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보유세, '나중'에 내는 게 올바른 이유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동료들
이 글은 보유세를 깎아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세율은 지금보다 높아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걷는 시점을 바꾸는 게 옳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대라는 것의 본질에 맞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보유세는 금리와 같은 일을 한다
간단한 계산으로 시작하자. 땅값은 그 땅이 앞으로 낳을 지대를 할인해 현재가치로 환산한 값이다. 그런데 보유세가 부과되면 소유자가 손에 쥐는 것은 지대에서 세금을 뺀 나머지다. 이를 계산에 넣고 정리하면 결과가 간명하다.
땅값 = 지대 ÷ (할인율 + 보유세 실효세율)
보유세율이 할인율(금리)에 그대로 더해지는 항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보유세 실효세율 1%포인트 인상은 실질 할인율 1%포인트 인상과 같다. 비유가 아니라 항등식이다. 자산가격에 미치는 효과의 관점에서 보유세와 금리는 수학적으로 등가다.
다만 같은 크기의 약이라도 온몸에 퍼지는 약과 아픈 곳에만 닿는 약은 다르다. 금리 인상은 기업의 설비투자, 실수요자의 원리금, 국채 이자, 자영업자의 운전자금에 모두 작용하지만, 보유세 인상은 토지의 자본화에만 작용한다. 토지에 대한 과세는 토지를 줄이지 않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지대를 가장 적합한 세원으로 꼽은 논거가 이것이었다. 그러니까 보유세는 같은 자산가격 효과를 훨씬 작은 부작용으로 달성하는 수단이다.
문제는 징수 방식이다
우리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OECD 하위권이자 미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위 등식에 따르면 그 통화적 효과는 금리를 몇 분의 일 퍼센트포인트 올린 정도에 그친다. 그렇다면 세율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옳은 진단이 30년 넘게 제기되고도 번번이 좌초했다.
'세(稅)'라는 글자가 붙는 순간 그것은 국가가 사유재산에서 떼어가는 것으로 인식되고 조세저항의 정치학에 갇히기 때문이다. 종합부동산세가 겪은 일이 그러했다.
그러나 지대는 다르다. 빌린 자가 빌려준 자에게 치르는 값이다. 땅의 가치를 공동체가 만들었다면 보유자는 공동체로부터 사용권을 빌린 자이고, 보유세는 그 사용료다. 징수가 아니라 정산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분에서 실질적인 결론이 따라 나온다. 징수의 시점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은 옳은데 현금이 없다"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은퇴자에게 해마다 수백만 원을 현금으로 내라는 것은 사실상 집을 팔고 나가라는 말과 같다. 한국 가계는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갖고 있고 그것이 사실상 노후 대비 수단이니, 이 개혁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노후 불안의 문제로 체감된다.
지금까지의 답은 감면이었다. 고령자 공제, 장기보유 공제, 1주택자 특례. 그러나 깎아주는 만큼 세수가 줄고 형평이 무너지며, 무엇보다 누구를 봐줄 것인가를 두고 끝없는 다툼이 벌어진다. 예외가 늘어날수록 제도는 누더기가 된다.
다른 길이 있다. 깎아주지 말고 미뤄주는 것이다.
이미 여러 나라가 하고 있다
상상이 아니다. 미국의 매사추세츠·텍사스·일리노이주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고령자와 장애인 등에게 보유세 납부를 소유권 이전 시점까지 연기할 수 있게 한다. 유럽에서는 덴마크가 선구자로, 연기된 세금이 해당 부동산에 담보로 설정되었다가 소유권이 넘어갈 때 청산된다. 아일랜드는 소득 기준에 따라 전액 연기와 부분 연기를 나누어 신청받는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나 원리는 같다. 해마다 산정하되 그때 걷지는 않는다. 세금을 깎지 않고도 현금 부담의 문제를 푸는 것이다.
예외가 아니라 원칙으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위의 사례들은 모두 특정 계층에 대한 배려다. 그러나 필자는 모든 보유자에게 사후납부를 기본으로 하고, 현금으로 미리 내는 쪽에 유인을 주는 방식을 제안한다.
지대라는 것의 성격에서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결론이다. 토지의 사용은 여러 해에 걸쳐 이어지고, 그 이익은 대부분 처분이나 상속 시점에 실현된다. 30년을 살다가 팔 때 비로소 그동안 오른 값이 손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정산도 그 시점에 맞추는 것이 이치에 맞다. 세금이라면 해마다 걷어야 하지만, 지대의 징수는 재정 조달이 아니라 정산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설계한다. 해마다 산정된 보유세는 장부에 기록되고, 매각이나 상속 시점에 일괄 정산된다. 현금으로 미리 내는 쪽에는 국채 금리에 준하는 할인을 준다.
이렇게 하면 체감이 완전히 달라진다. "해마다 내되 형편이 어려우면 미뤄준다"와 "장부에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정산하되 미리 내면 깎아준다"는 같은 제도이지만, 후자에는 당장 나가는 돈이 없다. 제도의 실효성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세율인데, 사후납부는 그 세율을 올릴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투기 억제 효과는 오히려 세진다
"미뤄주면 효과가 없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그렇지 않다.
쌓인 지대채무는 자산에 붙어 다니는 고정 부담이므로 오래 들고 있을수록 나중에 갚을 몫이 늘어난다. 보유의 기회비용을 높여 금리 인상과 같은 방향의 효과를 내면서도, 실수요자의 현재 이자 부담은 건드리지 않는다.
특히 사용하지 않고 값이 오르기만 기다리는 보유자에게 불리하다. 그 땅에서 수입이 나지 않으니 채무만 쌓이기 때문이다. 반면 실제로 그 땅을 쓰며 수익을 내는 사람은 그 수익으로 미리 정산할 수 있다. 투기를 겨냥하고 실사용을 보호하는 구조인 셈이다.
지대채권과 토지배당
사후납부가 보편화되면 초기 몇 해는 세입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메우는 방법은 있다. 정부가 그 지대채권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미래에 확실히 들어올 돈이고 부동산이 담보로 잡혀 있으니 우량하다.
여기서 눈여겨볼 일이 벌어진다. 지금 우리의 금융은 은행이 땅값을 담보로 돈을 만들어내고 그 돈이 다시 땅값을 밀어올리는 구조다. 그런데 지대채권은 땅값이 아니라 지대에, 저량이 아니라 유량에 근거한다. 같은 토지를 담보로 삼되 무엇을 보느냐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걷힌 지대는 인구 균등으로 배당해야 한다. 토지를 평균보다 적게 쓰는 사람은 순수취자가 되고 많이 쓰는 사람은 순납부자가 된다. 모두가 내고 모두가 받는 구조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이면서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종합부동산세는 2024년 기준 주택보유자 1,562만 명 가운데 2.9%인 46만 명 정도만 냈다. 부담자는 뚜렷한데 혜택을 입는 사람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니 조세저항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막아설 사회세력이 없었다. 배당이 함께 가면 순수혜자가 다수가 되고, 그들이 방파제가 된다.
덧붙이면 뉴욕 맨해튼의 배터리파크시티에서 이미 토지를 팔지 않고 임대해 그 지대를 공공이 거두어 순환시키는 방식이 운영되고 있다. 걷는 방식도, 걷은 것을 돌리는 방식도 이미 어딘가에서는 굴러가고 있다.
시점을 바꾸는 일
토지에서 나오는 몫을 공동체가 정산받는 일이라면, 그 정산의 시점은 사용의 이익이 실현되는 때여야 한다. 그것이 이치에 맞고,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세율을 제대로 올릴 수 있으며, 투기 억제 효과는 오히려 커진다.
깎아주는 것이 아니라 미루는 것. 예외가 아니라 원칙으로. 보유세는 나중에 내는 것이 올바르다.
첫댓글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