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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세대에 표적이 되실 예수님
누가복음 11장 29-32절 / 29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본문은 4절의 짧은 구절입니다만, 이 안에서는 세 개의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첫째, 요나가 악한 세대에 표적이 되었던 것과 같이 예수께서도 당시의 악한 세대에 표적이 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29-30절). 둘째,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31절). 셋째,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크신 분이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씩 살펴봅니다.
1. 악한 세대에 보일 표적
(1) 요나의 표적
군중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있은 일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이 세대는 참으로 악하구나! 이 악한 세대가 내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나, 내가 보여 줄 것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던 것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 심판 날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할 것이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멀고 어려운 여행을 하였다. 그러나 솔로몬보다 훨씬 더 크신 이가 여기 있다. 심판 날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다. 그러나 지금 요나보다 훨씬 더 크신 이가 여기 있다.”
본문의 이야기에 앞서 예수님은 당시의 악한 세대를 지칭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좇으며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성령을 훼방함에 있는 죄의 악함에 있는 상태를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의 처지를 가지고 이야기해 주셨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 있다고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나, 예수님 당시의 세대는 이 지혜에 있는 것을 거부하고 예수님에게 단지 표적을 구하는 악함에 있을 뿐인 것을 지적하면서,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며,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악한 세대에 표적이 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표적이 되실 것인지의 이유를 알려주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을 들어 자신을 통해 보일 표적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해서, 먼저 요나의 표적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던 것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게 표적이 되실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께서도 표적이 되실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다고 하신 요나의 표적은 요나에게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이적을 가지고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으로 주신 것을 가지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욘 1:1)로 나사렛에서 조금 북쪽에 위치한 가드헤벨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대략 주전 780년경(B.C. 785-770/753)에 선지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때는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기였으며, 남왕국은 아마샤와 웃시야(함께 섭정)가 통치하던 시기였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는 여로보암 1세의 악행을 그대로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악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우상숭배에 빠뜨리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1세와 똑같이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를 보내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의 생명을 아끼시며 구원하실 것을 요나의 표적을 통해 예언적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에 의한 하나님의 예언에 있는 약속에 따라 여로보암 2세는 잃어버렸던 이스라엘의 옛 영토를 모두 다시 정복하여 북단의 하맛 입구에서부터 남단의 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되찾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열왕기하 14장 23-2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때에 있은 요나의 표적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때 있은 요나의 표적이 주어진 목적은 그 대상이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행하신 이적을 통해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있는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하신 일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하나님의 구원에 있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는 표적이 되게 하신 것을 뜻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를 앗수르의 큰 성 니느웨로 보내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까지 닿아 하나님이 크게 진노하시어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니느웨 성이 멸망할 것을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선지자 요나는 자신이 이방의 땅에 들어가 발에 먼지를 뭍히는 것을 원치 않아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배를 타고 도망하였습니다. 그런 요나를 하나님은 큰 풍랑을 만나게 하여 바다 깊은 곳에 내던져지게 하여 산채로 수장되는 상태에 처하게 하신 후 그를 큰물고기에 삼켜지게 하고서는 그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주야를 있게 하는 상태에서 그의 생명을 거두지 않고 붙잡고 계시는 이적을 행하시고서는 해변에 뱉어내게 하여 그가 가지 않으려고 한 니느웨 성으로 가게 하여 앞으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 성이 멸망한다고 외치게 한 것입니다. 니느웨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자기들 땅에 들어와 외치는 것인데도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 왕을 비롯하여 가장 높은 사람에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서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여 초상 때에나 입는 베옷을 입고 금식하였는데, 사람이든 짐승이든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서 자신들이 행한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구원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키려던 뜻을 돌이키시고 멸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하나님께 크게 불만을 토했는데,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임시로 나뭇입으로 초막집을 짓게 하고는 뜨거운 태양으로 시들어 버려 더위에 지쳐 힘들어 할 때 박넝쿨을 자라게 하여 요나의 머리 위를 덮어 그늘지게 함으로 뜨거운 태양의 열을 피할 수 있게 되자 크게 기뻐하였으나, 이번에는 그 박넝쿨을 벌레가 갉아 먹어 시들어 죽으므로 다시 뜨거운 햇볕에다가 뜨거운 열기의 바람인 동풍이 불어옴으로 요나는 다시 차라리 죽는게 낫다며 하나님께 크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은 요나가 자신의 손으로 수고도 하지 않았고 키우지도 않았으나 하룻밤 사이에 나타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나뭇잎과 박넝쿨 하나에 대해서도 못내 아쉬워하며 크게 못마땅해 하며 슬퍼하는데, 하물며 지각이 없어 좌우 사리를 분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 이상이 되고 그들이 거느린 가축 또한 수없이 많은 니느웨 성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는 것이 어찌 옳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통해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우상숭배를 하는 악행에 있는 죄악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회개를 하나님께서 어찌 듣지 않고 외면하여 멸하시겠느냐는 것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긍휼에 두시고서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회개에 있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는 표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 요나의 표적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들의 악한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왕국 유다 또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악함을 따르는 죄악에 있었는데, 이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그 악행의 길을 그대로 따르며 걷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을 것(마 12:40)을 깨닫지 못함으로 예수님에게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조상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하나님에게서 떠나 하나님이 금하신 악을 행하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겪었던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표적을 구하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과연 그 표적을 행하여 보일 수 있을 것인지를 시험하고자 할 뿐이었습니다.
(2) 예수님에게 일어날 요나에게 있은 표적
그런데 말입니다. 표적이 유대인의 조상에 주어졌던 의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이스라엘이 참으로 악함으로, 그 악으로부터 돌이켜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있게 하시는 회개에 있게 함으로 그들의 악한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구원에 이르는 회개에 있게 하기 위하여 구속주의 사역을 행하셔서 온 세상에 구주가 되시며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이것으로 예수께서 나타내실 표적이 있게 됩니다. 그것은 요나의 표적이 보여주고 있는 것인 삼일 밤과 삼일 낮을 땅속에 있으나 죽음이 예수님을 삼키지 못하고 토해 내는 부활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에게 일어나는 죽음과 부활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구원의 복음으로 삼으시고 이 복음을 들어 주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들의 마음을 주 예수께로 돌이키는 회개에 있게 하여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마태복음에서는“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라고 하시면서“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40)라고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있게 하실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고 있는“요나가…됨과 같이”에서의‘됨과 같이’는“마치…(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발생한 것과 같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과 같은 일이 예수님에게도 일어날 것을 알려줍니다. 그것은“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을 것”입니다. 선지자 요나를 삼일 밤과 삼일 낮을 큰물고기 뱃속에 있게 하셨다가 해변에 토해내게 하여 니느웨 성으로 가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여 회개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이적이 예수님에게도 일어날 것이니 예수께서는 밤낮 삼일 땅 속에 있을 것이나 죽음이 예수님에게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삼키지 못하고 토해내는 부활을 하심으로 온 세상을 구원에 이르는 회개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적이 되실 것입니다.
2. 솔로몬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시나 믿지 않는 악한 세대는 정죄 받을 것임
이는 말이죠. 심판 날에 남방 여왕(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 방면의 먼 거리에 있는 나라인 스바의 여왕)이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멀고 어려운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남방 여왕이 보기 위하여 찾아온 솔로몬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 누구인지가 말씀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지금 여기 너희와 함께 하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이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시고 있는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참고로, 마태복음 12장 38-42절에서는 누가복음의 기록과 동일한 이야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만, 내용의 전개에서는 누가복음과는 달리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크신 분이시라는 것이 먼저 나오고 뒤이어서 솔로몬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심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누가복음의 기록 순서를 따르는 것에서 솔로몬보다 더 크신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시고 있는 것을 이것이 말씀되는 구약의 배경에 의하여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1장 31절 /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열왕기상 10장 1-13절 /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3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4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왕궁과 5그 상의 식물과 그의 신하들의 좌석과 그의 시종들이 시립한 것과 그들의 관복과 술 관원들과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크게 감동되어 6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7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8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9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10이에 그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에게 드렸으니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드린 것처럼 많은 향품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더라 11오빌에서부터 금을 실어온 히람의 배들이 오빌에서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운반하여 오매 12왕이 백단목으로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고 또 노래하는 자를 위하여 수금과 비파를 만들었으니 이같은 백단목은 전에도 온 일이 없었고 오늘까지도 보지 못하였더라 13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의 여왕에게 물건을 준 것 외에 또 그의 소원대로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그가 그의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더라.
역대하 9장 1-9절 / 1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질문으로 솔로몬을 시험하고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매우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향품과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2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솔로몬이 몰라서 대답하지 못한 것이 없었더라 3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와 그가 건축한 궁과 4그의 상의 음식물과 그의 신하들의 좌석과 그의 신하들이 도열한 것과 그들의 공복과 술 관원들과 그들의 공복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정신이 황홀하여 5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 6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본즉 당신의 지혜가 크다 한 말이 그 절반도 못 되니 당신은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7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8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하나님이 당신을 기뻐하시고 그 자리에 올리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왕이 되게 하셨도다 당신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려고 당신을 세워 그들의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9이에 그가 금 백이십 달란트와 매우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께 드렸으니 스바 여왕이 솔로몬 왕께 드린 향품 같은 것이 전에는 없었더라.
예수께서 말씀하신“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의 이야기는 위에서 보는 대로 열왕기상 10장 1-13절, 그리고 이것의 병행구절인 역대하 9장 1-9절에서 해주시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의‘남방 여왕’은 역대하 9장 1절에서는‘스바 여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남방 여왕’과 ‘스바 여왕’은 같은 한 사람인 동일인물입니다.‘스바’는 사람의 이름이 아닌 지역과 그곳에 세워진 나라 이름으로, 남방에 있는 스바 여왕은 이 스바를 다스린 여왕인 것입니다. 이 스바가 어느 지역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만, 전통적 견해는 에디오피아의 해안 지역으로 봅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스바 여왕을 애굽과 에디오피아를 통치하던 자로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함의 후손 가운데 스바가 있기 때문에(창 10:7; 대상 1:9) 스바 여왕을 아프리카 출신으로 여긴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스바를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심부 지역에 대한 고대 명칭으로 봅니다. 이는 이와 관련한 고대의 다양한 기록들이 남아 있으며, 그 기록들이 본단락의 정황과 상당히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기록에 의하면 남아라비아에는 미네아인(Minaeans), 사베아인(Sabaeans), 가다바니아인(Qatabanians), 하드람인(Hadhrams) 등 네 민족이 거주했는데, 이들 중 사베아인은 스바의 백성을 말합니다. 스바는 유향, 몰약, 보석 등과 같이 고대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각종의 진귀한 산물들의 집산지였으며, 통상로인 남아라비아를 지배하면서도 비교적 안전한 변방 지역에 위치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스바 여왕은 이 스바를 다스린 여왕을 말하는 것인데, 이 지역은 예루살렘으로부터는 남쪽으로 2,400km나 떨어진 먼 거리이므로 예수께서는‘남방 여왕’즉, 남쪽 방면에 있는 스바라는 나라에서 온 여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개역한글 및 개역개정성경, 새번역, 바른성경, 쉬운성경, 킹제임스흠정역, 한글킹제임스, 현대인의성경은‘남방 여왕’으로 번역하였으며, 공동번역, 쉬운성경, 우리말성경은“남쪽 나라 여왕”이라고 번역하였고, 현대어성경은 남방 여왕을‘스바 여왕’이라고 번역하면서 각주로“글자대로는 `남방 여왕'”이라고 설명을 달았습니다.
스바 여왕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솔로몬 통치 당시 북부 아프리카나 남부 아라비아 지역에 여왕들이 다수 등장했다는 점에서 예수께서 언급하신 스바도 여왕의 통치하에 있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스바 여왕, 곧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 방면으로 2,400km 정도나 떨어져 있는 멀고도 참으로 먼 거리에 있는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 통치 때 솔로몬을 만나 보려고 직접 대사절단을 동행하고서 찾아왔습니다.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왕상 10:1-2)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질문으로 솔로몬을 시험하고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매우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향품과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대하 9:1)
스바 여왕이 이처럼 솔로몬 왕을 찾아왔을 때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으로서 가장 전성기에 있을 때였습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찾아온 것은 국가 간의 화친이나 경제 협력이 목적이어서가 아닙니다. 당시 세상의 각 나라 왕들은 솔로몬의 소문을 듣고 그의 지혜를 배우려고 사절단을 보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열왕기상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의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더라. (왕상 4:29-34)
솔로몬 왕은 자신의 지혜로움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잘 알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한 솔로몬 왕의 명성은 온 세상에 전해지며 그를 칭찬하며 존경하며 존귀히 여김이 사람들의 입에서 자자하였습니다. 이러한 솔로몬 왕에 대한 소문은 스바 여왕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그러자 스바 여왕은 솔로몬 왕의 지혜를 시험해 보려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스바 여왕은 자신이 소문으로만 들었던 솔로몬 왕이 과연 지혜로운 자인지, 솔로몬 왕이 지혜롭다면 그 지혜가 당시 각 나라의 현인들의 지혜에 비해 어떤 것인지를 직접 시험하여 확인하고자 한 것입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 왕의 지혜를 시험하는데 사용한‘어려운 문제’에 사용된 단어는‘수수께끼를 내다’(삿 14:12),‘비유로 말하다’(겔 17:2)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문자적 의미로는‘수수께끼’혹은‘비유’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어성경은‘어려운 수수께끼’라고 번역하였고, 카톨릭성경은‘까다로운 문제’, 새번역, 우리말성경, 한글킹제임스‘어려운 질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서 의도하는 것은 스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찾아와 그의 지혜를 시험한 것은 비록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생각하고 궁리하면 풀어낼 수 있는 그런 문제, 곧 난제에 해당하는 문제를 가지고 질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솔로몬 왕의 지혜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열왕기상 3장 5-15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솔로몬이 깨어 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온 세상의 존경을 받는 솔로몬 왕이 보인 지혜는 부왕 다윗이 하나님을 진실히 섬기며 충성되게 나라를 다스린 것을 그대로 따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다윗의 왕위를 잇게 된 것이 다윗과 함께 하시며 그의 아들이 왕위에 앉을 것을 약속해 주신데 따른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는 자신의 왕위가 다윗을 대신하여 세워주신 주님에 의해서 있게 된 것임을 알기에 부왕 다윗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자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항상 느끼고 들을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주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솔로몬 왕에게 그가 구한 지혜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에 따라서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을 다스려나가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지혜가 발휘되어 백성들을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섬기도록 바르게 인도하였는데, 그런 그의 지혜가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가 지은 잠언은 3천이 넘었고, 그가 지은 노래는 1005편이나 되는가 하면,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지식도 뛰어나 오늘날의 동식물도감이나 사전에 해당하는 온갖 동물과 식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제공함으로 백성들의 삶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솔로몬 왕의 지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지혜 있는 자의 삶을 살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외의 세상 각 나라의 왕들이 나라를 통치하여 백성들을 다스려가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러한 솔로몬 왕에게 스바 여왕이 찾아와 미리 준비했던 여러 어려운 문제를 내어 솔로몬 왕의 지혜를 시험하고자 하였을 때, 솔로몬이 대답하지 못한 문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스바 여왕이 아무리 어려운 것을 물어도 솔로몬이 당황하거나 대답하지 못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스바 여왕이 질문한 어려운 문제들은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으로서 나라와 그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과 관련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솔로몬 왕이 지은 잠언이 3천이 넘었고, 그가 지은 노래는 1005편이나 되며,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하였다고 한 것을 보아, 스바 여왕이 질문한 어려운 문제들은 통치에 필요한 정치, 경제, 문화를 비롯하여 천지만물의 원리와 법칙을 밝히는 자연 및 우주 세계를 듣는 것을 통해서 온 세상에 유일한 주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말해지는 지혜의 이야기입니다. 스바 여왕은 이스라엘 왕궁에 머물러 있는 동안 그가 한 모든 질문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확인하였으며, 또한 성전도 둘러보고서는 크게 감탄하였습니다. 그 스바 여왕이 자신의 땅 스바로 돌아가기 전에 솔로몬 왕에게 남긴 말입니다.
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왕상 10:6-9)
스바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서 어떤 질문에 대한 것에도 지혜로운 말을 하는 대답을 듣는 것을 통해서 확인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잇는 왕으로 솔로몬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의 통치를 맡겨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그 백성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짓밟히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자가 없도록 지혜에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스바 여왕을 들어 당시 예수님을 배척하는 악한 세대를 형성하고 있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유대인들을 정죄하는 심판의 날로 삼으십니다.남방의 먼 나라인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찾아와 확인한 것은 솔로몬왕이 다스리는 나라와 백성이 섬기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이 말해지는 지혜입니다. 스바 여왕은 이스라엘 왕과 백성이 섬기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인정하며 그 이스라엘의 신이 자신과 세상의 각 나라와 백성들이 섬기는 신들보다 크신 참으로 위대한 참신이심에 경의를 표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에 온 세상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굴복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으로“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더라”(왕상 4:34)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며, 스바 여왕 또한“이에 그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에게 드렸다”(왕상 10:10) 라고 했으며,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드린 선물이 얼마나 많은지“그것처럼 많은 향품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더라. 오빌에서부터 금을 실어온 히람의 배들이 오빌에서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운반하여 오매, 왕이 백단목으로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고 또 노래하는 자를 위하여 수금과 비파를 만들었으니 이같은 백단목은 전에도 온 일이 없었고 오늘까지도 보지 못하였더라”(왕상 10:10-12)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이 온 세상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지혜로 십자가의 도를 주시는 일을 예수께서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길에 있으시는 것을 통해서 하시는데, 하나님의 지혜와 이 지혜에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부인하며 배척하는 무지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그 백성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먼 이국 땅에서 스바 여왕이 찾아와 경의를 표한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심을 말하며, 이 예수님을 다른 땅도 아니고 예수님이 임하신 땅에 있는 자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이들의 가르침과 인도를 따르고 있는 유대인들이 거부하고 배척함에 있는 것에 스바 여왕은 그들의 악한 죄를 정죄하는 심판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3. 요나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시나 믿지 않는 악한 세대는 정죄 받을 것임
예수님은 심판 날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서 당시의 악한 세대로 지칭하시고 있는 예수님을 거부하며 배척하는 유대인들을 정죄하는 것에 다름 아님을 그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멀고 어려운 여행을 하였으나 솔로몬보다 훨씬 더 크신 이가 여기 있다는 말씀을 가지고 하신 것에 이어서 계속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심판 날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할 것이니 그들은 요나가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 소식을 듣고 회개하였다며, 지금 요나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 계심에도 이를 믿지 않는 악함에 있다는 것을 책망하는 것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여기에서의‘심판 날’은 앞에서의 남방(스바) 여왕이 언급되는 것에서도 말해지고 있는 것으로, 니느웨 성을 심판하는 것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을 종말적 관점에서의 최후 심판 시기로 있는 심판 날과 관련하여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요나보다 더 큰 이”에서 보게 되는‘…보다 더 큰 이’는 역시 앞에서의 남방(스바) 여왕이 언급되는 것에서도 말해지고 있는 것으로, 비교급이 사용되고 있는 문자적 의미는‘요나보다 더 위대한 분/우월한 분’이나 문맥상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선지자 요나라는 사람과 예수님 자신을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니느웨 성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용서를 빌어 구원해 주실 것을 구함에 있게 한 선지자 요나가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 소식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온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심을 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비교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서‘요나보다 더 크신 이’는‘요나의 표적보다 더 큰 표적’또는‘요나의 전도보다 더 능력 있는 전도’를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의 공생애에서 나타내신 행적인 설교와 가르침, 그리고 이적에서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분이심을 여실히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이 마지막 방문길에 오른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서 대속주로서의 죽임을 당하는 것에서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게 되는 일을 그들의 눈으로 보는 것에서 겪게 됩니다. 이것은 요나가 큰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있었던 것보다 더 큰 이적입니다. 요나가 큰물고기 뱃속에서 밤낮 사흘을 있게 하신 것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니느웨 성 사람들을 그들의 죄를 회개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악한 죄를 정죄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주의 죽임을 당하심으로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었던 것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온 세상 이방 나라에까지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가 임하는 큰 빛의 비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배척하는 악한 죄에 있는 자들은 정죄를 당할 것이니 니느웨 성 사람들이 일어나 어린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그들의 악함을 증언하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은 그들 나라에서 숭배하는 그들의 우상 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참 신이신 하나님이 전하는 심판을 이스라엘의 선지자 요나로부터 듣고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비에 있는 구원을 바라봄으로써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의 신들보다 더 크신 분이심을 인정하는 것에 있었으며 그 크신 하나님께 굴복함에 있었습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이 선지자 요나가 전하는 심판 소식에서 본 것은 온 세상의 주이신 참으로 크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을‘요나보다 더 크신 이’라는 자기 계시의 표현을 통해서 선지자 요나에게 있게 하신 이적에서 보여주신 참으로 크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주시는데, 예수님이 자신을‘요나보다 더 크신 이’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 자신의 계보(족보)를“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그 위는…그 위는…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눅 3:23-38)에서 보게 되는‘그 위는’(‘그 이상’은)이라는 표현과 같습니다.‘그 위는’(‘그 이상’은)에서 이야기하여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것으로,“예수는 하나님이시다”를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나, 예수님은 그 선지자 요나가 자신에게 있은 이적을 통해 바라봄에 있은 메시야이십니다. 요나는 자신에게 있은 표적에 의해 자신의 입에서 전달되는 하나님의 심판을 외쳐 니느웨 성 사람들을 회개하게 한 그 표적을 받음에 있은 이스라엘을 회개에 있게 하였으나 도무지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악함을 정죄하는 일을 했는데, 심판 날에 어린아이로부터 나이 많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니느웨 성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악한 세대에 있은 사람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 나라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선지자 요나가 전하는 설교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크게 무서워하며 두려움 속에서 자기들에게 그 심판이 임하지 않기를 위하여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였는데,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정작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실 하나님의 은혜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함으로써 도무지 회개하지 않는 악함을 보였습니다. 이 악함은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었던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가둔 무덤을 여시고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여 온 세상에 생명의 구원을 주는 회개의 복음이 되시는데도 회개하지 않는 것에서 죄성이 지닌 힘을 발휘하는 데 따른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예수님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이적인 예수께서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시고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하심은 그들의 악함을 정죄하는 심판의 표적이 되십니다. 이렇게 앞서에서의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심이 이야기 되고 있는 것에 이어서, 또한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4.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게 하신 후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부활에 있게 하신 이적을 유대인과 이방인 모든 사람, 곧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회개에 있게 하심을 전하는 표적이 되게 하십니다. 이 표적이 주어졌음에도 유대인들이 갖는 사고의 신앙을 추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음에 관심을 갖지 않고 신비한 이적을 좇으며, 이방인들이 갖는 사고의 신앙을 추구하는 자들은 합리적 이해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합니다. 그런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는 어리석게만 들려 십자가의 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을 미련하게 생각합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게 들리며 미련한 것으로만 여겨집니다(고전 1:18-25).
하지만 말입니다. 십자가의 도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그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사도 바울은 선지자 이사야가 전했던 이사야 49장 8절을 들어서 말합니다.“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실 때가 올 것이니 그 때가 오면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부르짖는 소리가 있게 하실 것이며, 그 부르짖음을 들어 구원하겠다고 하신 것이라며, 지금이 바로 그 때라며, 지금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밤낮 부르짖음에 있는 자들의 구함을 들으시고 계신 것이며, 그에 따라서 오늘이 그들을 구원하시는 날이라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에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에 있는 자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의 도를 듣는 우리의 가슴을 심하게 마치 드러머가 드럼을 때리고 북과 장구를 치는 자가 북을 치며 장고를 쳐 강한 진동을 울리는 것처럼 박동하는 감동, 감격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도에 믿음에 굳건히 서 있는 자는 그의 심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잔잔한 물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친 바람이 불면 파도는 커지고 높아져 큰 배도 삼킬 위용을 갖습니다. 육지는 언제나 평온한 상태로만 유지되는지요. 아닙니다. 크고 작은 갖가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납니다. 이 모두에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차지하고 있어 생각을 지배하며 삶을 이끌고 있는 것은 그들의 믿음으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엠마오에서 온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중에 예수께서 자신들과 동행하며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하며 박동하는 심장으로 벅찬 마음으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예배에서 성경을 풀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 또한 우리에게 들려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해와 그 믿음에 더욱 굳건한 자로 돌아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