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제가 가고자 한 곳은 예루살렘이었는데, 그곳으로 갈 수 없게 된 상황이라 정말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본 후에 저는 키예프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행을 모두 하느님께 맡기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인간의 선한 지향을 어여삐 여기셔서, 덕행을 닦는 데 방해가 되거나 영적으로 무익한 여행이 되지 않게 하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키예프를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순례의 길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가지 사건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어두운 영혼에 구원의 빛이 비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었다면 저는 결코 영적 은인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키예프를 향하면서 낮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따라서 걸었고, 밤에는 <자애록>을 읽으며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자애록>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적들과 투쟁할 수 있도록 제 영혼을 강건하게 해주고 격려해 주는 책이었습니다.
오데사에서 한 30분 저도 걸었을 때의 일입니다.
짐을 가득 실은 긴 마차 행렬에 30여 명의 사람들이 동행하고 있었는데, 선두의 마부는 말고삐를 잡을 채 걸어가고 있었고
다른 마부들은 각기 자기 말 근처에서 일행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도 부지런히 그 마차 행렬을 따라서 걸었지요.
마차 행렬은 한 연못가를 따라 이어졌는데, 그때가 막 겨울이 끝나 갈 무렵이어서 연못에는 녹은 얼음들이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선두에 있던 젊은 마부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뒤따르던 마차들도 자연스레 멈추었습니다.
마부들은 선두 마차에 무슨 변이라도 났는지 걱정 하면서 앞으로 달려갔는데, 선두 마차의 마부인 젊은이가 옷을 훌훌 벗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옷을 벗는지 물어보니, 그는 연못에 뛰어들어 목욕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말하면서 그를 비우식도 하고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의 친형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시 마차로 돌아가라고 강하게 말리면서 자신의 동생이 연못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옥신각신하는 형제들을 외면한 채 말 여물통에 연못의 물을 퍼 담았습니다.
그때 장난기가 동한 젊은이들이 "이봐, 우리가 목욕시켜줄게." 라고 하면서 그 마부의 머리와 등에 찬물을 마구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마부가 "오! 그거 참 시원하네!"라고 말하면서 땅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는데, 장난을 치던 젊은이들이 그에게 물을 더욱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땅바닥에 앉은 그가 갑자기 옆으로 쓰러지더니 그만 조용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장난치던 젊은이들과 일행들은 모두 놀랐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젊은이의 죽음에 대해 원인을 밝혀야 한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젊은이가 죽은 것은 그의 운명이라고 단정해 버렸습니다.
저는 약 한 시간 정도 그 일행들과 같이 있다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반 정도 걸으니 언덕 위에 있는 마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마을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연로한 신부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저는 신부님께 조금 전 연못가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그분의 의견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사제관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사제관에 도착하자 왜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해 달라고 재차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자연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놀아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네.
내 생각에 그런 일들은 자연의 법칙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사건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섭리와 질서를 보여 주시려는 것으로 여겨지네.
전에 나도 그와 비슷한 사건을 목격한 적이 있었지.
우리 마을 근처에 아주 깊은 협곡이 있는데, 폭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그 깊이는 약 27미터 정도 되었다네.
그 협곡 위에는 출렁다리가 있어서,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지.
그런데 우리 성당의 교우 중에 평판이 좋은 농부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충동적으로 출렁다리에서 깊은 협곡 아래도 뛰어내렸다네.
그 농부는 일주일 전부터 감당할 수 없는 충동을 받고있었다고 했네.
그는 이 충동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이를 얼제할 수 없었다고도 했지.
결국 그 충동을 이기지 못한 그는, 그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그 출렁다리로 달려갔다고 하더군.
다리가 부러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그 농부의 신음 소리를 들고 동네 사람들이 그를 계곡 바닥에서 건져 냈다네.
그리고 '이 사람아,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건가?' 하고 물었지.
그러자 그는 누를 수 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뛰어내린 것이라고 하며, 오히려 이제는 마음이 편안해서 좋다고 했다네.
동네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지.
그 농부는 그 후로 약 1년 동안 병원 신세를 졌는데, 내가 가끔 병문안을 가곤 했지.
어느 날 그를 진료한 의사들에게 그가 협곡 아래로 뛰어내린 원인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의사들은 단순히 일시적 광기 때문일 거라고 말하면서도 명확히 해명할 수는 없다고 말하더군.
그래서 그에게 그런 위험한 충동을 일으킨 것은 무엇인지 물었더니, 의사들도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라는 것 외에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고 말했지.
이처럼 우리는 일상생활 중에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종종 접하게 된다네.
하지만 나는 열렬한 기도로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고, 선하고 현명한 사람들의 조언을 구한다면, 절대로 그러한 일시적 광기에 제압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날이 저물었고, 저는 사제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 마을의 대표가 신부님께 전날 갑자기 죽은 그 젊은 마부의 장례식을 주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마을의 의사들은 시신을 땅에 묻기 전에 부검해 보았으나, 별다른 사인은 찾을 수 없었고 갑작스러운 충격이 원인이었을 거라고 진단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신부님은 저를 돌아보며 "그것 보게나. 그 젊은 마부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물로 뛰어들려던 것에 대해 의학적으로는 그 어떠한 원인도 밝혀낼 수 없다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신부님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