로 새로운 안내를 하고, 아이들은 그 안내를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수정하고, 보완하고, 심화하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요.
이처럼 도식적 표상은 겉으로 들어나는 그림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내면적 사고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것이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첫번째입니다.
다음으로 그림이라는 도식 언어가 갖고 있는 교육적 의의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림이라는 상징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상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즉, 외부 세계를 상징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곧 외부 세계를 단순화하고 일반화 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화하고 일반화하지 않고는 그림으로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그 전까지 하나 하나 개별적으로 지각하든 사물을-주로 머리로만- 어떤 특성을 중심으로 단순화, 일반화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단순화, 일반화의 의미를 쉽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개’라는 단어는 수없이 많은 개들을 모두‘개’라는 한마디로 요약하는 것이어서 이는 단순화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개의 특성을 한 단어‘개'로 표현한 것은 개마다의 특수한 특성이 아닌 어느 개에게나 있는 공통적인 특성을 지칭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것은 일반화에 해당됩니다. 이 의미는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개념화 가능해 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브루너가 이야기 하는 탐구 수업의 핵심도 여기에 있습니다. 개라는 일반적 개념을 발견하는 것이지요.(발견학습)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그림을 통한 도식적 표상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글이 아닌 그림이라는 색다른 방법의 채택이 아니라, 외부 세계를 혹은, 여러 사회 ․ 자연 현상을 단순화하고 일반화하는데 가장 합당한 도구를 택하기 위한 모색의 과정에서 도식적 언어를 찾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개념화의 용이성 때문이지요. 개념화는 당연히 고차적인 내면화 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기 위해서는 더욱더 고차적인 사고 과정을 필요로 하지요.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사고를 심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상징화 주기) 그리고 교사의 끊임없는 관찰과 안내가 필요 한 것입니다. 이렇게 단계적인 교육과정과, 단계마다 교사의 적절한 안내를 받으면 더없이 좋은 개념화의 도구가 도식적 표상인 것입니다. 이 같이 중요한 교육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림이라는 도식적 언어와 그것을 통한 표상입니다.
이것이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두 번째입니다.
2003년 9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