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우리의 그 시절은 서넛만 모이면 수다와 웃음으로 주위가 시끄러웠는데 그 여학생들은 너무도 조용해서 눈길이 갔다. 예의를 아는걸까, 주위를 의식해서일까. 그 모습이 기특해서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웬걸 식사를 하면서 각자 휴대폰을 꺼내들고 있었다. 앞자리의 친구는 아랑곳않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지 무선인터넷을 하는지 삼매경에 빠진듯한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이 못내 신기했다. 각자 다른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려면 무엇하러 모여있는 걸까. 요즘 청소년들의 두뇌구조가 재미있다.
하긴 이들에게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즐거움을 뺐는다면 금단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서울YWCA가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휴대폰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휴대폰 음성통화는 하루 평균 4.8건 정도를 이용하는 반면, 문자메시지는 53건이나 보내는 것으로 조사된 것을 보면. 이제 휴대폰은 어른이나 청소년을 막론하고 없어서는 안될 생필품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번 수능부정행위도 따지고보면 손끝에서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휴대전화의 생리를 최대한 이용한 역작용이기도 하다.
휴대폰 문자메시지의 발달은 어디까지인지 모른다.
생일아침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미역국 사진과 꽃다발영상을 보내고, 문자의 크기와 색깔을 마음대로 바꾸는가하면 귀여운 그림과 캐릭터 등을 덧붙여 화려한 멀티미디어 메일을 날릴 수도 있다.
필자도 젊은이들만큼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덕을 보는 편이다. 회의중이거나, 버스 이동중일 때 옆사람에게 피해를 주지않으면서 신속히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번 수능부정 조사과정을 본 후 갑자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에 대해 망설여지고 찜찜해진다.
그동안 이동통신사들이 법률적인 근거도 없이 메시지 내용을 일정기간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면서 불쾌했다. 지금도 누군가가 마음먹는다면 통신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갑자기 문자메시지를 멀리하게 된다.
이번 수능부정행위 적발을 위해 경찰은 수능시험일 하루동안 보내진 전국 휴대폰사용자의 문자메시지 약 2억여건을 검색했다고 한다. 물론 그 결과 많은 부정행위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지만 전혀 관계없는 일반인들은 자신들의 일상적인 통신내용이 ‘빅 브라더’에 의해 감시당한 것처럼, 제3자에게 노출됐다는 사실에 당혹해하고 있다.
이번에 애꿎게 오해를 받았던 사람중에는 통장 계좌번호를 적어 보낸 부부·남매도 있었고, 이사간 아파트 동 호수를 적어보냈다가 조사를 받은 사람도 있고, 특히 TV드라마의 유행어인 ‘2222너2222’(이 안에 너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은 연인이 용의선상에 오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통신내용이 밖으로 유출됐다는 사실에 불쾌해했다.
문자메시지 내용의 저장과 삭제를 놓고 소비자와 시민단체, 그리고 수사기관은 찬반 주장이 팽팽하다. 소비자와 시민단체는 통신내용은‘사유재산’개념인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곧바로 삭제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수사기관은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강조, 수사를 위해 ‘저장’ 쪽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의견이 각각 일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사생활침해는 더 이상 방치해둘 수 없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통신의 발달로 개인의 인적사항이 자신도 모르는사이 인터넷에 떠다니고, 전화번호며 주민등록번호가 그대로 노출된다. 전화는 언제 감청당할지 몰라 불안하며, 도처에 박힌 몰래카메라에는 자신의 어떤 모습이 잡힐지 몰라 불편하다.
그런가운데 문자메시지만은 비밀이 보장되는줄 알고 모두 자유롭고 편안하게 이용해왔는데 이제 그것마저도 타인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문자메시지 내용까지 검색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이며 인권 침해다. 언제 범죄내용이 오갈지 몰라 보관을 해야한다면 개인끼리 주고받는 편지는 어떻게 할까. 모든 편지도 복사해두었다가 필요하면 조사해야되지 않겠는가. 어떤 이유든 현행 법률상 통신내용을 저장할 의무가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저장은 안된다.