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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58) 2024. 2. 7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사무엘하 22장 1-7
삼하21~24장은 일종의 부록으로, 앞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부가적으로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시는 시편 18편에서도 소개되고 있는데, 내용 면에서 거의 일치하며, 문체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다만 시편 18:1절에는 오늘 시에는 기록되지 않은 선언과도 같은 고백이 하나 추가되어 있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오늘 다윗의 시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만을 자신의 힘으로 삼고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다른 이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배경을 힘으로 삼고 살았습니다(물질, 군대, 인맥, 자신의 지혜 등등). 그러나 다윗에게는 그 어떤 배경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힘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지켜 주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까지 세워주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다윗의 고백은 우리 신앙인의 기본적인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고전15:9~10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감격하며, 자신의 전 생애를(생명까지)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향해 사랑 고백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
21~22장은 다윗의 통치 초기에 있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고, 23~24장은 다윗의 통치 후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22장은 많은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구원의 은총을 체험한 다윗>
그러면 다윗의 찬양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다윗의 찬양이 언제 이루어졌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이 말씀을 통해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진정한 찬양은 고난 가운데서 구원을 체험한 사람의 입술을 통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일생을 보면 그의 삶은 대적들과의 싸움으로 점철된 생사를 넘나드는 파란만장함 그 자체였습니다.
왕위에 오른 직후부터 이스라엘 주변의 많은 이방 민족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숙적 블레셋을 비롯하여 아람, 모압, 암몬, 아말렉, 소바, 에돔 등 많은 민족과 수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사실 다윗을 가장 위험하게 한 것은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 왕으로부터 받은 위협이었습니다.
본래 인간의 속성상 왕이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자는 이인자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다윗의 인기가 자신의 인기를 추월하는 것을 본 사울 왕은 어떻게 해서든 다윗을 제거하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사위(미갈)로 삼고도 그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위협한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울의 눈에서 멀어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야로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울은 전국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을 발견하면 반드시 자기에게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다윗이 있는 위치를 사울에게 알렸습니다. 정보가 들어오면 사울은 무려 3천 명의 병사를 데리고 다윗이 있는 동굴 주변을 포위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사울의 손을 피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골리앗과 맞서는 것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한 번은 사울 왕을 피해, 블레셋의 ‘가드’로 피신한 적도 있습니다. 그가 피한 가드는 블레셋의 5대 성읍 가운데 하나로
다윗이 죽였던 골리앗의 고향이었습니다(삼상17장). 다윗과 원수 관계에 있는 성읍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사울 왕의 추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곳은 블레셋 땅 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어린 시절 다윗의 모습이 아니고, 군복을 벗은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리라 추측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다윗을 붙잡아 가드 왕 아기스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 순간 다윗의 마음은 어땠겠습니까? “이젠 죽었구나”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즉석에서 꾀를 내었습니다. 갑자기 미친 짓을 한 것입니다. ‘침을 수염에 흘리면서’, 손가락으로 대문에 끄적거리는 등 미친 사람의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 행동을 본 가드 왕 아시스는 미친 사람을 자기에게 데려왔느냐고 호통을 친 뒤 내어 쫓고 맙니다. 아이스 입장에서는 원수 갚은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블레셋의 다른 사람들은 다윗을 알아보았습니다. 아시스만 다윗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하나님이 그의 눈을 가려주신 것입니다. 다윗의 꾀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간섭하셨기에 살아난 것입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 3,000명을 거느리고 수색할 때 다윗은 굴속에 숨었습니다. 굴은 입구가 하나여서 도망갈 길이 없습니다. 다윗은 그 안에서 두려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순간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울의 군대가 그 굴을 수색하려고 좁혀 들어오는데 갑자기 사울 왕의 배가 아팠습니다. 결국, 군사들은 나가고 사울 왕은 그 굴에서 용변을 보았습니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또, 한 번은 사울과 그 군대가 다윗을 에워쌌습니다. 이제는 정말 독 안에 든 쥐였습니다. 그때에도 다윗은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한 병사가 사울에게 전갈하기를 지금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전쟁을 시작했다고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군대를 철수하여 전쟁터로 나갑니다. 타이밍 기가 막히지요?
이때의 다윗은 그저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다윗도 매 순간 자신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찬양은 단순히 입술에서만 나오는 형식적인 찬양이 아닙니다. 구원의 은혜 속에서 나오는 체험적인 신앙 고백적 찬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찬양도 구원의 체험 속에서 드리는 찬양이어야 합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기적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요 은혜입니다. 어제 수많은 사람이 오늘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또, 복음을 받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신 것이 기적이요 은혜입니다. 전도 받는다고 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지금 여기에서’ 존재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찬양이 구원의 은혜 속에서 드려지는 다윗의 찬양과 같이 체험적인 찬양을 올려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도가 당하는 환난의 날은 동시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구원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은 자신이 고난 당하는 그 시간에, 하나님도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울의 군대가 다윗을 에워쌌을 때, 한 병사가 사울에게 블레셋이 침공했음을 알렸습니다. 그럼 이 순간만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일까요? 아뇨,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칩입하려는 모든 준비과정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이방 민족을 들어 사용하시거든요.
여러분! 요셉의 고백을 기억하시지요. 그는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감옥에 갇히는 시험도 있었지만, 단 한순간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감옥에서 바로의 관원장들을 만나게 되었고, 결국 바로의 꿈을 해몽하여, 그의 신뢰를 얻어 애굽의 총리대신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훗날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을 때, 형들이 음식을 얻고자 애굽에 온 것을 보고, 그들이 아버지 야곱을 위하고 베냐민을 위하는 것을 확인한 후, 자신이 그들의 동생 ‘요셉’임을 밝힙니다. 형들이 두려워하지 요셉을 위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창45:7~8a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귀신 들린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므로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밤중쯤 되어 감옥에서 기도와 찬양을 드림으로 지진이 나며 차고가 풀리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이 일들을 통해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습니다(행16장).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때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지병이나 시험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사정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받은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께서 타이밍에 맞게 정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체험한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어떤 상징으로 표현됩니까?
2~3절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3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속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들입니다.
특히 ‘반석’은 단단한 암반을 의미합니다. 이곳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홍수가 나도 그 기초가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곳입니다. 여러분, 환란은 폭풍우와 같고, 성난 홍수와도 같이 달려듭니다. 그러나 반석 되시는 하나님은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이러한 반석 위에 보호하심같이 존귀하게 보호하시며 구원해 주십니다.
또 반석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불변성과 견고성(堅固性)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이 용어가 최초로 하나님께 비유된 유래는 모세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반석'이라고 묘사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신32:4). 하나님께 대한 그의 절대적인 신뢰를 표현하였습니다.
'요새'는 사람의 힘으로 짓지 아니한 천연적 지리조건을 갖춘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가파른 바위에 둘러싸인 산꼭대기를 의미합니다. 이 요새 안에 있으면 그 어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합니다.
‘나를 건지시는 자’는 환란의 늪에 빠져 죽어 가는 당신의 백성들을 건지시는 자로서 절망 가운데 처한 성도들을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늪은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음).
또 ‘방패와 구원의 뿔’에 비유하여 표현하였습니다. '방패'(shield)는 수비용 무기이며, '뿔'(horn)은 공격용 무기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성도를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적의 공격을 방어해 주기도 하시며, 때로는 적의 세력을 파(破)하는 공격도 감행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뿔'은 그러한 세찬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힘', '능력', '권세'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높은 망대’에 비유하여 표현하였습니다. ‘망대’는 적의 동태를 살펴 경계하는 곳입니다. 즉 깨어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피난처’(refuge)에 비유하여 표현하였습니다. ‘피난처’는 사막지대의 기후상 갑자기 몰아닥치는 모래바람과 폭풍우 등을 만났을 때, 그러한 것들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하고도 큰 바위 밑이나 동굴 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은 언제 어느 때나 인생의 폭풍우를 만났을 때 우리가 피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 되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비유적 표현을 통해 다윗이 말하고자 했던 결론은 무엇입니까?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구원자’이십니다. 본 시는 다윗이 자기에게 구체적으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하는 시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비유적 표현으로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습니까?
예전 교회학교 아이들 – ‘하나님은 독수리 오 형제와 같은 분.’
<환난 중에 아뢰었나이다>
그런데 여기서 곡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란 중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4~7절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5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6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7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본문에서는 환난을 ‘사망의 물결’, ‘불의의 창수’, ‘스올의 줄’, ‘사망의 올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죽음 직전까지 갔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죽음의 고비 가운데서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 이외에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데이비드 딕슨이라는 분은 ‘기도 해봐야 소용없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의 구원 체험은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기도의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이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증언합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기억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이 말씀은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는 동기가 되었음을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겔36: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약4:2~3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이 기도를 요청하시는 이유는 우리와의 ‘영적 교제’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교제’가 일어납니다. 교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사랑이 끝난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친밀하게 연결해 주는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영적 대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고, 우리의 원하는 바를 구하기도 합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도 세상을 살아갈 때 뜻하지 않은 어려움과 시험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에 취합니다. 술만이 위로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술이 무슨 유익을 주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화하신 이후, 마을에 내려와 보니 어떤 귀신들린 아이들 둔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와서 귀신을 쫓아달라고 조르고 있었습니다. 제다들이 능히 쫓지 못하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는 귀신을 쫓아내어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제자들은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지를 묻자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히스기야도 환난 속에서 주님을 만났고, 욥도 환난 속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환난 중에 기도함으로 주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예방 주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윗이 승전가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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